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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Nov 18. 2018

한시와 사랑에 빠지다

김형술 특강 - 조선 후기 한시 쇄신의 방향 1

긴 시간 돌고 돌아 다시 한문 임용을 준비하면서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는 걸 느끼고 있다. 그 중 가장 큰 것은 단재학교에서의 교사로서의 경험과 무수한 얘기들을 썼던 글쓰기가 한문공부를 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어쨌든 교사 경험이나 글쓰기 경험은 학문을 하는 진실성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건 사태를 제대로 보려는 진지한 마음이 있는 것이고, 그걸 그 누구의 말이 아닌 내 안에 흡수된 방식으로 담아내는 것이니 말이다.                




한문과 마주 보고한문과 한바탕 어우러지다

      

예전엔 무언가를 고민하기도 전에, 뭘 해봐야겠다고 생각하기 전에 모든 게 나에게 닥쳐 있었다. 인간을 ‘세상에 던져진 존재’로 생각 이전에 이미 이 세상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무작정 수용해야만 하는 입장에 있었던 것과 똑같다고 보면 된다. 그러니 왜 읽어야 하는지 생각도 해보지 않은 논어맹자와 같은 어렵디 어려운 책을 읽어야 했고 한문학사라는 시기별로 한문학사의 흐름을 꿰뚫어 놓은 문학사를 통째로 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떤 의미 따윈 필요 없다. 그저 임용에 합격하기 위해서 해야 한다’는 외재적 목적만을 부여한 채 버겁게 공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내 나름대로는 즐겁게 공부하자, 한문을 알아가는 즐거움으로 공부하자고 되뇐들 그건 헛된 구호에 그치고 말았던 것이다.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다시 임용공부를 해보겠다고 왔을 때 가장 크게 걱정됐던 것도 바로 그거였다. 한문임용에서 처절한 패배를 했고, 씁쓸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위에서 밝혔다시피 시험의 무게에, 한문의 위압감에 짓눌려 그 시기를 버텨내고 있기도 했다. ‘그런데 다시 그 속으로 나를 몰아세우고 밀쳐 넣는 건 자살행위가 아닐까?’하는 걱정이 드는 건 당연했다. 그건 단순히 걱정이라기보다 왜 하필 이 시기에 다른 꿈을 맘껏 꿔도 되는 이 시기에 회귀하려 하는가에 대한 의문 제기이기도 했다. 그래서 맘을 먹기 전까지는 끙끙 앓았던 것 같다. 

하지만 막상 임용공부의 길로 다시 들어선 지금은 그때의 수많은 고민들과 걱정들이 ‘해보지도 않은 사람의 기우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6년 간 단재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며 쌓인 경험치들, 그리고 여러 글을 쓰며 갈고 다듬던 시간들이 결코 헛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럴 때마다 다시 한 번 더 느끼게 된다. ‘세상엔 씨잘데기 없는 경험 따윈 없다’는 생각이 얼마나 진실한 얘기인 지를 말이다.                



▲ 현세가 만든 [phycho]를 함께 보는 아이들. 단재학교에서 영화도 만들고 함께 자전거여행도 하며 함께 살아냈던 순간들.




형술쌤, 한시의 세계로 들입다 초대하다

     

더욱이 이렇게 한문과 한껏 어우러져 놀 수 있도록 도와준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 바로 소화시평』 스터디가 그것이다. 작년과 올해 새 교수님 두 분이 부임하면서 한문교육과 내에선 작은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게 바로 교수님이 진행하는 『소화시평』 스터디가 열렸다는 것이다. 

학생들끼리 하는 스터디야 자연스럽게 각자의 의견을 말하고 내용을 체크하는 것들이 모두 자유롭지만 교수님과 함께 하는 스터디는 그렇질 못했다. 강의식으로 이끌어가는 경우가 태반이고 하는 말을 무조건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하기에 바빴으니 말이다. 그래서 교수님 스터디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무척 궁금했고 한시라는 난해한 것으로 하는 스터디는 어떨지 기대됐다. 

스터디에 대한 소감들은 이미 여러 군데서 밝힌 적이 있으니, 여기선 길게 얘기하진 않겠다. 단지 교수님이 하는 스터디인데도 학생들끼리 하는 스터디처럼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얘기하고 그것을 진지하게 생각해주고 답해주는 모습, 그리고 한시를 분석해야할 대상이 아닌, 이해하고 느낄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모습이 좋았다. 

나처럼 한시, 물론 한시든 그냥 시든 시에 대한 선입견이 상당하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시는 분석의 대상이고 정답을 맞춰야하기에 공부할 대상이었지 한 번도 감상이나 느낌,, 그리고 누구나 쉽게 쓸 수 있고 그게 하등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걸 느껴본 적은 없다. 한문 자체도 난해함 때문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는데 한시는 짧은 구절임에도 해석조차, 그리고 뭘 말하고 싶은지 조차 명료하지가 않아 늘 고통만 안겨주던, 더 이상 공부하고 싶지 않던 그 무엇이기까지 했었다. 그런데 분명한 건 ‘소화시평 스터디’는 한시를 전혀 다르게 느끼게 했다는 것이고, 한시의 매력을 맘껏 느낄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한시가 재밌어지니, 연쇄적으로 한문 자체가 즐거워질 수밖에 없었다.                




처음으로 듣는 전공 특강을 기대하며

      

이래서 후회를 하든, 잘했다고 생각을 하든 해보라고 하는 것이다. 해보면 그걸로 인해 달라지게 되어 있다. 사람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의식도 수시로 바뀌니, 완전한 나, 흔들림 없는 나를 구현하려 노력할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나를 사랑하고 흔들리는 나를 감싸 안으며 뚜벅뚜벅 걸어갈 뿐이다. 

수요일이면 ‘소화시평’ 스터디가 있는 날인데, 이날은 특이하게도 7시부터 김형술 교수님의 특강이 잡혀 있다고 스터디 대신에 그걸로 대신한다는 카톡이 왔다. 그렇지 않아도 몇 달 전에 교수회의 때 김형술 교수의 특강이 있다는 현수막을 보고 가보고 싶긴 했는데, 가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이번엔 참여해도 된다는 카톡까지 왔으니, 이런 자리는 참여하지 않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과연 어떤 분들이 오시는지, 그리고 그 자리에서 교수님은 어떤 이야기들을 한껏 풀어내실지 기대되기 때문이다. 

서울에 있을 땐 이런 저런 특강을 많이 찾아다니긴 했지만, 이렇게 다시 임용을 시작하면서는 처음으로 특강을 듣게 되었다. 거기다가 지금까진 그저 북 콘서트나 교직생활 관련 특강이 주였다면, 최초로 나의 전공 관련한 특강이니 더욱 기대가 됐다. 7시에 시작하기에 6시 50분에 노트북을 챙기고 강의실로 들어갔다.      



▲  4월 11일에 첫 스터디가 있었다. 그 자리에 참석하게 된 건 신의 한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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