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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Jan 23. 2016

수업의 해체라는 말이 던진 고민들

지항수, 민천홍, 이자민을 만나다 2

열띤 이야기들이 두서없이 흐르고 있다. 민쌤이 이야기를 주도 하고, 그에 따라 섬쌤이 자기의 견해를 덧붙이며 이쌤이 궁금한 것들을 물으며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3의 길을 모색하다  

   

섬쌤은 지금 교원대에서 교육사회학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이제 논문을 써야 한단다. 학자적인 기풍이 강하게 느껴졌고 학문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게 느껴졌다.

이쌤이 “연구하고 싶은 게 있어서 교원대 석사 과정에 들어간 거예요? 아니면 어떤 이유 때문에 석사 과정에 들어간 거예요?”라고 물었다. 저번 8월 모임 때 묻고 싶었던 질문이었는데, 그 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얘기를 하느라 하지 못했던 질문이다. 이에 섬쌤은 “처음엔 교직에서 꿈틀거리는 무엇인가를 만들고 싶긴 했는데, 그러면 더 시간만 지체될 것 같아 회피처로 교원대에 온 거예요. 그런데 막상 공부를 하다 보니 재밌더라구요. 그래서 지금은 박사과정까지 모두 마칠까도 고민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는 어떤 교육적인 논의가 교사들만으로 진행되는 것에 대해 한계를 느꼈어요. 교사들은 어찌 되었든 기득권층들이고, 어떤 체계를 유지하려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좀 더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 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장 궁극적으로 돌아가야 할 부분은 마을을 만들고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생활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는 거죠(아키타의 예와 흡사하다)”라고 얘기를 했다. 거기엔 교사 중심으로 진행되는 교육혁신, 전교조 중심의 교육개혁에 대한 어떤 불신이 들어 있다. 이미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카르텔에 휩싸여 있기 때문에 그걸 무너뜨리기엔 한계가 있다고 본 것이다.




학교가 일순간에 사라진다 해도, 그 자리에 다른 교육의 장이 펼쳐지기보다 자본이 치고 들어와 더 획일화되고 더 경쟁적인 교육이 펼쳐질 수도 있으니까요.




이에 대해 민쌤은 “예전엔 『학교 없는 사회』와 같은 ‘탈학교론’을 옹호하기도 했는데, 이젠 다르게 생각해요. 학교가 일순간에 사라진다 해도, 그 자리에 다른 교육의 장이 펼쳐지기보다 자본이 치고 들어와 더 획일화되고 더 경쟁적인 교육이 펼쳐질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교육기관 내에서부터 점차적인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전교조도 리뉴얼되어 그 방향을 이끌어야 하는 거죠. 그렇게 약간의 변화를 추구하다 다시 좌절하고 다시 약간의 변화를 추구하다 좌절하고 그렇게 점진적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민쌤의 점진적 개혁론과 섬쌤의 급진적 개혁론(?)은 부딪혔다. 여기에 덧붙여 섬쌤은 “저는 지금 여기에 대한 생각보다 미래에 대한 생각에 더 많이 꽂혀 있어요. 그래서 어떻게 그걸 만들어갈까 고민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 언론이 유포하는 이미지는 악질적이다. 전교조의 리뉴얼이 분명 필요한 시점이라 할 수 있다.



               

수업의 재건이냐, 수업의 해체냐?  

   

두 사람이 부딪힌 부분은 어찌 보면 가장 민감한 부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교사들과 만나면서 불편하게 느껴진 부분은 아무래도 ‘교육을 자임하고 있다’는 그 마인드였다. ‘우리는 교육의 미래를 어깨에 짊어진 자들이다. 그러니 우리만이 교육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 기본에 깔려 있다. 당연히 교사이기에 이런 생각을 하는 게 하등 이상할 건 없다. 하지만 이런 논의엔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들은 배제되어 있다는 게 문제다. 수많은 대안교육판에서 활동하는 교사들, 그리고 교육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들도 함께 의견을 나눌 수 있는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고, ‘교육의 일은 국가직 공무원인 교원들만의 일이다’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자임하면 자임할수록 자신의 교육적 권위는 더욱 부각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빠지게 된다.

교육적 권위조차 해체되지 않는 선상에서, 교육의 정상화는 언감생심이다. 기득권은 철저히 유지되면서 개혁을 바라는 건, ‘내 몸에 손조차 대지 말고 곪은 부위만 긁어내’라는 말처럼 허무맹랑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준규쌤이 던져 준 화두를 전면에 꺼내 보고자 한다.           




전교조가 다시 살아나려면 적어도 새누리가 재집권에 실패해야하는 필요조건이 성립됐다.

마음 아프고 화가 치민다.
전교조는 재건될 것이고 반드시 그래야 한다.

그런데 전교조가 아닌 교욱운동도 생각해야하지 않을까....

우리가 전교조를 만든 건 자본가와 퍄쇼권력의 논리를 어린 친구들에게 그대로 전달하는 교복이 되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는데, 89년에 노조로 가는 것은 당연하고 적합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한가지 다른 환경이 생겼다.
아이들의 학습의욕이 당시에도 문제였지만 지금은 더욱 저하됐다. 전교조 교사든 비전교조 교사든 교사의 수업 의미가 퇴색됐다. 수업은 하나의 형식인데 수업이 학교에서 의미 없다면 수업을 수행하는 노동자로서 교사의 아이덴티티도 흔들리는 건 당연한 거다.
수업의 재건이냐, 수업의 해체냐가 고민 지점이다. 교사들은 여전히 수업재건에 미련이 있고, 나는 수업 해체를 주장하는 길에 섰다.

-박준규, 페이스북, 16년 1월 21일  



        

아마 일반 교사들이 들으면 펄쩍 뛸만한 내용이고, 더욱이 우리나라에서 교육을 쥐락펴락하는 사람들이 들으면 당치도 않는 소릴 그렇게 하냐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학생들의 학교 이탈률은 더욱 더 높아지고 있고, 아이들의 학습 저하는 더욱 더 현실화되고 있다. 이런 현실이기에 학생을 만나는 교사들이 고민하고 생각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물론 정답은 없고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듯 헤맬 수밖에 없지만, 좀 더 깊이 있게 고민하고 생각을 정립해갈 필요가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 이 말을 화두로 받아들이기엔 아직도 어려운 부분이 있다. 깼다고 했지만, 모두 깨진 못했기 때문이다.




오해가 관계를 더 돈독히 한다 

    

확실히 8명이 모여 이야기를 나눌 때와는 다르게 4명이 모이니, 좀 더 깊은 얘기를, 그러면서도 어떤 바람이 스민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우리의 말은 중간 중간 오해와 이해를 거듭하며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서로가 같은 단어를 쓰지만, 그 단어에 대한 이미지는 모두 달랐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사람이 만나면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그렇게 다른 이미지로 정의된 단어들을 하나로 맞춰가며 이해의 폭을 넓혀 간다는 의미인지도 모른다(물론 ‘맞춰졌다’는 착각으로 오해의 폭이 넓어지기도 한다). 첫 술밥에 배부를 순 없다. 이렇게 서로 처음 만나 어떤 이야기를 들으며 오해를 하게 되었다면, 어떤 식으로든 다음 이야기를 덧붙이며 이해의 지평을 확장해 나가면 된다.

민쌤은 그렇기에 “‘승진점수’가 아니라 ‘전보점수’라고 해야 하고 ‘교육전문직’이 아니라 ‘행정전문직 or 장학전문직’이라 해야 한다”고 단어 정립부터 새롭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승진점수’라 이름 붙이니, 점수를 따지 않는 교사는 게으른 교사 무능한 교사가 되고, ‘교육전문직’은 교사들이면 당연히 불려야 할 명칭임에도 ‘장학사, 학교 관리자’에게만 붙이니 일반 교사들의 입지만 좁아졌다는 것이다. 이 말 그대로다. 모든 새로운 논의는 단어의 이미지를 새롭게 하는 데서, 궁극적으로는 단어를 새롭게 만드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그래야 생각이 바뀌고 그 바뀐 생각을 기반으로 다른 상상을 할 수 있다.







목차     


1. 수업의 재건을 말하는 교사들

니가 번개팅의 묘미를 알아?

제대로 된 교육은 교사의 열정에 의지하는 게 아니라 잘 돌아가는 시스템에 의지한다

너를 만나 나는 사라졌다     


2. 수업의 해체라는 말이 던진 고민들

제3의 길을 모색하다

수업의 재건이냐, 수업의 해체냐?

오해가 관계를 더 돈독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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