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건빵 Feb 12. 2016

자전거 여행 중 생명존중사상으로

낙동강-한강 자전거 여행 32 - 15.10.8(목)

 

▲ 충주 → 여주 / 64.69km


     

아무래도 처음 하는 일은 어설프게 마련이다. 현세가 리더이기에 호기롭게 스마트폰을 빼서 지도 검색을 하고 지시해준 경로를 따라 간다. 그런데 일반적인 자전거 도로와는 다르게 충북선 기찻길을 따라 달리기 시작한다. 아무리 처음 지도를 보는 것이라도 해도 시작부터 헤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자전거 도로를 찾지 못했고, 급기야 다른 사람의 농장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자 현세도 당황하는 표정이 역력했고 팀원들도 어이없어 하는 표정이 가득했다. 

그럼에도 이미 리더를 해보며 누군가를 이끈다는 어려움을 경험했던 지라, 팀원 누구 하나 섣불리 화를 내거나 불쾌한 표정을 짓진 않았다. 이에 현세도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여 지도를 보며 잘못 들어왔다는 것을 알았고, 바로 19번 국도를 따라 목행교가 있는 곳으로 갔다. 거기에 가니 비로소 남한강 자전거 길이 보이더라.                



▲ 충북선을 따라 한참을 달렸다. 하지만 이 길이 아닌 게벼~




아는 길을 가며안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다 

    

낙동강에서 시작했는데, 드디어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남한강에 들어섰다. 더욱이 오늘 달리는 길은 작년 도보여행 때 걸어서 왔던 길이기도 하니, 꼭 우리의 홈그라운드에 들어선 것 마냥 마음이 놓인다. 

물론 한 번 걸었다고 해서 모든 것을 다 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아는 것은 모르는 것보다 마음의 짐을 한결 가볍게 만들긴 한다. ‘아는 게 힘’이라는 사실은 분명히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말을 좀 더 깊이 생각해보면 아는 것에도 여러 층위가 있다. ‘아는 게 힘’이란 말이 있는 반면, ‘아는 게 병’이란 말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어떻게 아는 것을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게 힘이 되기도 하고, 덫이 되기도 한다. 즉 앎에도 좋은 앎과 나쁜 앎이 있다는 얘기다. 

좋은 앎이란 알기 때문에 수많은 생각으로 가지를 치며 이해의 폭이 넓어져 작은 일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상황에 함몰되지 않으며 가능성을 만들어갈 수 있는 앎이다. 『대학大學』이란 책에서 나오는 ‘활연관통豁然貫通’의 경지나 『장자莊子』란 책에서 나오는 ‘대붕大鵬’의 이미지, 동섭쌤의 ‘자신을 뛰어넘는 시좌’와 같은 말들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시야를 확보하고 자신의 앎의 한계에 머무르지 않는 폭넓은 관점을 지니게 되기 때문이다. 



▲ 좋은 앎과 나쁜 앎이 있다. 알았기 때문에 소유욕이 더 강해졌다면 분명하지만 나쁜 앎이라 할 수 있다.




나쁜 앎이란 알면 알수록 그 알량한 안다는 의식에 자신을 가두며, 선입견만을 잔뜩 심어주어 필연의 세계만을 갈구하게 하는 앎이다. 그걸 우린 어려서부터 주구장창 학교에서 배워왔으며, 그걸 통해 사회에서 능력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으며 살아왔다. 그러나 그 지식체계에 갇히면 갇힐수록 운신의 폭은 좁아지고 관계는 협소해진다. 『장자』에 나오는 ‘매미와 비둘기’의 이미지, 우치다쌤의 ‘여기의 가치관에 매몰된 아이’를 만들려는 사람들의 이미지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이 하는 일이 최고의 일인 양 착각하고 자신이 아는 것이 전부인 양 여기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여기의 가치관에 매몰’된 생각이고 ‘매미와 비둘기’의 협소한 시야에 불과할 뿐 대붕의 시선에서 보면 하잘 것 없는 것이니 말이다. 



▲ 대붕의 앎을 추구하다보면, 메추라기 같은 앎에 늘 비난을 당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알고자 하는 마음은 분명히 좋은 마음이라 할 수 있지만 거기에만 머무르면 알기 때문에 오히려 한계에 갇히는 꼴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알기 때문에 이해의 폭이 넓어지도록, 관계의 깊이가 깊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아는 길을 가다 보니, 안다는 것에 대한 장광설을 펼쳤다. 말을 삥 돌려 했지만, 도보여행의 경험은 자전거 여행을 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되었고 그 때문에 지금처럼 우린 한 걸음씩 더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야말로 ‘좋은 앎’의 한 예라 할 수 있지 않을까.                



▲ 익숙한 길을 간다는 생각이, 여러 생각으로 가지를 쳤다.




생명존중사상 1 - 사마귀 한 마리에 멈춰선 네 명의 인간들     


조금만 달리면 익숙한 길이 나올 거라 기대하며 달리는데 꽤 달렸음에도 낯선 길만 계속 나오고 있었다. 그제야 생각해보니, 작년 도보여행 땐 충주에 들어선 이후엔 남한강을 따라 걸어간 것이 아니라, 찜질방에 가기 위해 산척면으로 빠졌으며 거기서 충주댐까지는 531번 지방도를 타고 걸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당연히 지금 달리는 남한강 길이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여긴 강변을 따라 자전거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평지를 달리는 기분으로 편하게 달리면 된다. 

2시간 30분 동안 달렸는데, 아이들이 갑자기 멈춰 섰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달리다가 사마귀를 밟을 뻔해서 멈춘 것이다.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생명존중 사상의 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보통 이런 경우 밟아도 아무런 죄책감이 없던지, 가까스로 밟지 않았더라도 그 사실에 안도하며 그냥 지나쳐 갈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사마귀를 여기에 놔두면 우린 밟지 않았지만, 곧 밟힐 거다’라는 생각으로 멈췄다. 사마귀를 생각하는 마음이, 세계의 평화를 간절히 마음처럼 간절하고도 깊기만 하다.               



▲ 사마귀 자전거를 막아섰고, 아이들은 그런 사마귀를 가엾게 여기다.




생명존중사상 2 - 생명 구하기의 버거움 

    

하지만 문제는 생명존중사상은 있되, 생명 자체를 좋아하진 않는다는 거였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나우시카처럼, 『원령공주』의 아시타카처럼 생명존중사상을 가짐과 동시에 생명 자체를 귀히 여길 수 있다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단재 영화팀 멤버들은 도시에서 나고 자란 ‘차도남’에 가까운 아이들이라 생명 보기를 괴수 보듯 했으니 말이다. 그만큼 도시문명 자체가 자연을 파괴하며 성립된 것은 물론, 수많은 생명체를 몰아내며 이룩되었다는 사실을 볼 수 있다. 그러니 이 아이들이 미지의 생명체와 마주칠 기회는 극히 적었고, 만지며 논다는 것 자체가 ‘공포영화 보는 것 같은 무서움’을 유발했던 것이다. 이런 상황임에도 생명을 구하겠다고 아이들이 멈춰 섰고, 앞으로 한 명씩 나와 자전거 길 옆으로 사마귀를 보낼 생각을 했다는 것만으로 대견하다고나 할까. 



▲ 잘 달리던 아이들이 갑자기 멈춰 섰다. 그들의 생명존중사상이 그렇게 한 것이다.



첫 번째 도전자는 김민석이다. 아무래도 맨손으로 사마귀를 잡기엔 찝찝한 감이 있나 보다. 『연가시』란 영화를 통해 한껏 사마귀에 대한 공포감이 커져 있는 상태였기에 그랬을 거다. 그러니 막대기를 하나 집어 들고 달려든다. 하지만 보기 좋게 실패했다. 아니, ‘사마귀 뒤집기’라는 종목이었다면 성공이었지만, 지금 하는 건 ‘사마귀 풀숲으로 돌려보내기’이니 실패라는 것이다. 



▲ 도와준다는 명목으로 뒤집기 신공을 발휘하다.



두 번째 도전자는 양준영이다. 보무당당하게 거리낌 없이 앞으로 나간다. 얼굴엔 살짝 긴장하는 빛이 어리긴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만한 그릇은 아니다. 당당히 나아가 일초의 거리낌도 없이 목을 낚아챈다. 아주 자연스럽게 연속적인 동작을 선보여, 하마터면 ‘십 점 만점 중 십 점’을 외칠 뻔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이유는 손에 잡힌 사마귀는 그냥 도로에 있던 사마귀보다 더욱 현실적인 두려움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 녀석이 갑자기 폭주하여 두 발로 자신에게 생채기를 낼 수도 있다는 생각에 겁에 잔뜩 질린 채 자전거 도로 바깥쪽에 던져줬지만, 헤어짐이 마냥 싫었던 사마귀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날개를 펴고 아까 그 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 님을 보내려 했지만, 미처 보내지 못한 준영이.



세 번째 도전자로는 다시 김민석이 나섰다. 아까 실패한 것이 못내 맘에 걸렸나 보다. 그래 맘이 있는 사람이라면 실패는 묻어두고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한 거지. 김연아는 피겨스케이팅을 할 때 넘어지는 실수를 할 때도 있지만, 곧바로 털고 있어서 마음을 가다듬고 연기를 펼치지 않던가. 니체가 말한 ‘망각의 능력’이야말로 그런 모습일 텐데, 민석이도 ‘망각의 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은 원이로되, 육체는 아직도 사마귀를 거부하고 있었다는 게 문제다. 목덜미를 잡기는커녕 손으로 깔짝깔짝 뒷다리만 건들다가 허무하게 실패했기 때문이다.                



▲ 맘은 목을 잡고 싶은데, 왜 이리 몸은 그럴 수가 없을까?




생명존중사상 3 - 아이언맨옵티머스 프라임은 우리 곁에 있다 


정령 우리에겐 위험에 처해 있는 생명체를 구하고 싶은 마음은 있되 그 생명체를 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초인超人’은 없단 말인가? 생각 같아서는 “도와줘요, 배트맨!”이라고 외치고픈 심정이다. 배트맨이라면 우리처럼 이렇게 사마귀에게 벌벌 떨진 않을 것이니 말이다. 

그렇게 거의 자포자기 상태에 빠져 있을 때, 오늘의 리더 현세가 앞으로 나섰다. 그 모습을 묘사하자면 꼭 지구를 구하러 떠나는 아이언맨 같은 느낌이었고, 옵티머스 프라임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 모습만 보고 속단하긴 이르다. 거의 성공할 뻔 했지만, 준영이가 실패한 것을 두 눈으로 똑바로 봤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풀어선 안 된다. 현세는 약간의 미동도 없이 사마귀를 향해 거침없이 나간다. 그리고 바로 손을 내밀어 목을 낚아챘다. 여기까지는 준영이와 매우 흡사했다. 이제 얼마나 손에 들린 사마귀의 공포를 이겨내느냐가 성공과 실패를 가른다고 할 수 있다. 마음속에 겁이 나지만, 현세는 굳게 마음을 먹었는지 신중하고 침착하게, 그러면서 순식간에 사마귀를 풀숲에 던져버렸다. 사마귀는 다시 날아왔느냐고? No! No! 그 녀석은 떠날 때를 알던 녀석이었다. 아마도 현세가 마지막 구세주임을 알았기 때문인지, 다행히도 그 이후론 볼 수가 없었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 당당하게 목을 잡고 순식간에 날려버렸다.




남한강 도보여행 때의 편지 미션 장소에서 추억을 곱씹다

     

사마귀 돌려 보기 작전을 수행하느라 꽤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제 다시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거기서부터 조금 달리니, 그제야 익숙한 길이 보이기 시작한다. ‘명품비내길’이란 안내판이 일 년 전과 똑같이 설치되어 있었고, 그 땐 잠시 쉬며 걸었던 길도 그대로 있었다. 거기가 왜 그렇게 익숙하냐면 그곳에서 도보여행 때 대형 이벤트가 있었기 때문이다. 



▲ 2014년 도보여행 때 찍은 영상 중의 캡쳐 장면.
▲ 올핸 걸었던 그곳을 자전거를 타고 간다.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찍은 사진.



도보여행 계획을 짤 때, 친구가 미션을 했으면 좋겠다는 소스를 줬고 부모님의 선물이 묻어 있어 찾는 것도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줬다. 그걸로 한참 궁리하다가 ‘부모님의 편지를 어딘가에 묻게 하고 그걸 찾으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부모님들에게 그런 계획이 있다고 알리며 하실 의향이 있냐고 물었는데, 모든 부모님들은 흔쾌히 승낙했다. 그래서 그곳에 편지를 묻게 했고, 그곳에서 보물찾기처럼 편지를 찾게 한 후에 답장을 쓰게 한 것이다. 

도보여행을 할 때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뜬금없이 “이곳에 부모님들이 준비한 선물이 묻혀 있으니, 찾으세요”라고 하니, 아이들은 정신없이 찾기 시작했다. 5가지의 힌트 중 4번째 힌트를 줬을 때 승빈이가 찾았는데, 승빈이는 선물 근처에 있던 민석이를 내동댕이칠 정도로 ‘보물찾기’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아이들은 상품권이라 지레짐작했지만, 막상 뜯어보니 편지인 줄 알고 엄청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 편지를 찾고 답장을 썼던 곳에서 다시 오니 감회가 새롭다. 하지만 그런 감정을 느낀 사람은 현세 밖에 없었다.



그곳을 일 년만에 다시 찾아온 것이다. 도보여행과 자전거 여행을 함께 한 아이들은 민석이, 재익이, 현세이기에 이들에겐 추억이 있는 장소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재익이는 그러던지 말던지 시큰둥했고, 민석이는 잠시 ‘아 그 장소’라는 반응을 보이는 선에서 끝난데 반해, 오히려 현세가 추억에 잠기면서 “여기가 바로 그 때 그 장소네요”라며 선물이 묻어 있던 장소까지 갔다 오더라. 그리고 ‘남한강 도보여행’ 영상을 통해서만 봤던 준영이는 그 장면을 회상하며 신기한 듯 쳐다봤다. 

이제부턴 진짜 도보여행 때 걸어왔던 길을 거슬러 올라가기만 하면 된다. 지금 시간은 겨우 12시 20분밖에 되지 않았고 오늘은 여주까지만 가면 되니 넉넉잡고 3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다.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이렇게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어보기도 처음이다. 그래서 너나 할 것 없이 그곳에서 좀 쉬며 여유를 부렸다. 하지만 일 분 일초도 모르는 게 사람이라지 않는가. 모든 일은 닥쳐봐야 알게 되는 게 많다. 이 때까지만 해도 불과 몇 분 뒤에 닥칠 일을 알지 못했다. 



▲ 현세만 이 자리에 대한 추억에 잠기며 찾아갔고, 지훈인 무관심으로 민석이는 작은 관심으로 표현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