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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Nov 06. 2017

곤란한 결혼 NO! 선물인 결혼 YES!

2017 민들레 [곤란한 결혼] 읽기 모임 5

『곤란한 결혼』이란 책이 드디어 손에 들어왔다. 저번 후기에서도 밝혔다시피 책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아 눈길을 잡아끌지만, 그것 이상으로 막상 책을 받아보면 사이즈가 작아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마력까지 갖추고 있다. 책은 사륙판으로 만들어져 한 손에 쏙 하니 들어오는데다가 245쪽 밖에 되지 않아 모처럼 ‘스마트폰에 치여 흔적조차 사라진 독서욕’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더욱이 우치다쌤은 전문적인 용어를 섞어 쓰며 어렵게 글을 쓰는 타입이 아닌, 옆에서 얘기해주듯 편안하게 풀어쓰는 타입이니 읽는 부담까지 적다. 그러니 책을 받고 어찌 가만히 있을쏘냐.               



▲ 한 손에 들어오는 사이즈. 그리고 두껍지 않은 볼륨. 아주 좋다.




결혼과 설국열차’ 길리엄과의 공통점

     

결혼에 대한 관념은 청소년 시기엔 ‘백마 탄 왕자를 만나 행복하게 살았다’는 식으로 환상적으로 생각하거나, 좀 더 나이가 먹은 후엔 ‘누구나 다 한 번씩은 하는 제도적 장치이기에 당연히 해야 한다’는 식으로 지극히 현실적으로 생각한다. 두 가지 생각은 전혀 다른 생각처럼 보이지만, 결혼을 피상적으로 여긴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그런데 요즘 한국사회에선 결혼을 더 이상 피상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현실적이다 못해 매우 비루하고도 힘겨운 것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그만큼 삶 자체가 치열한 경쟁에 내몰리며 팍팍해졌고, 장밋빛 낭만을 그리며 결혼했지만 짧은 행복 뒤에 기나긴 불행이 따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리라. 그러니 자조적인 말투로 ‘결혼해서 둘 다 괴롭게 사느니 혼자 괴로운 게 백 번 낫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며, 결혼을 했더라도 ‘아이는 낳아봐야 비정규직의 값싼 노예만 될 뿐이니 낳지 말라’는 조언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 결혼도 문제지만, 자식을 낳는 것도 더 큰 문제가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낳지 말라고 말하기도 한다.



여기엔 두 가지 불만이 동시에 담겨있다. 결혼 제도가 얼마나 개개인을 억압하는지에 대한 불만과 사람을 존재가 아닌 수단으로만 소비하려는 이 사회에 대한 불만 말이다. 어찌 보면 결혼제도는 『설국열차』의 길리엄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길리엄은 사람들을 꼬드겨서 설국열차란 완고한 계급사회를 뒤엎으려는 선각자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그 억압의 체제에 빌붙어 교묘한 방법으로 유지하려는 기득권자에 불과했듯, 결혼도 인간을 수단으로 여기고 계급적 차별을 정당화하는 사회구조(이런 구조를 비판하기 위해 사람들은 ‘헬 조선’이란 단어를 만듦)를 더욱 조장하고 강화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덧붙여 최근엔 ‘욜로(You Only Live Once)’ 열풍까지 불며 공동체의 삶보단 개인의 삶을 중시하는 풍조까지 생겨나며, 결혼은 필수가 아닌, 상황에 따른 선택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되도록 하지 말아야 하는 것쯤으로 여겨지게 됐다.                



▲ 길리엄은 선각자처럼 보여 모두의 신망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체제에 기생하며 하층민들을 억압하는 존재였을 뿐이었다.




결혼은 특별한 사람만 할 수 있다? 

    

여기서 재밌는 사실은 결혼에 대한 이와 같은 생각이 단지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죽하면 프랑스 철학을 전공한 저명한 학자가 『하류지향』과 같이 니트(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족이 양산될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를 분석하고 혜안을 제시해주는 책을 쓰기보다, ‘결혼하는 게 어찌 됐든 좋다’라는 식의 뭇 어른이면 으레 할 법한 얘기를 책으로 쓰게 되었을까. 그건 그만큼 일본 사회에서도 결혼은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었다는 뜻이리라. 그렇다면 우리가 이 책을 읽으며 저자가 ‘강제된 선택지에 시시한 통찰을 덧칠해서 마치 새로운 답인 양 떠들어대는 어른인 척하는 어른들의 하나마나한 조언들(송곳 1부 13)’을 한 것인지, 지평을 확장할 수 있는 얘기를 한 것인지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 최규석 작가의 [송곳]엔 곳곳에 명언이 넘쳐난다. 팍팍한 현실 이야기지만, 가슴 뛰게 만든다.



우치다쌤은 이 책에서 결혼에 대해 환상적으로 다루지도, 그렇다고 ‘10분만 더 공부하면 아내의 얼굴이 바뀐다’와 같이 현실적으로 다루지도 않는다. 그저 학교 교육과 결혼제도를 한 집단이 유지되기 위한 동일한 제도로 보며 접근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애초에 결혼을 하는 것이나, 교육을 하는 것이나 특별한 조건이 갖춰져야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절망의 시대를 건너는 법』이란 책에서 교육을 할 수 있는 자질에 대해 “학력과 견식이 비범하고 풍부한 지식과 기술을 갖춘 사람만 교단에 설 수 있다는 까다로운 조건에 따라 학교 교육제도를 만들어놓으면, 학교는 존립할 수 없을 거예요. 극단적으로 말해서 길거리를 지나가는 아저씨나 아줌마를 데려다가 교단에 세워도 전혀 상관이 없어요. 교단에 선 사람에게 ‘이 사람은 왜 자신이 교단에 섰는지, 그 이유를 알고 있지만 우리는 모르고 있다’는 앎의 비대칭성만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배움은 작동해요. -137쪽”라고 말했던 것이고 이 책에선 결혼을 할 수 있는 조건에 대해 “왜냐고요?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일은 생물학적 인간으로서 지극히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지요. ‘예외적인 능력과 재능이 없으면 배우자를 찾지 못한다’는 규칙을 정해 놓고 게임을 한다면 인류는 이미 수만 년 전에 멸종했을 겁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결혼할 수 있다’는 것이 기본값입니다. 적어도 인류의 탄생부터 반세기 전까지는 그랬습니다. 지금이 이상한 겁니다. -68쪽”라고 힘주어 말한 것이다. 

이 얘긴 지금처럼 교원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 한해 임용시험을 보아 교사가 되는 사회에선, 능력과 자질을 갖춘 후에 등급에 맞는 사람을 만나 결혼할 수 있는 사회에선 황당한 말처럼 들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보면 아무나 결혼할 수 없고, 아무나 교육할 수 없다는 말이야말로 매우 이상한 말임에 분명하다.  



▲ 학생이 교사가 되어 또래 친구들을 가르친다. 이럴 땐 교사와 학생 간의 권력 관계는 무너진다. 그리고 교육에 대한 정의도 달라진다.

             


 

결혼이 선물이 되는 조건   

  

그렇다고 해서 ‘결혼이 매우 쉬운 일’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가 생각하는 결혼은 ‘타인과 함께 사는 난감함’이기에, 완벽한 내가 완벽한 타인을 만나 결혼하는 게 아닌, 서로가 엄연히 다른 존재가 만나 서로를 알아가고, 상대의 태도에 따라 수많은 나의 모습 중 하나의 모습이 드러나는 것을 알게 되는 과정이다.           



인간의 내면에는 여러 가지 타입의 ‘배우자 특성’이 잠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떤 사람과 결혼하더라도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었던가?’ 같은 의문을 품게 할 인격적 특성이 등장합니다. 다시 말해 배우자가 바뀌면 당신도 다른 인간이 되는 것이지요. 어떤 사람과 결혼하더라도 그때마다 ‘이 배우자가 아니었으면 나도 이런 인간은 아니었을 거야’라고 생각하게 되는 겁니다. 달리 표현하면 이는 배우자로부터 주어지는 ‘선물’ 같은 것입니다. 

-『곤란한 결혼』, 우치다 타츠루 저, 박솔바로 역, 민들레 출판사, 2017년, 33~34쪽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라는 노래가사가 생각날 정도로 내 안엔 단일하여 한결 같은 내가 있는 게 아니라, 어떤 존재가 이르러 오느냐에 따라 그때그때 나타나는 내가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타인은 미처 알지 못했던 새로운 나를 드러나게 해준다는 점에서 타인의 도래는 ‘선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제대로 된 선물을 받기 위해선 단순히 사귀는 정도를 넘어 한 개인과 결혼할 필요가 있다고 우치다쌤은 말하고 있다. 

이 말에 충분히 공감한다. 그래서 민들레 모임에서 이 책을 누군가에게 추천해주고 싶냐는 질문에 “저와 같이 아직 결혼하지 않은 친구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어요. 제 친구들 중에 결혼하지 않은 친구들이 꽤 되는데 모아놓은 돈이 별로 없다거나 결혼한 후에 어떻게 살지 막막한 것도 있지만, 예전처럼 나이가 많다 해서 그다지 ‘결혼을 꼭 해야 하나?’라는 생각도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 책을 읽어 보면 결혼이란 게 그렇게 어렵게 생각해야 할 이유도, 그렇게 힘들게 생각해야 할 이유도 없다는 걸 알 수 있어요. 그리고 타인과 함께 살아간다는 게 막막하기만 한 일이 아니라, 함께 보폭을 맞춰가고 서로를 인정해주는 일이란 것까지 알 수 있거든요. 타자가 나에게 선물이 될지, 저주가 될지는 오로지 진지하게 관계를 맺어봐야 알 수 있기에, 저는 이 책을 친구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습니다”라고 대답을 했었다.                



▲ 타인이라는 선물. 그것 받을 준비가 되어 있나?




상황에 따라 다르게 읽히는 곤란한 결혼

     

이 책은 이처럼 분명히 기존에 나온 ‘결혼 권장서’와는 다른 면모를 충분히 갖추고 있다. 그래서 읽는 내내 눈이 번쩍 뜨이게 하고, 맞다! 맞다! 하면서 지평을 확장해주기도 한다. 그렇기에 나처럼 결혼에 대해 별로 생각이 없거나, 때론 두렵게만 생각했던 사람에게 ‘그렇게 벌벌 떨 필요가 없다’고 ‘그렇게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다독이며 결혼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게 한다. 

그렇다고 해도 이 책이 완벽한 책은 아니다. 성별에 따라, 결혼 여부에 따라, 경제적 넉넉함의 여부에 따라 다르게 읽히니 말이다. 실제로 민들레 읽기 모임에서 이 책에 대한 평가는 여러 갈래로 나뉘어졌었다. 일례로 아까 전에 얘기했던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은 사람이 있냐?’는 질문에 나와 비슷하게 “결혼을 할까 말까 망설이는 사람에게 권하고 싶어요. 이 책을 보며 세상에 나와 맞는 특별한 사람이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제야 결혼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죠”라고 말한 사람이 있었던 반면, 누군가는 “추천해줄 사람이 전혀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와 닿는 부분이 없었어요”라고 말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다음 후기에선 이 책을 읽으며 어떤 부분들이 비판적으로 읽혔는지, 그리고 어떤 부분들이 탁월하다고 생각됐는지 정리해보도록 하겠다. 그리고 거기에 덧붙여 모임 후반부에 함께 했던 특별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와 제비꽃님이 전해준 ‘돈보단 진심’이란 이야기를 전하며 길고 길었던 후기(두 달째 후기를 쓰며 축축 늘어지고 있다. 나의 게으름을 탓하라ㅠㅠ)를 마무리 짓도록 하겠다.  



▲ 이 공간의 벽지, 지금은 일반적인 벽지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다음 이야기를 읽으면 벽지가 달리 보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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