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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Nov 30. 2016

도올과 건빵

고구려 패러다임으로 쉬프트하라 1

2016년 11월의 한국은 일대 변혁기를 맞이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토요일이면 데이트도 해야 하고, 푹 쉬기도 해야 하고, 놀러도 가야 함에도 벌써 5주째 광화문 광장에 모여 시위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20만명으로 시작된 ‘박근혜 하야 촛불집회’는 5주차에 이르러 날씨는 훨씬 추워졌고, 첫눈까지 내리는 굳은 날씨였음에도 150만명으로 불어나 있었다. 

분명 우린 한국에 살면서 매번 ‘무언가 잘못됐다’, ‘살기에 너무 팍팍하다’, ‘한시고 편할 날이 없다’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게 선뜻 무엇이 잘못인지, 어떤 부분이 문제인지 말하진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잘못된 한 부분이 여실히 드러났고, 그에 격분한 시민들이 광화문에 나와 “박근혜 하야”를 외치게 되었다.                






배우면 배울수록알면 알수록 내 생각에 고립되다

     

지금의 사태는 누가 봐도 명백히 보이는 문제이기에 사회문제에 아무런 관심이 없던 사람도 광화문에 모이게 만들었다. 그래서 생전 처음으로 집회에 참석한다는 사람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 [다큐3일]의 한 장면. 정권 초기엔 국민대통합을 외쳤는데, 하지 못하다가 정권 말기에 국민대통합을 이루고 말았다.



그런데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집회나, 2004년 노무현 전대통령 탄핵촛불 집회나, 2002년 효순미선 집회는 그렇지 못했다. 거기엔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명백히 보이지도 않았을 뿐더러, 이념대립까지 가세하다보니 자칫 잘못하면 ‘정치선동’으로 낙인찍히기 쉬웠고 반대를 위한 반대로만 보일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회문제를 적극적으로 고민하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역사적인 흐름을 파악하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그런 자리에 함께 참여하기는 쉽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처음으로 참가해본 집회는 전주 오거리에서 열린 2008년 쇠고기 집회 때였다. 그전까지는 사회문제에 대해 전혀 관심도 없었고, 나 혼자 살기도 버겁다고만 생각했었다. 서당을 다니며 『사자소학四字小學』을 배우며 한문을 공부하게 된 이후에 『소학小學』까지 배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충효忠孝(學優則仕, 爲國盡忠 - 배움이 가득차면 벼슬에 나가고, 나라를 위하여 충성을 다한다)와 같은 전통적인 가치만을 강화하는 ‘전통적 가치의 공부’였을 뿐이었고, 학교에서 배우는 모든 과목들은 단순히 시험성적을 잘 받아 좋은 학교에 가서 성공하기 위한 ‘학교화된 공부’였을 뿐이었다. 그 때도 열심히 공부했고, 하나라도 더 알기 위해 매진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생각을 좁히고, 성공만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 2008년 5월 10일에 전주 오거리 광장에서 열린 집회에 진규와 함께 나간 게 처음이었다.




깨져야만무너져야만앎의 무가치를 알아야만 생각이 확장된다

     

그러던 2006년에 친구와 여러 얘기를 나누면서 나의 기반이라 생각해왔던 기독교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늘 ‘나를 이렇게 일으켜 세우고 늘 힘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 그 분을 위해서라면 내 생명을 다 바쳐도 좋다’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그런 상황이었으니 대학생 때 만났던 여자 친구는 오죽했으면 “기독교를 믿지 않는 건 어때?”라는 말을 했겠는가. 그 말 속엔 하나의 가치만을 진리로 추종한 나머지 다른 것엔 무관심하고, 심지어 곁에 있는 사람에게도 무관심하다는 비난이 숨어 있었다. 그런데 그 당시엔 그 말뜻을 제대로 알지 못해서 “그건 이미 내 삶의 기반이고 내가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이어서 그걸 버린다는 건 말도 안 되거든. 그러니 절대로 그럴 수 없어”라고 단호하게 말했던 것이다. 이런 대답을 흔히 ‘동문서답東問西答’이라 한다. 

하지만 2006년의 종교 논쟁은 지금껏 아무렇지도 않게 진리라고만 믿어왔던 것들에 수많은 의문을 던지게 했으며, ‘절대 진리이니 그냥 믿을 뿐이야’라는 게 얼마나 큰 착각인지를 깨닫게 해줬다. 그 친구와 얘기하면서 열심히 기독교를 믿어왔고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얘기를 하면 할수록 내 자신이 아는 게 거의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었다.                



▲ 기독교엔 한 때의 추억이 오롯이 담겨 있다.




기독교가 나에게 반공부의 깨달음을 주다

     

그래서 그때부터 도올 선생의 『요한복음』, 『기독교 성서의 이해』와 같은 책들을 읽으며, 성경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물론 처음에 친구와 논쟁이 붙었을 때 일방적으로 밀리지 않기 위해서 ‘좀 더 공부해보자’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거였다. 그런데 막상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단순히 ‘성경=절대 진리’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하나 둘 무너지기 시작하더라. 66권의 정경확정正經確定이야말로 정치적인 사건이자, 신의 계획하심이 아닌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사건임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솔직히 그건 나에겐 너무도 큰 충격이었다. 지금까진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3:16)”라는 말처럼 ‘하나님의 말씀’이라고만 굳게 믿어왔는데, 거기에 인간의 욕망이 투영되고 정치적 견해가 반영되어 정경正經과 외경外經을 나누고, 정경에만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은 나를 사정없이 흔들었으며, 지금껏 나의 기반이라 여겨왔던 기독교에 대한 모든 관념들을 와르르 무너뜨렸다. 결과적으로 완전히 아노미 상태에 빠지고 만 것이다. 



▲ 카톨릭은 73권을 정경으로 받아들이고 있고, 기독교는 66권만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순간, 지금까진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해방감이 느껴졌다. 지금까진 단순히 ‘절대 진리’라고만 생각했고, ‘공부는 그런 것과는 별개로 현실의 욕망만을 채우는 것’이라고만 생각해왔다. 그런데 여러 책을 읽고 공부를 해보니, 기존에 알고 있던 것들이 사상누각처럼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지며 혼란스러웠지만, 그렇게 혼란스러운만큼 새로운 것을 알아가고 깨달아가는 재미가 쏠쏠 했다. 어찌 보면 여태껏 해온 ‘전통적 가치의 공부’나 ‘학교화된 공부’는 반공부反工夫에 가까웠던 것이다. 막상 공부를 시작하게 된 건 그때부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죽은 시인의 사회]의 장면. 누구나 학생인 이상 공부를 해야만 한다. 그런데 그건 '학교화된 공부'일 뿐이다.




한문이 재밌었어요

     

그런 깨달음의 근저엔 도올 선생이 자리하고 있다. 이미 그 전에 티비를 통해 도올 선생의 강의를 어렴풋이 들은 기억만이 있을 뿐이다. 그땐 단순히 ‘강의할 때 소리를 지르는 사람’ 정도로 받아들였었지만, 막상 책을 읽어보면서 너무도 거대한 산이며, 깊이와 넓이를 헤아릴 수 없는 강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더욱이 나의 전공이 ‘한문 교육’이다보니, 도올 선생의 책들이 어렵긴 해도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다. 그 과정을 통해 한문공부의 재미도 느끼게 됐으며, 사회문제에 대해서도 관심 갖게 됐고, 공부의 의미도 알게 됐다. 



▲ 예전에 몰랐을 때만 해도 도올 선생은 그저 소리만 지르는 사람으로만 알고 있었다.



우선 한문은 그저 어려서부터 해왔기에 해야만 하고, 막상 한문교육을 전공하고 있었기에 사서四書는 익혀야만 하는 것이었다. 성적이 쫘르륵 나오니 그냥 열심히 읽었고, 그냥 열심히 암송했다. 그러니 거기에 담긴 말이 어떤 말인지, 그리고 우리의 삶에 어떤 가르침을 주는지 궁금하지도, 알고 싶지도 않았다. 우리가 중고등학생 시절에 흔히 하는 말처럼 ‘공자(맹자, 주자)가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부담스럽기만 해서, 아는 즐거움 따윈 개나 줘버린지 오래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도올 선생의 『논어한글역주』와 『도올 선생의 중용강의』와 같이 사서를 입체적으로 풀어낸 저작들을 읽다 보니, 여태껏 내가 배운 사서는 ‘앙꼬 없는 찐빵’이었음을 알게 됐다. 그 책엔 그 당시 사람들의 세상과 사람에 대한 인식, 그리고 배움의 역동성이 모두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여태껏 그와 같은 것은 전혀 보지도 못하고 그저 외우기만 했으니 얼마나 한심한가. 



▲ 한글역주 시리즈를 읽으며 한문 공부의 재미를 맘껏 느낄 수 있었다. [효경]을 읽으면 효의 새로운 가치가 보인다.



아래에 인용한 『활연관통豁然貫通』이란 말의 해석만 봐도, 공부를 해야 하는 의미, 앎의 즐거움을 명쾌하고 담고 있는 명문이라 할 수 있다. 이런 풀이를 보고 나면 한문을 공부하는 즐거움도 몸소 알게 되니 일석이조라 해야 맞다.           



하루하루 지식이 축적되어 가는 가운데, 어느샌가 豁然貫通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활연관통이라는 주희의 말도 후대의 비판가들에 의하여 너무 과장되게 해석되어 마치 그것이, 불가에서 말하는 大悟나 득도의 경지와도 같은 신비적인 그 무엇인 것처럼 비아냥거림의 대상이 되었지만, 여기 관통이란 꿰뚫음 정도의 의미 밖에는 되지 않는다. 일례를 들면, 물리학 개론을 듣기 시작한 과학도가 대학원생만 되어도 우주의 원리가 몇 개의 법칙이나 힘에 의하여 관통되어 설명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는 순간이 올 것이다. 사실, 고승이 평생 수도해서 깨닫는 것이 이 물리학도의 깨달음에도 못 미치는 것일 수도 있다. “활연이란 계곡이 확 트인 것처럼 드넓다”는 의미이며 드넓은 세상이 한 줄로 꿰어져서 이해될 수 있다는 상식적 수준의 표현이다. 물론 상식적 활연관통도 금일, 명일 치열한 각고의 노력의 축적을 요구하는 것이다.

-『대학ㆍ학기 한글역주』, 김용옥, 통나무, 2009년, 95쪽



▲ 한문공부는 그저 지겹고 힘든 공부기만 했는데, 도올 선생의 도움을 받으니 정말 재밌는 일이더라.



               

꼭 꼭 숨기보다 당당히 외치라  

   

이뿐인가? 학자이면서 학자답기는 힘들다. 그것도 나름 영향력 있는 학자가 자기 말을 한다는 것은 정말로 힘들다. 어용학자가 되면 더 많은 혜택을 받고 더 많은 권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는 게 있고, 보이는 게 있을지라도 봉사인양, 벙어리인양 사회적인 발언은 자제하고 상아탑의 권위에 ‘꼭 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라는 마음가짐으로 숨는다.



▲ 상아탑에 숨어 사회적인 발언을 하지 않는 경우는 봤어도, 역사책을 집필하면서 꼭꼭 숨는 경우는 이번에 처음으로 봤다.



하지만 도올 선생은 그렇게 비겁한 짓을 하지 않았다. 천안함 사건에 대해 합동조사단이 북한소행으로 결론 내렸지만, 그런 현실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기서 또 이런 말하면 내가 잡혀가겠지만, 나는 0.0001%도 사실은 설득이 안 된다. 그러나 내가 감옥에 안 가려면 0.0001%는 남겨 놨다. 무슨 얘기냐면, 나는 천안함 사태가 발표를 하는데, 우선 구역질나는 게, 아니, 장성들이 앉아가지고 계급장이나 떼고 나오지, 패잔병 새끼들이, 자기들의 부하들, 불쌍한 국민들을 죽여 놓고, 앉아가지고, 거기서 무슨 개선장군처럼 앉아서 당당하게 국민들에게 겁을 주면서 발표하는 그 자세가 우선 구역질이나 못 견디겠다. 일본의 사무라이라면 그 자리에서 할복자살을 해야 하는 자리다.”라고 일갈했으며,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을 땐 서슴없이 “국민들이여! 더 이상 애도만 하지 말라! 의기소침하여 경건한 몸가짐에만 머물지 말라! 국민들이여! 분노하라! 거리로 뛰쳐나와라! 정의로운 발언을 서슴지 말라! 박근혜여! 그대가 진실로 이 시대의 민족지도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는 것이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차마 여의치 못하다고 한다면, 정책의 근원적인 기조를 바꾸고 거국적 내각을 새롭게 구성하여 그대의 허명화된 카리스마를 축소하고 개방적 권력형태를 만들며, 주변의 어리석은 유신잔당들을 척결해야 한다. 그들은 통치능력이 부재한 과거의 유물이라는 사실이 이미 명백히 드러났다. 그대의 양신良臣은 민적民賊이다(그대에게 알랑방귀를 끼며 추켜 세워주는 관료들은 모두 백성들의 적이다).”라고 박근혜 정부에 목소리를 높였다. 이것이야말로 학자의 양심이며, 우치다쌤이 얘기한 ‘오감이 민감한 신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잘못된 것을 보고 나무랄 수 있었으며, 학문의 권위에 숨어 기득권을 누리려 하기보다 삶의 현실에 뿌리 내려 외칠 수 있었던 것이다. 



▲ 광화문 광장에서의 공개 발언도 꺼리지 않는 모습이다.



도올 선생의 책엔 이와 같은 사회적인 발언들이 시시때때로 등장하고, 그걸 읽고 있는 나의 가슴을 한없이 뛰게 만든다. 그런 영향을 계속 받다 보니, 나도 어느새 인간과 사회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에 대해 고민할 수 있게 되었다. 

다음 후기에선 드디어 『나의 살던 고향은』을 본 소감에 대해 본격적으로 써보려 한다. 이 다큐를 제대로 보려면 우리가 지금까지 어떤 역사의 패러다임에 빠진 채 살아왔는지 자각하는 단계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비로소 도올 선생이 말하는 ‘고구려 패러다임’의 진면목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 고구려, 발해 유적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들어보자.




목차     


1. 도올과 건빵

배우면 배울수록, 알면 알수록 내 생각에 고립되다

깨져야만, 무너져야만, 앎의 무가치를 알아야만 생각이 확장된다

기독교가 나에게 반공부의 깨달음을 주다

한문이 재밌었어요

꼭 꼭 숨기보다 당당히 외치라     


2. 나의 살던 고향은을 보러 가다

『귀향』을 보러 인디스페이스에 갔으나, 인디스페이스는 없었다

인디스페이스를 다시 찾아 왔수다

『나의 살던 고향은』 첫 장면이 핵심이다     


3. ‘나의 살던 고향은을 상상력으로 보다

‘나의 살던 고향은’에 자막이 거의 없는 이유?

유적지가 뭣이 중헌디

상상력으로 유적지를 여행하라

길은 사람을 통해, 역사는 상상을 통해 태어난다

   

4. 고구려 패러다임으로 나아가라

고구려 패러다임을 지녀야 하는 이유

신라 패러다임에 의한 삼국의 역사는 잊어라

국정교과서는 현대판 신라 패러다임이다

  

5. 지도를 뒤집어본다는 것의 의미

당연함을 낯설게 보는 힘

지도를 뒤집어 보라

그러면 새로운 시각이 열린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 고구려 패러다임을 완성하다

고구려처럼 우리도 위기를 기회로 만들며 나아가야 한다

    

6. ‘나의 살던 고향은’ 도올과의 질의응답

우리는 역사를 잘못 알고 있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우리의 주체적인 역사는 우리가 직접 써야 한다

북한 얘기하기 전에 남한부터 바뀌어야 한다

도올 선생의 자부심과 계획

고대사를 제대로 읽을 수 있는 힘을 기르자

한국은 지금 아름답게 변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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