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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Feb 13. 2016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말의 속뜻

낙동강-한강 자전거 여행 34 - 15.10.8(목)

 

▲ 충주 → 여주 / 64.69km


         

재익이 자전거에 펑크가 났다는 얘기를 듣고 깊게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바로 떠오른 대로 반창고를 붙이며 때우려 했던 것이다. 그도 그럴 듯이 시간적으로 여유도 있었고 부론면에만 가면 금방 해결될 거라 생각했기에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 펑크를 본드가 아닌 반창고로 때우고 있다. 이건 개그인가요? 현실인가요?




재익 자전거 펑크 3 - 동병상련이란 따뜻한 마음

     

근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건 바보 같은 대처법이었다. 반창고를 붙인다는 게 바보 같다는 게 아니라, 자전거 도로 한 가운데서 본드가 없다고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는 게 바보 같다는 얘기다. 한강자전거길처럼 많은 사람들이 라이딩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여기도 틈틈이 라이딩을 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그들이라면 남한강을 따라 낙동강까지 갈 확률이 높으니, 당연히 펑크패치를 가지고 다닐 것이다. 그러니 그들에게 본드를 빌리면 금방 해결된다. 

그런 생각이 들자,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생각보다 쉽게 펑크를 때우고 우리가 갈 길을 갈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리더인 현세에게 라이딩 하시는 분들에게 말해서, 좀 빌려오라고 말했다. 현세 입장에선 ‘참 재수 없는 날 리더를 맡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현세에겐 나름 좋은 경험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금껏 누군가에게 부탁을 해본 경험도, 아쉬운 적도 없이 커왔다. 그런데 살다 보면 누구나 도움을 받아야 할 경우도,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할 일도 있게 마련이다. 현세는 이번 경험을 통해 그런 것들을 배울 것이기에 좋은 기회라 생각했던 것이다. 



▲ 본드를 빌리러 가는 리더 현세.



조금 기다리고 있으니 라이딩하는 사람이 지나갔고 현세가 부리나케 달려가 빌려 왔다. 튜브엔 반창고가 덕지덕지 붙여있기에 그것을 떼고 본드를 바른 후 패치를 붙였다. ‘이젠 괜찮겠지’하는 마음으로 조립한 후 바람을 넣었는데, 얼마간 괜찮다가 바람이 조금씩 빠지기 시작하더라. 그래서 다시 튜브를 꺼내보니, 이번에는 위쪽에서 바람이 세고 있었다. 

그 때 시간은 2시 30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가야 할 거리는 25.47Km여서 펑크를 때우기만 하면 5시 이전에는 충분히 도착할 수 있는 시간이었기에 여유가 있었다.                 



▲ 나름 피크닉(?)을 즐기고 있다.




재익 자전거 펑크 4 - 펑크에 발목이 잡히다     


아이들도 그 상황을 알기 때문에 얼굴엔 웃음꽃이 가득했다. 볕도 따뜻해서 뭔가 쉬는 듯한 분위기도 나고, 그렇다고 상황이 절망적인 것도 아니니 마음이 가벼웠던 것이다. 더욱이 월요일 저녁엔 연쇄적으로 자전거들이 펑크가 나며 늦은 밤까지 벌벌 떨며 달렸던 경험이 있어 그 때에 비하면 ‘행복해요’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모든 일은 상대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극도의 어려운 상황을 극복한 사람에겐 어느 정도의 어려움 따윈 ‘일상다반사’ 정도로 여겨질 것이며, 늘 평온히 살아온 사람에겐 ‘엄청난 고난’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현세는 다시 라이딩하는 분에게 가서 펑크 패치를 빌려왔는데, 이번엔 패치 자체에 본드가 발라져 있는 타입이었다. 그래서 바로 펑크가 난 곳에 붙였고 바람을 넣어보니, 빠지는 것 같지 않더라. 드디어 고쳐졌다는 안도감으로 조립을 했다. 이 때는 아이들도 모두 기대하는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고 나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서서히 바람을 넣었다. 



▲ 때웠기에 바람을 넣어본다. 그런데 다시 바람이 빠지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 때도 한동안 빠지지 않더니 조금 있으니 바람이 빠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벌써 두 번째 실패를 했기 때문에 그 쯤 되니 서서히 두 손 두 발 모두 들고 싶을 지경이었다. 손가락힘으로 타이어를 연거푸 빼는지라 손가락에 힘도 들어가지 않고 아려오기도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렇게 몇 번을 계속 시도해봤지만, 자꾸 다른 곳에 펑크가 나며 때울 수가 없었다. 이렇게 계속해서 라이딩하는 사람들에게 빌려서 하기엔 시간은 시간대로 흐르고 비효율적인 것 같았는지 민석이는 아예 부론면까지 가서 본드를 사오겠다고 하더라. 10Km의 거리, 왕복 20Km의 거리를 달렸지만 자전거 수리점이 없어서 본드를 사오지 못하고 순간접착제만 사왔다. 그것도 밑 부분이 깨져서 흐르고 있는 것을 말이다. 그것으로는 도무지 때울 수 없었고 여러 방법을 시도해봤지만, 모두 실패했다. 이미 시간은 4시 30분이 지나가고 있었다. 여기서만 무려 2시간을 보낸 것이다.                



▲ 서서히 해가 저물어 간다. 무려 2시간이 넘도록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재익 자전거 펑크 5 - 홀로 잘 달리기보단 함께 달리려는 민석이     


그쯤 되니 월요일 저녁의 상황이 오버랩되더라. 무언가에 꽉 막혀 옴짝달싹 할 수 없는 한계점에 이른 것 같은 깊은 절망감이 느껴졌으니 말이다. 

더 이상 이렇게 시간을 끌 수는 없었다. 그래서 결단해야 했다. 거기서 계속 시간을 보낼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가야 한다고 말이다. 재익이 자전거의 앞바퀴엔 바람이 서서히 빠지고 있는 상황이니 중간 중간 바람을 넣어주며 달리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 말을 듣자 민석이는 자기가 바람을 넣으며 재익이와 함께 달리겠다고 말하더라. 이럴 때 보면 참 괜찮은 녀석이다. 저번에 이화령을 넘을 때 자전거를 끌고 오는 현세를 알뜰히 챙겨서 함께 올라오더니, 오늘은 뒤처진 재익이를 챙겨 바람까지 넣어주며 함께 가려 하니 말이다.                



▲ 민석이가 바람을 넣어주며 가지만, 결국 들어가지 않더라. 정말 난감하다.




재익 자전거 펑크 6 - 마지막 방법까지 해보았으나 실패! 

    

그래도 꽤 오래 버틸 줄 알았다. 여러 군데 펑크가 나긴 했지만, 패치를 붙이긴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얼마 달리지 않아 멈추더라. 그러자 민석이가 바로 펌프를 꺼내 바람을 넣어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달렸다, 멈췄다를 반복했는데 갈수록 바람 빠지는 시간이 단축되고 있었다. 처음엔 100m 정도 달렸는데, 80m, 50m로 줄어들더니, 급기야 바람이 아예 들어가지 않는 상황이 되더라. 

최악의 상황에 이르러서야 월요일 저녁에 갈았던 튜브가 생각나더라. 아무래도 지금 튜브는 여기저기 펑크가 났고 패치로 때운 자국도 많아서 누더기가 된 상태였기에, 월요일에 갈았던 튜브가 더 잘 때워질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튜브를 갈고 조금 기다리니 라이딩하는 사람이 지나가더라. 그 분에게 말하여 펑크패치를 빌렸다. 그런데 아무래도 내가 쓰던 것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니 애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쓰던 본드는 솔이 달려 있어서 골고루 바르기에 편하도록 되어 있지만, 그 분들이 가지고 다니는 본드는 튜브형으로 쫙 짜서 쓰는 형식이었으니 말이다. 그걸 빌려서 붙였는데 본드가 골고루 발라지지 않았는지 패치를 붙인 자리에서 그대로 바람이 세더라. 

이미 우리에게 빌려준 분은 떠나버렸기에 도무지 어찌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고치려 아등바등 대지만 그럴수록 더욱 약을 올리듯 바람이 세고 있으니 기운이 다 빠질 지경이었다. 그래서 포기하고 그냥 바람이 빠진 상태로 달리기로 했다. 더 이상 방법을 찾으려야 찾을 수도 없었으니 말이다.                



▲ 민석이가 바람을 넣어주며 가지만, 결국 들어가지 않더라. 정말 난감하다.




재익 자전거 펑크 7 - 극한의 상황에선 행동도 부자연스러워지고 생각도 좁아진다 

    

월요일 저녁의 상황과 오늘의 상황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펑크가 난 상황은 위기 상황이라고까지 볼 수는 없지만, 도구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서 위기의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런데 그 때 ‘펑크만 때우면 된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생각 자체가 좁아졌다. 그것 하나에만 몰입하니 다양한 방법(라이딩 하는 사람에게 구해본다, 재익이 타이어를 갈아본다)을 생각하지 못했고, 반창고로 때우는 방법만 떠올렸으니 말이다. 거기에 덧붙여 위기의 상황엔 생각만 협소해지는 게 아니라, 행동 자체도 경직된다. 평소 같으면 천천히 고치려 할 테지만, 그 땐 마음이 급하다보니 서두르게 되고 그러면 그럴수록 펑크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고 지나치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펑크는 때웠지만 다시 펑크가 나는 악순환에 빠진 것이다.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 말은 마음이 다급해질 때 그걸 얼마나 제어하여 다급해지려는 마음을 단속할 수 있냐는 말이다. 하지만 이번 경험을 통해 이 말의 다른 의미를 알게 되었다. 그건 곧 ‘문제 자체에 빠지지 않도록 하라’는 말이었던 것이다. 해결책이란 문제를 넘어서서 생각할 때 찾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즉, 서술을 다르게 하면 처방도 달라지는 것처럼 문제를 벗어난 시야를 확보하고 생각의 폭을 넓혀야 찾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에 몰입하면 그것 외엔 아무 것도 보이지 않게 되고, 그러면 해결책조차 단순하고 즉각적인 것만 떠오를 뿐이다. 

오늘 이와 같은 경험을 해보니, 바쁠수록 돌아갈 수 있는 게 얼마나 큰 용기인지 겨우 알겠더라. 그건 어찌 보면 아직까지 상황에 내몰렸을 때 그걸 극복할 수 없다고 느끼는 내 스스로의 불안과 연결되어 있기도 했던 것이다. 



 

▲ 작년 도보여행 때 찍은 사진.
▲ 이번 자전거 여행 때 자전거를 타고 가며 찍은 사진.



              

펑크는 저녁 라이딩을 선물하다  

   

어둠이 짙게 깔린 남한강 길을 달린다. 점심때까지만 해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순간이다. 그땐 일찍 여주에 도착하여 신륵사에 가서 미션까지 하려 계획을 짜고 있었으니, 완벽히 다른 저녁시간을 보내게 된 것이다. 



▲ 남한강은 그래도 불빛이 환하게 비친다. 달릴 맛이 난다.



그래도 어둠이 내린 남한강을 달리니 나름대로 낭만은 있었다. 아이들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저녁 라이딩의 운치를 만끽하며 달리는 기분은 정말 최고였다.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재익이 자전거에 펑크가 나서 우리는 남한강의 밤길을 함께 달릴 수 있었으니, 내 입장에선 좋기만 하다. 

그리고 오늘은 여관에서 자기로 예약해 뒀기 때문에 편하게 달려서 가기만 하면 된다. 강천보를 지나 얼마 달리지 않으니 저 멀리 숙소가 보이더라. 숙소에 도착한 시간은 7시 35분이었다. 



▲ 기분이 어쨌든 달리면서 상쾌해진다.



이로써 5일 동안 여행하며 일찍 숙소에 도착한 경우는 한 번도 없는 진기록을 세웠다. 누가 보면 ‘억지로 늦게 숙소에 도착했구만’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중간에 이런 저런 상황이 생기며 늘 어둠이 짙게 내린 후에야 도착했던 것이다. 그나마 어제만 충주에 일찍 도착하여 저녁밥을 먹고 한껏 여유를 부릴 수 있었고, 어제를 제외한 나머지 날들은 어둠이 내린 밤거릴 열심히 달려 숙소에 도착해야 했다. 

아이들은 저녁으로 통닭을 먹자고 하더라. 여행 마지막 파티 때나 먹던 것을 이번엔 지금 먹자고 하기에 잠시 망설여졌다. 아무래도 모든 여행이 잘 마무리 된 후에 고급스런 음식을 먹으며 자기 자신에게 상을 주는 것도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먹고 싶을 때 먹는 것도 좋은 것이고 오늘 여러 일로 힘들었기에 괜찮다고 생각하여 통닭을 먹었다. 따뜻한 모텔에 들어와 통닭을 먹고 있으니, 그 순간만큼은 황제 부럽지 않더라. 여행의 묘미는 바로 하루 일정을 잘 마치고 뿌듯한 기분에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다. 하루의 피로가 말끔히 씻기는 이 느낌이야말로 힘든 여행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황제 부럽지 않은 시간. 여행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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