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3일(수)
이런 식으로 전개될 것을 안다면, 교환이 아닌 증여의 경제를 되찾을 필요가 있다. 설거지는 증여에 포함된다. 더 많은 양의 설거지를 하면 할수록 오히려 좋다.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통해 ‘노동주체’를 되찾고,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도 ‘당당한 주제’로 설 수 있기 때문이다.
설거지를 하면 내 마음에도 뿌듯한 마음이 생기며, 다른 사람에게도 따뜻한 기운을 퍼뜨린다. 그게 바로 증여 경제의 핵심이다. 증여는 ‘얼마의 가치인지?’를 따지지 않는다. 내가 유형ㆍ무형으로 준 것들은 돌고 돌아 나에게 돌아오게 되어 있다. 좋은 기운을 주면 좋은 기운이 돌아오고, 나쁜 기운을 주면 나쁜 기운이 돌아온다. 그렇기 때문에 증여로서의 설거지는 나 자신이 쌓은 선업善業인 것이다.
마음속에 쌓인 선업은 나를 강인하게 만듦과 동시에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또 전해진다. 그런 좋은 기운들이 돌고 돌아 어느 때, 어느 순간에 전혀 알지 못하던 다른 사람에게 받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증여의 관점에서 보자면, 절대 손해란 없다. 작은 걸 탐하면 크게 잃지만 크게 잃으면 크게 얻는 것이다(小貪則大失 大失則大得). 크게 잃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주저해선 안 되고 기꺼운 마음으로 해야 한다. 돌고 돌아 어느 순간 내 맘 속 깊은 곳엔 넉넉한 따뜻함으로 자리할 것이니 말이다.
오후엔 심방을 다녔다. 한국의 심방은 교인의 집을 찾아가서 예배드리고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다. 하지만 이곳의 심방은 달랐다. 교회에 다니지 않는 어려운 이웃을 찾아가 생필품을 전해준다. ‘교회에 다니라’는 말은 일절 하지 않지만, 이 분들은 이런 호의를 통해 언젠가 교회에 나오게 될 거라 는 마음으로 이런 일을 하신다고 한다.
우린 두 가정집을 방문했는데 한 가정은 러시아 여자와 카자흐스탄 남자가 사는 가정이었고 다른 가정은 고려인 가정이었다. 두 집 모두 백사마을에서 봤던 것처럼 허름하고 누추하며 집 안에 어둠의 기온이 감돌았다. 카자흐스탄에서 러시아인은 부유한 민족에 속하기 때문에, 모든 러시아인은 잘 사는 줄만 알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여기서도 개인별로 여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만큼 각개격파로 살아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고려인의 경우에도 처음엔 척박한 땅에 농사를 지으며 살던 민족이었지만 특유의 성실함으로 서서히 자리매김해 갔다. 하지만 소련이 망한 후 민족차별이 현실화되자 대부분이 블라디보스톡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때 여기에 남은 고려인들은 차별을 감내하며 살 수밖에 없었다. 오늘 찾아간 집엔 아이들 두 명과 어머니가 있었다. 아이들은 초등학생 정도 되어 보였지만 어둑침침한 방 안에서 우릴 응시하고 있었다. 무관심한 듯, 그러면서도 무언가에 굶주린 듯한 표정이었다. 어머니 또한 무뚝뚝하게 우리를 맞이했고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심방을 마치고 차가 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려야 했다. 밖은 화창했다. 선명한 하늘빛과 자유를 머금은 듯한 공기와는 달리 우리가 들어갔던 집은 바깥 날씨와는 확연히 대조되어 보였다. 마음 한 구석에 스산한 바람이 불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