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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May 08. 2016

맹상군처럼 사귀고 잡스처럼 배워라

13. 박동섭의 ‘트위스트 교육학’ - 칭송받지 못하는 교사, 네 번째

‘모름이 축복’이라는 얘기를 통해, 저번 후기에선 브리콜라가 전해주는 삶론을 이야기 했었다. 우리는 눈앞에 바로 보이는 이득만을 추구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삶 또한 너무도 빈약해져 버렸다. 당장 이익이 되는 일엔 온 맘과 힘을 다 쓰지만, 그렇지 않은 일엔 관심조차 갖지 않게 된 것이다. 이런 우리들에게 브리콜라가 전해주는 도구를 선별할 때의 관점은 우리가 잃어버리고 살아온 다른 가치들을 일깨워주기에 충분했다. 도구의 미래적 가치, 잠재적 가치를 보고 그걸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우린 처음부터 그런 능력을 타고 났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눈앞의 이익에만 매몰되지 않으면 우린 브리콜라들이 지녔던 감각을 어느 정도는 되찾을 수 있고, 그에 따라 넓은 혜안을 지니며 살아갈 수 있다.

그렇게 다른 가치에 대해 알게 되었다면, 이번 후기에선 맹상군이 들려주는 관계론과 잡스가 들려주는 공부론을 통해 그런 생각을 다듬어보자.                



▲ 갈 수록 어두워져 가는 바깥 풍경과 대조적으로 안은 더욱 환해지고 있다.




혼란기에 꽃핀 다양한 철학과 관계학

     

중국의 역사는 대국大國으로의 통일과 소국小國의 난립이 반복되며 흘러왔다. 이럴 때 흔히 대국으로 통일된 후에 나라가 안정되며 다양한 철학들이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현실은 전혀 반대였다. 중국 철학을 대표하는 공자와 맹자의 유가儒家, 노자와 장자의 도가道家, 한비자와 상앙의 법가法家가 모두 춘추전국春秋戰國의 소국이 난립하여 이익을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을 죽이고, 한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것이 당연시되던 시대에 성립됐다. 그에 반해 진나라가 통일한 후엔 분서갱유焚書坑儒를 일으켜서 나라가 인정하는 철학 외의 책들은 불태우고, 학자들을 모질게 탄압했다. 이처럼 안정기엔 옳다고 생각되는 한 가지 가치관이 정립되어 더 이상 다양한 철학이 필요 없어지지만, 혼란기엔 이미 전통적인 가치가 무너져 내려 옳다는 것 자체가 붕괴되어 무수한 사상들이 혼란을 극복하려 한바탕 대결을 펼칠 수밖에 없다.

그래도 공자가 활약할 당시인 춘추시대(BC 770~403)엔 주나라가 왕의 나라로 인정받고 있어서 다른 나라들이 함께 뭉쳐야할 구심점 역할을 했었지만, 맹자나 묵자가 활약할 당시인 전국시대(BC 403~ AD 221)에 이르면 주나라는 붕괴되어 구심점이 사라짐으로 철저한 약육강식만이 자리하게 된다.                



▲ 가장 혼란스러운 시기에, 역사에 길이 남을 철학들이 탄생했다.




맹상군이 들려주는 관계학

     

지금부터 이야기하게 될 맹상군孟嘗君(?~BC 279)은 바로 이런 전국시대 말기의 혼란기에 활약한 인물이다. 그러면 우선 그의 일화를 읽어보자.           



전영(맹상군의 아버지)이 설땅에 부임했다. 그에게 자식이 있었는데 이름은 ‘문’이었고, 식객이 무려 수천 명에 이르러 명성이 제후에게까지 들릴 정도였으며 호를 ‘맹상군’이라 했다.

진나라 소왕이 맹상군이 어질다는 소문을 듣고 먼저 제나라에서 인질을 바치게 하여 (맹상군을) 보게 되길 구하였다. (맹상군이) 도착하자 (진나라에) 머물게 하여 가두고 (맹상군이 진나라에 후환이 될까 걱정하여) 죽이려고 했다. 맹상군은 사람을 시켜 소왕이 총애하는 후궁에게 가서 풀어주기를 요청하니, 후궁이 “그대의 흰 여우 가죽옷을 갖길 원하오.”라고 말했다. 맹상군은 예전에 소왕에게 (흰 여우 가죽옷을) 헌납하였기에 다른 가죽옷이 없었다.

식객 중에 개구멍으로 도둑질을 잘 하는 사람이 있어 진나라 창고로 들어가 가죽옷을 훔쳐 후궁에게 바치니, 후궁이 말해주어 풀려나게 되었다. 곧 달려서 도망가며 이름을 바꾸고 한밤중에 함곡관에 이르렀다. ‘닭이 울어야만 손님들이 출입할 수 있다’는 국경지대의 법이 있어 (옴짝달싹 못하게 되자), 진왕이 후회를 하여 자기를 쫓아올까 두려워했다. 식객 중에 닭 울음소리를 잘 내는 사람이 있어 울음소리를 내니 모든 닭이 일제히 울어댔다. 마침내 통행증을 펴 보이고 (진나라)를 벗어나게 됐다. 한식경(밥 먹을 동안)에 추격하는 (진나라) 군대가 과연 이르렀지만 그들을 붙잡진 못했다.

田嬰封於薛 有子曰文 食客數千人 名聲聞於諸侯 號爲孟嘗君

秦昭王聞其賢 乃先納質於齊以求見 至則止囚 欲殺之 孟嘗君使人 扺昭王幸姬求解 姬曰 願得君狐白裘 蓋孟嘗君嘗以獻昭王 無他裘

客有能爲狗盜者 入秦藏中 取裘以獻姬 姬爲言得釋 卽馳去變姓名 夜半至函谷關 關法 鷄鳴方出客 恐秦王後悔追之 客有能爲鷄鳴者 鷄盡鳴 遂發傳出 食頃追者果至 而不及  -『十八史略』


          

여기가 우리가 자주 쓰는 ‘계명구도鷄鳴狗盜’라는 성어의 출전이기도 하다. 맹상군은 제나라 고관의 아들이었지만, 처음부터 인정을 받았던 것은 아니다. 그의 형제들은 무려 40명이나 되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런 가운데서도 아버지가 불러들인 식객들을 대접하는 역할을 맡게 됐을 때, 잘 대접했을 뿐만 아니라 식객들 사이에서 평판도 높아졌기에, 결국 그의 아버지는 그를 후사로 세우게 된다.



▲ 맹상군은 식객을 무려 3000명이나 두었었다. 많다는 게 중요하다는 게 아니라, 어떤 구성이냐가 중요하다.



맹상군은 한 가지 재주라도 있으면 거부하지 않고 식객들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무려 천 명의 식객이 모이게 되었으며, 그가 죽을 땐 무려 삼천명의 식객이 있었다고 한다. 물론 그런 인물 중엔 무위도식을 하는 사람도, 별다른 재주가 없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거부하거나, 조금이라도 못마땅한 구석이 보인다고 쳐내지 않았다. 모든 관계는 지금 당장의 이득이란 관념으론 도무지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있기에, 이익에 따라 관계를 맺진 않은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맺어진 관계들이 위급한 상황에 몰리면 어떻게 도움이 될진 아무도 모른다. 진나라에서 맹상군의 명성을 듣고 그를 불러들일 때만 해도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신하가 진소왕에게 맹상군이 제나라 출신으로 언젠가는 배신을 때릴 것이고, 후환이 될 것이라고 알려주자마자 진소왕은 겁을 먹고 만다. 그래서 그를 초빙한지 얼마 되지 않아 그를 감옥에 가두고 살해하려고까지 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위급한 상황에서 정작 필요했던 사람은 그 전까지는 전혀 쓸모없이 밥만 축낸다고 생각했던 부류의 사람이었다. 바로 도둑질을 잘 하는 사람과 닭소리를 잘 내는 사람이 그들이었던 것이다. 그들의 도움으로 맹상군은 제나라로 안전하게 도망갈 수 있었다.

맹상군이 전해주는 관계론의 핵심이 바로 이것이다. 지금 당장 도움이 되느냐, 그리고 나에게 유용한 능력이 있느냐가 관계를 맺는 기본이 아니라, 지금 당장은 알 수도 없고 쓸모도 없다고 생각되는, 그래서 도무지 알 수 없지만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관계를 맺는 기본이라는 사실이다.                



▲ 관계론을 생각할 때 맹상군을 떠올릴 수 있다면, 뭔가 다른 관계론도 가능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이익의 관계론이 팽배한 시대에 갇히지 않기

     

며칠 전에 “‘내 아이 명품친구 만들어주자’ 수억 대출받아 부촌 이사도”라는 기사의 제목을 읽고 깜짝 놀랐다. 우리 사회의 관계론이 무엇인지를 아주 명확히 보여주는 기사였으니 말이다.

더 이상 아이들은 관계를 만들 수 있는 힘도, 그리고 관계를 지속할 수 있는 힘도 잃어버렸다. 그러기 전에 부모가 먼저 ‘좋은 선물’이란 그럴 듯한 명분으로 아이들이 동질적인 집단과만 어울리도록 조작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돼지엄마’들은 최상위 성적을 지닌 학생들로만 그룹을 만들어 그들끼리 친해지도록 전심전력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다 성적이 떨어지면 가차 없이 관계를 끊어버려, 아이들은 자신의 친구를 선택할 수도, 이질적인 존재를 만날 수도 없게 한단다. 이런 상황에 대해 어른들은 “엄마가 부지런해야 아이에게 ‘명품 친구’가 생긴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상황까지 왔다.



▲ 부모의 욕망, 자식을 위한다는 미명, 그것이 모두 거짓일 수 있다는 것을 알까?



이에 대해 우치다쌤은 “‘가치관과 생활양식을 달리하는 사람과는 공생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배운 아이들은 합리적으로 추론을 한 상태에서 그들을 그런 식으로 키운 부모들에 관해서도 똑같은 배제의 화살을 쏘게 될 것이다”고 부모의 그런 욕망이 결국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 되돌아갈 것이라 목소리를 높인다. 사람은 애초에 나와는 다른 존재에게 끌릴 수밖에 없고 그런 끌림이 사회를 더욱 건강하게 만들었으며, 인류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사회가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끼리끼리의 문화는 더욱 확산되고 이질적인 것은 쳐내려고 애쓴다. 그러니 그들은 굳이 이해하려 하지 않아도 쉽게 이해되는 동질적인 관계만을 추구하게 되어 결국 이질적인 모든 것을 밀쳐내려고만 하게 된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결국 아이의 입장에서 점차 이질적인 존재로 느껴질 부모를 멀리하게 되고, 심지어는 멀티 아이덴티티를 지녀 이해가 되지 않을 자신조차도 거부하게 되어 심각한 망상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동일성을 추구하려는 헛된 욕망은 버리고, 관계 또한 현재의 이익에 집중하여 협소하게 맺으려는 어리석음은 버리고 지금 당장은 모르지만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그런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마음을 열어야 한다. 어찌 보면 지금 당장은 알 수 없는 그런 관계를 맺을 수 있을 때 우리 또한 다양한 세상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을 것이다.                



▲ [다르다] 2호에 실은 우치다쌤의 글. 동질적 집단으로 친구를 구성하려는 욕망이 결국은 부메랑이 되어 온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스티브 잡스의 배움론  

   

스티브 잡스Steve Jobs(1955~2011)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잡스는 대학교를 다니다가 중퇴를 하고 학교에 머물며 자신이 듣고 싶은 과목만 듣게 된다. 이 때 캘리그래피 강의를 듣기도 했다. 그 당시 컴퓨터는 IBM이 석권하던 시기였는데, 잡스는 애플컴퓨터를 출시하며 서서히 점유율을 높여가게 된다.

어떻게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그건 다름 아닌, 애플컴퓨터는 트루타입 글꼴을 적용하여, 개성 있는 문서를 만들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잡스가 대학교를 중퇴하고 배운 캘리그래피는 그렇게 컴퓨터와 접목되며 애플제품만의 독창성을 지니게 되었다.



▲ 잡스의 공부론은 전혀 무관할 것 같은 캘리그래피를 배우는 데서부터 시작됐다.



잡스가 대학을 중퇴했다는 것은 지금으로 봐선 무모한 행위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안정된 노선을 제 발로 도망쳐 나와 허허벌판에 놓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뿐인가, 그 후로 배운 캘리그래피는 아마도 주위 사람들에게 ‘잡스가 요즘 공부에서 도피하려 씨잘데기 없는 것만 하고 있다’는 오해를 충분히 살만한 일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자신의 진로와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공부가 아니면, 모두 다 ‘씨잘데기 없는 것’으로 치부되고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기 때문이다. 아마도 잡스도 그런 비난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관심을 가지고 배웠던 것들이 차후엔 활용되어 그 당시에는 나올 수 없었던 애플컴퓨터가 나오게 된 것이다.

잡스의 배움론 또한 ‘지금 당장은 알 수 없는 가치를 좇아 배워라’라고 정리할 수 있다. 전공과 관련이 있고, 당연히 배워야할 과목들 외에 자신이 배우고 싶은 과목을 배우는 것도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학문을 완성하는 데엔 도움이 된다는 얘기다.                



▲ 영화 [스물]의 한 장면. 20살이 될 때 누구나 인생의 진로를 결정해야 한다고 부담을 갖는다. 그게 모든 공부의 가능성을 막아버린다.




사후적 지성으로 판단하기 

    

브리콜라의 삶론, 맹상군의 관계론, 잡스의 공부론은 모두 다 같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건 지금의 가치관으로 섣불리 판단하지 말고, 지금은 도무지 알 수 없는 가치관으로 사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어쩔 수 없이 지금 당장은 ‘판단 보류’를 해야만 하고, 지켜볼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 그건 ‘모름에 머물려는 몸부림’이라 할 수밖에 없다. 아니, 그냥 몸부림이 아니라 처절한 몸부림이라 해야 한다. 이미 현실은 끊임없이 이익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하라고 부추기고 있기 때문에, 한순간이라도 방심하면 휩쓸리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처절한 몸부림을 치며 판단 보류를 하고 사후적으로 판단하려는 지성을, 동섭쌤은 ‘사후적 지성’이라고 알려줬다. 지성이란 어떤 일을 경험하기 전부터 미리 성립된 가치관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동섭쌤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알려준 것이다. 이 이야기는 다음 후기에 더 자세히 풀어보도록 하겠다. 다음 후기는 3강 강의의 마지막 후기로 ‘지금 왜 칭송받지 못하는 교사가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담고 있다.



▲  이야기는 순풍에 돛단 듯 진행되어, 사후적 지성까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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