2017 민들레 [곤란한 결혼] 읽기 모임 6
세 번째 후기에서도 밝혔다시피 한 권의 책이 나오기까진 저자와 역자, 편집자의 생각이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으며, 나오고 난 후엔 독자들의 생각이 영향을 끼치게 된다. 한 권의 책을 둘러싼 여러 요인들이 부딪히고 합력하며 한 권의 책에 대한 스펙트럼을 넓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독자들끼리 읽은 소감을 이야기하는 것도 좋지만, 책을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중요하다. 이번 모임엔 역자와 편집자가 함께 참석했으니, 책에 대한 주변 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역자인 박솔바로로 말할 것 같으면, 지금 지지학교를 운영하고 계신 준규쌤의 아들이다. 준규쌤과는 함께 일을 했던 적이 있어 역자와도 자연스럽게 몇 번 스치듯 마주친 적은 있지만 이야기를 나눠본 적은 없었다. 친숙한 듯 어색한 사이이고, 아는 듯 모르는 사이인 그렇고 그런 관계란 말씀. 그래서 이번 모임을 통해 처음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는데, 목소리 톤이나 억양에서 준규쌤의 분위기가 물씬 느껴졌다. ‘좋아하면 닮아간다’던데, 역시나 그 말은 진리였던 거다.
첫 질문은 왜 하필 많고 많은 책 중에 『곤란한 결혼』이었냐는 것이다. 이런 질문을 들으면 누구나 거창한 의미를 얘기하고 싶어진다. 누군가 나에게 “왜 한문 교사가 되고 싶었나요?”라고 물으면, “한문은 언어잖아요. 언어는 열쇠라고 생각해요. 그 문자로 사유하고 생각하던 시대를 열어젖힐 수 있는 열쇠 말이죠. 그래서 지금과는 다른 문화와 사고방식 속에 살던 시대를 지금의 아이들에게 소개해주고... 이러쿵 저러쿵....”라는 식으로 의미심장하게 말하려 하듯, ‘비혼시대에 경종을 울리고 싶다’든지, ‘결혼을 하지 못해 눈칫밥 먹는 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든지 하는 식의 답변이 돌아올 것이라 기대했다.
그런데 역자는 단호하고도 한 치의 꾸밈도 없이 “일본에선 1년 전에 나온 신간인데, 아버지가 ‘한 번 번역출간해 보는 건 어때?’라고 권유해줘서 해보게 됐어요”라고 대답한다. 한껏 자신을 띄울 수 있는 기회임에도 있는 그대로 말한 것이다. 그건 마치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왜 여기 이 세상에 왔는가?”라는 물음에 “나는 지구에 춤추러 왔습니다”고 대답하던 박진영의 기백이 느껴졌다. 두 대답 모두 ‘무겁기보단 가볍게, 진지하기보단 경쾌하게, 의미심장하기보단 생기발랄하게’를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그런 대답에 이어진 ‘책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에 대한 이야긴, 여느 소설 못지않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전개로 긴장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처음 역서를 출간하는 일이니만치 어떤 과정에 의해 책이 나오는지 몰랐다고 한다. 그저 단순히 ‘선착순으로 빨리 번역한 사람이 출간할 수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달려들어 밤낮 가리지 않고 번역에 몰두했단다. 번역을 마친 후 그 원서를 출판사에 내밀면 별 다른 어려움 없이 출판이 착착 진행될 줄만 알았는데, 현실은 그처럼 간단하지만은 않았다고 한다. 번역서의 출간은 선착순이 아닌, 계약순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우선 『곤란한 결혼』이란 책을 출간하고 싶은 한국 출판사가 일본 출판사와 계약을 마친 후에 역자는 번역을 할 수 있고 번역이 마친 후에야 책으로 나오는 시스템으로, 순서가 뒤바뀐 것이다. 더욱이 민들레 출판사가 일본 출판사와 계약을 맺을 때만 해도 이미 3군데 출판사에서 계약 신청을 해놓은 상태여서, 상황은 오리무중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다른 출판사가 계약을 따게 되면, 몇 달간 고군분투했던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가니 말이다. 그런데 행운의 여신은 그의 무모한 도전에 감동을 받았던지, 민들레 출판사가 계약할 수 있도록 했고 이렇게 책으로 나올 수 있도록 했다. 이쯤 되면 천운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역자의 힘겨웠던 출간 과정에 대한 이야기만큼이나 편집자의 이야기도 꽤나 흥미로웠다. 민들레 출판사는 지금까지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는 교육서를 출판해왔다. 그래서 『넘나들며 배우기』, 『바보 만들기』,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와 같이 충분히 논쟁적인 내용을 담은 책들을 꾸준히 출판해왔던 것이다. 그런 출판사의 성격에서 보자면 『곤란한 결혼』이란 교육서보단 사회과학서나 자기개발서에 가깝기에 뜬금없는 책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처음엔 이 책을 출간할지 말지에 대해 치열한 논쟁까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책의 내용이 단순히 결혼에만 국한되지 않고, 교육과 결혼을 사회 유지의 두 가지 축으로 본다든지, 결혼을 통해 낯선 타인과 함께 사는 어려움을 통해 개인적으로 성숙할 수 있는 기회로 본다든지 하는 부분은 충분히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기에 출판하기로 결정되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모임에 참석한 어떤 분은 “이 책이 민들레의 도서목록에 그렇게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교육은 단순히 한 현상내지는 한 과정에 국한된 게 아닌, 삶 전체를 아우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결혼까지 사유의 대상으로 놓고 고민해볼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충분히 민들레에서 나올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이런 역자의 우여곡절과 출판사 내부의 치열한 논쟁을 뚫고 마침내 『곤란한 결혼』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이 책은 누군가가 던진 질문에 우치다쌤이 답변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치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책으로 옮겨놓은 구성이라 보면 된다. 그런 구성이다 보니 즉문즉설에서 느껴지는 한계가 이 책에서도 그대로 느껴진다. 구조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치환하여 ‘모든 게 다 네 탓’이라 느껴지게 한달지, ‘~해야 한다’는 투의 대답으로 어른이면 으레 할 법한 얘기한달지, 그가 싱글파파가 되어 딸을 양육할 수 있었던 여건과 지금 한국 사회의 싱글맘이 자식을 키우는 여건이 현격히 다름에도 자신의 이야길 보편화시켜 얘기한달지 하는 것들 말이다.
그러다 보니 “이 책은 결혼에 대한 자기개발서 같아요”, “이미 사회 전반적으로 내재해 있는 가부장적인 환경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성숙한 인간’, 즉 구조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만 치환하여 얘기하고 있다”, “가사, 노동, 여성의 사회 진출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은 매우 민감한 부분인데도 그걸 너무 얼버무리며 넘어가버렸다”, “우치다는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다. 즉 운 좋게 태어난 거라 할 수 있다. 그럴 때일수록 ‘그 운은 내 것이 아니다’, ‘내 노력과 상관없이 어쩌다 보니 획득하게 된 거다’라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그는 마치 그 운을 자기 것인 양 생각하기에 이와 같은 권유의 글을 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라는 비판을 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한국사회에서 결혼이란 제도는 단순히 남녀가 함께 사는 정도의 의미가 아닌 ‘가문과 가문의 얽힘’이며 그에 따라 남자보다도 여자가 많은 것을 희생해야 하는 것이기에 위와 같은 다양한 비판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아예 강도 높게 “여전히 한국사회는 여자를 ‘밥과 몸’으로만 생각한다”고 일갈하기도 했던 것이다. 때론 제도가 꼬일 대로 꼬인 사람들의 욕망을 억누르며 평화로운 공동체를 만들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세상은 늘 이랬어’라는 생각으로 온갖 부조리를 정당화하고 개인의 억압을 당연시한다. 특히나 결혼이란 제도는 위와 같은 문제들을 덮어버리고 개인의 희생만을 강요하는 제도이다 보니, 『곤란한 결혼』이란 책에 대한 비판은 더욱 날카로울 수밖에 없었다.
『곤란한 결혼』이 위에서 비판한 부분들만 지니고 있는 책이었다면, 아예 읽지 않은 것만도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은 소위 성공한 사람들의 성공 스토리거나, 사회적 지위를 가진 이의 도 넘은 훈수이거나 하지만은 않다. 레비나스 철학에 정통한 학자답게 이 책에서 주요하게 다루는 내용은 ‘결혼이란 제도 속에서 타자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 성숙한 인간이 될 것인가?’하는 것이니 말이다. 타자성이란 자신이 여태껏 살아오면서 한 번도 느끼지 못한 이질적인 낯섦이다. 그러니 그걸 대면하는 순간 눈살이 찌푸려지고 ‘뭐 저딴 인간이 다 있냐?’하는 짜증이 일시에 폭발하게 마련이다. 더욱이 결혼해서 함께 살아야만 하는 사람이 그 지경이라면, 누구든 “그렇게 힘겹게 결혼생활을 유지할 거면 차라리 이혼하는 게 나아”라고 말할 것이다.
그런데 이 책에선 한결같이 그런 타자성이야말로 ‘선물’이라고 말하며, 그걸 선물로 인지하고 받아들이려 하는 순간부터 인간은 더욱 더 성숙해져 갈 수 있다고 말한다.
“결혼생활을 통해 저는 어떻게 흔들리지 않고 한곳에 머무르며 버틸지가 아니라 어떻게 흔들리는지, 어떻게 균형을 잡는지, 어떤 식으로 그때마다 나타나는 곤란한 상황에 적응해 나가는지에 대한 ‘작법’을 배웠습니다. 그것이 자신의 정체성이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145쪽)”이라거나, “결혼생활의 토대는 그런 공통점만으로는 다져지지 않습니다. 결혼생활의 참맛은 ‘처음부터 공감하는 부분이 많은’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결혼 전에는 공감하는 것이 거의 없었는데 어느새 공감하는 일이 많아졌다’는 점에 있는 게 아닐까요? (152쪽)”과 같은 말이 바로 그런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며 우치다쌤이 말하는 결혼관과 자신의 결혼관이 다르다고, 우치다쌤이 말한 결혼이란 생각이 현재 한국의 결혼을 선택으로 여기는 정서와 다르다고 생각하여 불편하게 여겨지는 사람일지라도 한 번은 읽어볼 필요가 있다. 결혼이란 제도에 대한 생각은 충분히 다를 수 있고, 남자와 여자가 느끼는 결혼에 대한 정서가 다를 수 있지만, 그럼에도 누구나 ‘타인과 함께 사는 그 난감함’을 느끼고 살아가며, 그럴 때 어떻게든 함께 살아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책은 그 난감함을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 있는 단서를 주기 때문이다.
원랜 이번 편에서 마무리를 지으려 했었다. 너무 지지부진하게 이야기가 길어지며 후기를 쓰고 있는 나의 집중도도 떨어지게 됐고, 이 글을 읽는 이들도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라고 흐름을 따라가질 못하게 됐다. 그런데 막상 글을 쓰기 시작하면 읽기 모임을 하던 당시에 나눴던 수많은 말들이 스쳐 지나가며 담지 않고는 그만 둘 수 없게 만든다. 그러다 보니 이번에도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책에 대해 나눴던 얘기들만 정리하는 수순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된 이상 후기가 한 편이 더 늘어난 걸 ‘선물’로 여기며, 다음 번 후기에선 웅성거림을 잘 갈무리하여 마무리 짓도록 해야겠다.
다음 후기에선 우치다쌤의 여러 책을 읽으며 느낀 소감을 정리하고, 저번 후기에서 얘기했듯이 모임 후반부에 찾아온 특별한 손님들에 대한 이야기와 제비꽃님이 들려준 ‘벽지에 담긴 사람향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끝맺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