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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Jan 05. 2019

넘어진 자리에서만 일어설 수 있다

2013년 7월 3일(수)


카자흐스탄 여행은 굴심쌤이 없었으면 크나큰 난관에 부딪혔을 것이다. 계획에 따라 활동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계획을 만들며 활동해야 했다. 아마도 우리들만 갔다면, 대부분의 일정에서 차질이 생겼을 것이고,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갈등의 골만 깊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굴심쌤은 선생님들과 일정을 잘 조율하였고 카작 현지 아이들과 단재친구들의 소통 창구 역할까지 했다. 부담이 훨씬 커질 수도 있었는데, 굴심쌤이 있어서 마음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 통역을 해주고 계신 굴심쌤.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다.




맘 같지 않기에 여행은 우릴 키운다

     

여기에 덧붙여 학생들도 내 맘 같지 않았다. 물론 학생들 입장에서 보면, ‘건빵쌤도 너무 맘대로 해요’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모든 학생이 나와는 입장이나 생각, 그리고 환경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학생들도 학생들 나름대로 여행 스트레스를 받으며 친구와의 관계에서 겪게 되는 갈등도 있으니, 날카로워질 때도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뱉는 말들은 감정을 상하게 하는 말이었던 것이다. 

갈등이 일어나는 그 순간이 자신의 본모습을 볼 수 있는 때다. 모든 게 좋을 때 착하기는 쉽지만, 상황이 안 좋을 때 착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생들과 여러 번 부딪혔고 가식적인 모습이 아닌 진실한 모습으로 수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만약에 이 여행이 잘 짜인 여행이어서 누군가의 도움도 필요하지 않았거나 모두 다 혼연일체가 되어 갈등이나 고민이 없는 여행이었다면, 여행을 떠나기 전과 떠난 후의 모습에 어떠한 변화도, 어떠한 균열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행이 삶의 한 단면인 이상, 예상치 못한 상황도, 관계에서의 갈등도 일어날 수밖에 없었고 그로인해 여행 전과 후가 달라질 수 있었다. 

과정이 사람을 키우고 여행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굴심쌤의 대단함을 느꼈고, 단재친구들과의 끈끈한 연대의식도 생겼으니 이번 여행이 나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라 할 수 있다.                



▲ 카메라를 들이대면 얼굴을 돌리기에 바쁜 아이들. 그래도 여행 내내 고마웠다.




땅에서 넘어진 자 다시 땅을 짚고 일어나라因地倒者因地起지눌

      

치열하게 아이들과 순간을 살되, 마음엔 여유를 남겨둬야 했다. 지금껏 나에게 ‘치열함’이란 미덕이었다. 치열하게 살아야만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여태껏 달려온 것이다. 

하지만 그건 정확히 말해 ‘양날의 검’이었다. 무언가 할 수 있는 추진력을 줌과 동시에, 나 자신을 억누르게 하고 남에게 강요하는 폭력이 되었기 때문이다. 치열하면 치열할수록, 열정은 사라져갔고 상처는 커져 갔다. 치열함이란 이름의 땅에서 자빠지고야 만 것이다. 

보조국사 지눌知訥(1158~1210)의 ‘땅에서 넘어진 자 다시 그 땅을 짚고 일어나라’는 말처럼, 상황을 직시해야지만 그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치열함이 문제였다면, 치열함의 속성을 곱씹어야만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단초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치열熾烈이란 단어는 ‘세차다’라는 뜻이다. 熾와 烈이란 한자의 부수가 ‘火’인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건 ‘세차게 태운다’는 뜻이다. 태워 얻은 열기론 육중한 무게의 기차도 움직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게 결코 오래갈 수 없다는 게 문제다. 내 몸의 기운은 유한하기 때문에, 태우면 태울수록 기운은 사라지고 적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치열함이란 점차 나 자신을 죽여가면서 환한 불꽃을 내는 양초와 같이 스스로의 생을 좀먹으며 얻어낸 힘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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