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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Jan 23. 2016

수업의 재건을 말하는 교사들

지항수, 민천홍, 이자민을 만나다 1

땡볕이 작렬하던 한 여름에 눈덩이를 굴리겠다는 발칙한 제안으로 시작된 ‘눈덩이 프로젝트’는 8월에 갑자기 시작되었고, 그 달 26일에 밑도 끝도 없는 모임제안으로 8명(초등교사 5명, 대안학교교사 2명, 학부모 1명)이 모이게 되었다. 이 모든 게 새로운 이야기장을 만들고 싶던 섬쌤의 주도로 일어난 우연한 사건이었다.               



▲ 작은 눈덩이는 목적의식 없이 그냥 구른다. 그러나 그 작은 움직임이 커진다.




니가 번개팅의 묘미를 알아?  

   

그러고 나서 어느덧 5개월이 지나며 2016년의 새해가 밝았고 흥에 겨워 있던 그 때 모이자는 제안이 온 것이다. 시기적으로 보면 저번에는 여름방학의 끝 무렵이었고, 이번에는 겨울방학의 끝 무렵이다. 이렇게 두 번의 경우가 어떤 일정한 패턴을 가질 경우, 호사가들은 ‘섬쌤은 방학 끝 무렵엔 몸이 근질근질 댄대’라고 제 멋대로 일반화시킬 테지만, 그러면 ‘아니 아니 아니되오’다. 애초에 정형화되어 ‘반복의 미’를 즐기는 사람도 아니고, ‘만나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면 그 감정에 따라 행동을 하는 사람이니 말이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고 보면 이번 모임은 8월 모임과 전적으로 다른 게 있었다. 그 땐 페이스북에 “8월 26일에 모일 사람 여기 여기 붙어라~”라고 외치며 그 글에 혹한(?) 불특정 다수가 모였다면, 이번엔 007작전을 수행하듯 은밀히 개인접촉(페북 메신저로 연락)을 한 후 특정 소수가 모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모이면 서로 다른 이야기를 나누게 될 조합이라 어떤 이야기들이 흘러넘칠지 궁금하여 모이자고 했어요




그래서 어제 얘기를 하며 섬쌤에게 “왜 이 사람들이 모이게 된 거예요?”라고 물었다. 섬쌤 페북지기가 1000명이 넘는다는데 그 중에 3명이 선택된 것이라면, 적어도 333:1의 경쟁률(?)을 뚫은 것이기에 무언가 특별한 이유가 있겠거니 기대하며 물은 것이다. 그런데 대답은 완전 실망스러웠다. “이렇게 모이면 서로 다른 이야기를 나누게 될 조합이라 어떤 이야기들이 흘러넘칠지 궁금하여 모이자고 했어요”라는 심플하다 못해 심심한 대답을 했으니 말이다(그런 얘길 듣자고 물은 게 아닌 걸 알면서, 아실만한 분이 왜 이러실까~).

어찌 되었든 이런 계기로 모이게 된 사람들은 나를 포함해 총 4명이다. 건빵이야 ‘건빵다워지자’를 외치는 밑도 끝도 모를 단재학교 교사이고, 섬쌤이야 ‘모입시다’를 주로 외치는 더 밑도 끝도 모를 연구자겸 초등교사이며, 민천홍쌤(이하 민쌤)은 ‘내 고장 춘천 길이길이 빛나리’를 되뇌며 춘천지기 교사로 지내는 초등교사이고, 이자민쌤(이하 이쌤)은 ‘여긴 어디인가? 나는 누구인가?’의 혼란에 빠져 다시금 기본부터 정립해가는 초등교사다. 역시 섬쌤의 말처럼 조합이 다채롭다 못해, 산으로 갈 지경이다. 이들이 만나 빚어낸 이야기의 장으로 들어가 보면, 산으로 갔다가 강으로 갔다가 심지어 우주까지 헤맸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그 다양한 관점이 “힘!”임은 물론이다.                



▲ 섬쌤의 제안이다. 역시 '모이자'의 달인이다.




제대로 된 교육은 교사의 열정에 의지하는 게 아니라 잘 돌아가는 시스템에 의지한다 

    

민쌤은 이제 초임교사 시절을 지나 나름 학교에서 중간(견)교사(?)의 역할을 맡고 있단다. 그래서 초임교사 시절엔 학교가 맘에 안 들거나, 교사 풍토가 이상할 경우 ‘선배들이 잘못해서 이 모양이야’라고 생각하면 됐지만, 이젠 더 이상 선배들을 탓하거나 학교의 체질만을 문제 삼을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이미 그 자신이 학교에서 신입교사들을 이끌며 어떤 교사 풍토를 만들어야 하는 위치에 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가장 신랄하게 비판한 부분은 “교사 한 개인의 열정으로 학교가 혁신되고 바로 잡힌다는 그런 생각 자체가 잘못된 거예요. 개인의 초인적인 힘에 의지하면 그 개인의 전설만 부각되다가 사라질 뿐 학교 자체는 어떤 변화도 없으니 말이죠. 그렇기 때문에 평범한 교사들이 그냥 교사생활을 하더라도 그게 교육이 정상화되는 데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하는 거죠”라고 했다. 여기에 섬쌤은 “맞아요. 한 개인의 열정에 기반하는 것은 이미 사회가 유포하는 ‘너 자신을 끊임없이 계발하라’는 논리와 맞닿아 있어요.”라고 덧붙여줬다.




평범한 교사들이 그냥 교사생활을 하더라도 그게 교육이 정상화되는 데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하는 거죠




이 말을 듣고 보니, 이미 우치다쌤이 10월에 했던 강연 중 “집단이 유지되는데 중요한 일은 누구든 할 수 있는 일이어야만 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난민캠프에 어떻게 의료시설이 들어서고, 어떻게 교육기관이 들어서는지 설명하며 어떤 특출난 지식이 있는 사람이 의사가 되고 교사가 되는 게 아니라, 그저 ‘내가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된다고 했기 때문이다. 공동체가 유지되는 가장 기본적인 일에 자격증이랄지, 학위랄지, 공인받은 어떤 조건이 필요하지 않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민쌤도 교육에서 교사의 열정은 부차적인 것일 뿐 필수사항은 아님에도, 교육적 성과를 이룬 선배들은 어떤 체계화된 문서나 내용도 없이 그저 ‘이렇게 이렇게 했더니 민주적인 학급이 운영되었다’며 그것을 수업에 도입하길 요구하고, 수많은 연수들이 방법적인 것들을 도입하면 수업이나 학급운영이 나아진다고 얘길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시스템을 만들기보다 ‘깨인 교사’들의 열정과 적극적인 시도만을 강조하고 있는 모양새에 불만이 많았다는 얘기다.

그래서 민쌤은 올해 목표가 “내가 활동하는 있는 공간을 떠나 외부로만 나가 강연을 듣고, 사람들을 만나는 건 도피라고 생각해요. 그곳에서 ‘난 열심히 하는 교사’라는 자부심도 느끼고 힘을 얻고 위안을 받겠지만, 막상 현장에 돌아가선 똑같으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그러니 저는 올해 학교에서 5학년 학급 교사들과 함께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그런 소통의 장을 학생들에게까지 넓혀 나갈 거예요”라고 말했다. 자신이 현재 머물고 있는 공간에서부터 어떤 변화의 조짐들을 만들어보겠다는 얘기다.                



▲ 개인의 역량에 맡기는 분위기가 아닌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그 말에 동감한다. 그런 풍토가 되어야 한다.




너를 만나 나는 사라졌다

     

이쌤은 저번 동섭쌤 강의에 갔을 때 봤었다. 그 땐 그 강의를 기획하신 분이라 살짝 인사를 했었는데, 불과 일주일 만에 다시 보게 되니 이래서 인연이란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초등학교 교사지만, 안양과천교육지원청에 ‘혁신교육지구전담팀’이라는 복잡하고 어려운 이름을 지닌 부서에 파견 나가 근무하고 있단다. 이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새로운 교육풍토를 조성하고 기획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쌤은 “영업직 사원처럼 이 곳 저 곳, 이 사람 저 사람 많이 만났어요. 그래서 착실히 점수를 받아 승진코스에 오른 사람부터 시민단체 사람까지 폭넓게 만나다 보니, 오히려 어느 게 내 생각인지, 그 생각이 옳은 것인지 도통 알 수 없게 되더라구요. 학교에서 나와 지원청에서 근무해보니 오히려 학교에 있을 때보다 교육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된 한 해였어요”라고 말했다. 아마 교육경력으로 치면 뭔가 이제 알만한 때이기에 “교육이란 말야”라고 큰 소리 뻥뻥 치며 일장연설을 해도 모자를 때인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교육이 뭘까?’라고 심하게 고민을 때리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쌤은 앞서서 이야기를 주도하려 하지 않고 뒤로 짐짓 물러나 이야기를 듣는 데에 거의 모든 시간을 할애했다.




지원청에서 근무해보니 오히려 학교에 있을 때보다 교육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된 한 해였어요




그러면서 “지금껏 아이들과 잘 소통하고 있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것을 지원청에서 일하면서 알게 되었어요”라며 심경을 고백한다. 그 말 자체는 자신이 지금껏 으레 잘 해왔다고 생각했던 부분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은 언제 생각을 하는 걸까? 일반적으론 ‘늘 생각한다’라고 대답할 테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아침에 일어나 불을 켜고 씻고 출근준비를 하고 출근을 하여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활동 가운데서는 생각할 이유가 없다. 지극히 일상이기에 관성적으로 그냥 흘러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 불을 켜려 스위치를 눌렀는데, 불이 켜지지 않는다. 바로 그 때 비로소 생각하게 된다. ‘왜 불이 안 켜지지? 정전인가? 전구가 나갔나?’하는 등등으로 그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이쌤도 그냥 흘러가는 시간들을 지나 관성이 통하지 않는 순간에 접어들며 교육에 대해서건, 자신에 대해서건 생각하게 되었다. 이때 어떻게 현재의 상황을 갈무리 하느냐에 따라 교사생활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쌤은 ‘삶’이라는 단어를 자주 썼다. 아마도 ‘어떻게 아이들과 밀착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이 그 한 단어로 표현되는 듯했다. ‘삶’이란 교사와 학생이란 지위로 맺어진 관계가 아니라, 너와 나의 인격 대 인격의 마주침으로 읽혔기 때문이다. 그저 그 순간을 살아내는 것, 그게 바로 교육이라 보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교사가 학교 주변에 사는 건 중요한 거 같아요. 그래서 학부모가 장을 보는 데서 같이 장을 보고 길거리에서 학생을 만나면 같이 차도 마시는 그런 것 말이예요. 그 땐 학교에선 하지 못할 이야기도 더 쉽게 하더라구요”라고 ‘삶’이 어떤 이미지를 지닌 단어인지 쉽게 풀어줬다.

사는 것과 교육을 하나의 흐름으로 보고 있는 점이 남다르다. 그건 어찌 되었든 작년에 느꼈던 혼란 속에서 끄집어낸 생각이기에 충분히 공감하고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그래서 “올해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 만큼 중요한 해겠네요. 초임교사 땐 뭣 모르기에 정신이 없지만, 이젠 어떤 혼란 속에 있으니 오히려 아이들과 더 잘 지낼 수 있을 거예요”라고 말해줬다.



▲ 에이드와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다. 밀도 높다. 그리고 이야기가 부딪히고 엉킨다.





목차     


1. 수업의 재건을 말하는 교사들

니가 번개팅의 묘미를 알아?

제대로 된 교육은 교사의 열정에 의지하는 게 아니라 잘 돌아가는 시스템에 의지한다

너를 만나 나는 사라졌다     


2. 수업의 해체라는 말이 던진 고민들

제3의 길을 모색하다

수업의 재건이냐, 수업의 해체냐?

오해가 관계를 더 돈독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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