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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Aug 15. 2018

카자흐스탄 음식을 처음으로 먹다

2013년 6월 16일(일)

박물관에서 나와 바로 옆에 있는 백화점에 들어갔다. 남학생들은 피자를 먹고, 여학생들은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풍요가 사람을 넉넉하고 배포 있는 사람으로 만들진 않는다 

    

재래시장에 갈 생각이었지만, 거의 저녁 시간이 되었기 때문에 저녁을 먹으러 LG거리(아르바트거리)로 이동했다. 카자흐스탄에 왔는데 어제부터 오늘까지 전통음식을 먹을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부랴부랴 찾아온 것이다. 

분위기는 한국의 여느 레스토랑 분위기와 흡사했다. 하지만 다른 점은 이곳에선 모든 반찬에 가격이 붙는다는 것이고, 그건 물이라고 해서 예외가 없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모두 목이 마르다고 했는데, 물이 나오지 않으니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물을 시켰는데, 목이 마른 아이들은 물 하나에 싸움까지 날 지경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상관없이, 자기의 컵에만 한 가득 물을 따르는 학생들을 보고 있으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콩 한쪽도 나눠 먹는다’는 우리네 속담이 있는데, 그게 이젠 ‘콩 한쪽도 나만 먹는다’로 바꿔야 하는지도 모른다. 씁쓸한 광경이다. 

이미 남학생들은 피자를 먹었고 카자흐스탄 전통음식이기에 입맛에 맞을지 몰라 적당히 먹을 수 있는 양만 시켰다. 하나하나의 음식이 나올 때마다 아이들은 굶주린 야수 같이 달려들었다. 내가 더 많이 먹겠다는 전투적인 태도라고나 할까. 그 때문에 카작 친구들은 음식에 손도 댈 수 없었다. 

물자가 풍부할수록 사람들이 넉넉해진다는 말은 수정되어야 마땅하단 생각이 든다. 넉넉함이 익숙해지면 당연함이 될 뿐이다. 당연함이 깨지는 순간 참을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이건 누가 뭐라 해도 악순환이 분명하다.           


▲ 여긴 모두 돈이다. 반찬이면 반찬, 물이면 물까지.



    

카작 전통음식 기행  

   

‘베스바르막Besbarmak’은 ‘다섯손가락’의 뜻이다. 귀한 손님이 왔을 때, 주인은 이 음식을 꼭 대접해야 한다고 한다. 유목 문화의 잔재가 이런 음식을 통해 남아 있는 것이다. 보통 말고기나 양고기를 삶아 우려낸 육수에 밀가루 반죽을 얇게 썰어 육수에 넣고 끓인다. 밑에 밀가루를 깔고 위에 말고기를 얹으면 요리는 완성된 것이다. 이 요리는 맨손으로 먹기 때문에, ‘베스바르막’이란 이름이 붙은 것이라 한다. 




‘팔라우Palau’은 볶음밥이다. 밥과 야채가 기름에 튀겨져 바삭바삭하게 씹히며 입 안에 감도는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만들 때부터 기름을 팬에 가득 두르고 밥과 야채(당근과 마늘 정도)를 넣고 볶아준다고 한다. 여기에 말고기나 양고기를 얹어 볶기만 하면 음식이 완성된단다. 꽤 짭짤한 맛이 나서, 기름을 싫어하지 않는 이상 한국인들도 잘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간혹 외국에서 음식을 먹어본 사람들의 ‘향신료를 너무 많이 써서 도무지 못 먹겠어’라거나, ‘완전 비위생적이고 어찌나 기름지던지, 김치와 고추장이 엄청 그리웠어’라는 반응을 들으며 음식 때문에 고생 많이 하겠다고 걱정했었다. 하지만 막상 먹어본 전통 음식은 그렇게 이질감이 느껴질 정도의 맛은 아니었고 나름 괜찮았다. 카자흐스탄에 음식 때문에 올까 말까 하는 사람이 있다면, 걱정 놓으라고 말하고 싶다.                






바뀐 환경바뀌지 않은 나

     

음식점에서 남학생들과 여학생들의 신경전이 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어젠 교육원 학생들과 활동을 함께 해서인지, 서로를 트집 잡거나 장난치진 않았다. 그런데 우리끼리 일정을 진행한지 하루 만에 이렇게 일이 터지고 만 것이다. 

누구나 언성을 높일 순 있지만 그건 상황에 따라 해야 한다. 하지만 여기가 해외이건, 어른들 앞이건, 밥상머리이건 전혀 상관없이 지금껏 해오던 대로 놀리고 야유하고, 모든 문제를 타인 탓으로만 돌리고 있었다. 비상식적으로 서로의 언성이 극도로 높아졌기에 그쯤에서 해결 지을 수밖에 없었다. 미봉책으로 마무리하며 ‘누가 누군가에게 상처 입혔다는 소리가 들리면 가만 두지 않겠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환경이 달라지면, 어찌되었든 행동하는 것도 바뀔지 알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누군가 그러지 않았나. 한국 안에선 한국을 욕하던 사람이 나가면, 애국자가 되어 돌아온다고. 그건 낯선 환경이 주는 불안 때문에 그나마 자신이 살아온 땅에 환상을 덮어씌우기 때문에 나온 말이지 않은가. 그처럼 단재친구들도 낯선 땅, 낯선 인연과 엮이면 자신이 지금껏 의심 없이 누려온 것들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전혀 그러지 못했다. 

이런 상황 또한 여행을 하며 하나하나 풀어 가야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되었든 이 일을 계기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남학생들은 ‘카작여행동안 같은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라는 자신들만의 결의를 전해왔다. 완전한 해결책 따위는 원래 없다. 그저 같이 지지고 볶고 살아가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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