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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Dec 13. 2016

지도를 뒤집어본다는 것의 의미

고구려 패러다임으로 쉬프트하라 5

지금껏 우린 역사를 배워오면서 중원중심주의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다. 그러니 중원과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사회가 안정이 되고 문명국이 된다고 배워왔다. 그런 시각은 한반도를 한없이 변방국가로 인식하도록 만들었고, 임진왜란 이후엔 청나라에 의해 무너진 중화주의가 한반도로 왔다는 ‘소중화小中華’로까지 이어지도록 만들었다. 

이런 시각으로 고구려를 보니 그렇게 광대한 영토를 점령하여 승승하다가 장수왕 때에 이르러 동북지역에 있던 수도를 평양으로 천도했다는 게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동아시아의 나라들이 원나라나 청나라처럼 중원을 차지한 경우엔 역사책에 기록되며 역사를 이어간데 반해, 그렇지 못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소멸되었기에, 고구려 수도를 중원이 아닌 한반도로 천도했다는 게 상식으론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 고구려는 왜 국내성에서 평양성으로 도읍을 옮겼는가? 그게 문제다.




당연함을 낯설게 보는 힘

     

그래서 도올 선생은 그런 생각이야말로 우리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던 중화중심주의적 사고이자, 신라 패러다임이라 말하며 거기에 갇히지 않기 위해서는 ‘고구려 패러다임’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려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지도를 보는 방식인 남극을 아래로 북극을 위로 놓고 보는 방식이 아닌, 지도를 뒤집어 북극을 아래로 남극을 위로 놓고 보는 방식으로 봐야만 한다. 지도가 뒤집히면 그에 따라 우리의 사고도 뒤집히며, 우리의 의식을 강하게 누르고 있던 틀마저 바뀐다. 그제야 광활한 동북지역이 첫 눈에 들어오며 한반도는 더 이상 후미진 변방이 아닌, 바다와 맞닿아 물자가 풍부한 곳으로 보이게 된다. 



▲ 지도를 뒤집어 보면 지금껏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인다.



사물이나 현상을 낯설게 보기 위해서는 ‘당연함’을 떼쳐낼 수 있어야 한다. 으레껏 그래왔고, 익숙하여 더 이상 문제로 여겨지지 않던 것들이 어느 순간엔 행동을 제약할 뿐만 아니라, 생각까지도 막아서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런 맘을 먹었다할지라도 곧바로 문제가 보이는 것은 아니다. 너무도 일상적이어서 뭐가 문제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니 그걸 알기 위해서는 과감한 용기와 도전정신이 필요하다. 금기라 여겼던 것들을 용감히 해보고, 관습처럼 무작정 해왔던 것을 과감히 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야만 당연함은 산산이 부서져 부당한 것이 되고, 일상은 뿔뿔이 흩어져 이상한 것이 되어, 놓쳐왔던 것들이나 익숙하단 핑계로 불편을 감수해온 것들이 무엇인지 명확히 보이게 되니 말이다. 그럴 때에 ‘내가 어떤 틀 속에서 살고 있는지?’를 비로소 볼 수 있게 된다.                



▲ [쥬토피아]의 한 장면. 익숙하기에 불편하다고 느끼지 못했을 뿐, 디자인이 바뀌면 더 많은 사람이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지도를 뒤집어 보라

     

그러기 위해 도올 선생이 제시한 방법이 바로 ‘지도를 뒤집어보라’는 것이다. 지도를 지금과 같이 똑바로 들고 보는 것은 늘 그래왔다는 이유로 한 번도 이상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러다 보니 똑바로 든 지도의 그림에 압도되어 중원중심적인 사고에, 신라 패러다임에 갇혀 버리게 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더 큰 문제라 할 수밖에 없다. 



▲ 지도를 똑바로 본다는 것은 계림에서 시작되어 한양으로 수렴되는 역사를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그런데 도올 선생이 제시한 이 방법, 어디선가 본 듯한 방법이다. 그러고 보니 이미 2014년에 반영된 『미생』이란 드라마에서도 나왔던 장면이다. 

12화에선 요르단 중고자동차 수출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다. 실제로 이 사업은 자원2팀 과장이었던 박과장이 추진했던 사업으로 리베이트를 받은 게 들켜 사업은 흐지부지 됐다. 이렇게 안 좋게 끝난 사업의 경우엔 회사의 불문율처럼 아무리 사업성이 있다 해도 치부라 생각하여 더 이상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장그래는 그게 못내 아쉬운지 다시 시작하자는 파격적인 제안을 했고, 고민하던 오차장은 그걸 받아들인다. 하지만 문제는 과연 임원진들을 설득할 수 있느냐다. 자칫 잘못하면 남의 불행을 이용해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는 파렴치한으로 낙인찍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임원들을 설득할 PT를 만드는 과정에서 ‘지도를 거꾸로 보는 이야기’가 나온다.      

 

장그래: 저는 이상하게 뭔가 찜찜한대요. 

김대리: 찜찜? 이런 상황에서 안 찜찜한 사람이 어딨어?

장그래: 근데 상황도 상황이지만, PT 내용이요? 

김대리: PT 내용이 뭐?

장그래: 뭐랄까? 하면 할수록 우리 사업의 마이너스적인 요소가 부각되는 것 같아서요. 

오차장: (엿듣고 있다가 발끈하며) 그게 무슨 소리야? 왜 마이너스적인 요소만 부각된다고 생각해?

장그래: (머뭇거리며) 그건 우리 PT자료가 매뉴얼보다 더 매뉴얼 같아서요. 

천과장: 완벽하단 거잖아. 그게 문제야?

장그래: 네! PT라는 게 보통 사업의 개요부터 시작하잖아요. 그걸 따르다 보니 우리 사업은 어쩔 수 없이 변명과 해명으로 시작하는 PT가 되는 것 같아서요. 그러니까 기존 룰을 따르기보다, 판을 흔드는 게....

김대리: 장그래, 그건 아니지! 

오차장: (알쏭달쏭하다는 듯) 판을 흔들어?

장그래: 그러니까 지도를 볼 때 북쪽을 위쪽으로 생각하는 게 관습이 아닐까 싶어서요. 실제로 우주에 떠있는 지구는 위아래 구분이 없지 않을까요? 그래서 아래에 호주가 있잖아요. 여기 있던 호주가 이렇게 하면(지도를 뒤집으면) 지도 한 가운데 있어 보이게 됩니다.     


      

임원을 설득하기 위한 PT일수록 더욱 더 기존 틀을 따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기존 틀에 익숙한 임원들이 쉽게 이해하여, 사업에 대한 불필요한 오해를 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존의 틀을 따라 이미 한 차례 불미스런 문제가 불거졌던 이 사업으로 설득하려다 보니, ‘왜 그럼에도 굳이 이 사업을 해야만 하는가?’라는 구질구질한 변명들로만 가득 차게 됐던 것이다. 그건 누가 봐도 장그래의 말마따나 ‘우리 사업은 문제가 많은 사업입니다’만 부각시키는 꼴이다.                



▲ 지도를 거꾸러 보려 이상한 자세를 하고 있는 장그래.




그러면 새로운 시각이 열린다

     

그래서 장그래가 묘수라고 생각하여 제안한 말이 바로 ‘아예 새로운 판을 만들어 거기서부터 시작하자’는 것이다. 기존의 틀은 자잘한 변명으로 가득 찼다면, 새로운 틀에선 이번 사업의 장점을 부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낯선 틀과 방식이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다. 역시나 새로운 틀은 여러 사람을 혼란에 빠뜨렸고, 심지어 그런 제안을 했던 자기 자신도 궁지로 밀어 넣어 ‘오차장님의 최종리허설을 들은 후, 나는 입을 다물었다. OJT 때 배운 룰이 흔들리는 모습을 실전으로 처음 봤다. 기존의 판이 흔들리는 모습을 본 후, 나 역시 판 위에 있었음을 새삼 자각했다’고 자책하기에 이른다. 

기존의 틀을 깬다는 게, 그리고 그걸 적용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이 장면을 통해 지도를 뒤집어 본다는 말의 의미가 더욱 더 분명하게 다가왔다. 뒤집는다는 건 관점이 바뀐다는 말이다. 관점이 바뀌면 그에 따라 행동의 변화도 따라오게 마련이다. 그럴 때 흔들리지 않으려면 충분한 고민과 그것을 지탱할 수 있는 깊은 사유가 필요하다. 



▲ 판을 흔든 PT에 모두 당황한 표정, 불쾌한 표정이 역력하다. 새로운 판은 많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든다.



장그래는 문제의식은 있었기에 제안은 할 수 있었지만, 그걸 끌고 갈만한 사유의 깊이는 없었기에 ‘나 역시 판 위에 있었음을 새삼 자각했다’고 고백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제안을 받아들인 오차장은 그걸 받아들일 만한 관점이 있었고, 그걸 깊이 끌고 갈만한 사유의 깊이가 있었다. 그러니 여기저기서 날선 비난을 퍼붓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PT를 성공리에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걸 보던 장그래는 ‘밀어붙이고 쏟아붓는다. 확신이다! 마음속에서 몇 번의 전쟁을 치러야 저런 확신과 신념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일까?’라고 말했는데, 그것이야말로 사유의 깊이라 감히 말할 수 있다. 

지도를 뒤집어 본다는 것은 이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도 지도를 뒤집어 ‘고구려 패러다임’을 받아들이려 맘을 먹었다면, 의구심의 눈초리가 아닌, 받아들이고 이해하려는 적극성이 필요하다. 그래서 도올 선생은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젊은이들에게 광활한 의식의 지평을 제공할 것이다. 우리 역사와 조상에 대해 자부심을 갖길, 각성이 되길 바란다”고 고구려 패러다임의 의의를 설명했다. 고구려 패러다임은 이처럼 지금껏 우리를 억눌렀던, 협소하게 만들었던 온갖 상식에서 벗어나 새롭게 우리 자신을 볼 수 있는 시각이라고 할 수 있다.        



▲ 판을 흔드니 처음엔 모두 불쾌해 했지만, 결국 그걸 이해하게 되면서 모두 얼굴엔 미소가 어린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 고구려 패러다임을 완성하다

     

그래도 풀리지 않던 건 고구려는 왜 중원을 향해 나아가지 않았냐는 점이다. 이 문제가 풀리질 않으니, 고구려가 국내성에서 평양성으로 수도를 옮긴 것이 자꾸 후퇴처럼 보인다. 

이에 대해 도올 선생은 고구려가 중원중심주의에서 벗어나게 된 계기가 바로 15대 왕인 미천왕美川王 무덤의 도굴 사건이었다고 얘기해준다. 미천왕 때 고구려는 옆 나라인 모용선비와 치열하게 다툼을 벌인다. 두 나라의 영토가 확장되는 만큼 서로의 전쟁은 불가피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미천왕은 죽었고, 고국원왕이 왕위를 잇게 된다. 하지만 미천왕때와는 달리 백제엔 불세출의 인물인 근초고왕이 직위하면서 고구려는 수세에 몰리게 된다. 남쪽엔 백제란 나라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서쪽에선 모용선비가 시비를 걸어오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급기야 모용선비는 미천왕의 무덤까지 진격하여 무덤을 파헤쳐 시체까지 강탈해가는 만용을 저지르고 만다. 바로 이 순간을 도올 선생은 ‘고구려의 역사가 중원과 결별하게 되는 갈림길’로 정의하며, ‘그런 버르장머리 없는 놈들하고는 상대도 하지 않는다’고 마음을 굳힌 순간이라 표현했다. 



▲ 미천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파헤쳐져 누가 보면 그냥 돌이 난자하게 엉클어진 곳인 줄 알겠다.



‘위기는 기회’라는 말을 흔히 쓴다. 미천왕 무덤의 도굴 사건은 가슴 아픈 일이며, 고구려의 근본을 흔드는 일이었다. 이때 울분을 느낀 고구려가 다시 재기를 하면서 광개토대왕 때엔 많은 영토를 차지하게 된다. 만약 이때까지도 고구려가 중원으로 진출할 꿈을 가지고 있었다면, 중원으로 쳐들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미천왕 이후로 중원중심주의를 버렸기에 광개토대왕은 동북지역과 한반도 이북지역까지 차지하며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열어젖혔고 장수왕은 평양으로 천도했다. 이에 대해 도올 선생은 “만약 장수왕이 평양으로 천도하지 않고 국내성에서 그 역사가 끝났다고 한다면 동북공정에 대해서 우리가 할 말이 없었을 것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고구려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며 지금까지와는 다른 패러다임을 만들며 한 시대에 우뚝 선 나라가 되었다.                



▲ 고구려 패러다임은 위기 상황에서 만들어졌다.




고구려처럼 우리도 위기를 기회로 만들며 나아가야 한다

     

어찌 보면 지금 한국도 위기 상황이라 할 수 있다. 투표로 뽑힌 대통령은 허수아비에 불과했고 그 뒤에 숨은 세력들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했다. 그 탓에 한국은 완벽히 공동체가 무너졌고, 각자도생해야 하는 사회가 되었으며 통일의 비전보다는 기득권 유지가 더 중요한 사회가 되었다. 이 때문에 11월부터 지금까지 매주 토요일이면 광화문에서 함께 모여 집회를 열며 광장 민주주의를 실현하게 된 것이다. 이것만 보고 있으면 한국은 지금 유사 이래 엄청난 위기에 봉착해 있다고 할 수 있다. 



▲ 12월 3일에 광화문 일대에서만 170만명이 모였다. 비폭력 시위의 절정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위기감 때문에 질의응답 시간에도 한 학생은 “엊그제는 한국과 일본이 군사보호협정까지 맺었습니다. 선생님의 역사적인 감으로 볼 때 지금의 현 시국은 어떻습니까?”라고 불안에 가득한 말을 한 것이다. 그러자 도올 선생은 “지금 우리 역사가 혼돈과 무질서로 가는 게 아니라, 질서 있고 아름답게 변해가는 중이예요. 그러니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이명박이 몇 십조를 해먹어도 아무도 항의를 안 했잖아요. 그런 사기가 어딨습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안 속았고 그냥 안 넘어갔잖아요. 그러니 우리가 정말 감사해야 하고, 이럴 때마다 우리 역사는 확실하게 진보하고 있다는 신념을 가지면 됩니다.”라고 말했다. 그건 고구려가 미천왕 무덤의 도굴 사건을 슬기롭게 넘기며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가치를 세워갔듯이, 한국도 이번 사건을 통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며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는 뜻처럼 들렸다. 

이것으로 『나의 살던 고향은』의 관람기를 마치고, 다음 편엔 도올 선생과 진행한 질의응답을 정리하여 올리도록 하겠다. 사족이지만 질의응답 시간은 청년의 열정을 지닌 도올 선생의 에너지에 좌중이 압도되며 ‘무엇이든 하고 싶다’는 감격을 느끼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 다음 편에선 도올 선생과의 대화를 정리하며 마무리 짓도록 하겠다.




목차     


1. 도올과 건빵

배우면 배울수록, 알면 알수록 내 생각에 고립되다

깨져야만, 무너져야만, 앎의 무가치를 알아야만 생각이 확장된다

기독교가 나에게 반공부의 깨달음을 주다

한문이 재밌었어요

꼭 꼭 숨기보다 당당히 외치라     


2. 나의 살던 고향은을 보러 가다

『귀향』을 보러 인디스페이스에 갔으나, 인디스페이스는 없었다

인디스페이스를 다시 찾아 왔수다

『나의 살던 고향은』 첫 장면이 핵심이다     


3. ‘나의 살던 고향은을 상상력으로 보다

‘나의 살던 고향은’에 자막이 거의 없는 이유?

유적지가 뭣이 중헌디

상상력으로 유적지를 여행하라

길은 사람을 통해, 역사는 상상을 통해 태어난다

   

4. 고구려 패러다임으로 나아가라

고구려 패러다임을 지녀야 하는 이유

신라 패러다임에 의한 삼국의 역사는 잊어라

국정교과서는 현대판 신라 패러다임이다

  

5. 지도를 뒤집어본다는 것의 의미

당연함을 낯설게 보는 힘

지도를 뒤집어 보라

그러면 새로운 시각이 열린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 고구려 패러다임을 완성하다

고구려처럼 우리도 위기를 기회로 만들며 나아가야 한다

    

6. ‘나의 살던 고향은’ 도올과의 질의응답

우리는 역사를 잘못 알고 있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우리의 주체적인 역사는 우리가 직접 써야 한다

북한 얘기하기 전에 남한부터 바뀌어야 한다

도올 선생의 자부심과 계획

고대사를 제대로 읽을 수 있는 힘을 기르자

한국은 지금 아름답게 변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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