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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Dec 14. 2016

‘나의 살던 고향은’ 도올과의 질의응답

고구려 패러다임으로 쉬프트하라 6

우리는 역사를 잘못 알고 있다     


Q

영화를 보니 그간에 상상으로만 알게 있던 것들이 구체화, 실체화되어 좋았습니다. 이 기회에 젊은이들에게 하나의 ‘역사적 실체’를 보여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고조선에 대해서도 지금과 같은 열정으로 한 번 전체적으로 조명해주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A

김부식이가 『삼국사기三國史記』를 썼다는 것은 그 이전의 역사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신라ㆍ백제ㆍ고구려의 건국을 시조설화를 빌려 설명하고 있는데, 이런 엉터리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 전에 아무 것도 없던 허허벌판에, 문화도 없던 곳에 나라가 어찌 갑자기 건국이 됩니까? 삼국의 시작 자체를 순 엉터리로 기술한 것이죠. 지금의 우리의 감각에서 본다면 말이예요. 

마지막에 갔던 성자산성은 연변대학에서 몇 분 거리에 있음에도 아무도 찾지 않는 곳이예요. 환도산성의 옆의 초원엔 무덤떼가 쫙 있는데, 여긴 아무 것도 없죠.  



▲ 환도산성의 무덤군. 이곳은 확실히 무언가 있어 보이지만 성자산산성은 우리 시골의 풍경과 다르지 않다.



고구려에서 먼저 산성을 짓는 것은 그 당시에는 항상 외적의 침입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전시에 안전하게 모일 수 있는 성을 지어 방비체계를 만들어 놓으면, 그 주변의 사람들은 안심하고 살게 됩니다. 그래서 성 주변에는 엄청난 도시들이 형성되고, 요게 히랍역사에 등장하는 하나의 폴리스 같은 거라 할 수 있습니다. 도시국가를 형성하는 것이고, 수백 개의 도시국가들의 네트워크가 바로 고구려라 할 수 있는 것이죠. 

그러니 고구려라는 게 우리가 생각하는 국가 개념으로 생각하면 안 되는 겁니다. 이게 매우 독특한 것이죠.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히랍 역사의 델로스동맹 같은 경우는 매우 근사하게 생각하지만, 고구려 네트워크는 그쪽 규모보다 훨씬 더 크단 말이예요. 

우리들의 고대사에 대한 인식이라는 게 아까 흘승골성(졸본성)에 가서 보면, 거긴 같은 시기인 마사다 요새 규모의 몇 배거든요. 그게 최초의 도읍이라 했는데, 김부식은 『삼국사기』에서 신라의 건국보다 늦게 설정한 겁니다. 무려 고구려의 건국을 신라의 연호를 써서 기술하고 있는 것이죠. “박혁거세 몇 년에 졸본성이 만들어졌다”고 기술하고 있으니, 명백하게 거짓말입니다. 그건 신라사 중심으로 쓰게 되니까 그렇게 된 것이죠. 그래서 단재丹齋(1880~1936) 선생은 “아무리 고구려 건국을 늦게 잡아도 (『삼국사기』에 쓰여 있는 것보다) 200년은 높여야 한다”고 했는데, 내가 보기엔 그것보다 몇백 년 더 높여야 한다고 봅니다. 



▲ 멀리 우뚝 솟은 졸본성이 보인다. 뭔가 영험한 느낌이 가득 든다.



그 배경이라는 게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고구려는 갑자기 생길 수가 없기 때문이죠. 그 전에 북부여가 되었든, 말갈이 되었든, 예맥이 되었든, 모든 것들이 고구려라는 하나의 통합적인 이름으로 형성될 수 있는 역사가 있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러니 고구려의 역사는 틀림없이 BC 3~4년으로 올라가야 하는 거죠. 

지금은 동북지역이라 하면 굉장히 춥고 후미진 곳으로만 생각합니다. 근데 저 중원지역보다 훨씬 더 광대하고, 풍요로운 지역이죠. 그러니까 맑스Marx, K(1818~1883)얘기로 하면, “가장 인구가 많고 하부구조가 더 단단하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높은 곳에 돌을 날라 성을 쌓았을 생각을 하면, 짚신 신고 그 성을 다 구축했을 것을 생각하면, 하부구조의 전제가 없이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하겠습니까?

고인돌에 석실이 있었고, 그걸 돌로 쌓은 걸 적석총이라 하는데, 고인돌의 분포야말로 만주로부터 전라도까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고인돌의 경우는 하찮게 보다가 영국의 스톤헨지를 보면 ‘와~ 이거 참 대단하다’고 합니다. 고인돌은 개똥인 줄 안다니까요(일동 웃음). 우리가 이렇게 역사를 잘못 알고, 우리 것을 천시하고, 그게 체질화되어 있다고요. 왜 이렇게 됐냐면, 그건 일본인들이 우리 역사를 제일 먼저 썼기 때문에, 그래서 경성제국대학 사학부가 일본 사람들의 멘털리티를 다 이어받아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그 분 중에는 학문적인 실력이 뛰어난 분들이 많이 있지만, 한 번 잘못된 인식구조를 어떻게 뜯어고치겠습니까. 그저 해만 끼치는 거죠.    



▲ 고인돌의 분포로 보면 삼국 이전에 엄청난 하부구조가 있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Q

제가 학교 다닐 때 제일 싫어했던 과목이 역사였습니다. 사람이름과 숫자만 나와서 재미가 없었는데, 오늘 영상처럼 이렇게 살아있는 역사를 본다면 얼마나 재밌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보여준 코스 그대로 탐방 일정을 추진하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A

내 인생은 너무 귀하기 때문에 같은 일을 두 번 반복하지는 않아요(이 대답을 듣는 순간, 우치다쌤이 전주강연 질의응답시간에 했던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 도올 선생은 단호히 말했다. "한 번 간 곳을 다시 갈 정도로 시간이 한가하지 않다"




우리의 주체적인 역사는 우리가 직접 써야 한다   

  

Q

영화 끝부분에 ‘나의 살던 고향은’을 같이 합창했고, 백두산에서 “홍익인간”을 외치는 장면이 감동적이었습니다. 아까 선생님께서 “역사는 감이다”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북한사람들의 역사에 대한 감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북한의 저서라든지, 북한학자들의 감을 영화제작에 반영하셨는지 알고 싶습니다.      


A

북한에서 나온 책들은 빠짐없이 읽었습니다. 북한 학자들은 위대합니다. 북한 학자들은 우스운 사람들이 아닙니다. 참고로 7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학문이 북한에 어림도 없었어요. 근데 80년대부터 경제상황이 나빠지면서, 학문이 기울고 교조적으로 되었습니다. 그래도 사실 고대사를 파헤치는데 북한 학자들의 저술은 아주 결정적인 근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학자들은 북한 학자들을 존경하지 남한 학자들을 존경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내가 할 일은 간단합니다. “너희들(중국, 일본) 맘대로 떠들어라”라고 하는 거예요. 미국학자인 하버드대 교수가 로마사를 쓰는데, 이태리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지는 않잖아요. 옛날 역사는 맘대로 쓰는 거예요. 중국 사람들도 고구려사를 맘대로 써도 됩니다. 그처럼 나도 중국역사나 일본역사를 한국역사의 일부분으로 쓰겠다, 이겁니다(일동 웃음). 도올이라는 학자가 정말 훌륭한 학자가 되어서 ‘엄밀한 학문적인 식견을 지닌 그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고 외국학자들이 인용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하는 거죠. 

이 권위를 가지고 내 맘대로, 막말로 좆 꼴리는 대로 쓰겠다 이겁니다.  이제 거의 70살도 되어 가는데 뭘 눈치를 봐 눈치를. 20년 남은 동안에 내가 유감없이 쓸 거예요(일동 박수). (때마침 청소년으로 보이는 아이가 극장을 나갔다. 그러자) 쌍말로 하니까 어린애가 나가네(일동 웃음). 앞으로는 우리의 주체적인 역사를 우리가 써야 합니다. 그런데 공부를 깊게 해서 넓은 식견을 가지고 써야만 합니다.                



▲ 개인적으로 도올 선생의 노자나 장자 한글역주 시리즈를 기다리는 입장에서, 앞으로도 그 책을 볼 수는 없을 전망이다.




북한 얘기하기 전에 남한부터 바뀌어야 한다

     

Q

민족의 앞날에 가장 큰 숙제는 ‘남과 북이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는가?’ 인데요. 제가 학교 다닐 때 배우기로는 삼부자가 주민들에게 강압적으로 통치를 해서 주민들에게 끽소리 못하고 복종하게 만들었다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지금 듣기로는 북한 체제도 그 나름대로 존재의 이유가 충분히 있기 때문에, 유지가 된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앞으로 이 구조가 어느 때까지 유지가 될 건지, 그리고 통일이 언제쯤 가능할지 선생님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A

그런 것에 대해서는 전혀 걱정하시지 말고, 남한 정권이 바뀌어야 돼요. 북한 얘기할 필요가 없어요. 남한이 북한보다 더 개판이라고. 거긴 최순실이 장난을 하진 않아요. 우리가 북한 걱정하지 말고, 남한을 바로 잡아야 되고, 남한이 바로 잡히게 되면 그 다음에 북한을 얘기해야 되죠. 성격이 아주 다른 친형제끼리도 “너 성격이 못됐다”고 말할 수 없고, 형 동생을 내가 어떻게 고치겠냐고~ 그러니까 우선 상호 인정을 해야 하고, 그리고 교류를 해야 합니다. 교류가 이루어지면 통일이란 말은 굳이 쓸 필요도 없어요. 

그걸 하려면 정권이 교체되어야 합니다. 정권은 바뀝니다. 정권이 바뀔 때 세 가지 조건을 달고 있어야 합니다. 첫째는 경제 민주화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재벌을 해체해야 되요. 그 다음은 남북화해입니다. 그걸 안 하는 대통령은 나쁜 놈이예요. 그건 최순실과 똑같은 거예요. 또 북풍 가지고 해먹겠다는 거니까요. 셋째는 풍요로운 농촌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명박이가 강바닥 훑는 돈의 1/1000정도로도 우리나라 농촌문제는 많은 것이 해결이 되요. 근데 왜 위대한 우리나라 강토의 농촌을 이렇게 놔두고 이걸 왜 국정의 핵심과제로 삼지를 않느냔 말이예요.           


▲ 18대 대통령 선거 당시에도 경제민주화는 화두였다. 새누리당도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당선되자 바꿔버렸다.



     

도올 선생의 자부심과 계획 

    

Q

고구려를 제대로 사랑하려면 철학을 잘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중에서 한국철학책을 찾아봤는데, 고구려는 없더라구요. 도올 선생님의 고구려 패러다임으로 한국철학사를 쓰실 생각은 없으신지요?     


A

그러니까 아까 전에도 말했다시피 내가 그걸 다 쓰겠다니까. 내가 써야 돼! 누가 써도 재야사학자가 되어버리니까. 내가 내 권위를 가지고 쓰는 거죠. 지금까지는 중국철학이나 서양철학을 공부했고 책으로 썼는데 그런 공부는 역사에 대한 보편적인 시각을 갖기 위해 그랬던 것입니다. 이젠 국학 분야에서 일생을 마무리 지으려 합니다. 지금 여러 역사서를 강독하고 있으니, 엄밀하고 고증하고 보편적인 시각을 담아낸 책을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 많은 사람들이 GV를 같이 했다. 그만큼 관심이 높다는 얘기다.



         

고대사를 제대로 읽을 수 있는 힘을 기르자

     

Q

『환단고기桓檀古記』를 소설처럼 배우고 있는데, 그 책에 대한 선생님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A

『환단고기』는 구한말에 날조된 거라고 보지만, 그렇지는 않아요. 『환단고기』의 내용을 보면 절대로 일시에 날조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대개 고려 말기부터 조선 초기에 걸쳐 지어졌고, 고대사에 대한 그런 비기秘記들을 담고 있습니다. 그 흐름을 탄 책이라 할 수 있어요.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 문헌이 시골 훈장에게 떨어졌고, 그 후에 원본이 상실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환단고기』는 매우 불완전한 문헌이예요. 그러다 보니 역사적 사실로 그대로 믿을 수는 없게 된 거죠. 

근데 고대사를 볼 때 가장 한심해지는 부분이, 종교 교단에서 종교적으로 활용을 하는 거죠.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그것에 관심을 가지면, 또 종교에 미쳐버려요. 그러다 보니 편협한 국수주의에 사로잡혀가지고 “예수, 할렐루야”를 외치는 보수 기독교만도 못한 멘탈리티를 가지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사실은 우리 고대사가 건전한 사고를 가진 사람들에게 금기시되어 왔던 거예요. 고대사는 항상 종교쟁이들이 활용하는 것이 되어 왔기 때문에, 이런 문제들을 함께 봐야만 합니다. 고대사가 우파 종교쟁이들의 바이블이 되어가지고, 고대사를 얘기하면 얘기할수록 지저분해진다 이겁니다. 그런 걸 전부 문헌적으로 정리해서 종교쟁이들이 활용하는 논리를 깨끗하게 일소하고 객관적으로 드러나는 역사를 서술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 고대사는 매우 많이 훼손됐지만, 그렇다고 모두 금기시할 필요는 없다. 도올 선생님의 환단고기 역주를 볼 수 있는 날이 있을까?




한국은 지금 아름답게 변해가는 중이다

     

Q

엊그제(16년 11월 22일)는 한국과 일본이 군사보호협정까지 맺었습니다. 선생님의 역사적인 감으로 볼 때 지금의 현 시국은 어떻습니까?     


A

지금 우리 역사가 혼돈과 무질서로 가는 게 아니라, 질서 있고 아름답게 변해가는 중이예요. 그러니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이명박이 몇 십조를 해먹어도 아무도 항의를 안 했잖아요. 그런 사기가 어딨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안 속도 안 넘어갔잖아요. 그러니 우리가 정말 감사해야 하고, 이럴 때마다 우리 역사는 확실하게 진보하고 있다는 신념을 가지면 됩니다.

어젠 미국인들과 식사를 하는데 그 때 “너희들의 역사는 암흑을 선택(트럼프 당선)해 가는데, 우리는 광명을 선택해 가고 있다. 니들은 겨우 200년의 민주주의를 했다고 하지만, 우리는 최소한 반만년의 민본사상에 의해서 흔들리지 않는 홍익인간의 이념으로 살아왔다. 그러다 이제 비로소 바른 제도까지 만들어 가고 있다”고 확실히 말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지금 시국에 대해서 전혀 걱정을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 12월 3일 촛불집회 땐 청와대 100미터 앞까지 진행이 허용됐다. 청와대로 가는 길엔 사람이 가득 찼다.




도올은 영원한 청춘의 소유자다

    

도올 선생과의 질의응답 시간을 30분 동안 함께 했다. 어떤 질문이 나오든 거침없이 술술 이야기를 하신다. 그만큼 많이 고민했다는 뜻이고, 확고한 계획이 있다는 뜻일 터다. 

질의응답 시간 내내 떠올랐던 시는 사무엘 올만의 「청춘」이란 시였다. 일반적으론 나이가 먹으면 보수적인 사람이 되고, 생각도 꽉꽉 막힌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 시를 통해서 보면 나이와 생각의 경직성 사이엔 조금의 영향은 있다 할지라도, 절대적인 영향은 없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나이가 어리지만 자기 생각에만 갇혀 소통을 차단한 사람이 있는 반면에, 나이가 많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도올 선생이야말로 이 시에서 말하는 ‘영원한 청춘의 소유자’ 같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하고 싶은 게 있다는 것, 그리고 누가 뭐라 해도 자신의 말을 할 거라는 것 등이 조금씩 위축되고 있는 내 마음에 불을 지폈기 때문이다. 

모든 시간이 끝나고 전철을 타기 위해 걸어가는 발걸음엔 왠지 모르게 힘이 실렸다. 그리고 무엇이든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은 미루지 말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한 편을 보며 잊고 있었던 정열을 되찾게 됐고, 도올 선생의 힘차면서도 정열에 찬 말을 들으며 억눌려 있던 것이 쫙 펴지는 느낌을 받았다. 2016년도 거의 막바지다. 이렇게 받은 힘으로 2017년엔 더욱 재미지게 살아봐야겠다. 



▲ 영화가 끝난 후 함께 찍은 사진. 운 좋게 바로 도올 선생님 옆옆자리에 앉았다.




목차     


1. 도올과 건빵

배우면 배울수록, 알면 알수록 내 생각에 고립되다

깨져야만, 무너져야만, 앎의 무가치를 알아야만 생각이 확장된다

기독교가 나에게 반공부의 깨달음을 주다

한문이 재밌었어요

꼭 꼭 숨기보다 당당히 외치라     


2. 나의 살던 고향은을 보러 가다

『귀향』을 보러 인디스페이스에 갔으나, 인디스페이스는 없었다

인디스페이스를 다시 찾아 왔수다

『나의 살던 고향은』 첫 장면이 핵심이다     


3. ‘나의 살던 고향은을 상상력으로 보다

‘나의 살던 고향은’에 자막이 거의 없는 이유?

유적지가 뭣이 중헌디

상상력으로 유적지를 여행하라

길은 사람을 통해, 역사는 상상을 통해 태어난다

   

4. 고구려 패러다임으로 나아가라

고구려 패러다임을 지녀야 하는 이유

신라 패러다임에 의한 삼국의 역사는 잊어라

국정교과서는 현대판 신라 패러다임이다

  

5. 지도를 뒤집어본다는 것의 의미

당연함을 낯설게 보는 힘

지도를 뒤집어 보라

그러면 새로운 시각이 열린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 고구려 패러다임을 완성하다

고구려처럼 우리도 위기를 기회로 만들며 나아가야 한다

    

6. ‘나의 살던 고향은’ 도올과의 질의응답

우리는 역사를 잘못 알고 있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우리의 주체적인 역사는 우리가 직접 써야 한다

북한 얘기하기 전에 남한부터 바뀌어야 한다

도올 선생의 자부심과 계획

고대사를 제대로 읽을 수 있는 힘을 기르자

한국은 지금 아름답게 변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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