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24일(월)
저번 여행기에서도 밝혔다시피 책 속에만 갇혀선 안 되면 다채로운 삶 속에 몸을 맡긴 채 삶의 현장을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는 단단한 마음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여행은 ‘잡색의 삶’ 속에 들어가 보는 기회이다. 이런 기회를 통해 공동의 경험을 함으로 아이들이 어떤 방향으로 성장하게 될지 기대가 된다. 책을 통해 여태껏 쌓은 앎의 단서들을 현실 세계에서 풀어낼 수 있느냐, 없느냐를 경험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백색의 앎’이 ‘잡색의 삶’과 공명하며 책이 곧 나이며, 내가 곧 책書自我 我自書인 경지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른다고 사람은 성장하지 않는다. 어떤 경험의 장 속에서 살아왔느냐가, 그래서 어떤 경험들이 나의 존재를 할퀴고 지나갔느냐가 성장의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걱정을 앞세워 교사나 부모가 아이들이 경험의 장에 나서는 걸 막으려 할 것이 아니라, 경험의 장 속에서 맘껏 느끼고 맘껏 나아갈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주고 응원해줘야 한다. 우리의 삶을 성장시킨 건 ‘팔할이 경험’이었노라, 외치며 말이다.
오늘은 혜린이가 우리와 일정을 함께 하지 못한다. 슈른의 가족이 시골로 야유회를 가는데, 혜린이와 함께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시골 풍경도 보고 맛있는 음식도 먹을 예정이란다. 이로써 하나의 걱정은 덜었다. 슈른이란 친구를 알지 못해, 과연 혜린이와 잘 맞을까 걱정했는데 나의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챙겨주며 잘 지내고 있으니 말이다. 이와 함께 근호도 아르토르와 잘 지내고 있다. 아르토르 아버지가 적극적으로 근호와 친해지려 한단다. 탈디쿠르간에서의 일정이 별문제 없이 잘 진행되어 다행이다.
오늘은 대통령 학교를 탐방하는 날이다. 학교를 구경한다는 말이 어색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학교는 체제의 산물로 어딜 가든 규격화되어 있기 때문에,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말을 뒤집어 보면, 오히려 학교를 파악한다는 건 그 체제를 파악한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좀 더 오버하면 ‘그 나라를 알려거든 학교를 가보라’라고 말해도 되지 않으려나^^ 그래서 학교의 교과과정이 어떤지, 시설은 어떤 식으로 구성되어 있는지를 보면 카자흐스탄 사회의 단면을 볼 수 있다. 더욱이 이 학교는 대통령의 이름을 딴 영재학교이기에, 대통령이 생각하는 인재상은 무엇인지 뚜렷하게 볼 수 있다.
지금은 방학기간이란다. 모든 초중고 학교가 방학을 동시에 한다고 한다. 학기의 구성은 ‘가을 학기: 9월 1일 - 11월 4일 / 겨울 학기: 11월 13일 - 12월 29일 / 봄 학기: 1월 9일 - 3월 20일 / 여름 학기: 4월 2일 - 5월 25일’로 되어 있어 9월에 한 학년이 시작되어 총 4번의 방학이 있고, 여름방학이 3개월 정도로 가장 길다고 한다. 우리가 갔을 때는 이미 한 학년을 마무리하고 여름방학에 들어간 때였던 것이다. 하지만 방학 치고는 학생들이 꽤 많았다. 방학인줄 몰랐다면, 학기 중인 것을 착각할 정도로 말이다. 여기도 방학이라고 해서 마냥 쉬지는 않나 보다. ‘Summer School’이라 하여 특기적성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교장 선생님과의 면담시간은 짧았다. 내일부터 유럽으로 해외 출장을 떠나시기 때문인지, 왠지 모르게 바빠 보였다.
교장 선생님은 어제 테켈리 여행이 어땠냐는 질문부터 꺼냈다. 난 ‘힘들긴 했지만, 꽤 보람 있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그 후 디아나 선생님과 러시아어로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눴다. 아마도 일정이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는지 점검하는 거 같았다.
그러고 나선 바로 궁금한 것이나, 제안할 것이 있으면 말하라고 하셨다. 그래서 이런 한국과 카자흐스탄의 학생 교류 사업이 내년에도 차질 없이 진행되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랬더니 교장 선생님도 이러한 교류 활동에 기대가 크다며 내년에도 당연히 계속 될 것이라 대답해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