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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Aug 13. 2018

비행기를 타고 알마티로

2013년 6월 14일(금)

“기내식 맛있다” 또는 “기내식 별로던데”라는 말이 나에겐 어떤 특권층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그 말은 곧 해외까지 나갈 정도로 잘 산다, 출세했다는 말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말을 이젠 내가 하려하니,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다^^               




고도 10000피트에서 맛보다

     

6시 40분쯤 이륙한 비행기가 안정 궤도에 들어가자, 승무원들은 바빠지기 시작했다. 바로 땅콩, 과자가 함께 든 간식과 음료를 제공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기내식을 줬으니 말이다. 적어도 간식을 주고 1~2시간이 지난 후에 기내식을 줄줄 알았다. 알마티에 도착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남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시간 계산을 하지 않고 기내식을 바로 제공한 것이다. 물론 한국 시간으로 볼 때, 식사시간인건 맞지만 그 때문에 나온 건 아닌 것 같다. 아마도 밥을 빨리 먹고 잘 수 있도록 푹 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거겠지.

기내식은 소고기덮밥과 해물덮밥 중에 고를 수 있었다. 난 해물덮밥을 골랐다. 그에 대한 평을 하자면 심심한 듯, 부족한 듯, 맛보기인 듯한 느낌이었다. 아마도 기내식은 한국인 특유의 자극적이고 양념냄새 풍기는 음식을 내놓을 순 없었을 것이다. 비행기에는 러시아인, 카자흐인, 한국인 등의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타고 있어 나라별로 입맛도 천차만별일 것이니 말이다. 아마도 기내식의 식단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전세계인이 먹어도 크게 만족할 순 없지만 적어도 불만은 없는 식단을 연구하고 조리하려 했을 것이다. 그 때문인지 양 또한 많지도 적지도 않았다.                



▲ 기내식을 먹어보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재밌다.




고도 10000피트에서 적다

     

식사가 끝나자마자 세 장의 종이를 나눠줬다. 작은 종이 한 장과 같은 내용의 큰 종이 두 장. 작은 종이는 입국심사를 통과하기 위해 필요한 종이로 이름, 국적, 체류목적, 초청인(기관), 동반자녀수, 여권번호, 서명 등을 기입해야 하는 것이고 큰 종이는 총기소지여부, 얼마나 많은 돈, 많은 물품을 들여오는지 적는 것이어서 한국여행 후 카자흐스탄에 돌아가는 사람이 아니면 적지 않아도 된다. 그걸 학생들과 함께 적고 나니 도착까지 3시간 정도만 남았더라.                



▲ 처음에 이 종이를 받았을 때 적잖이 당황했다. 하지만  차근차근 물어보며 하면 된다.




고도 10000피트에서 보다

     

비행기는 황해를 건너 베이징을 지나 알마티로 간다. 간혹 구름이 걷힌 곳에 드넓은 평원 같은 게 보이기도 했다. 기실 그게 평원인지, 험준한 산악지형인지 알 길은 없다. 10000피트의 고도에서 조감하여 보면 모든 지형, 지물을 고저차 없이 평평하게 보인다. 그 때문에 내 마음대로 상상의 나래를 펴며 느낌을 담을 수 있는 것이다. 

난 그곳을 평원으로 생각했고 그곳을 달렸던 칭기즈칸의 후예들을 떠올렸다. 그건 곧 단재학생들도 그와 같은 기상과 포부를 지니고 이 여행을 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기도 했다.                



▲ 말 달렸을 것 같은 평원, 그곳을 누비라.




외국의 이질감공항 심사

     

알마티 공항에 내려 입국심사를 받았다. 한국에서 6시 10분에 인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알마티에 10시 20분에 도착했다. 한국과 3시간의 시간차가 나니, 한국 시간으론 새벽 1시 20분에 도착한 것이다. 무려 7시간 10분 정도가 걸린 것이지만, 현지 시각은 10시였기에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 

 「인셉션」, 「터미널」이란 영화에서 그려지는 미국의 입국심사는 매우 엄격하여 심사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이곳은 의외로 까다롭지 않았다. 여권과 비행기에서 작성한 용지를 내니 개그콘서트 왕비호가 했던 민망한 포즈인 손을 들고 겨드랑이털을 가리는 듯한 포즈를 심사원이 하는 것이다. ‘심사하는 일이 얼마나 피곤하면 내 앞에서까지 기지개를 켤까?’하는 측은한 마음에 넋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 바로 이런 포즈.



그런데 그 순간 정적이 흐르며 분위기가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몇 분이나 흘렀을까? 그제야 깨달았다. 저 포즈를 내가 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잽싸게 원래 알고 있었는데 여유를 부리는 척, 느릿느릿 그 포즈를 따라 한 후 눈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라는 주문을 받고 그대로 했다. 아마도 동일인물인지 여권과 대조하는 과정일 것이다. 그 때 심사원의 눈은 매의 눈처럼 날카롭게 나를 훑고 지나갔다. 

처음이기 때문에 하는 실수가 있다. 그건 어찌 보면 실수라기보다 모르기 때문에 하게 되는 당황스러움 같은 것이다. 다음 여행에선 이런 실수는 없을 것이기에, 첫 경험의 어리버리한 모습을 추억으로 남겨둔다.  



▲ 카자흐스탄 입국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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