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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Nov 26. 2015

실패할 때 배운다

단재아이들과 00수레 설명회에 다녀오다



강동에서 부천 송내역까지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2시간 정도 시간이 걸리는 멀고 긴 여정이다. 처음에 아이들에게 설명회에 같이 가자고 말했을 때,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왜 그곳에 가야 하는지 의미도 몰라 했고 먼 곳까지 가야 한다는 데에 불만이 가득했다. 당연하다, 누군가가 이끌려서 하는 것엔 반가운 마음보다 거부감이 먼저 드는 게. 그럼에도 ‘무언가 건질 만한 게 없을까?’하는 기대와 ‘세상을 향해 나아가자’하는 마음으로 출발했다. 과연 이 여행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2시에 시작한다고 했지만, 꼭 우리들이 오길 기다렸다는 듯 2시 반이 되어서야 시작됐다. 우리가 들어갔을 땐, 많은 사람들이 어수선하게 다과를 먹으며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줬고, 아이들도 그런 분위기가 싫진 않았나 보다. 아이들에게서 미묘한 흥분 같은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게 반갑게 맞이해주는 사람들 때문에 그랬는지, 눈앞에 놓인 먹을거리 때문에 그랬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이들은 먹을 것을 잔뜩 챙겨서 자리에 앉았다.      



▲  먹을 게 있어 행복한 시간~




꾸마 그리고 OO수레   

  

설명회 전에, 자신들이 지금까지 해온 활동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부천시 ‘고리울청소년문화의집 꾸마’라는 곳이 있다고 한다. 그곳에 모인 청소년들이 시끄럽게 하자 인근 주민들과 작은 마찰이 있었단다. 그 과정 속에 지역 주민들과 소통하고자 기획한 것이 ‘OO수레’라는 것이다. 

청소년들이 OO수레를 끌고 다니며, 인근 어르신에게 차를 대접하는 것이다. 그걸 위해 아이들이 직접 수레를 만들었고, 차 만드는 레시피를 알아봤다고 한다. 꾸준히 활동을 하며 지역 주민들과 소통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고, 그 활동을 통해 문제아로 세상에 인식된 청소년문화의집 ‘꾸마’의 아이들도 몰라보게 달라졌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학교에서 흔히 하는 교육과정 발표회와 다르지 않았다. 보통 ‘실험학교’라는 이름이 붙여진 학교에선 여러 다양한 교육적 실험을 하고, 결과 발표회를 하기 때문이다. 그 때의 발표 내용은 천편일률적으로 ‘before와 after의 비교결과 효과 있었음’이라는 것이다. 그처럼 결론이 이미 정해진 얘기를 듣는 것 같은 씁쓸함이 느껴졌다.     



▲  차나 군고구마로 동네 주민들과 소통하고, 옥상라디오를 통해 소통의 장을 연다.





OO수레가 던져준 시그니피앙significant과 시그니피에signifier  

   

OO수레란 ‘공공의 목적을 위한 수레’라는 의미와 함께 ‘자신만의 컨텐츠를 담을 수 있는 공간으로써의 수레’라는 뜻도 함께 있다고 한다. 이런 다중적인 의미에서 기발함을 엿볼 수 있다. 

‘OO수레’라는 언어로 규정된 기표significant는 이해하기 쉬워 누구나 공유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의미 속에 감춰진 기의signifier는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다른 이미지가 떠오르기 때문에 공유할 수 없다. ‘사과’라는 그래픽을 기표라고 한다면 누구나 공유 가능한 어떤 특별한 상이 떠오르지만, 그 단어를 듣는 사람에 따라서는 ‘독poison’이 떠오르기도 하고, ‘빨간색’이 떠오르기도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처럼 그분들이 던져준 ‘OO수레’라는 화두는 나에게 전혀 다른 의미로 읽혔다. 그건 그들과 같이 ‘OO수레를 만들어 연대할 것이냐?’하는 물음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의 프로젝트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으로 읽혀진 것이다. 물론 프로젝트에 대한 나의 정의를 아이들에게 전해줘야 한다거나, 내 정의만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나 또한 여러 상황을 통해 생각을 정리하게 되었듯이, 아이들도 여러 상황에 부딪히고 도전해보면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정리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 아이들에겐 어떤 경험으로 다가왔을까?





프로젝트평범함에 숨긴 비범함을 찾는 것!  

   

‘프로젝트!’, ‘프로젝트!’ 자꾸 하니깐 꼭 대단한 무언가를 해야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다고 우리가 국가를 새로 만들거나, 어떤 기념비적인 일을 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하려는 프로젝트는 그러한 대형 기획을 말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일상은 보통 그냥 지나치게 되지만 잘 살펴보면 색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사람의 외형도 늘 변하듯, 세상도 깊이 바라보면 익숙한 모습 너머에 다른 모습이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slobbie님은 “훌륭한 스토리텔러는 무미건조한 많은 것들에게 생명력을 샘솟게 하는 마법사와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라고 말했던 것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프로젝트란 별의미가 없던 일상에서 색다른 면을 찾아내고 그 안에 자신만의 가치를 부여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자기 방을 일 년 내내 청소하거나, 둔촌역에서 장사하시는 분을 도우며 한 달 동안 같이 생활해 보거나, 방황하는 또래 청소년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친해지는 과정을 그리거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전기문을 짓는 활동 전부가 프로젝트가 될 수 있다. 그건 자신이 지금껏 놓치고 살아온 일상을 돌아보고, 자신만의 가치를 찾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slobbie에님의 말을 패러디하여 ‘훌륭한 프로젝트는 잊힌 자신의 모습을 되찾아 생명력을 샘솟게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 우린 열심히 살고 있다.




실패 또한 공부다 

    

질문을 던지고 그걸 참아낼 수 있는 힘은, 맹목적으로 한 길만을 좇는 삶은 사는 사람에겐 있을 수 없다. 그런 힘은 다양한 경험을 통해 무수한 실패를 경험할 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당연히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하고, 수많은 인연들을 만나 일상을 전복시킬만한 많은 경험을 해야만 한다. 

어제 출판학교에 오신 강사님은 “출판사에서 제대로 공부하고 싶으면, 많이 사고를 치면 됩니다.”라고 말하셨다. 그건 곧 “스키를 잘 타려면 많이 넘어져야 합니다.”라는 준규쌤의 말과 상통한다. 책을 만들 때 사고치지 않으려 하거나 스키를 탈 때 넘어지지 않으려 하면, 과감한 도전을 하지 않게 된다. 책을 만들 땐 같은 공정을 기계적으로 반복하고, 스키를 탈 땐 몸을 최대로 웅크린 채 느린 속도로 내려간다. 그러니 아무런 발전도, 어떠한 쾌감도 느낄 수 없다. 종종 존재를 뛰어넘는 비약을 위해서는 ‘이카루스의 날개’와도 같은 ‘열정을 실은 무모함’이 필요하다. 그런 무모함으로 실패할 때 우린 성장할 수 있다. 실패가 아름다운 이유는 실패했다하여 죽을 만큼 힘들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고 여러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처하는 법을 배우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패야말로 성공보다 더한 축복이다.

단재학교 아이들은 지금 실패하는 법과 도전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우린 잘 살고 있다. 그리고 잘 지내고 있다. 이러한 깨달음을 얻은 것만으로도 부천으로의 여행은 의미가 있다.          



 

▲ Carlo Saraceni의 그림 '이카루스의 추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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