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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Feb 12. 2016

리더가 되어보면 자신이 보인다

낙동강-한강 자전거 여행 31 - 15.10.8(목)

▲ 충주 → 여주 / 64.69km



이제 5일째 여행을 시작한다. 리더라는 과중한 임무를 아이들에게 부여함으로 어떤 부분이 나아졌는지,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제대로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민석이를 시작으로, 재익이를 거쳐 어젠 준영이가 리더역할을 맡아 아이들을 데리고 이화령과 소조령을 넘으며 충주까지 무사히 왔다. 그 바통을 이어받아 오늘은 현세가 리더를 맡게 된다.                




양준영의 리더십, 이끄는 능력은 충분

     

준영이는 단재학교에 온지 2달 밖에 되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은 1년 이상을 함께 하여 이미 친한 상태이니, 새로 온 사람은 아무래도 끼기엔 힘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특유의 붙임성과 친구들이 말하면 잘 웃는 성격으로 금방 친해졌으며 자전거 여행 예행연습을 할 때도 굳은 일이 생기면 앞에 나서서 도와주었기에 금방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번 자전거 여행을 떠나면서도 걱정은 전혀 되지 않았고, 오히려 기대가 됐다. 과연 리더역할이란 중책을 맡은 준영이는 어땠을까?

이화령을 넘기 전에 현세 자전거의 체인이 엉키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제 상주박물관 미션을 마치고 문경으로 갈 때에도 같은 사고가 발생했으니, 리더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그제의 리더는 재익이였는데 모른 채하고 그냥 가버렸다. 그렇다면 이날 리더인 준영이는 어떻게 했을까? 앞서 달리던 현세가 멈추자 준영이는 함께 멈춰 어떤 상황인지 살피고 고치기 시작했다.

그 뿐 아니라, 준영이는 전자기기를 사용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거기다가 지도를 보고 길을 잘 찾는다. 그러니 길을 헤매지도 않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앞에 서서 전체를 이끌 수 있었다. 준영이의 경우 리더의 자질 중 ‘이끄는 능력’은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 같은 상황이 발생했지만, 재익이와 준영이는 택한 방식이 달랐다.




양준영의 리더십, 전체를 아우르는 능력은 미흡  

   

리더십엔 두 가지가 동시에 필요하다. ‘이끄는 능력’과 ‘전체를 아우르는 능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끄는 것은 능력이 뛰어난 사람에겐 이미 갖춰진 능력이다. 자신의 능력이 높으니, 그걸 기반으로 능력을 행사하고 남들보다 앞서 나아가며 이끌 수 있으니 말이다.



▲ 준영이의 이끄는 능력에 대해서는 모두 한 마음으로 좋은 평가를 했다.



이에 반해 전체를 아우르는 능력은 전체를 배려하고 마음을 다독일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당연히 자신을 되돌아보고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심을 키워야 한다. 아직까지 너나 할 것 없이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아이들의 평가에서도 ‘이끄는 능력’에 대해서는 모두 이구동성으로 칭찬을 아끼지 않았지만, ‘아우르는 능력’에 대해서는 뒤처진 사람까지 모두 신경 쓰지 않았다거나 먼저 앞서 나가기만 했다며 비판적인 평가를 했던 것이다.                



▲ 하지만 아우르며 가는 것엔 조금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 그래도 이제 2개월동안 만난 것 치곤 최대한 노력한 것이긴 하다.




모든 일은 역지사지를 통해 알게 된다 

    

그래도 준영이는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만 매몰되어 그것만을 하기에 급급한 아이는 아니었다. 자신이 직접 리더를 해보니 다른 아이들이 리더역할을 할 때 왜 그렇게 힘들어했는지 이해하게 됐다. 또한 자신이 앞서서 이끄느라 뒤에 있는 현세를 챙기지 못하자 뒤에서 챙겨주는 민석이와 재익이에 대해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다.

역지사지란 사고 실험을 통해 남의 입장이 되어 본다는 표현이 아니다. 환경은 그대로인데 생각으로만 ‘저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본다’며 그 사람의 입장인 것처럼 얘기한다면, 그건 그 사람의 입장을 빙자한 ‘자신의 이야기’일 뿐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야기에 힘을 싣기 위해 흔히 구사하는 레토릭이 대중의 이름을 얹는 방식이다. 혼자만의 생각이라면 공정성을 얻지 못하기에, 대중이란 레토릭을 구사하여 자신의 생각이 전체의 생각인 양 하는 것이다. 우린 흔히 역지사지를 그런 정도로 쓰고 있다.

하지만 역지사지의 본질은 환경적으로 같은 입장에 처한 후에 그 때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같은 입장에서 느껴지는 감정에 솔직할 수 있으며 그 때 하는 말이나 생각은 각자의 입장을 존중할 수 있다. 준영이는 이번에 리더 역할을 하며 역지사지를 제대로 해보며, 아이들에 대해 좀 더 이해하게 되었다.    


▲ 역시 같은 입장이 되어봐야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리더 오현세, 자신이 직접 일을 하며 현실감각을 되찾다  

   

이제 리더 미션도 마지막 대상만을 남겨두고 있다. 영화팀의 장시간 막내인 오현세가 오늘 리더 미션을 수행한다.

현세는 단재학교에 들어온 지 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영화팀에선 막내로 남아 있다. 물론 중간에 상현이가 들어오면서 막내 딱지를 떼긴 했지만, 그렇다고 현세가 형 노릇을 한 것은 아니었다. 현세 스스로 그런 생각을 하지도 않았고, 바로 위로 민석이와 재익이 같은 든든한 형들이 있어서 그 자리에 머물러 있어도 되었으니 말이다. 더욱이 이번 여행엔 상현이가 빠지면서 어쩔 수 없이 다시 막내라는 타이틀을 달게 되었다.

현세는 어찌 보면 이제 막 세상에 첫 발을 내디딘 어린이처럼 대부분의 일들을 처음 하는 것 같은 어리바리함이 있었다. 지리산 종주 땐 신발 끈을 못 묶었으며, 평소엔 컵라면을 터서 물을 부어야 하는데 그걸 못했다. 지금까진 어머니와 할머니가 모두 해줬기 때문에 자신이 직접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단재학교에서 2년을 생활하며 여러 여행을 함께 하며 여러 가지를 경험하다보니 조금씩 할 수 있게 되었다. 당연하지만 막상 현실에 부딪혀서 경험하다보면, 그런 일들은 아무 일도 아닌 게 되어 버린다. 즉, 어리바리하냐, 능숙하냐의 차이는 얼마나 상황에 부딪히며 그 일을 해나갈 마음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 현세가 처음 와서 뭘 못할 때의 모습을 극화하여 영화로 만들었다. 이런 시기를 거쳐 지금에 왔으니, 그대도 챔피언.




리더 오현세, 성장을 택할 것인가? 머무름을 택할 것인가?


2년 사이에 현세는 이상에서 현실로 내려왔고 그에 따라 많은 부분이 성장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안타까운 점은 자기보다 동생들이 단재학교에 들어왔지만, 스스로 ‘개그 캐릭터’라고 생각하며 늘 장난만 치려 한다거나, 무언가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에서 내빼려 한다는 것이다. 진지한 상황을 극도로 싫어하는 마음이 자꾸 장난을 치려는 마음으로, 책임을 지기 싫다는 마음이 자꾸 남을 의존하려는 태도로 드러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 현세가 오늘은 형들을 이끌며 자전거 여행을 해야 한다. 현세가 극복해야 할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지도앱 사용법이 서툴고 보는 법을 모르니, 그것에 익숙해져야 한다. 예전처럼 종이지도를 들고 인솔해야 한다면 엄청나게 부담이 될 테지만, 그나마 지금은 전자지도이기에 위치를 찾고 경로를 찾아가기 편하다. 그러니 사용법에만 익숙해지면 금방 적응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때까진 헤매게 될 테지만, 그 때 듣게 되는 형들의 핀잔을 꼿꼿이 이겨내야 한다.

다른 하나는 자신이 리더이기에 헤게모니를 장악할 수 있어야 한다. 예전처럼 개그캐릭터로 머물려 하거나, 넋 나간 표정으로 알아서 해주겠지 하는 마음이 있으면 이도 저도 아닌 상황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형들이 자신을 이끌어 줄 것이란 생각은 버리고 자신이 형들을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해나가야 한다. 주도권을 가져오기 위해서 형들과 대립각을 세우란 얘기는 아니다.

그런데 어제부터 현세는 줄곧 “나 내일 리더인데, 지도 대신 봐줄 사람 스마트폰을 쓸 수 있는 혜택을 준다”고 말해왔다. 그건 아마도 어떤 부담에 맞서거나 맞닥뜨려 넘어서기엔 두렵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어제 저녁에 인터뷰를 할 때 “틀려도 좋고, 길을 헤매서 한 소릴 듣는다 해도 직접 지도를 찾아보며 가는 경험은 좋은 거야. 그래서 재익이도 이번에 리더를 하며 친구들을 처음으로 이끌어봤고 지도 보는 연습도 해본 거잖아”라고 말해줬다. 이 말을 현세는 수긍하긴 했지만, 오늘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현세가 한 걸음 더 성정할 수도, 여전히 막내의 어리바리함에 머물 수도 있을 것이다.



▲ 길을 찾기 위한 리더 현세의 고군분투가 시작되었다. 처음 보는 책임감 가득한 모습이다.



리더인 현세는 지도앱을 켜고 사용법을 민석이에게 물어본다. 기특한 모습이고, 무언가 제대로 하고 싶은 마음이 보여 기분 좋은 광경이다. 하나하나 익혀가며, 이끌겠다는 마음을 유지하며 남한강을 따라 거슬러 가면 된다. 더욱이 작년 도보여행 때 걸었던 길을 그대로 가는 것이니, 현세 입장에선 그나마 리더역할을 하기에 편한 날이기도 하다.


▲ 리더 현세가 형들을 이끌며 간다.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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