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건빵 May 22. 2018

세월은 가도 노래는 남아

권필의 過松江墓有感

권필을 생각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게 당연히 「宮柳詩」다. 광해군의 외척인 유희분柳希奮이 국정을 농단하는 것을 보며 권필은 시를 지었다.      






시가 사람을 죽이게 할 수도 있다

     

1구에 나오는 ‘버들류’를 보며 사람들은 모두 임숙영을 생각했지만, 임숙영 자신은 그건 중전을 가리킨다고 말했고, 광해군도 이에 크게 화를 내며 신문을 하게 된다. 이때 권필은 “임숙영이 과거 시험 중 대책에서 미친 말을 많이 내었기에 저는 이 시를 지었던 것입니다. 이 시의 속뜻은 ‘경치 좋기가 이와 같고, 사람들은 모두 뜻을 얻어 맘껏 다니는데, 임숙영은 포의로 어찌하여 이런 막말을 하는 걸까?’라는 것입니다. (중략) 숙영은 포의로 함부로 이와 같이 말을 하는데도 조정엔 바른 말을 하는 이가 없다고 생각하여 이 시를 지어 모든 관리들을 바로잡고 풍자함으로 권면하길 바란 것입니다.”라고 항변했다. 

하지만 광해군은 전혀 듣질 않았고, 마침내는 권필을 죽일 뜻까지 있었지만 신하들의 만류로 곤장형으로 다스리게 했다. 어찌나 곤장형을 심하게 집행했던지, 그는 귀향 가는 도중에 죽고 만다. 예전부터 ‘시가 사람을 궁하게 한다(詩能窮人)’는 말이 있는데, 이건 궁하게 하는 정도를 지나 ‘시가 사람을 죽인다(詩能死人).’는 정도에까지 이른 셈이니, 참 기구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 진천에 자리한 송강 정철의 무덤.




스승께 술 한 잔 올리고 싶다

     

정철의 제자는 권필과 이안눌이 있다. 허균과 동시대 사람으로 그의 시인에 대한 평가엔 이 두 사람이 꼭 등장한다. 아마도 그 당시에 깊은 교류가 있었기 때문이리라. 정철은 『관동별곡』, 『사미인곡』과 같은 가사를 지어 한 시대를 풍미한 인물로, 지금으로 보면 유명 작사가인 셈이다. 

위의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철의 「장진주사將進酒辭」‘억새 속새 덥가나무 백양 숲에 가기만 가면, 누른 해 흰 달 가는 비 회오리바람 불제 뉘 한 잔 먹자 할꼬’라는 구절을 알아야 제대로 음미할 수 있다. 권필은 이 구절을 1구와 3구에 그대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고, 이렇게 스승의 가사를 인용하면서 간절한 마음을 드러내려 했기 때문이다. 

스승의 노래는 아직도 남아 세상에서 이렇게 읊조려지고 자신도 지금 이 순간 읊조려 보는데 당신은 그때와 달리 없어졌다고 생각하니 서글플 수밖에 없다. “세월은 가도 노래는 남아, 흘러간 세월이 그리워지는 옛 노래♬”라고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어느 노래처럼 세월은 가고 가사는 남아 세월이 흘러도 그리워지는 나의 스승이 있기에 마음은 한없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아려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  노래는 여전히 남아 있기에 그 노래를 들으면 그 당시가 절로 떠오른다. 아련히, 그리고  그리웁게.



누군가가 좋아했던 노래를 전혀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듣게 될 때, 누구나 마음이 쿵하고 내려앉은 경험이 있으리라. 그 노래엔 이미 그와 함께 했던 추억들이 깃들어 있고 그 노래로 인해 심연 깊숙이 가라앉고 사라진 줄만 알았던 온갖 감정이 튀어나와 나를 사정없이 흔들어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저 좋아하던 노래가 아닌, 직접 지은 노래라면 오죽할까? 더욱이 자신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누구나 여기저기서 불러대는 노래라면 더 할 말이 없을 거다. 권필의 그 아련한 마음이 남 일 같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프고 스산하고, 서글펐기에 그는 스승의 무덤 앞에서 한 잔 술도 제대로 붓지 못한 펑펑 울었으리라. 




매거진의 이전글 시 한 편으로 죽음에 이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