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24일(월)
학교 시설은 한국의 최근에 지어진 학교시설처럼 좋았다. 각 교실에 컴퓨터가 설치되어 e-learning을 진행할 수 있는 것은 기본이고 과학ㆍ수학 영재학교답게 과학실엔 다양한 과학실험을 할 수 있는 장비들이 있었으며 심신의 조화로운 발달을 위한 체육시설과 두 군데의 수영장이 완비되어 있었다.
그뿐인가? 이 학교의 양호실은 병원을 방불케 했다. 한국의 양호실이 치료가 목적이 아닌 응급처치를 하거나 쉴 수 있는 곳이라 한다면, 이 곳 양호실은 치료도 하고 예방도 하는 그런 곳이라 할 수 있다. 각 과별로 나누어져 있어 세부적인 진료가 가능했으며, 치과에는 전문적인 치료를 할 수 있는 장비까지 있었으니 말이다. 대통령 학교 학생들은 적어도 아픈 것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한국의 위상이 높아진 것인지, 대통령 학교에 한국어 교실이 떡 하니 있었다. 그 광경을 보는데 어찌나 신기하던지. 한국어 교실엔 한글 구조도와 한국지도가 벽면에 걸려 있다. 책장엔 단재학교에서 준 『다르다』라는 책과 각종 사전, 한국 관련 책들이 비치되어 있다. 그 중에 작년에 3주간 한국 체험을 찍은 사진으로 구성된 앨범이 눈에 띄어서 한참이나 봤다. 이런 식으로 우리가 줬던 자료들이 이곳에서 소중하게 간직되고 있는 것을 보니, 작년 3주간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뿌듯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동해가 일본해로 표기된 건, 분명한 오기였다. 명칭 때문에 두 나라의 심기가 불편한 상황인데, 한국어 교실에서마저 그런 현안에 무관심하다는 게 어이없게 느껴진 것이다. 이것이 자칫 잘못하면 ‘한국에 대한 멸시’로 비약될 수 있기 때문에 당연히 조심해야 한다. 만약 모르고 그랬다면 당연히 ‘동해’로 바꾸는 게 맞지만, 제3국의 입장이기에 어떤 식의 표기든 불편했다면 아예 바다이름을 명기하지 않는 게 낫다.
아이노르 선생님은 한국어 교사인데 유창하게 한국어를 잘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초등학생 수준의 대화는 충분히 가능하다. 그리고 이곳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 수는 많지 않다고 한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한국어 수업에 별 관심이 없고 여학생들만이 관심을 보인다고 한다. 아쌤처럼 드라마, K-POP 등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을 알게 된 경우가 대부분인 것이다.
실제로 이 날 2층에 마련된 체스장에서 체스를 두고 있을 때, 우리에게 관심을 보이며 말을 걸어오는 학생들은 여학생들뿐이었다. 우리나라가 이미지를 쌓기 위한 장기적인 계획이 있다면, 더 이상 한류에 의존하는 것은 피해야 할 것 같다. 단기적인 이미지 재고에는 도움이 되지만, 장기적으로는 한국에 대한 편견을 심어줄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점심은 우리만을 위해 차려졌다. 학생식당에서 학생들과 같이 점심을 먹을 줄 알았는데 격리된 공간에서 먹게 되니 아쉽긴 했다.
하지만 빵과 과일, 그리고 메인 메뉴까지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었다. 이렇게 극진한 대접을 받긴 처음이다. 그리고 우리의 입맛에 안 맞으면, 어떨까 걱정하며 영양사 선생님이 옆에 앉아, 우리의 평가를 하나하나 챙겨 듣고 계셨다. 아이들은 국이 너무 짜다는 평을 주로 했고, 영양사 선생님은 내일부터 가급적 짜지 않게 하겠다고 대답해주셨다. 고마운 일이다.
오후에는 박물관과 공원을 돌아다녔다. 박물관은 탈디쿠르간의 자연환경에 대해 소개되어 있었다. 특히 Altyn emel이란 사막에서 사는 짐승들을 박제해 놓은 게 눈길을 끌었다. 그 외의 전시관은 대통령의 업적 기념관과 유목 생활에 대한 소개관 등이 있었다.
알마티 국립박물관, 아스타나 대통령 기념관, 그리고 탈디쿠르간 박물관까지 세 군데의 박물관을 관람하고 나니, 카자흐스탄에서 자부심을 느끼는 게 어떤 것인지 한 눈에 보였다. 유목민족인 것에 대한,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의 업적에 대한, 자원이 풍부하다는 것에 대한, 다민족 국가인 것에 대한 자부심이 엄청나다는 것이다. 그런 자부심이 어느 박물관을 가든 기본 내용으로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물관에서 나와 공원을 거닐었다. 분수대 근처에서 아이스크림이 팔기에, 그걸 다함께 먹으며 대통령 학교 첫 날의 일정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