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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Sep 23. 2017

시우 같은 사람들을 만나다

2017 민들레 [곤란한 결혼] 읽기 모임 2

올해 8월은 예년 8월과는 사뭇 달랐다. 비가 제법 내려 더위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쾌적했기 때문이다. 장마가 끝나 불볕더위가 절정에 이르는 시기에 더위를 식혀줄 비가 내린다는 건 엄청난 행운이다. 더욱이 지독한 가뭄으로 식수난까지 겪고 있던 때였으니, 축복이라고까지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런 비를 중국 고전에선 ‘시우時雨’라 표현하고 그걸 우리말론 ‘단비’라 해석한다. 가물대로 가물어 땅이 거북이 등껍질처럼 쫙쫙 갈라져 있을 때 내리는 비, 산불이 심하게 번져 미처 손 쓸 수 없을 때 내리는 비, 태양이 작열하여 사대강에 녹조가 창궐할 때 내리는 비가 바로 ‘시우’인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어화둥님 집엔 ‘春陽時雨(봄볕같이, 단비같이)’라는 글귀가 벽에 걸려 있다. 2년 전에 그 글귀를 보고 출처까지 찾아보며 나름 매력적인 글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8월의 시우는 더위를 식혀주고 가뭄을 해소해줬듯이 오늘의 모임 또한 나에겐 시우가 되어 마비된 감성을 촉촉이 적셔줄 것이다. 이래저래 모임 장소로 향하는 발걸음은 가벼웠고 마음은 절로 신이 났다.                



▲ 2105년 여름 모임 때 사진. 벽에 걸려 있는 초서체의 '春陽時雨'란 글귀가 보인다.




언제 만나도 좋은 이들

     

대성리역에 도착하여 마트 주차장으로 걸어가니 풍경님과 안녕님이 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더라. 아무래도 1년에 겨우 민들레 읽기 모임에서나 만나게 되니 짧게는 6개월 만에, 길게는 나처럼 모임에 빠진 경우 2~3년 만에 보게 된다. 그러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근황을 묻고 답하기에 바쁘다. 어찌나 두 사람이 재미나게 이야기를 하고 있던지, 자연스럽게 그 이야기에 심취되어 나도 대화에 끼게 되었다.   



▲ 대성리역은 관광지답게 대학생들이 많이 보인다.



풍경님은 국어교사인데 지금은 고등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단다. 그러면서 예전엔 ‘어떻게 잘 가르칠까?’라는 고민을 했지만, 지금은 ‘어떻게 이 시간을 학생들과 잘 보내볼까?’라는 고민을 하고 있다고 덧붙이셨다.

현직 교사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지금 내가 하는 고민들이 단순히 나 혼자의 고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그건 다름 아닌 ‘교육에 대한 생각’이 처음과는 달리 시간이 흐르며,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변해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임 때만 해도 ‘내가 아는 걸 전해줄 수 있다’고 자부했었는데, 지금은 그저 ‘함께 그 시간을 살아내는 것’이라 생각하게 됐다. 교사와 학생의 관계는 어떤 지식을 전해주고 전해 받는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 ‘스승이면서 벗’인 관계이자, 서로가 영향을 끼치며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는 관계이니 말이다. 아마 풍경님도 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여러 고민을 했을 것이고 그런 고민의 결과로 위와 같은 말을 했던 것이리라. 그땐 미처 근황을 듣느라 어떤 계기로 생각이 변하게 되었는지 듣지 못했지만, 다음에 만나게 되면 꼭 그 이야기를 듣고 싶다.



▲ 풍경님의 이야길 듣다 보니, 내 이야기 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건 관계에 대한 이야기였고, 변화에 대한 이야기였다.



안녕님은 시민단체에서 몇 년째 일을 하고 있다. 일터의 특성 상 한 개인에게 맡겨진 일들이 많기 때문에 일을 하며 몸도 맘도 많이 지쳐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1년 정도를 쉬고 싶어 당당히 휴직계를 냈단다. 일터에서 아무도 휴직계를 낸 역사가 없는데 안녕님은 ‘휴직을 할 수 있는 직장 분위기 조성에 이바지’한 혁혁한 공로를 세운 것이다. 

과연 결과는 어땠을까? 상사는 1년이 너무 과하다고 생각했던지 6개월 간 휴직하는 것으로 정리했다고 한다. 6개월,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다. 늘 일만 하던 사람에게 갑자기 주어진 6개월은 허송세월하기 딱 좋다. 우린 이미 학창 시절에 매번 방학 때마다 이런 경험을 해오지 않았던가.

그런데 안녕님은 휴직이 결정되던 순간에 바로 대체 에너지를 공부하는 모임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건 그만큼 평상시부터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고 있었단 얘기고, 막상 시간이 주어졌을 땐 머뭇거리지 않고 실행할 수 있었단 얘기다. 그러면서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며 시간을 지내보니 요즘은 제가 정말 살아 있구나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 정도로 행복해요”라고 정리했다. 일이 성취감을 주고 자존감을 높여주기도 하지만, 그게 너무 과하면 ‘내가 일만 하기 위해 태어난 것인가?’ 헛갈리기도 한다. 아마도 안녕님의 휴직계는 일에 짓눌려 ‘내 모습이 보이지 않♬’던 그 무기력함을 직감하고 자신에게 던진 SOS이지 않았을까. 6개월의 휴직이 힘들게 일한 자신에게 주는 선물 같은 시간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

2년 만에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데도 전혀 어색하지가 않았다. 마치 어제도 만나 얘기를 나누던 사이인 것처럼 편안하기만 했다. ‘만나면 좋은 친구’라는 광고 문구처럼 우리도 ‘언제 만나도 좋은 친구’였던 것이고 시우와 같던 사이였던 것이다. 

20분 정도 얘기를 하며 기다리고 있으니 솔바로님이 대성리역으로 도착했다는 문자를 보내왔고, 마침내 우린 어화둥님 집으로 갈 수 있었다.                



▲ 드디어 2년 만에 어화둥님 댁에 입성이요. 정말 반갑다.




비빔국수, 모임을 아름다움으로 물들이다 

    

우리가 오기 전에 이미 별나들이님은 도착해 있었고, 나머지 분들은 아직 오지 않았다. 대부분이 점심을 먹고 오지 않은 터라 어화둥님은 비빔국수를 먹자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방학이라 느끼한 배달음식만 주로 먹어서 쫄면류의 상큼달콤한 맛이 그리웠던 터였기에, 맘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런데 더욱 대박인 점은 어화둥님의 배려(?)였다. 양은대야 가득 국수를 비비긴 했지만, 두 남정네의 식탐을 고려하시어 큰 접시 두 개에 비빔국수를 한 가득 덜어주셨기 때문이다. 이건 ‘둘이 먹어도 될 정도의 양’을 넘어서, 저녁까지 아무 것도 먹지 않아도 될 정도의 어마무시한 양이었다. ‘주는 음식 거부 말자’는 삶의 모토에 따라 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조금도 덜지 않고 먹기 시작했다. 비빔국수의 양에 감명을 받았고 야채가 풍성히 들어가 입맛을 돋우는 상큼한 맛에 재차 감명을 받았다. 이렇게 넘쳐흐르는 정이라니, 완전 행복하다. 쓱싹쓱싹 한 가닥의 면발도, 한 조각의 채소도 놓치지 않겠다는 각오로 바닥의 양념까지 깨끗이 긁어서 먹었다. 배부르면 세상이 아름다워 보인다고 했던가. 정말 그 순간이 가장 아름다운 순간처럼 느껴졌고, 그곳에 모인 이들이 그렇게 아름답고 멋지게 보일 수가 없었다.                 






우리 주변엔 수많은 원더우먼들이 산다

     

상을 다 치웠는데도 아직 오지 않은 멤버들이 있어서 별나들이님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오늘은 옷도 잘 차려 입고 화장도 곱게 하고 오셨기에, ‘좀 특별한 기분을 느끼고 싶으셨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친정에 갔다가 바로 모임에 와서 어쩔 수 없었노라고 한다. 

별나들이님은 카피라이터로 일을 하고 있지만, 최근엔 유치원 도서관에서 알바를 하고 있단다. 돈은 그렇게 많이 받진 못하지만, 그래도 아이들의 모습도 볼 수 있고 책도 볼 수 있어서 좋다고 한다. 세 명의 아이들을 키우고 있어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텐데도 쉬지 않고 자기의 전문성을 살려 일도 하고, 거기에 알바까지 하고 있는 셈이다. ‘원더우먼’은 코믹스와 브라운관에만 있지 않다. 우리 주변에서 이렇게 소리 소문 없이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간혹 40대의 삶에 대해 생각해볼 때가 있다. 30대가 될 때만해도 ‘뭔가 멋진 삶이 펼쳐질 것 같다’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더욱이 그 당시엔 대학교 선배가 운영하는 학원에서 강사로 일하고 있었는데, 나는 막 30대가 되었고 그 선배는 막 40대가 되었었다. 그 선배의 모토는 ‘30대도 맘껏 행복하게 산만큼 40대의 삶도 기다려지고 기대된다’는 거였고, 그런 영향을 나도 고스란히 받아 30대의 삶을 희망적으로 스케치할 수 있었던 것이다.  



▲ 선배는 무턱대고 학원 일도 관두고, 임용공부도 스톱하고 도보여행을 간다던 후배에게 선물까지 한아름 안겨주며 응원해줬다.



하지만 막상 30대 후반에 이른 지금, 40대 이후의 삶을 생각해보면 기다려진다기보다, 덜컥 겁부터 난다. 30대가 되던 시기와 비교하면 직장도 있고, 나름 성실히 해온 것들이 있음에도 말이다. 그건 아마도 현실에 안주하며 살다보니 도전하고자 하는 마음은 무뎌지고, 지금 누리는 걸 내려놓고자 하는 마음은 사그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벌써부터 겁을 먹고, 벌써부터 획을 긋기엔 너무 이르다. 별나들이님처럼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가기 위해 나 또한 6년 간 쌓아왔던 나만의 틀을 서서히 허물 때가 왔으니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제비꽃님과 장희숙님이 오셨다. 다른 분들은 민들레 모임 때마다 줄곧 봐왔던 분들이지만, 장희숙님은 말로만 들었을 뿐 직접 만나는 건 오늘이 처음이다. 더욱이 오늘 이야기를 나눌 『곤란한 결혼』이란 책의 편집자이기도 하다. 이 책의 역자인 솔바로님과 편집자인 장희숙님까지 함께 모였으니, 하나의 책 내용이 독자의 입장으로, 편집자의 입장으로, 역자의 입장으로 다양하게 변주될 것이다. 오케스트라의 웅장함은 다양한 악기의 앙상블에서 나오듯, 오늘 민들레 읽기 모임의 활발발함도 다양한 입장을 지닌 사람들의 어우러짐으로 만들어지리라. 벌써부터 어떤 이야기들이 오고 갈지 무진장 기대된다.



▲ 민들레 수요모임이 있던 당시, 어화둥님의 정성이 가득 담긴 노트. 정성스레 한 자 한 자 되새기며 옮겨적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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