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29일(토)
대자연의 위용에 한껏 압도됐다. 인간의 손길이 닿을 수 없어 ‘국립공원’이란 이름으로 유지되고 방치되는 곳, 그렇기 때문에 이곳은 진심으론 인간 외의 생물들에겐 낙원 같은 곳이었고 태초의 풍광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었다.
국립공원 입구에서 바르한이라는 사막까지 한 시간정도만 달리면 나온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우리는 조금만 더 달리면 고비사막이나 사하라사막 같은 장엄하고도 절로 압도하게 되는 비주얼을 직접 목도하게 될 거란 기대를 잔뜩 하며 유심히 지켜보게 됐다. 그런데 한 시간이 넘게 달렸는데도 천연자연이 풍경만 눈앞에 펼쳐져 있을 뿐 모래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더라. 아마 우리가 산에 오를 때마다 “얼마나 더 가야 정상이예요?”라고 물으면 대부분 “조금만 더 가면 정상이야.”라는 말해주지만 그러고도 1시간 이상을 더 올라가야 하는 것처럼, 아까 말한 1시간이란 말도 그와 비슷한 말일 거라 생각하며 제풀에 지쳐 눈을 감게 되었다. 매우 절묘하게 바로 그 순간 우리 눈앞에 사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솔직히 말해서 첫 인상은 실망에 가까웠다. 드넓게 펼쳐진 모래 언덕을 기대했었는데 이건 벌판에 사구 하나가 삐죽 솟아 있는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에게, 겨우 이거야~’하는 반응이 절로 나왔던 것이다.
바르한은 ‘노래하는 사막’이라는 뜻이다. 왜 노래하는 사막인지는 이 글을 계속 읽다 보면, 자연히 알게 된다. 사구砂丘의 높이는 150M이며 길이는 약 3㎞에 걸쳐 있다고 한다. 웅장해보이거나 대단해보일 정도의 규모는 아니다.
차에서 내려 조금 걷다보니, 모래에 발이 푹푹 빠진다. 처음엔 모래가 신발에 들어가는 게 신경 쓰였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그걸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인생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열정은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건넌 자와 건너지 않은 자로 비유되고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강물에 몸을 던져 물살을 타고 먼 길을 떠난 자와 아직 채 강물에 발을 담그지 않은 자 그 둘로 비유된다(이병률, 『끌림』)’란 글처럼 사구에 몸을 던져 올라본 자와 모래 걱정 때문에 올라보지 않은 자로 나뉠 것이다. 어떤 사람이 더 좋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난 ‘강물에 몸을 던져 물살을 타고 먼 길을 떠난 자’가 되고 싶었을 뿐이기에 맘껏 모래를 밟고 순례하듯 걸었다.
조금 걸어가니, 앙상한 나뭇가지 쪽에 무언가 움직이는 게 보인다. 우릴 피해 황급히 몸을 숨기는 도마뱀이었다. 얼핏 보면 모래색과 비슷하기에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사막에 딱 맞는 보호색을 하고 있었다. 이곳의 실질적인 주인이지만 불법 가택 침입자들 앞에선 꼼짝 못하고 숨어 있어야 하는 도마뱀의 심정은 오죽했을까. 하지만 그렇게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처럼 미동조차 하지 않는 도마뱀을 보고 있으니, 귀엽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도마뱀을 열심히 사진에 담고 사구 근처로 갔다. 사구의 바로 밑에 서서 보니, 차에서 내리며 봤던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엄청난 위용偉容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마도 이런 게 현장성이겠지. 그저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고 보면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던 것들도 한 걸음 더 다가가면 이전에 미처 알지 못한 내면의 세계가 보이듯, 바르한도 멀리서 봤을 땐 실망을 했다가 가까이 다가와 보니 절로 감탄하게 되니 말하다. 그래서 나태주 시인은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고 말한 것임을 이 자리에서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