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패러다임으로 쉬프트하라 4
『나의 살던 고향은』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고구려 패러다임’에 알아야한다.
지금껏 우린 알게 모르게 자학사관이나 신라중심사관에 빠져 우리의 역사를 비하하기에 바빴다. 그래서 밖으론 늘 강대국의 침략에 꼼짝없이 당하는 나라로, 안으론 권력과 돈에 눈이 먼 권력자들의 아귀다툼에 시름하는 나라로 인식해왔던 것이다. 그래서 학교에서 역사수업을 할 때마다 아이들에게 “우리 역사는 늘 당하기만 하는 역사잖아요. 그래서 공부하기가 싫어요”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이런 식의 자학사관이나 ‘신라 패러다임(신라중심사관)’으로 우리 역사의 무대는 한없이 좁아졌고 부정적인 시각만이 판을 쳤다. 이 때에 도올 선생이 제시하는 방법이 바로 ‘고구려 패러다임으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그건 곧 우리의 과거사를 제대로 배워서 버젓이 있어왔던 우리 민족의 자긍심과 문화적 자부심을 살려 현재의 관점으로 계승해 나가자는 얘기다.
그렇다고 여기서 말하는 게 단순히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라는 국수주의거나, ‘아 옛날이여’라는 복고주의를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저 있었던 역사적 사실을 ‘어디서 허황된 얘기야’라며 밀쳐내지 말고, ‘그땐 그랬을 뿐 지금은 그렇지 않아’라며 부정하지 말고, 머리로 제대로 알고, 눈으로 제대로 확인하여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수정해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진보사관처럼 역사란 일직선으로 끊임없이 발전해 나가는 것은 아니다. 순간순간 어떤 선택을 하느냐, 그때 어떤 인식을 갖느냐에 따라 역사는 발전하기도 하고 퇴보하기도 한다. 나아감과 머뭇거림, 그리고 뒤처짐의 역동적인 흐름 속에 역사는 흘러가지만 장구한 세월로 보면 역사는 조금씩이라도 발전해 나가고 있다. 그렇기에 정작 중요한 순간에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영화 『스물』은 바로 이와 같은 선택의 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억눌려 있던 고등학생 시절을 마친 세 명의 친구들은 20살이 되던 어느 날 갈림길에 서서 고민을 한다. 하나의 길은 현실이란 길이고, 다른 하나의 길은 이상이란 길이다. ‘현실과 이상’을 이분법으로 나누어 그 중에 하나의 길만을 택해야 한다고 희화화하긴 하지만, 이 장면에서 이들이 나누는 대화를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경재: 자~ 우린 지금 양 갈래 길에 서 있어. 이상과 현실. 지금까지 우리가 선택했던 것들에 대한 착오와 실수들은 우리가 오래 살아보지 않았다는 핑계로, 면책과 수정이 허용됐었지. 근데 이제 오래 살다본 현재의 우리로서 조금 더 책임감 있는 선택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자~ 어떤 길을 선택하든 서로의 길을 존중하고 응원하도록 하자. 자~ 난 이쪽(현실)!
동우: 자~ 난 이쪽(이상)!
치호: 니들이 착각하고 있는 게 있는데, 여긴 양 갈래 길이 아냐. 세 갈래 길이지. (뒤를 돌아보며) 난 이쪽!
경재: 어이 차치호군! 너 여자 가슴 좋아하지. 뒤돌아 가면 여자 친구 가슴이 아니라, 엄마 젖을 빨게 돼.
20살에 꼭 현실과 이상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은 억지스런 측면이 있지만, 그래도 뒤로 돌아가선 안 된다는 것만큼은 명확히 하고 있다. 꼭 현실과 이상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건 아니라 해도 앞을 보고 나아가야만 한다. 그렇지 않고 퇴보하려 하거나 잘못된 관점에 머무르려 하는 순간 우리는 가능성을 닫게 되고, 한계에 빠지기 때문이다.
역사도 마찬가지다. 고구려의 기상, 그리고 우리 선조들의 찬란한 문명을 이어받아 앞으로 나아가느냐, 패배주의적인 관점이나 ‘신라 패러다임’의 협소한 세계관에 함몰되어 뒤로 물러서느냐를 우리가 택해야 한다. 그때 올바른 선택을 해야지만, 역사를 배우는 의미 또한 알게 되며, 살아가는 의미 또한 분명해진다.
우리가 지금껏 알고 있던 삼국에 대한 상식은 김부식金富軾(1075~1151)이 쓴 『삼국사기』의 내용을 토대로 재구성된 내용이다. 김부식은 그 당시 내려오던 『구삼국사』를 저본으로 삼아 새로운 삼국의 역사서를 편찬했다. 하지만 『구삼국사』라는 책이 현재는 전해지지 않기에 어떤 내용을 첨가했으며, 어떤 내용을 뺐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삼국사기』엔 삼국 이전의 역사는 누락되어 있고, 삼국의 시조를 모두 난생卵生으로 처리했다. 난생이란 알에서 태어났다는 뜻으로 부계혈통 및 과거를 지워내는 방식이다. 그러니까 하늘에서 뚝 떨어진 어느 전설적인 인물이 천부적인 능력으로 한 나라를 건국하고 그 역사를 시작했다는 얘기가 된다. 이렇게 되면 삼국 이전의 나라들은 신화에나 존재하는 나라들로 격하되고, 심지어 삼국도 신화 같이 허황된 나라로 여겨질 뿐이다. 그러니 우리가 아무리 주몽의 얘기를 들어도, 박혁거세의 얘기를 들어도 제대로 된 역사가 아닌 오버워치의 캐릭터를 대하는 것 같이 가상의 인물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식의 기술이 오히려 현대인들에게 그릇된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우리의 역사인식을 협소하게 만든다. 그래서 도올 선생은 “고구려는 갑자기 생길 수가 없죠. 그 전에 북부여가 되었든, 말갈이 되었든, 예맥이 되었든, 모든 것들이 고구려라는 하나의 통합적인 이름으로 형성될 수 있는 역사가 있었다고 말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고구려의 건국은 틀림없이 BC 3~4세기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거예요. 지금은 동북지역이라 하면 굉장히 춥고 후미진 곳으로 알아요. 근데 저 중원지역보다 훨씬 더 광대하고, 풍요로운 지역이죠. 그러니까 맑스 얘기로 말하면, ‘가장 인구가 많고 하부구조가 더 단단하다’고 할 수 있죠. 그렇게 높은 곳에 돌을 날라 성을 쌓았을 생각을 하면, 짚신 신고 그 성을 다 구축했을 것을 생각하면, 하부구조가 탄탄하다는 전제가 없이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하겠습니까?”라고 소리를 높인 것이다.
그 말은 곧 삼국은 어느 날 갑자기 출현했고, 아무 것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성립된 나라가 아니라 장구한 역사적인 흐름 속에 기존에 살던 사람들이 있었고, 그 기반을 토대로 성립되었다고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건 곧 우리의 역사는 긴 세월 동안 한반도에만 국한되어 성립된 것이 아니라, 동북지역까지 아우르며 형성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김부식의 역사인식에 관한 것이다. 김부식은 경주김씨의 후손이며 ‘신라 패러다임’에 푹 빠져 있던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 신라의 역사를 고구려나 백제보다 훨씬 중요하게 생각했으며 의도적으로 띄우기에 바빴다. 『삼국사기』는 사마천이 쓴 『사기』와 마찬가지로 ‘춘추필법春秋筆法’에 따라 서술되어 있고, 삼국의 역사는 ‘본기本紀’에 수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부연설명을 하지 않아도 김부식 입장에서 어느 나라의 역사에 더 많은 분량을 할애했을지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신라 7권, 통일신라 5권, 고구려 10권, 백제 6권). 이런 식의 편협한 시각으로 서술됐으니, 삼국의 역사를 어떻게 다뤘을지도 짐작이 간다. 심지어 그는 고구려의 건국이 신라보다도 늦다고 서술했으며, 고구려의 역사를 서술할 때에도 신라의 연호로 서술하고 있다. 이를 테면 ‘박혁거세 몇 년에 졸본성이 만들어졌다’라는 식으로 말이다. 이건 누가 뭐라 해도 완벽한 왜곡이며, 역사에 큰 죄를 짓는 서술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김부식의 왜곡된 시선으로 삼국의 역사를 바라보다 보니, 우리도 어느 순간에 고구려의 진취적인 기상이나 광대한 역사인식은 잃어버렸고, 신라의 협소한 인식만이 자리하게 됐다. ‘고구려 패러다임’이란 바로 이처럼 알게 모르게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 역사적 상식을 철저히 지우고, 있는 사실 그대로 우리의 역사를 바라보며 나아가자는 외침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신라 패러다임’이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한 번씩 역사 논쟁이 불거질 때마다 우리의 역사를 깎아내리려 하고, 협소한 지역 중심으로 보려 하는 움직임이 일어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라고 할 수 있다.
2016년 11월 28일에 그간 꽁꽁 감싸져 있던 국정교과서의 집필진과 집필 방향이 공개되었다. 최소한의 집필기준만 맞추면 다양한 역사인식으로 교과서를 펴낼 수 있던 검정체제에서 나라가 정한 하나의 집필기준만을 충족해야 하는 국정체제로 바뀐 것이다. 세계적으로 역사 교과서의 집필방향은 국정체제에서 검정체제로, 검정체제에서 출판사의 권한을 더욱 존중하는 인정체제로 바뀌어가고 있는데, 한국은 완전히 정반대의 길을 택한 것이다. 이것도 매우 황당한 것이지만, 이것보다 더욱 황당한 일은 비판 여론이 일어날까 전전긍긍하며 집필진이 누구인지 밝히지도 않은 채, 밀실에서 아무도 모르게 집필됐다는 점이다. 꼭 악당 모의하는 것 같은 불온한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그만큼 ‘방귀 뀐 놈이 성을 낸다’고 자신들이 하는 행위가 그만큼 떳떳하지 못하다는 뜻일 게다.
이런 상황에서 교과서를 만들다 보니, 이렇게 만들어진 교과서는 ‘후소샤 교과서’만큼이나 왜곡과 거짓으로 점철되어 우리의 역사인식을 더욱 협소하게 만드는 교과서가 되고 말았다. 이 교과서엔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임시정부를 폄하하고 친일 독재 세력을 옹호하는 내용으로 꾸며져 있다. 이같이 우리 역사의 긍정적인 부분은 모두 제거하고 일부 세력만을 띄우는 내용만 있으니, 이건 어디까지나 ‘신라 패러다임’의 현대 버전이라 감히 말할 수 있다.
‘고구려 패러다임으로 전환하자’는 말은 단순한 레토릭이나 선동 구호가 결코 아니다. 여전히 ‘신라 패러다임’이 위세 등등하게 우리를 위축되게 만들고, 여러 방향으로 우리를 압박하고 우리의 의식을 장악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의 살던 고향은』을 보며 ‘고구려 패러다임’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 번 되씹어볼 필요가 있다.
다음 후기는 마지막 후기로 ‘고구려 패러다임’의 나머지 이야기와 도올 선생과의 가슴 뜨거웠던 GV의 내용을 기록하며 『나의 살던 고향은』 관람기를 마치도록 하겠다.
목차
배우면 배울수록, 알면 알수록 내 생각에 고립되다
깨져야만, 무너져야만, 앎의 무가치를 알아야만 생각이 확장된다
기독교가 나에게 반공부의 깨달음을 주다
한문이 재밌었어요
꼭 꼭 숨기보다 당당히 외치라
『귀향』을 보러 인디스페이스에 갔으나, 인디스페이스는 없었다
인디스페이스를 다시 찾아 왔수다
『나의 살던 고향은』 첫 장면이 핵심이다
‘나의 살던 고향은’에 자막이 거의 없는 이유?
유적지가 뭣이 중헌디
상상력으로 유적지를 여행하라
길은 사람을 통해, 역사는 상상을 통해 태어난다
고구려 패러다임을 지녀야 하는 이유
신라 패러다임에 의한 삼국의 역사는 잊어라
국정교과서는 현대판 신라 패러다임이다
당연함을 낯설게 보는 힘
지도를 뒤집어 보라
그러면 새로운 시각이 열린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 고구려 패러다임을 완성하다
고구려처럼 우리도 위기를 기회로 만들며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역사를 잘못 알고 있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우리의 주체적인 역사는 우리가 직접 써야 한다
북한 얘기하기 전에 남한부터 바뀌어야 한다
도올 선생의 자부심과 계획
고대사를 제대로 읽을 수 있는 힘을 기르자
한국은 지금 아름답게 변해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