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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Sep 27. 2017

하나의 책엔 수많은 해석이 있다

2017 민들레 [곤란한 결혼] 읽기 모임 3

비빔국수를 정말 맛있게 먹고 잠시 별나들이님과 얘기를 나눴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제비꽃님과 장희숙님이 오시더라. 이로써 오늘 모이기로 한 멤버들이 다 모였고, 우리들의 얘기꽃은 본격적으로 피어나기 시작했다.                



▲ 거실에 앉아 밖을 내다 봤다. 한 여름이지만, 구름이 껴서 선선해 보이는 날씨다.




말하고 싶은 사람 여기 여기 모여라

     

지금까지 1박 2일 모임에서 격월간지 『민들레』를 읽고 이야기를 나누거나, 『호모쿵푸스』와 『심리학은 아이들 편인가?』와 같은 단행본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거나 했었다.

그런데 이렇게만 말하면 누군가는 ‘전 공부라면 치를 떨 정도로 싫어해서, 아는 게 없어요. 그래서 별로 할 얘기가 없거든요’라고 생각하여 참여하는 걸 꺼려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건 다른 누군가의 얘기라기보다 민들레 모임에 처음 참여할 당시의 내 마음이었다. 아무래도 오랜 기간 여러 책을 읽으며 내공을 다져온 사람들 앞에서 햇병아리인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매주 수요일마다 진행됐던 민들레 읽기모임이나 방학 때마다 진행된 단행본 읽기 모임을 몇 번 참여하고 나니 그런 걱정이야말로 ‘북핵 실험을 했다며. 그러면 지금 당장 생존키트를 사야 하는 거 아냐?’라는 생각과 같은 기우일 뿐이다. 민들레 모임은 학술대회도 아니고, 지적 우월함을 뽐내는 자리도 아니다. 그러니 책을 읽을 때도 분석적으로 하나하나 파헤치듯 읽을 필요도 없다. 그저 책을 읽다가 어떤 내용이 나에게 확 와 닿았는지, 어떤 내용이 껄끄럽게 느껴졌는지 말하기만 하면 된다. 분석이 아닌 정감으로, 이론의 박식함이 아닌 자기감정의 충실함으로 책을 읽고 그걸 전해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 가벼운 마음으로, 정겨운 마음으로 민들레 읽기 모임에 오면 충분하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도 자기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여 자기 얘기를 하길 꺼려했던 사람들, 하나의 책에 대해 나와는 다른 해석을 듣고 싶은 사람들, 생활에 치여 책과 담을 쌓고 살았지만 이런 계기로 책을 읽고 싶은 사람들은 오라~ 오라~ 민들레 모임에 오라. 두 번 오라.               



▲ 민들레 모임은 학식이나 이론을 대결하는 장이 아니라, 정감과 정감이 마주쳐 울리는 장이다




책의 세계, 신비하고 놀라워  

   

근데 어떤 사람은 ‘책은 혼자 읽고 그 감상을 느끼면 되지, 왜 굳이 함께 나눠야 하지?’라는 의문을 느낄 수도 있다. 더욱이 같은 책을 읽고 얘기를 나눠봐야 얼마나 다른 얘기가 나오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말입니다(이건 ‘그것이 알고 싶다’ 버전), 놀라운 사실은 책은 완성품이 아닌, 반 완성품이란 사실이다(존댓말로 시작하여 반말로 끝맺는 비문의 세계^^;;). 자신의 생각을 써나가는 저자와 그게 외국어로 된 책인 경우 ‘이 책 정도면 한국사회에 유의미한 책이겠어’라는 생각으로 한국적 상황에 맞게 번역하는 역자, 그리고 저자와 역자의 생각에 동의하여 ‘이 정도면 충분히 책으로 출간해도 되겠어’라는 확신으로 계약을 진행하고 내용을 다듬는 편집자, 거기에 더하여 그 책을 읽고 여러 서평을 남기는 독자가 함께 책을 만들어간다. 책이 만들어지기까지는 저자, 역자, 편집자의 영향력이 강하게 들어가지만, 책이 만들어진 후부턴 독자들의 영향이 강하게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책은 여러 사람에 의해 각자가 고민하는 방식으로 의미가 부여되고, 그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되는 반완성품일 수밖에 없다. 일례로 세상에서 가장 많이 팔린 성경의 경우 지금까지도 수많은 주석(성경에 대한 해석)들이 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그만큼 해석의 여지도 많으며, 읽는 사람의 입장이나 생각에 따라 전혀 다르게 읽힌다는 얘기다. 하나의 절대적인 해석만, 어떤 사람이 읽더라도 동일한 해석만 가능했다면, 그 책은 ‘전지전능한 책’이 아닌 이미 ‘생명력이 다하여 더 이상 읽을 필요가 없는 책’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 그런데 말입니다. 책은 완성품이 절대로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책을 읽고 나서 함께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 이유 

    

책의 속성이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어떤 이유로 이런 책을 쓰게 되었는지, 역자는 이 책이 한국 독자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다고 판단했는지, 편집자는 어떤 상을 그리며 편집했는지, 독자들은 어떻게 이 책을 알게 됐고 읽고 나선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말할 필요가 있다. 그럴 때 내 생각과는 다른 지점을 발견하는 재미도 느낄 수 있고, 한 걸음 더 나가지 못했던 나 자신의 한계도 느낄 수 있으며, 읽을 당시엔 아무런 감흥도 없던 부분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전혀 다르게 들리는 묘한 체험도 할 수 있다.



▲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읽을 당시엔 몰랐던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 책이 정말 이랬나 할 정도로.



그건 마치 우치다쌤이 『곤란한 결혼』에서 말한 ‘나 자신’에 대한 통찰과 맞닿아 있다.           



사실은 자기 안의 잠재 가능성이라는 건 배우자가, 친구가, 환경이, 업무가 바뀔 때마다 새롭게 발현되는 겁니다. 그때마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여기 이렇게 다양한 ‘자신’ 안에 어떤 특수한 조건에서만 발현하는 유일무이한 ‘진짜 자신’이라는 건 애당초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다양한 모든 자신의 모습이 전부 동등하게 ‘자신’인 것입니다. 전부가 동격의 ‘자신’입니다. ‘가짜 자신’과 ‘진짜 자신’이 디지털 개념처럼 분리되어 있을 리가 없습니다.

-『곤란한 결혼』, 우치다 타츠루 저, 박솔바로 역, 민들레 출판사, 2017년, 34~35쪽  


        

우린 책을 읽을 때에도 ‘완벽한 해석’, ‘진리’에 집중했었고,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할 때도 ‘나다움’, ‘개성’,  ‘진짜 자신’에 집착했었다. 그건 곧 나를 포함한 모든 것엔 누구도 거부할 수 없고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진짜 모습(진리)’이 있다고 본 것이고, 그건 플라톤이 얘기한 ‘이데아(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복제판일 뿐, 완전한 세계는 저 너머에 있다고 생각한 철학)’에 다름 아니다.



▲ 나다움, 진짜 나, 개성을 끊임없이 찾고자 하는 사회다.



그러나 우치다쌤은 이런 기독교식의 논리, 심리학의 이론을 거부했다. ‘나’를 찾기 위해선 끊임없이 영향을 줬던 외부환경을 모두 제거해야 하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모두 배제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건 실험실의 인위적인 환경에서나 가능할 뿐, 삶에 던져져 살아가고 있는 존재에겐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우치다쌤은 “유일무이한 ‘진짜 자신’이라는 건 애당초 존재하지 않습니다”라고 강조하며 오히려 ‘나다움’, ‘진짜 자신’에 천착하면 할수록 자기 자신을 더 모르게 되고, 왜곡하게 된다고 보았다. 그렇기에 “‘가짜 자신’과 ‘진짜 자신’이 디지털 개념처럼 분리되어 있을 리가 없습니다”라고 말한 것이고 모든 환경 속에서 드러나는 나를 ‘전부가 동격인 자신(제주 강연에서 낡은 목조 건물로 비유한 적이 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나라는 존재는 만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환경에 따라 수없이 변할 수밖에 없는데 이 모든 게 지극히 당연한 것이며, 그때의 모습이 싫든 좋든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 [쿵푸허슬]에 나오는 가옥. 우치다쌤이 말한 '낡은 목조 가옥'을 그대로 묘사한 것 같은 집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책 또한 ‘진짜 해석’이 따로 있지 않다. 읽는 사람에 따라, 읽는 시기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 『어린왕자』도 처음 읽었을 땐 그저 그런 동화책으로 읽혔지만, 한참 임용에 떨어져 막막할 때 읽어보니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완벽히 다르게 읽혀졌던 것처럼 말이다. 같은 책을 같은 사람이 읽어도 이러한데, 아예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읽었다면 그 해석은 오죽할까. 바로 이걸 ‘전부가 동격인’ 해석이라 해야 맞고, 그래서 귀 담아 들어야 한다. 그런 각양각색의 해석을 듣고 책을 풍부히 이해하기 위해서 시간을 내어 읽기 모임에 나오는 것이다. 과연 우린 얼마나 다양하게 이 책을 받아들였을까?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귀는 쫑긋 세우고, 허리는 곧추세우고, 메모지와 볼펜을 준비하여 자리에 앉았다. 우리의 첫 이야기는 아주 파격적이면서도 현실을 잘 드러낸 『곤란한 결혼』이란 책 제목에 대한 거였다.



▲  [곤란한 결혼] 책 이름부터 매우 이색적이고 결혼률이 낮아진 이 때에 매우 시기적절하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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