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건빵 Mar 29. 2016

수신자란 무언지를 보여준 질의응답 시간

박준규의 ‘대안학교 아빠로 산다는 것’ 5

충격을 한 아름 안겨준 열띤 강연이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을 진행하려 준규쌤은 강연장 밑으로 내려왔다. 어찌 보면 이것이야말로 눈높이를 맞춰 진솔하게 얘기를 나누고자하는 마음이라 할 수 있다. 아마도 20명 안팎의 사람들이 모였다면 오히려 서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공감하기 좋았을 텐데, 100명이 모이다 보니 긴밀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도 없었고 그만큼 간격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 강연장의 열기는 후끈 달아올랐다.




무늬를 보기 위해선 기표가 아닌 기의에 가닿아야 한다

     

준규쌤의 강연은 준규쌤만의 무늬가 한껏 묻어난 강연이었다. 무늬란 어쩔 수 없이 생각의 경향성을 담고 있고, 지금껏 살아온 내역이 스미어 있게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아파야 청춘이다’는 말을 똑같이 할지라도, 그 안의 메시지는 강연자에 따라 정반대의 내용일 경우가 허다하다. 

말은 같은데 뜻은 다르다’는 말은 얼핏 들으면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이미 언어학자인 소쉬르Saussure(1857~1913)가 파이프라는 그림의 기표significant와 파이프라는 단어라는 기의signifier는 전혀 상관없다는 통찰을 보여준 바가 있다. 그처럼 말이라는 기표에 머물러 의미를 한정 지을 게 아니라, 의미인 기의가 뭔지 자세히 들여다봐야만 한다는 것이다. 꽃만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러운 건 아니다. 말도 그 사람의 무늬가 어떤지 알고 보면 훨씬 많은 것들이 보이니 말이다. 

하지만 애초에 단편적인 강연이란 그 사람의 무늬를 알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를 주지 않는다. 왕왕 무늬는 살아온 내역이고 살아낸 흔적이기에 긴 시간동안 마주쳐야 하고 스미어들어야 알 수 있지만, 강연이란 2~3시간 정도의 시간에 풀어내야 하니 ‘수박 겉핥기’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태에서 던지는 메시지는 사람들에게 전혀 기의로서 다가가지 못하고 그저 기표로만 받아들여질 뿐이다. 아마도 준규쌤의 강연이 끝났을 때, 강연장에 일대 혼란이 일었던 이유도 이 때문이었을 거다.                



▲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기표와 기의는 전혀 무관하다는 통찰, 그건 많은 것을 상상하게 한다.




발신자가 되기의 어려움 

    

그런 가운데 마련된 40분 동안의 질의응답은 그나마 강연자의 무늬를 볼 수 있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준비해온 강연은 어떤 식으로든 자신이 살아온 무늬와 상관없는 얘기로 꾸며낼 수 있지만, 질의응답은 현장성으로 인해 그러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질문을 받으면 깊게 고민하여 꾸며 대지 못하고 평소에 생각하던 그대로, 살아온 그대로 말하게 된다. 그러니 이 시간을 제대로 보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그 사람의 무늬를 볼 수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질문을 한다는 건 여전히 어려운 일이긴 하다. 학교에서부터 우린 질문을 하는 것보다 그냥 이해하고 무작정 받아들이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더욱이 이런 강연의 경우 ‘내가 저걸 이해할 정도의 깜냥도 안 되는데 무얼 안다고 감히 질문을 하랴’는 자기검열까지 하게 되어 더욱 질문을 하기가 힘들며, 어떻게든 질문할 기회가 주어졌다 해도 “강연 재밌게 잘 들었습니다.”라는 말로 시작되는 통속적인 이야기만 하게 된다. 

준규쌤은 “지금부턴 처음에 말했다시피 질의응답 시간입니다. 질문하실 분들은 질문해주세요”라고 말했지만, 강연장엔 침묵만이 흐르고 있었다. 대부분 눈치를 보며 시간이 무심히 흐르던 그 때, 준규쌤은 앞줄에 앉은 사람에게 마이크를 건네며 “오늘 강연의 발신자가 되어 주세요”라고 주문했다.                



▲ 많은 사람들이 진지하게 이야기를 듣고 있다. 어떤 삶의 이야기를 지닌 분들인지 궁금하다.




질문 1 - ‘아빠의 세계가 필요한 시기는 초4학년 때까지

     

첫 번째 질문하신 분은 자식을 대안초등학교에 보내고 있으며 중학교는 지방의 기숙학교로 보낼 생각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마틴 부버의 ‘나-너는 짝말로 존재한다’는 말이 자신에게 와 닿았다며, 이 말을 듣기 전까지만 해도 아이가 중학생이 되면 지방의 기숙학교로 보내려 했단다. 그런데 마틴 부버의 말을 듣고 고민이 생겼다며, 그렇다면 언제까지 아이를 데리고 있어야 하는지를 준규쌤에게 물었다. 

이에 대해 준규쌤은 ‘엄마의 세계’와 ‘아빠의 세계’라는 단어를 통해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강연은 이론적인 내용이 태반이었는데, 질의응답 시간에 나온 얘기들은 경험한 이야기를 해주기에 훨씬 이해하기 쉬웠다. 아이가 자라는 데 각각의 세계가 필요한 시기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태어나서 24개월이 될 때까지는 ‘엄마의 세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단다. 그 땐 굳이 ‘아빠의 세계’는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때까진 엄마의 한정된 언어꾸러미가 아이에겐 엄청난 영향력을 끼치며 작용한단다. 

하지만 24개월 이후엔 다른 언어꾸러미를 지닌 사람이 필요해진단다. 바로 그 때가 ‘아빠의 세계’가 필요해지는 순간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세 번째 후기에서도 썼듯이 굳이 생물학적인 아빠가 아닌 엄마와는 다른 언어꾸러미를 전해줄 수 있는 사람(할아버지, 이모, 고모 등)이면 괜찮다. 

그러나 그 또한 무한정 필요한 것은 아니란다. ‘아빠의 세계’가 필요한 시기는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이며 초등학교 5학년이 되면 아빠가 지닌 언어꾸러미도 아이에겐 어떤 감흥도 불러일으키지 못하게 되니 말이다. 바로 그 때가 ‘친구의 세계’로 떠나게 되는 시기란다.                



▲ 기차를 타고 아스타나로 가는 길에서. 바깥엔 카자흐스탄 무덤이 보인다. 이곳에서 언어꾸러미로 세상을 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질문 1 - 때가 되면 아이를 놓아줄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얘기를 듣고 보니 법륜 스님이 쓴 『엄마수업』이란 책의 띠지에 ‘어릴 때는 따뜻한 게 사랑이고, 사춘기 때는 지켜봐 주는 게 사랑이고, 스무 살이 넘으면 냉정하게 정을 끊어주는 게 사랑이다!’라는 말이 생각났다. 준규쌤의 말과 법륜 스님의 말이 통하는 지점은 일정 시기가 되면 서서히 관계를 놓아주며 나중엔 아예 끊을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선 ‘부모가 된다는 건 뭘까?’하는 질문이 핵심일 수밖에 없다. 지금은 한 두 자식만 낳다 보니, 당연히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대화를 나누고, 아이의 의사를 존중하는 부모가 좋은 부모’라는 공식이 좋은 부모의 모습인양 받아들여진다. 이 말은 분명히 좋은 말이지만, 그게 진정 자식을 위해 좋은 부모의 상인지는 아무도 경험해 본 적이 없다. 문제는 ‘그게 좋은 부모의 모습이라고 치자, 그렇다며 그걸 언제까지 지속해야 하는가? 아이가 막무가내로 고집만 피우더라도 다 받아줘야 하나?’는 것이다. 즉, 이런 논의는 결코 절대적인 옳은 것일 수 없으며, 상황과 상대방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누구도 명확하게 말할 수는 없기에, 준규쌤은 여러 경험을 통해 ‘초등학교 4학년’까지를 부모가 ‘부모의 세계가 전해줘야 하는 시기’로 제시한 것이다.                



▲ 이 책을 읽어본 적은 없다. 그런데 띠지의 문구는 너무나 인상 깊어 기억하고 있다.




질문 2 - 대안학교를 보내고 있지만나중에 사회에 나갔을 때 적응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두 번째로 마이크를 받으신 분은 삼형제를 모두 대안초등학교에 보내고 있다고 소개했다. 세 명의 아이들을 모두 대안학교에 보내다니, 그 결단이 남다르게 느껴졌다. 그러려면 자식에 대한 애정과 함께, 대안학교에 대한 믿음이 동시에 있어야 하니 말이다. 

그렇게 결단 있는 행동을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 배려도 배우고 함께 무언가를 한다는 것도 배우며, 일반학교에서는 하지 못하는 여러 경험을 하는 건 좋지만, 그러다 나중에 사회에 나가서 적응을 하지 못하거나 돈벌이를 하지 못할까 하는 걱정이 있습니다”라고 대안학교 학부모로서 느낄만한 걱정을 얘기하셨다. 이건 대안학교 내부의 흐름과 사회 곳곳에 엄연한 흐름 사이의 괴리를 감당하기 힘들다는 말이라 할 수 있다. 

이 말을 들으니 스산한 기분이 들며 마음 한 구석이 아려왔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주류적인 담론이 있고, 주류적인 담론에서 벗어나는 것은 낙오이자, 부적응으로 보는 시각이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벗어났을지라도 수시로 갈등이 심하게 밀려온다는 사실 때문이다.                



▲ 이곳에 모인 분들도 같은 고민과 걱정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의 길을 가지만, 그게 때론 불안할 때도 있다.




질문 2 - 아이의 힘을 믿으시나요?

     

학부모님의 이런 생각엔 ‘그래도 일반적으론 일반학교를 나와야 사회적으로 안정될 수 있으며 밥벌이도 할 수 있다’는 신화가 작용하고 있다. 지금껏 일반학교를 떠나 다른 삶을 살아본 적이 없으니, 그것이 기본 조건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던 거다. 하지만 현실은 학교를 떠나는 학생 수가 계속해서 늘고 있으며, 학교 공부를 통해 계층상승이나 자기실현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거짓말로 밝혀져, 일반학교에 다니든 대안학교 다니든 그건 과정의 차이만 있을 뿐 큰 차이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언제고 남이 가는 길이 아닌, 새로운 길을 가는 사람은 수많은 갈등과 번민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준규쌤은 ‘태엽 자동차 이야기’를 해줬다. 아이는 아주 어렸을 땐 대상영속성Object permanence이 없기에 눈에 보이던 물건을 등 뒤로 감추면 자지러지게 운단다. 그건 그 대상 자체가 사라졌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상영속성이 생기면 더 이상 물건을 감추더라도, ‘그 물체는 눈에만 보이지 않을 뿐 어딘가엔 있다’를 알기 때문에 울지 않는다는 것이다. 태엽 자동차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태엽을 감아 자동차를 땅에 놓으면 자동차는 달린다. 그 때 터널을 만들면 그 터널에 들어간 시간 동안은 눈에 자동차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동차는 터널을 통과하여 나오게 되어 있다. 그 때 터널에 들어간 속도에 따라 터널을 빠져 나오는 시간은 차이가 나는데, 6개월이 된 아이는 이러한 속도 차이를 알 수 있을까? 준규쌤은 여러 시험 결과 6개월 정도가 되면 속도에 따라 터널을 빠져 나오는 시간을 안다고 말했다. 그건 곧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아이는 생득적으로 그와 같은 것을 판단을 할 줄 안다는 거다.

아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아무 것도 판단을 못하지도, 아무 것도 못하지도 않는 존재라는 것이다. 가만히 놔둬도 살아갈 방법을 배우며 어떤 상황 가운데서 자연스럽게 판단할 수 있는 존재라는 얘기다. 그러니 부모의 입장에선 ‘이 녀석이 이래서 무엇이 될까? 앞으로 잘 살아갈까?’라고 걱정이 될 테지만, 그렇게 생각할 필요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까지 이야기가 진전되자 질문을 던진 학부모님은 “아이들이 커가면서 놀라운 경험들을 해 나가고 있긴 해요. 무언지 딱 집어서 말하기는 뭣하지만,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뭔가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라고 말했다.                 



▲ 6개월이 된 아이는 자동차 속도에 따라 터널을 언제 나올지 안다.




준규쌤 후기 마지막 편에 대한 예고

     

원랜 이번 편에서 마무리를 지으려 했는데, 역시 질의응답은 발신자가 수신자가 되고, 수신자가 발신자가 되는 다이내믹한 순간이기에 하나하나 기록을 하려 하니 담을 내용이 많다. 생각 같아선 좀 더 가볍고 발랄하게 쓰고 싶지만, 이 시간은 어찌 보면 그만큼 준규쌤의 무늬가 한껏 드러난 순간이었기에 사실 전달에 심혈을 기울일 생각이다. 준규쌤도 강연 초반에 긴장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이 순간만은 평소의 모습처럼 편안해 보였고, 질문에 답할 때도 사석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안정되어 보였다. 

다음 후기는 준규쌤 강연의 마지막 후기이자, 누구나 가장 궁금해 할 법한 ‘그래서 수신자가 된다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거예요?’, ‘그래서 대안학교를 나온 아이들의 진로는 어떻게 되나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담고 있기에 가장 하이라이트라고 할 만하다. 그러니 마지막 편까지 기대하며 봐준다면 그걸로 ‘쌩유 베리 감사’하다. 



▲ 강연 시작 전에 찍은 사진. 이 분들의 삶의 무늬는 어떨까? 그런 무늬와 무늬가 만나 빚어낸 다이내믹한 이야기.





목차     


1. 아빠특강에 참여한 이유

헌 것엔 나의 무늬가 들어있다

사람의 무늬 1 - 얼굴을 통해 드러난 무늬

사람의 무늬 2 - 언어를 통해 드러난 무늬

봄이 피부로 느껴지던 그 날, 건빵이 강의를 들으러 간 까닭?

아빠들을 위한 강연장에서 드러날 준규쌤의 무늬     


2. 준규쌤의 강연엔 그만의 무늬가 드리워져 있다

날씨가 좋은 주말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이겠어?

날씨와 주말에 상관없이 모일 사람들은 모인다

준규쌤 강의 총평 1 - 나 지금 떨고 있니?

준규쌤 강의 총평 2 - 나 지금 열변을 토하고 있니?

준규쌤 강의 총평 3 - 준규쌤만의 무늬가 한껏 드러난 강연     


3. ‘대안학교’, ‘자녀교육=엄마의 일이라는 틀 벗어나기 

강연을 듣기 전 워밍업 1 - ‘대안학교’란 단어 벗어나기

강연을 듣기 전 워밍업 2 - ‘자녀교육=엄마’라는 틀 인식하기

강연을 듣기 전 워밍업 3 - ‘자녀교육=엄마’라는 틀 벗어나기

워밍업이 끝났다면, 이제 가벼운 마음으로 스타트     


4. 대안학교 아빠로 산다는 것

교육의 다양한 스펙트럼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상황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느냐의 문제

정답이 아닌 생각과 생각이 맞물려 고민의 장으로

지지자의 조건 1 - 개인이 아닌 분인으로 받아들이기

지지자의 조건 2 - 발신자가 아닌 수신자가 되자

혼란에 빠진 채 강연은 끝나다

    

5. 수신자란 무언지를 보여준 질의응답 시간

무늬를 보기 위해선 기표가 아닌 기의에 가닿아야 한다

발신자가 되기의 어려움

질문 1 - ‘아빠의 세계’가 필요한 시기는 초4학년 때까지

질문 1 - 때가 되면 아이를 놓아줄 수 있어야 한다

질문 2 - 대안학교를 보내고 있지만, 나중에 사회에 나갔을 때 적응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질문 2 - 아이의 힘을 믿으시나요?

준규쌤 후기 마지막 편에 대한 예고

    


6. 발신자에서 수신자로애씀에서 즐김으로 

질문 3 - 수신자가 되는 방법, 게임의 장에서 패턴 찾기 

질문 3 - 수신자가 되는 방법, 자녀 교육으로 해방되기

질문 4 - 대안학교 학생은 진로와 부모의 욕망 추구에 대해

질문 4 - 자식의 미래를 위해 부모는 욕망대로 살면 끝!

애쓰지 말고, 노력하지 말고 그저 삶을 살아내다



매거진의 이전글 대안학교 아빠로 산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