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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Dec 07. 2016

‘나의 살던 고향은’을 상상력으로 보다

고구려 패러다임으로 쉬프트하라 3

『나의 살던 고향은』의 상영시간은 1시간 30분 정도다. 도올 선생이 거닐었던 길을 따라 우리도 함께 거닐며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어느새 백두산 정상에서 “홍익인간!”이라 힘주어 외치는 도올선생의 결기 어린 목소리를 듣게 되며 스텝룰을 보게 된다. 그만큼 적당하고도 간명한, 그러면서도 여운이 남는 상영시간이라 할 수 있다.                



▲ 사람들이 하나둘씩 차고 있다. 첫 개봉일이니만치 많은 사람들이 왔으면 좋겠다.




나의 살던 고향은에 자막이 거의 없는 이유? 

    

이 영화는 각 유적지마다 도올 선생이 직접 발로 걸으며 그 때 느꼈던 감회를 들려주고, 거기서 미처 말하지 못한 역사적인 사실은 연변대학 숙소에서 보충해주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그러니 이영화는 한 편의 ‘도올의 고구려사 강의’라 이름 붙여도 전혀 손색이 없는 구성이라 할 수 있다. 

처음 간 곳은 환인지역이다. 이곳은 고구려의 첫 도읍지였던 곳으로 흘승골성訖升骨城(졸본성)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영화에선 아침에 희뿌연 날씨가 개면서 천연의 요새인 흘승골성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이 생생히 담겨 있다. 그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주몽이 이곳을 도읍으로 정할 수밖에 없었던 느낌이 그대로 전해오는 듯 했다. 이에 대해 도올 선생은 아주 감격에 차서 격앙된 어조로 “주몽이 여기를 왔다가 이 뿌연 비류수 가에서 안개가 걷히면서 저 성이 우뚝 서있는 모습을 보고 저기다! 내가 바로 도읍할 곳이 저기다!”라고 주몽에 빙의라도 된 듯이 외쳤다. 



▲ 제주도 성산일출봉처럼 우뚝 솟은 자연이 만든 요새. 졸본성.



영화는 이런 식으로 유적지를 찾아 도올선생의 감회와 설명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그때 좀 더 자막을 친절하게 넣어주고, 중간 중간에 관련 자료를 더 많이 보여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아무래도 고구려를 제대로 공부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생소한 개념들이나 낯선 역사적 사실들이나 특이한 지명들 때문에 더 헛갈리기만 했으니 말이다. 그건 모두 도올 선생의 내레이션만으로 설명하려다보니, 이해하기에 너무나 버거웠다. 

그런데 나중에 질의응답 시간에 이에 대해 “자막을 넣어 설명을 도울 수도 있었는데, 최대한 배제하도록 편집 방향을 정했습니다. 자막이 많아질 경우 자칫 잘못하면 자막에만 집중하느라 영상을 거의 보지 못하는 수가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관객들에게 더 많이 영상으로 느껴볼 수 있도록 배려하는 차원에서 만든 영화입니다”라는 도올 선생의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이 설명을 듣기 전까지는 자막을 보느라, 영상을 소홀히 본다는 생각을 하질 못했었다. 하지만 그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시선의 분산에 따라 오히려 영상으로 전해주고자 하는 바를 놓치게 될 수도 있다는 문제의식이 확 와 닿더라. 오히려 약간 불친절할지라도 이처럼 영상을 중심으로, 그리고 중간 중간 나오는 내레이션을 부가적으로 『나의 살던 고향은』을 즐기도록 한 것은, 좋은 선택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 시네마달 대표와 도올 선생, 그리고 류종헌 감독의 모습. 관중과 정말 대화하듯 편안하게 말하고 계신 도올 선생.




유적지가 뭣이 중헌디 

    

또한 이 영화는 소제목을 간간히 넣어서 다음에 펼쳐질 내용을 상상하게 만든다. ‘삼배가 아니라 오배다’, ‘걸어가는데 그냥 눈물이 나온다’, ‘역사는 감이다’와 같은 소제목은 아무리 읽어도 도무지 무슨 내용인지 감조차 잡을 수가 없다. 하지만 막상 영화를 보고 나면 그런 소제목만큼 그 장면 하나하나를 제대로 전달해주는 제목도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니 영화가 다 끝난 다음엔 소제목만 다시 읽어볼 필요가 있다. 그러면 그 당시에 어떤 장면들을 봤는지 머릿속에서 저절로 떠올라서 내용을 곱씹기에 좋다.  



▲ 장군총엔 바람과 중력에 무너지지 말라고 각 면마다 거대한 세 개의 돌을 대어놨다. 이런 큰 돌을 운용할 수 있는 지혜가 있었다는 얘기다.



이 영화에서 가장 큰 울림을 준 소제목은 ‘상상력의 여행을 떠나라’라는 거였다. 지금까지 ‘역사=진실’이란 측면으로만 여기도록 배워왔다. 그러니 ‘역사=상상력’이라 말하는 즉시, 그건 역사를 한낱 소설로 격하시키는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도올 선생은 당당히 역사를 바라볼 때 상상력을 덧붙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도올 선생이 고구려사를 왜곡이라도 하겠단 말인가?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는 이 영화를 통해 고구려의 유적지를 거닐며 그 숨결을 느꼈고, 그 누구보다도 고구려 역사에 대해 다방면의 지식을 섭렵했기 때문이다. 



▲ 도올 선생의 발에 알알이 새겨진 고구려의 자취가 어떻게 왜곡하게 할 것인가? 그가 말한 상상력이란 그런 말이 아니다.



그런데도 왜 이와 같은 말을 하는 것일까? 그가 외치는 절절한 말을 들어보자.           



나이 칠십에 처음 발 디딘 고구려, 나는 첫날 확신을 했다. 고도로 여행을 한다고 하는 것은 눈으로 보는 여행이 아니라 상상력의 여행이라는 것을. 고분을 쳐다보면 다 똑같다. 하지만 우리는 그 고분을 볼 것이 아니라 주변의 산세를 돌아보시고 ‘이 주변의 성터는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거기 사는 사람들은 어떠한 생활문화를 가지고 있었고 이들이 추구했던 삶이 무엇이었던가?’하는 상상으로 여행을 하여야 한다.     


      

이 말을 듣자마자 절로 탄성이 나왔다. 올림픽공원은 학교로 출근하는 길에 있기에 늘 지나가야만 하며, 아차산은 학교 아이들과 수시로 등산했던 곳이다. 누군가는 몽촌토성을 보며 백제인들의 숨결을 느껴야 하고, 아차산을 거닐며 온달의 비분강개를 느껴야 한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나에겐 그저 너무나 일상적인 공간이어서 아무런 감흥도 주지 않는 곳일 뿐이다. 그러니 ‘저런 흙으로 만든 성을 보면서 도대체 뭘 느끼란 거야?’, ‘산에 설치된 보루를 보면서 뭔 고구려의 숨결이 느껴져?’라는 볼멘소리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건 아마도 윗글의 “고분을 쳐다보면 다 똑같다”라는 말과 같은 심정이라 할 수 있다. 



▲ 올림픽공원은 우리에겐 앞 마당 같은 곳이며, 아차산은 뒷 동산 같은 곳이다. 그러니 아무런 감흥조차 없다.



이런 비상식적인 말을 듣고 누군가는 “역사적인 상식이 없으니,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하는 건 너무도 당연하지”라고 비난할 거다. 하지만 아무리 그 장소와 관련된 역사를 공부한 후에 성벽을 본다할지라도, 그 차이가 확실히 느껴지는 것도 아니고 삼국시대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샘솟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하는 유적지가 뭣이 중헌디?”라는 패러디가 절로 나오는 것이다.                



▲ 아무런 상상력도 없다 보니, 발굴조사를 한다고 했을 때 지역 주민들이 막기도 했었다.




상상력으로 유적지를 여행하라

     

이에 대해 도올 선생은 아예 “고도로 여행을 한다고 하는 것은 눈으로 보는 여행이 아니라 상상력의 여행이라는 것”이라 말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동안은 역사유적을 보면서도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하고 역사적 혜안도 갖지 못하는 나를 보며 ‘참 역사에 무지하다’고 탓하기에 바빴다. 하지만 도올 선생의 절절한 외침을 듣고 나니,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역사란 과거에 고착되어 하나의 정형화된 내용으로 굳어 있어, 내가 무조건 감동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역사는 살아 있는 생물체처럼 사실과 허구 사이에서 끊임없이 변화되어 간다. 그러니 현재를 살아가는 나와 부딪혀 현재의 이야기로 되살려 나가야만 하는 것이다. 이때 어떤 상상력을 통해 과거를 볼 것인지, 그리고 유적지를 거닐며 생각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도올 선생은 2012년에 썼던 『사랑하지 말자』라는 책에서 “모든 역사는 현대사이다(All history is contemporary).”라는 말을 했었는데, 그런 관점으로 고구려의 유적지에 대한 소회를 적은 책이 『중국일기』이며, 영상으로 편집한 영화가 바로 『나의 살던 고향은』이라 할 수 있다.                 



▲ 중국일기와 나의 살던 고향을 같이 보면 그 감동은 훨씬 깊어진다.




길은 사람을 통해역사는 상상을 통해 태어난다

     

이와 비슷한 경험을 2011년에 떠난 사람여행에서 절실히 했었다. 도보여행을 하다 보면 모든 길은 다 똑같은 길 같고, 모든 산은 똑같은 산 같아 보인다. 그러니 처음에 여행을 시작할 땐 모든 게 새로워 보이고 남다른 감동을 느낄 수 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어딜 가든 똑같은 배경에 금세 지루해지고, 지겨워지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망각했기 때문에 생긴 문제일 뿐이었다. 여행은 단순히 경치를 구경하러 가는 게 아니다. 물론 소비지향의 여행은 단순히 경치를 구경하고 돌아오는 식으로 짜이긴 하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떠나고 싶은 여행은 그런 식의 여행일 리가 없다. 경치 속에 사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그 이야기를 통해 삶의 현장인 경치를 다시 볼 때 그 경치는 특별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당시 여행기엔 ‘길 위엔 사람이 살고 그 사람과의 만남으로 그 길은 특별해 진다.’라고 썼던 것이다. 



▲ 길을 무작정 걸어서는, 유적지만 무작정 찾아다녀서는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사람과 만나야 하고, 상상력으로 그 당시 사람들을 불러들어야 한다.



그처럼 도올 선생 “우리는 그 고분을 볼 것이 아니라 주변의 산세를 돌아보시고 ‘이 주변의 성터는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거기 사는 사람들은 어떠한 생활문화를 가지고 있었고 이들이 추구했던 삶이 무엇이었던가?’하는 상상으로 여행을 하여야 한다.”라는 말을 이해하면 된다. 고분이든, 유적이든 거기가 거기 같고, 저기가 저기 같다. 거기서 축성방법의 차이, 현실玄室 위치의 차이와 같은 전문적인 것들을 알아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 이상으로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들은 어떤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으로 살아왔는지 생각해보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만 고구려인들의 숨결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으며, 그들이 살았던 그곳에서 따스한 온기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도올 선생이 들려주는 고구려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씩 열기를 띠어가고 있다. 다음 후기에선 드디어 이 영화의 핵심 내용인 ‘고구려 패러다임’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 우리가 고구려를 제대로 볼 수 있으려면, 고구려 패러다임으로 바꿔야만 한다. 그건 당연히 결단일 수밖에 없다.





목차     


1. 도올과 건빵

배우면 배울수록, 알면 알수록 내 생각에 고립되다

깨져야만, 무너져야만, 앎의 무가치를 알아야만 생각이 확장된다

기독교가 나에게 반공부의 깨달음을 주다

한문이 재밌었어요

꼭 꼭 숨기보다 당당히 외치라     


2. 나의 살던 고향은을 보러 가다

『귀향』을 보러 인디스페이스에 갔으나, 인디스페이스는 없었다

인디스페이스를 다시 찾아 왔수다

『나의 살던 고향은』 첫 장면이 핵심이다     


3. ‘나의 살던 고향은을 상상력으로 보다

‘나의 살던 고향은’에 자막이 거의 없는 이유?

유적지가 뭣이 중헌디

상상력으로 유적지를 여행하라

길은 사람을 통해, 역사는 상상을 통해 태어난다

   

4. 고구려 패러다임으로 나아가라

고구려 패러다임을 지녀야 하는 이유

신라 패러다임에 의한 삼국의 역사는 잊어라

국정교과서는 현대판 신라 패러다임이다

  

5. 지도를 뒤집어본다는 것의 의미

당연함을 낯설게 보는 힘

지도를 뒤집어 보라

그러면 새로운 시각이 열린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 고구려 패러다임을 완성하다

고구려처럼 우리도 위기를 기회로 만들며 나아가야 한다

    

6. ‘나의 살던 고향은’ 도올과의 질의응답

우리는 역사를 잘못 알고 있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우리의 주체적인 역사는 우리가 직접 써야 한다

북한 얘기하기 전에 남한부터 바뀌어야 한다

도올 선생의 자부심과 계획

고대사를 제대로 읽을 수 있는 힘을 기르자

한국은 지금 아름답게 변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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