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한강 자전거 여행 33 - 15.10.8(목)
도보여행 때 편지미션을 했던 곳에서 잠시 쉬었다. 시간이 넉넉하니 서둘러야 할 이유도, 마음을 조급하게 먹어야 할 이유도 없어서 좋다. 자전거 여행 중 처음으로 완벽한 여유로움을 누려본다.
그 때 민석이가 짐받이가 많이 풀어졌다며, 수리공구를 달라고 하더라. 그래서 수리공구를 줬더니 아무리 조여도 조여지지 않는다며, 나를 찾는다. 가서 보니, 짐받이가 이상할 정도로 밑으로 많이 쏠려 있는 상태였다. 아래로 쏠린 상태에서 계속 달렸기 때문인지, 볼트가 조여지는 구멍의 홈들이 패여서 더 이상 조여지지 않더라. 조금 헐렁해졌을 때 바로 조였으면 문제가 없었을 텐데, 그러지 않아 이젠 수리가 불가능했다. 그나마 윗부분 홈만 패였을 뿐, 아랫부분은 괜찮았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라고나 할까.
다른 아이들의 짐받이는 멀쩡한데, 왜 민석이 것만 그렇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민석이가 짐을 묶을 때 자세히 살펴보니, 그럴만한 이유가 있더라. 짐받이의 적재하중은 10kg이다. 짐의 무게가 대략 4kg 정도이니 여기에 사람 무게가 실리면 당연히 버틸 수가 없다. 그런데 민석이는 짐을 묶을 때마다 꽉 묶기 위해 자기 몸무게까지 실어서 누르다 보니 내려앉게 되었던 것이다.
그 때 “(매우 진지한 표정으로, 힘을 잔뜩 준 목소리로) 왜 짐받이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말하지 않았던 거야?”라고 물었다. 내가 말하고 나서도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말임을 알고 화들짝 놀랐다. 이 말이야말로 의사의 단골 레퍼토리가 아니던가. 그렇다면 지금 나는 자전거라는 사물을 고치는 의사의 관점으로 물어본 거라 할 수 있다. 그랬더니 민석이는 별로 이상한 걸 느끼지 못했는데, 지금에서야 겨우 알게 되었다고 하더라. 지금 고칠 수 있는 방법은 없었기에, 나중에 짐받이가 완전히 내려앉아 쓸 수 없는 상황이 되면 버리자는 말밖에 할 게 없었다.
왔던 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기분은 남다르다. 하지만 작년에는 걸어서 지나갔던 길을 올핸 자전거를 타고 가는 것이니, 느낌은 완전히 달랐다. 그렇게까지 경사가 심한 줄 몰랐는데 능암온천랜드로 올라가는 길은 꽤 경사가 급했기 때문이다. 그곳을 통과하면 드디어 일반도로가 나온다. 여기는 일반도로 옆에 자전거 길이 만들어져 있어, 자전거 전용도로보다는 차를 신경 쓰면서 달려야 한다.
시간은 12시 30분이 넘었기에, 점심을 어찌 할지 정해야 했다. 그래서 리더인 현세에게 “점심 어떻게 할 거야? 가까이엔 작년 도보여행 때 점심을 먹었던 비내쉼터가 있고, 조금 멀리엔 도보여행 때 아침을 먹었던 부론면이 있으니, 어떻게 할지 선택해”라고 말했다. 현세는 형들과 함께 몇 마디 주고받지도 않았는데, 대뜸 “작년에 점심 먹은 곳 괜찮았으니 그리로 갑시다”라고 하더라. 배가 고프긴 정말 고팠나 보다. 이렇게 바로 결정을 하는 걸 보면 말이다. 아무래도 아침을 간단하게 먹었기 때문에, 그럴 만도 했다.
비내쉼터는 작년과 똑같았다. 바깥에 설치된 흔들의자도 그대로였고 내부도 전혀 바뀌지 않았다. 도보여행 땐 군인들과 자전거 여행족들까지 많은 사람들이 점심을 먹고 있어서 깜짝 놀랐었고 군인이 군용식량으로 나온 파운드 케잌을 놓고 가는 바람에 득템까지 해서 행복했었다. 그래서 ‘괜찮은 식당’이라는 이미지로 남았나보다.
그런 연유로 이번에도 오게 된 것인데, 작년과 달리 사람도 별로 없고, 분위기도 썰렁했다. 아이들은 ‘참치김치밥’과 ‘불고기덮밥’을 시켰고 난 시원한 걸 먹고 싶어 ‘콩국수’를 시켰다. 그랬더니 지금은 콩국수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불고기덮밥으로 바꿨다. 아주머니 혼자서 운영하는 식당이기에 혼자서 뚝딱뚝딱 만들어주신다. 그런데 전체적으로 되게 불만족스러웠다. 도보여행 땐 그래도 김치라도 밑반찬으로 줬는데 이번엔 아무 것도 주지 않았으며, 양도 매우 적고 맛도 밋밋했으니 말이다. 실컷 밥을 먹었지만 배만 고파진 상황이었다. 그래서 아이들도 그곳을 나오면서 한목소리로 “여기 완전 최악이에요”라고 말하더라. 이렇게 작년의 좋은 이미지는, 이번의 경험을 통해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때론 그냥 좋은 추억으로 남겨 놓아야 하는 것도 있다는 걸 이 경험을 통해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부론면으로 향하는 길은 너무도 익숙한 길이다. 여긴 남한강의 절경을 감상하면서 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도보여행 땐 아침 안개까지 껴서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했으며, 우린 꿈 속 세계를 탐험하는 듯 걸었기에 기억에 많이 남았다.
작년엔 도로공사가 한참 진행되고 있어서 지나가지 못하는 곳이 많았는데, 그새 공사가 완료되었더라. 그래서 우리는 포장까지 완벽하게 된 도로를 거침없이 달렸다. 하지만 끝부분은 여전히 공사 중이었다. 아스팔트로 포장되지 않은 건 당연하고 심지어 콘크리트를 잘게 쪼갠 돌까지 쌓여 있었다.
준영이와 나는 바퀴가 두꺼운 MTB 자전거라 문제가 되지 않지만, 나머지 아이들은 바퀴가 얇은 로드 자전거라 문제였다. 민석이는 자전거를 끔찍이도 아끼기 때문에 당연히 자전거에서 내려서 끌고 가는데, 재익이와 현세는 ‘설마 펑크가 나겠어?’라는 심정으로 그냥 타고 가더라. 자전거 여행 예행연습 때 설빙 앞에서 재익이가 넘어지며 핸들 부분이 휘었는데, 그 때 이후로 자전거를 아끼는 마음은 급속도로 사라져 버린 듯했다. 아마도 저렇게 비포장길에서 막 타고 가는 데엔 그런 여파들이 있었을 것이다.
재익이와 마찬기지로 민석이 자전거도 핸들이 휘는 사건이 있었다. 첫 날 달릴 때 현세에게 묘기를 보여준다며 장난을 치다가 넘어진 것이다. 속력이 빠르지 않았기에 민석이는 다치지 않았지만,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자전거 핸들이 휘어버렸다. 로드 자전거는 브레이크에 변속기까지 달려 있어서 넘어지는 것에 취약하다. 하지만 민석이는 그렇게 자전거가 고장 났다고 해서 함부로 다루진 않았다. 여전히 애지중지하며 최대한 상처를 입히지 않도록 노력하기 때문이다. 이 날 비포장도로에서 내려서 끌고 간 데엔 그런 마음씀씀이가 있다.
얼마나 달렸을까? 공사 구간은 그렇게 길지 않았기에 바로 자전거 전용도로에 접어들었다. 그런데 그 때 재익이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한테 오더니 “앞바퀴가 펑크 났어요”라고 말하더라.
펑크는 자전거 여행을 하는 중에 당연히 나는 것이기에 심각한 문제는 아니지만, 그 순간만큼은 어느 때보다도 심각한 이야기로 들렸다. 왜냐 하면 월요일 저녁에 연쇄적으로 펑크가 나서 늦은 저녁까지 때우느라 본드를 썼었는데, 그 때 뚜껑을 잘 닫지 않아 본드가 흘러서 쓸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화령에서 다운힐을 하고나서 그 사실을 알았는데 그 땐 ‘충주에 가면 사야지’라고 생각했지만 충주에 도착했을 땐 까마득히 잊어버려 사질 못했다. 그런 이유로 펑크를 때울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재익이의 말에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손가락을 빨며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했으니 말이다. 거기서 조금만 가면 부론면이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그곳은 면소재지이니만큼 자전거포가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곳까지만 어떻게든 가면 해결될 거라 생각하며, 완벽히 때우진 못하더라도 임시대처만 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 때 2012년에 단재학교 아이들과 떠난 제주도 자전거 여행이 생각나더라. 첫 날에 승환이 자전거에 펑크가 났는데 그 때도 지금처럼 본드가 없어서 때울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반창고도 붙여보고 붕대도 감아보면서 어떻게든 숙소에 무사히 도착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때와 상황이 비슷했기에 별로 고민하지 않고 튜브를 꺼내 펑크패치를 얹고 반창고를 붙이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바람이 빠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하면 조금이나마 효과가 있을 거라 기대했다. 아이들도 당연히 황당하다는 표정이었지만, 난 어느 정도는 괜찮을 거라 생각하고 그렇게 한 것이다. 그런데 다시 조립하여 바람을 넣자마자 순식간에 바람이 빠지는 허탈한 상황이 펼쳐졌다. “고뤠에에에? 안 되겠다. 사람 불러야겠다.”고 외치고 싶지만, 아이들은 나만 바라보고 있는 상황이니 참 난감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