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58호 읽기 모임 후기
누군가 이런 질문을 한다. “어떤 날씨를 좋아 하세요?”
뭐 ‘도를 아십니까?’ 이런 류의 황당한 질문만 아니면 환영하는 편이지만 날씨를 물어보는 것도 ‘도를 아십니까?’라는 질문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날씨든 다 좋아요!”라고 솔직하게 말하면, 이야기 흐름이 깨지기 때문이다. 의도가 있는 질문엔, 의도에 맞는 대답을 해줄 필요가 있다.
빨간 장미가 떠오르던 날에
그런데 『민들레』 58호 읽기 모임 후기를 쓴다면서, 뜬금없이 ‘날씨이야기’를 하고 있냐고 궁금해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모임에 와본 사람은 ‘날씨이야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것이다. 오늘은 바로 ‘비 오는 수요일’이었기 때문이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 날아갈 뻔(^^;;) 했고 뒤집어 지려는 우산을 힘주어 잡고 걸어야 했다. 당연히 오늘의 모임은 비 내리는 날씨답게 ‘감성적’일 수밖에 없었다. 내리는 비와 흐르는 마음이 하나로 얽히고설키는 모임의 분위기, 그게 나에겐 묘한 기분을 자아냈다. 이게 이해되지 않는다면, 비 오는 날에 민들레 읽기 모임에 꼭 참석하길 바란다.
이쯤에서 위에서 의도적으로 던진 질문에 대한 답변이나 해 볼까.
“비 내리는 수요일을 좋아해요. 거기다 장미 한 송이를 같이 주고받을 수 있으면 더욱 좋구요.”
이건 은유도 아니고, 낭만도 아니다. 다섯 손가락의 ‘수요일에는 빨간 장미를’이란 노래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니. 오늘 같은 날, 이 노래를 듣지 않고 그냥 넘어 간다면 ‘제비꽃’님의 말처럼 ‘감수성SENSING’ 없는 사람이리라. 아래에 음악이 있으니 음악을 켜놓고 후기를 읽는다면 현장에 같이 참여한 것 같은 기분이 들 것이다.
수요일에는 빨간 장미를
그녀에게 안겨주고파
흰옷을 입은 천사와 같이
아름다운 그녀에게 주고 싶네
우우우우
슬퍼 보이는 오늘밤에는
아름다운 꿈을 주고파
깊은 밤에도 잠 못 이루던
내 마음을 그녀에게 주고 싶네
한 송이는 어떨까
왠지 외로워 보이겠지
한 다발은 어떨까
왠지 무거워 보일거야
시린 그대 눈물 씻어주고픈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 우우
슬픈 영화에서처럼
비 내리는 거리에서
무거운 코트 깃을 올려 세우며
비 오는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
한 송이는 어떨까
왠지 외로워 보이겠지
한 다발은 어떨까
왠지 무거워 보일거야
시린 그대 눈물 씻어주고픈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 우우
슬픈 영화에서처럼
비 내리는 거리에서
무거운 코트 깃을 올려 세우며
비 오는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
<다섯 손가락 1집>
반가운 만남, 그리고 우리들의 생각
감정이 뭉클해진 채 찾아간 민들레 출판사, 저번에 와본 곳이기에 친근하다. 박동섭 교수님 강의 때 만났던 ‘어화둥’님이 맞아주셨다. 조금 있으니 ‘제비꽃’님이 와서 본격적으로 ‘수다의 장’이 펼쳐졌다. 입심 센 ‘누님’들은 과연 어떤 이야기를 하실지 엄청 궁금했다.
‘제비꽃’님은 뇌과학에 푹 빠지셨나 보다.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연거푸 풀어놓으셨다. “어떤 때 주의attention하게 되는지 아세요?”라고 말문을 열더니, “첫째, 자신에게 전혀 새로운 것이어야 하며 둘째 그러면서도 인간에게 유용한 것이어야 해요”라고 대답을 해주신다. 그러면서 현실 교육의 맹점을 날카롭게 꼬집는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수업은 아이들에게 어떠한 ‘어텐션’도 줄 수 없는 죽은 수업이예요.”라고 말이다. 맞다,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수업은 예측 가능한 것일 뿐 아니라, 예전부터 해온 것들의 반복이니 아이들에게 어떠한 자극도 줄 수 없다. 그러니 아이들은 그러한 지식의 틀 안에 갇힐수록 창발성을 잃어가고 생의 열정을 잃어갔던 것이다.
꿈이란 것에 대해서도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해줬다. 꿈은 프로이트가 말하는 ‘억압된 무의식’의 발현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새로운 생각을 덧붙이는 ‘밤에 하는 학습활동’이라는 것이다. 꿈을 꿀 땐 뇌파가 낮에 활동할 때와 같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ㆍ어른 할 것 없이 질적인 잠을 잘 수 있어야 한단다.
‘제비꽃’님의 뇌과학 이야기를 들으니 뇌를 제대로 공부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2008년에 그런 생각으로 『뇌, 생각의 출현』이란 책을 샀지만, 채 열 페이지도 읽지 못하고 그만두었던 경험이 있다. ‘제비꽃’님의 열띤 강의는 나의 마음을 다시 한 번 춤추게 했다.
‘어화둥’님은 방학에 대해 한참 생각하고 있었나 보다. “과연 휴식이란 무엇인가요?”라고 질문을 던진 것이다. 『민들레』 58호를 읽지 않은 사람은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린가?’할 것이다. 휴식이란 이미 누구나 공공연히 하고 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주말이면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고, 연휴엔 해외에 간다. 그러고 나선 ‘휴식했노라’고 이야기 한다. 하지만 그건 자본가가 만든 ‘휴식’이란 것을 돈을 주고 산 것일 뿐, 진정한 휴식일 순 없다. 이것에 대해 ‘별나들이’님은 “현대인의 휴식은 일을 더욱 열심히 하기 위해 잠시 쉬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적절한 비유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현실 때문에 ‘어화둥’님은 그와 같은 질문을 던지신 것이다.
그것에 대해 ‘제비꽃’님은 명쾌한 답변을 해주셨다. “푹 쉬는 게 휴식이 아니라고 한다면, 내가 맘껏 즐길 수 있는 무언가를 하는 게 휴식이지 않을까요.” 맞다, 휴식과 일은 결코 별개일 수 없다. 책을 읽든, 운동을 하든, 산을 오르든, 친구와 수다를 떨든 그게 진정 내가 원하는 일이라 한다면 휴식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몸은 고될지 모르나, 분명 그런 과정으로 충분히 위로받고 활기를 얻기 때문이다. 결론은 휴식을 취하려면, 진정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야 한다는 말씀되시겠다. 그래서 말인데, 나 오늘 실컷 ‘민들레’에서 휴식하고 왔다.^^
비 오는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 자신에게 주자!
오늘 이야기는 ‘자식’ ‘교육’에 대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다가가다 보면 결국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삥 돌아 왔음을 알게 된다. ‘자식’이든 ‘교육’이든 그런 논의 가운데엔 바로 나의 생각이나 관념, 결핍 등이 엉켜있기 때문이다. 자식을 보며 순간순간 화가 치밀어 오를 때(나는 아직 자식이 없기 때문에 학생을 보며 그런 걸 경험한다), 거기엔 자식의 어떤 부분이 나의 억눌린 부분을 건드렸음을 알게 된다. 그건 내가 보듬지 못했던 과거의 어떤 부분이거나, 어떤 틀에 일부러 나를 맞추느라 버려야만 했던 나의 ‘본모습’일지도 모른다. 나에게도 ‘어두운 부분’이 있고 ‘미숙한 부분’이 있으며 때론 하염없이 울고 싶은 ‘나약한 부분’도 있다. 그게 바로 나다. 그런 부분을 인정하고 ‘자식’ ‘교육’을 말할 때, 더 진실한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아~ 오늘 같이 비 오는 수요일엔 그 누구에게도 아닌 나 자신에게 ‘장미’ 한 다발을 선물하고 싶다. 어둡기에, 미숙하기에, 나약하기에 더욱 사랑스런 나 자신에게.
덧달기
어제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교바사)’에서 주최한 ‘제5회 함공모(함께 공부하는 모임) 토론회’가 있었다. 수많은 말들이 오고 갔지만 도떼기시장의 웅성거림처럼 들렸던 까닭은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패널들이 ‘교육’에 대한 이론ㆍ지식의 풍부함만을 과시하려는 욕망만 있었지, 진실하게 다가서려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은 아닐까. 자신은 현실에 머무른 채, 교육체제만 바꾸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모든 게 뜬구름 잡기식 이야기처럼 들렸던 것이다. 그에 비해 오늘 민들레 읽기 모임은 현실적인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자신의 속내를 같이 이야기할 수 있어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