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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Aug 17. 2018

6월에 함박눈을 맞다

2013년 6월 17일(월)

어제 저녁에 모래바람이 심상치 않았다. 박물관에 가고 LG거리를 다닐 때만 해도 전혀 바람이 불지 않았는데 저녁이 되니 금세 어둑어둑 해지며 세차게 불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중동의 모래바람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바람과 많이 달랐다. 풍속이 엄청나서 자칫 잘못했다가는 중심을 잃고 쓰러질 수도 있을 정도였다. 그게 비가 오기 전의 증조라고 한다. 한국에선 비가 오기 전에 달무리가 나타나고 기온이 올라가는데 반해, 여긴 불지 않던 바람이 분다.



▲ 어제 저녁에 먹을거리를 사러 갔을 때부터 바람이 심상치 않았다.



카자흐스탄은 중동의 광활한 대지에 위치하고 있다. 여름엔 건기이고 겨울엔 우기라고 한다. 여름엔 비를 보기 어렵지만 겨울엔 많은 눈이 내려 그 눈이 녹은 물을 식수로 사용한단다. 그런 이유 때문에 여름에 내리는 비는 ‘축복’과도 같은 의미라고 한다. 우린 카작에 온지 이틀 만에 축복을 맛본 셈이다. 과연 카작에 있는 동안 몇 번이나 축복을 누리게 될지 기대가 되었다. 실제로 한국은 오늘부터 장마여서 내일은 폭우가 내린다고 하니, 두 나라의 엄청난 거리만큼이나 날씨마저도 확연히 다름을 느낄 수 있었다.                






비 오는 날에 침불락에 오르다 

    

하지만 오늘은 야외 일정을 해야 해서 비가 내리는 게, 달갑지만은 않았다. 다행히도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원장님과 상의하러 갔더니, 원장님도 상황을 지켜본 다음에 하자고 하셨다. 지금처럼 부슬부슬 내리는 정도면 충분히 오를 수 있지만, 빗줄기가 굵어지면 다른 일정으로 바꿔야 하니 말이다. 원장님과 30분정도를 이야기하며 상황을 봤더니, 비는 서서히 그쳐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출발하기로 했다.                



▲ 침불락 오르는 길. 케이블카도 쉴 새 없이 왔다 갔다 한다.




여름눈과 고정관념

     

교육원 버스를 타고 침불락Шымбулак에 갔다. 산을 오르면 오를수록 비는 눈으로 바뀌어 갔다. 30° 정도 되는 경사를 버스가 오른다. 급경사라 힘이 부치는 구간에선 후진하여 평지까지 내려갔다가 전속력으로 오르기도 했다. 오르는 내내 케이블카가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케이블카를 탈 수 있는 곳에서 내리니,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6월에 내리는 눈이라니, 우리에겐 무척이나 낯선 광경이었고 기이한 체험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한 순간에 겨울 속으로 들어왔음에도 입고 있는 옷은 여름옷이라는 것이었다. 초겨울의 날씨처럼 매서운 추위가 옷깃을 파고들어 사시나무 떨 듯 몸을 떨게 만들었다. 아침에 얇은 긴팔 옷만 챙겨서 내려오자, 아쌤이 “그렇게 올라가면 추워서 엄청 고생해요”라고 말해서 겨우 여러 겹의 옷을 껴입었다. 반팔을 4겹 정도 껴입은 다음 긴 팔 남방으로 마무리 지은 것이다. 

이렇게까지 준비를 하고 왔는데도 추위에 자비란 없었다. 단재 친구들도 나처럼 만만하게 보아, 방풍자켓만 챙기고 반바지를 입고 오기도 했다. 한 번도 경험해본 적이 없으니, 이런 경험이야말로 우리의 고정관념을 와장창 깨부수기에 제격이었다. 때론 ‘사람 사는 곳이 모두 똑같다’고 생각하며 한국에서의 경험으로 이미 충분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6월의 눈이나, 6월의 추위를 경험하고 있는 지금 그런 생각들이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처럼 무력하다는 걸 알겠다. 경험하지 않은 곳이나 의식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세상의 진면목을 보게 되고 내가 어떤 사회적 문법에 갇혀 살아왔는지 여실히 보이기 때문이다. 하룻밤 사이에 극단적인 두 환경을 동시에 경험하며 ‘세상은 넓다’는 말이 확 와 닿았다.                



▲ 이렇게 입어도 춥다 느껴질 정도다. 분명 어제까진 반팔 반바지도 덥다 느껴졌는데.




여름엔 겨울이겨울엔 여름이 그립다  

   

보통 ‘이렇게 덥고 습할 바에야 빨리 겨울이 왔으면 좋겠어’라는 말을 하곤 한다. 그렇던 사람이 막상 겨울이 되면 또 “여름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한다. 그런데 이런 변덕이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이야기였던 것이다. 



▲ 한여름 중에 계절이 선사한 깜짝 겨울이란 선물.



어제 땡볕더위(그래도 습하진 않아 좋았다만) 속에 시내 구경을 할 땐, 빨리 서늘해지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언제 그런 생각을 했냐는 듯이 빨리 산을 내려가 땡볕더위에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더라. 

여기는 침불락에 설치된 3단계의 케이블 중 1단계 케이블카가 끝나는 곳이다. 3단계를 다 타고 올라가면 3000M 정상에 오를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2단계 리프트는 스키장이 개장할 때만 운행하며, 3단계 케이블카는 기후에 따라 운영되어 겨울에 온다고 해도, 오르지 못하고 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우린 여기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가기로 했다. 

점차 내려감에 따라 눈은 작아져 비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산 중턱(해발 1500M)에 설치된 아이스링크장인 메데오Медео가 보였다. 중턱에 저런 건물을 짓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애를 썼을까. 실제로 산비탈에선 어제 저녁 분 바람에 뽑힌 나무들을 기계로 옮기는 작업을 하는 사람들을 여럿 볼 수 있었다. 물론 그들은 이런 추위에 대비를 했을 테지만, 추운 날씨 속에 비탈진 산에서 일을 하는 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 걸 보고 있으면 지금 우린 얼마나 행복한지 느낄 수 있다. 그들은 우리의 반면교사였던 것이다. 

차에 들어가니 히터의 열기가 온 몸을 녹여줬다. 그곳에서 점심으로 준비한 케밥을 먹었다. 한 명이 하나를 다 먹기도 힘든 양이었는데 한 사람 당 하나 반씩 먹게 했으니, 태반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 눈을 맞으며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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