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2일(화)
지순옥 할머니를 통해 고려인들이 블라디보스톡에서 우슈토베로 강제이주하게 된 과정, 그리고 우슈토베에서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는지에 대한 생생한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자랑스런 대한민국을 만들고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는 데엔 우리 선조들의 피와 땀이 세계 곳곳에 이렇게 흩뿌려져 있기 때문이다. 감사하고도 또 죄송하기만 하다.
사건이 끊이지 않는 단재친구들. 물론 이건 비아냥이 아니다. 삶의 배경이 다르고, 욕망이 다른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여 활동을 하다 보니 언제든지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다. 만약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건 억압된 사회이거나 죽은 사회일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에겐 ‘삶의 욕망’이 있다는 얘기고, 그런 욕망들이 부딪혀 화음을 내기도 잡음을 내기도 하기에 ‘삶이 다채롭다’는 얘기다.
오늘은 학생들의 놀림으로 A학생이 울게 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늘 예의주시하고 있지만, 이런 일은 계속해서 터지고 있다. 이런 문제가 발생하면 ‘누가 잘 했고, 누가 잘못했네’라는 식의 가해자와 피해자를 나누는 것부터 시작하려 하지만, 그건 전혀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틀은 개인의 문제로 몰아가 사건을 단순화하여, 체제나 관계의 문제를 은폐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단순한 논리대로 가해자만 처벌하여 이 일이 해결되면 좋으련만, 실제론 그러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개인의 문제로 몰거나 이분법으로 단순화하는 관점이 아닌, ‘우린 아직 어리숙하다’라는 관점을 택하는 게 낫다.
이런 일이 터지자, 아이들끼리 활발하게 의견을 내놓으며 해결책을 마련한다. 하지만 이 해결책이란 게 욱하는 마음에서 쉽게 내뱉은 말이었기에 문제를 더 키웠다. ‘한 번이라도 다시 놀리면 그 사람에게 맛있는 것을 사주고, 두 번째 놀리면 놀린 사람이 단재학교를 나간다’는 식의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다. 이건 해결방안이라기보다 선전포고에 다름 아니고, 서로의 감정의 골만 확인한 꼴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저녁 시간에 단재친구들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줘야 했다. 오해든 진심이든 서로 이야기를 하다보면, 진실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방에 둘러앉아 모처럼만에 이야기꽃을 활짝 피웠다. 서로의 감정이 격해져서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니, 난 조정자, 지지자, 그림자 역할을 자임하며 자리에 앉아 듣는다.
예상과는 다르게 웃음꽃이 만개했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한 명씩 돌아가며 이야기를 하는데, 자신이 어떤 부분에서 격한 행동을 했으며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고해성사식告解聖事式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솔직히 깜짝 놀랐다. 보통 이런 경우 ‘니가 이러저러한 행동을 하니, 내가 이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다’고 남 탓하는 게 일반적인데, 아이들은 남을 얘기하기보다 자신에 대해 먼저 얘기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자신의 입장에서 하고 싶은 말이 얼마나 많겠냐만은, 한 발짝 물러서서 자신의 행동에 대해 얘기를 했다. 이렇게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였고 정말 뿌듯한 광경이었다.
그만큼 단재친구들도 카자흐스탄 여행을 하며 관계를 이런 식으로 맺어봐야 서로에게 좋지 않다는 것을 여실히 알게 됐을 것이다. 이런 상황이었기에 내가 그 자리에 계속 있는 건 무의미했다. 자칫 잘못하면 검열의 눈빛을 보낼 수도 있으며, 그 때문에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해야 할 말을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용히 방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