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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Mar 22. 2016

준규쌤의 강연엔 그만의 무늬가 드리워져 있다

박준규의 ‘대안학교 아빠로 산다는 것’ 2

이 날은 그제까지도 추위로부터 지켜주던 외투가 과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포근했다. 그러다 보니 과천역에서 소리전수관으로 걸어가는 몇 분 안 되는 길임에도 덥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그만큼 날이 포근하여 가족 단위로 나들이를 가기에 좋은 날씨였고, 시기 또한 주말이어서 왠지 강연을 들으러 오기엔 아까운 날씨였다.

요즘 무한도전은 ‘봄날은 온다-시청률 특공대’라는 특집을 통해 날씨가 풀려 토요일 저녁에 티비를 보지 않고 나들이를 가서 시청률이 떨어지기에, 그걸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를 코믹하게 다뤘다. 그 때 ‘놀이공원의 입장료를 120만원으로 올린다’, ‘무도 다시보기의 가격을 62만원으로 올리자’ 등등의 얼토당토 않는 대책이 나왔지만, 황금 시간대에 강연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 보면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라는 생각이 살짝 들법한 날씨이긴 했다. 과연 이런 유혹들을 뿌리치고 몇 명의 사람들이 강연장에 모일까?               



▲ 주말에 봄이 어느덧 곁에 다가온 시기에, 그것도 2시에 강연을 하다니.... 이거 이거 사람들이 오겠어~~~




날씨가 좋은 주말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이겠어?  

   

이번 강연에 참석하며 알고 있었던 내용은 준규쌤이 강사라는 것과 ‘아빠학교’라는 협동조합에서 시작하는 첫 번째 강의라는 것뿐이었다. 어떤 사람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는지는 몰랐다. 단순히 ‘문의: 더불어 가는 배움터길’이라 쓰인 포스터만 보고, 길학교 신입생 학부모를 위한 강연회인 줄만 알았다. 아무래도 하나의 학교만 대상이다 보니 적은 인원이 모일 것이고, 그러면 편안하게 얘기 나누듯 진행될 거라 짐작했던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건물에 들어가 강연장이 있는 지하에 내려가니, 들어가는 입구엔 주최 측에서 준비한 떡과 음료가 놓여 있고, 그 앞엔 몇 명이 담소를 나누고 있더라. 떡을 받아 들어가서 보니, 장소는 생각보다 훨씬 컸지만 온 사람이 별로 없어 자리는 텅텅 비어 있었다. 아직 1시 48분밖에 되지 않았으니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 많은 자리가 차긴 할까?’하는 걱정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 주최 측에서 준비한 떡과 음료.




날씨와 주말에 상관없이 모일 사람들은 모인다

     

조금 시간이 지나니 준규쌤이 오시더라. 그렇지 않아도 준규쌤은 아침에 부랴부랴 페이스북에 강연 내용과 관련 있는 내용을 ‘발작적(이건 동섭쌤이 주로 쓰는 표현인데, 그만큼 고민이 깊어질수록 어느 순간 톡 튀어나오듯 정리된다는 표현임)’으로 쓰셨는데, 그건 그만큼 밤새도록 고민이 깊었다는 것을, 그만큼 긴장을 하셨다는 것을 나타낸다. 준규쌤은 강연을 준비하는 그 순간을 ‘즐거운 고민을 하는 시간’이라 표현했는데, 거기엔 다양한 감정이 얽히고설켜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 강연장 밖의 모습. 점차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



그래서 준규쌤에게 “오랜만에 대중 강연을 하시는 거네요. 오늘 어떤 분들이 오시는 거예요?”라고 물으니, “경인지역의 대안학교 학부모를 대상으로 강연을 하는 건데, 아마 100명 정도 온다고 하는 거 같아요. 그러니 지금까지 했던 강연 중에 가장 많은 청중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인 셈이죠”라고 대답해주신다. 그쯤 되니 내가 봄나들이 운운하며, ‘이 자리가 꽉 차긴 하려나?’라고 했던 걱정이 ‘씨잘데기’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건 몇 명의 지인들만 의기투합하여 모이는 자리가 아닌, 일면식도 없는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모이는 대중강연의 자리였으니 말이다. 어찌 되었든 준규쌤에게도 나에게도 이 강연의 의미는 남다르게 느껴질 거라는 직감(?)이 들면서, 강연 중 어떤 마주침과 울림이 있을지 사뭇 기대됐다.

원래 강연은 2시부터였는데, 늦게 오시는 분들이 많아 20분 정도 지연되고서야 시작되었다. 점차 강연장이 차기 시작하더니, 강연을 시작할 땐 몇 자리만 빼곤 거의 꽉 찼으며, 끝날 땐 뒤에 서 있는 사람들까지 있을 정도였다. 보통 어떤 일을 하고 싶지 않을 때, 날씨 탓, 환경 탓을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합리화하는 과정일 뿐이다. 오늘처럼 날씨도 좋고 주말이란 특수성까지 있음에도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엔 사람들이 이렇게 만사를 제쳐두고 모이니 말이다.                



▲ 20분이 지나서야 시작됐다. 하지만 사람들이 많이 모였고, 여전히 들어오고 있다.




준규쌤 강의 총평 1 - 나 지금 떨고 있니?

     

사람이 꽉 찼다. 준규쌤도 이렇게까지 사람들이 많이 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생각은 했을지라도, 많은 청중을 상대로 하는 강연은 처음이다 보니, 엄청 긴장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강연 초반엔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이럴 때 흔히 ‘이런 모습 처음이야’라는 말을 쓴다. 준규쌤이야 다양한 경험을 한 인생의 승부사적인 기질에다가, 사람을 만나 무언가 함께 하길 좋아하는 진취적인 성격에다가,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박학다식형이다 보니 떨지 않을 줄만 알았는데, 막상 무대에 선 모습에서 긴장이 느껴졌다. 근데 오히려 그런 낯선 모습이 친근하게 느껴졌다면 좀 오버라고 하려나.

더욱이 초반의 강연 내용이 이론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기에 학술대회장에서나 느껴질 법한 아카데믹한 진지함에 분위기는 더욱 가라앉을 수밖에 없었다. 긴장과 진지함, 그리고 가라앉은 분위기는 강연자를 짓누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준규쌤은 그 순간을 통해 점차 무대에 적응하고, 사람들에게 익숙해지는 것처럼 보였다.   



▲ 초반엔 긴장이 역력한 모습이 보이신다. 이런 모습 처음이야~



             

준규쌤 강의 총평 2 - 나 지금 열변을 토하고 있니?

     

시간이 지나며 긴장은 어느 정도 완화되었고 완벽하게 적응한 것 같았다. 준규쌤은 이번 강연 순서를 아래와 같이 정해왔다. 50분 동안 준비해온 내용을 강의하듯 이야기하고, 40분 동안 자유롭게 질의응답을 하며 서로의 의견을 듣는 시간을 가진 후, 30분 동안 내용을 정리하며 끝내는 것이다.

어찌 보면 이런 흐름 자체가 파격이자 도전이라 할 수 있다. 그건 다른 게 아니라 강연 내용을 적당한 수준에서 마무리 짓고 되도록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한다는 점 때문이다. 명강사라 해도 질의응답 시간은 달가워하지 않는 게 보통이다.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나, 인신공격적인 질문이 나오더라도 평점심을 유지하고, 자신이 아는 범위 내에서 말할 수 있어야 하니 말이다. 그러니 동문서답을 하거나, 흐리멍덩하게 대답할 경우 오히려 자신의 밑천이 드러나서 손해만 보게 된다. 그러니 웬만하면 그런 여지를 주는 시간을 가지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준규쌤은 질의응답 시간에 초반의 긴장하던 모습과는 달리 당당하고 의연하게 서서 이야기를 듣고 거기에 따라 자신의 이야기를 덧붙였다. 이론적인 내용이 아닌 자신의 경험을 바탕에 둔 이야기를 하는 것이기에 오히려 무슨 말인지 귀에 쏙쏙 들어왔고 가볍게 들을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강연장의 분위기도 진지하고 무거운 분위기에서 앎의 파토스가 넘실대는 공명의 장으로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 무대에서 내려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한결 여유로워지고 경험담까지 버무려 지니 분위기도 살아났다.




준규쌤 강의 총평 3 - 준규쌤만의 무늬가 한껏 드러난 강연 

    

이 순간이야말로 준규쌤이 어떤 무늬를 지닌 사람인지 가감 없이 볼 수 있었던 순간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이건 순전히 내 생각이지만 강연을 들으며 윤리교과서의 내용이나, 누구에게나 쉽게 들을 수 있는 내용을 듣는 것이라면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한다. 그건 이미 세상에 아무렇지도 않게 주류적인 가치를 점유하고 막강한 파워를 지니고 횡행하는 말들이기 때문이다. 동섭쌤이 ‘개체 식별 가능한’이라는 말을 주로 쓰는데, 바로 그 사람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게 곧바로 깨달음을 주는 이야기든, 혼란을 한 아름 안겨주는 이야기든, 때론 무슨 소린지 모르는 황당한 이야기든 상관없다.

준규쌤은 “나-너는 짝말로만 존재한다”, “개인이 아닌 분인이어야 한다”, “소통은 오해일 뿐이다”, “부모 자신의 욕망을 스스로 단죄하며 손가락질 하지 말고 추구하라”는 말을 했다. 이 말을 그냥 들으면 무슨 말인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다. 물론 강연을 들었다고 해도 이에 대해 명료하게 알게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런 이야기는 준규쌤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이며 여기서부터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가느냐는 강연을 들은 각자에게 주어진 과제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 이것이야말로 준규쌤의 무늬가 여지없이 드러난 강의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후기에선 준규쌤 강연회의 특징과 강연에 대한 총체적인 평가를 해봤다. 다음 후기에선 준규쌤의 무늬가 한껏 드러난 강연 내용을 통해 그 때를 되돌아보도록 하자. 대부분의 말들이 충분히 충격을 안겨주는 내용이어서 쉽게 이해되지는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이해한 대로, 풀어보려 한다.



▲ 정말 많은 사람들이 왔다. 그리고 그렇게 주말을 함께 보냈고 함께 떠났다.            





목차     


1. 아빠특강에 참여한 이유

헌 것엔 나의 무늬가 들어있다

사람의 무늬 1 - 얼굴을 통해 드러난 무늬

사람의 무늬 2 - 언어를 통해 드러난 무늬

봄이 피부로 느껴지던 그 날, 건빵이 강의를 들으러 간 까닭?

아빠들을 위한 강연장에서 드러날 준규쌤의 무늬     


2. 준규쌤의 강연엔 그만의 무늬가 드리워져 있다

날씨가 좋은 주말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이겠어?

날씨와 주말에 상관없이 모일 사람들은 모인다

준규쌤 강의 총평 1 - 나 지금 떨고 있니?

준규쌤 강의 총평 2 - 나 지금 열변을 토하고 있니?

준규쌤 강의 총평 3 - 준규쌤만의 무늬가 한껏 드러난 강연     


3. ‘대안학교’, ‘자녀교육=엄마의 일이라는 틀 벗어나기 

강연을 듣기 전 워밍업 1 - ‘대안학교’란 단어 벗어나기

강연을 듣기 전 워밍업 2 - ‘자녀교육=엄마’라는 틀 인식하기

강연을 듣기 전 워밍업 3 - ‘자녀교육=엄마’라는 틀 벗어나기

워밍업이 끝났다면, 이제 가벼운 마음으로 스타트     


4. 대안학교 아빠로 산다는 것

교육의 다양한 스펙트럼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상황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느냐의 문제

정답이 아닌 생각과 생각이 맞물려 고민의 장으로

지지자의 조건 1 - 개인이 아닌 분인으로 받아들이기

지지자의 조건 2 - 발신자가 아닌 수신자가 되자

혼란에 빠진 채 강연은 끝나다

    

5. 수신자란 무언지를 보여준 질의응답 시간

무늬를 보기 위해선 기표가 아닌 기의에 가닿아야 한다

발신자가 되기의 어려움

질문 1 - ‘아빠의 세계’가 필요한 시기는 초4학년 때까지

질문 1 - 때가 되면 아이를 놓아줄 수 있어야 한다

질문 2 - 대안학교를 보내고 있지만, 나중에 사회에 나갔을 때 적응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질문 2 - 아이의 힘을 믿으시나요?

준규쌤 후기 마지막 편에 대한 예고

    


6. 발신자에서 수신자로애씀에서 즐김으로 

질문 3 - 수신자가 되는 방법, 게임의 장에서 패턴 찾기 

질문 3 - 수신자가 되는 방법, 자녀 교육으로 해방되기

질문 4 - 대안학교 학생은 진로와 부모의 욕망 추구에 대해

질문 4 - 자식의 미래를 위해 부모는 욕망대로 살면 끝!

애쓰지 말고, 노력하지 말고 그저 삶을 살아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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