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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Sep 15. 2017

민들레란 타임머신에 올라타다

2017 민들레 [곤란한 결혼] 읽기 모임 1

가슴 뛰게 하는 순간들이 있다.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할 때의 긴장과 설렘이, 날 가로막던 금기의 벽을 넘어설 때의 걱정과 불안이, 생판 모르던 사람들과 만날 때의 기대감과 어색함이 가슴을 뛰게 한다. 그럴 땐 마치 ‘쇼생크 탈출’의 앤디가 비를 흠뻑 맞아가며 두 팔을 번쩍 들고 환희를 온 몸으로 표현하듯 온갖 감정들을 맘껏 표현하고 싶어지며, ‘김씨표류기’의 김씨가 직접 밀을 재배하여 짜장을 만든 후 한 입 베어 물며 환희를 맛보듯 작은 행복이라도 흠뻑 맛들이고 싶어진다.                






시간이 흐를수록 마비되어 가다

     

그 얘기는 곧 너무도 익숙하여 어떤 고민도 안겨주지 않는 사람들만 만나고, 굳이 애쓰지 않아도 척척 진행되는 일만 반복할 때, 더 이상 가슴은 뛰지 않는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가슴이 뛰지 않으니 삶은 정체되고 감정은 무뎌지며, 이성은 마비된다.

공자孔子(BC 551~479)는 ‘인의 철학자’로 잘 알려져 있다. 인에 대해선 무수히 많은 해설들이 있지만, 의학서에서 풀이한 해설이 가장 적확하다고 생각한다. 의학서에선 불인不仁을 ‘손발이 마비되는 것(以手足痿痹爲不仁)’으로 풀이한다. 그 말은 곧 인이란 마비되지 않아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으며, 자신의 감정에 민감할 수 있다는 뜻이다.

마비가 되면 외부 환경의 자극에 무감각해져 모든 것에 관심을 갖지 않고 단절하여 자기 안으로만 파고들게 된다. 그게 극단에 이르면 자신의 몸이 보내는 신호에도 둔감해져 서서히 죽음에 이른다. 그러니 나이가 먹어가며 세상에 초연하게 되었다고, 더 이상 다른 사람의 아픔에 휘둘리지 않게 되었다고, 새로운 경험을 하며 새로운 환경을 대하며 설레지 않게 되었다고, 낯선 타자를 만났을 때 궁금하지 않게 되었다고 무작정 좋아할 일은 아니다. 그건 누가 보면 ‘원숙미’나 ‘통달함’으로 비칠지도 모르지만, 그보다는 불인해졌기 때문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내가 바로 그런 불인한 상태에 빠져 있다. 학교에서 근무한지 6년이란 시간이 지나며 전문성이 신장되기보단 점차 ‘과연 난 무얼 가르칠 수 있지?’라는 혼란에 빠져들었고, 아이들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기보단 ‘한발 다가가면 두발 도망가는♬’ 관계 때문에 힘들어졌으며, 교육에 대해 ‘교’자 정도는 말할 수 있게 되기보단 ‘교육이 뭔지 도무지 모르겠’는 자중지란의 상태에 내몰리고 말았다. 6년이란 시간이 나에게 준 건 원숙미나 통달함이 아닌, ‘니가 무얼 상상했고 고민했든 그 모든 건 허상’이란 한계치에 관한 것이었다.                



▲ 아차산 트래킹 때 설명을 듣고 있는 아이들. 그래도 학교 생활은 어렵긴 해도 흥미진진하다.




마비되지 않는 방법

     

시간이 지날수록 마비가 되어간다. 마비가 되어가니 일상이 지루해지고, 어떤 것도 가슴을 울리지 않는다. 사람을 만나도 그저 휑한 기분만 들고, 일을 할 때에도 맹목적으로 기계처럼 해나갈 뿐이다.

이럴 때 마비를 풀 수 있는 방법은 가슴을 뛰게 만드는 것이다. 그건 어쩔 수 없이 가슴이 뛰던 순간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가는 방법 밖에 없다. 그래서 신영복 선생님은 ‘처음처럼’이란 글을 통해 가슴 뛰던 순간으로 언제든 돌아갈 마음가짐이 되어 있냐고 물었던 게 아닐까.

국토종단을 하던 순간과 단재학교에 막 들어와 어리버리하던 순간이 나에겐 '가슴 뛰던 순간'이었다. 초임교사가 그렇듯 열정이 넘쳐흘렀고 아이들과 만나는 게, 새로운 일을 한다는 게 모두 다 신기하고 재밌기만 했다.

그때 민들레와의 인연도 시작됐다. 내공이 센 멤버들과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하나하나 배워가듯 정성스럽게 아로새긴 시간들이었다. 임용시험을 준비하면서 또 여러 번 낙방을 하면서 교육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고,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키팅과 같은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하기도 했지만, 민들레에서 함께 나눈 얘기를 통해 그동안 했던 고민이나 다짐이 얼마나 이상적인 생각인지를 알 수 있었다. 멤버들의 현실적인 이야기들과 민들레 잡지에 나오는 남다른 삶에 대한 이야기들이 한껏 어우러져 ‘옳음’을 찾고자 하는 마음을, ‘다름’을 인정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그렇게 민들레 멤버들을 통해 좀 더 유연해질 수 있었고, 그건 학교에 적응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 12년 2월 2일, [심리학은 아이들 편인가?] 읽기 모임. 그렇게 만나서 얘기하고 공부하고 그랬다.



그때가 바로 2011년이었고 어느덧 6년이란 시간이 금세 흘렀다. 그땐 그와 같은 모든 일들이 갑작스레 다가왔고 생소했으며 신기한 것투성이라 제대로 음미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가슴 뛰던 순간’이었음을 알겠더라. 무엇이든 지나고 나서야 그 의미를 제대로 알게 된다.   

이처럼 일상에 파묻혀 너무도 ‘가슴 뛰던 순간’이 그리워질 때면, 그때의 열정을 다시 한 번 불러일으키고 싶을 때면 ‘민들레’라는 타임머신에 올라탄다. 이 타임머신을 탄다고 과거로 시간 이동을 하게 되는 건 아니지만, 감정 이동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때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하고 공부했던 사람들을 만나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듣고 있노라면 그 당시의 열정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분명 시간이 흐르며 각자의 삶이 달라졌고 여러 변화가 생겨 그 당시와는 다른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만, 그 밑바닥에 유유히 흐르는 친근감과 각자를 존중하는 기류는 가슴을 뛰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니 왜 이 자리를 그리워하지 않겠으며, 이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런 이유로 2014년엔 무려 2년 동안 연락도 하지 않고, 모임도 나가지 않았음에도 1박 2일 모임에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 15년 1월 23일, 그동안 한 번도 참여하지 않던 1박 2일 모임에 갑작스레 참여했다. 그래도 되는 이 곳은?




다시 한 번 민들레란 타임머신에 올라타

     

그 후로 다시 2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우연처럼 필연처럼 2011년에 민들레와 인연을 맺은 이후에, 2년 주기로 타임머신에 탑승하는 행보가 반복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지금 이 순간, 다시 민들레라는 타임머신에 탑승하려 하는 것일까? 그에 관해선 아래 인용한 도올쌤의 글에 실마리가 있다.          



문명사회의 활력을 유지시키는 것은 고도의 이상적 목표가 추구할 가치가 있다고 믿게 만드는, 상식적 감각이 널리 퍼져있는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활기 있는 사회는 어떤 터무니없게 보일 수도 있는 비장한 목표를 내장하고 있는 사회이다. 그렇게 되면 그 사회의 구성원들은 개인적 만족personal gratification의 안일한 충족을 넘어서서 방황한다. 방황이 없으면 청춘이 아니다. 방황이 없으면 늙음의 고착만 있게 된다. 강렬한 흥미는 개인성을 초월하는 보편적 가치의 측면에서 유발되는 것이다.

-『사랑하지 말자』, 김용옥, 통나무출판사, 2012년, 36~37쪽  


        

지금의 나는 학교생활도 안정기에 이르렀고, 주위에도 별 다른 고민이나 충돌 없이 평온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 그러니 누군가는 매우 부러워할 만한 고민도, 방황도 없는 아주 행복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다. ‘가슴 뛰는 순간’조차 사라져 버렸으니 말이다. 이런 상황에 대해 도올쌤은 ‘안일한 충족’이라 평가하고 있고, 거기서 한 걸음 더 나가 ‘방황이 없으면 청춘이 아니다. 방황이 없으면 늙음의 고착만 있게 된다’고 일갈하고 있다. 딱 그 일갈의 대상이 어느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란 걸 진즉부터 알고 있었기에, 이 글을 읽는 순간 죽비에 맞은 듯 멍하니 몇 분 동안 가만히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길게 생각할 필요 없이 다시 민들레란 타임머신에 올라, 2011년 당시에 느꼈던 ‘가슴 뛰는 순간’으로 돌아가 볼 일이다. 더욱이 이번엔 예년처럼 『민들레』 교육잡지를 읽고 얘기를 나누는 게 아닌, 2012년 당시에 신선한 충격을 준 우치다 타츠루쌤의 신작인 『곤란한 결혼』을 읽고 이야기를 나눈다지 않는가.

과연 이번 모임에선 어떤 가슴 뛰는 순간을 경험하게 될까, 그리고 ‘강렬한 흥미’를 느끼게 될까? 이런 기대를 하며 방학이 거의 끝나가는 어느 일요일 오전에 가방을 챙겨들고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집을 나서 마석역으로 향했다.



▲ 17년 8월의 민들레 이야기가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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