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학년도 한문임용 낙방기 1
시험이 끝나고 와서 임용고사 도전기를 썼다. 그리고 공개할까 말까를 고민하기도 했지만 결국 공개하기에 이르렀다. 그만큼 그 순간에 대해 제대로 즐기고 왔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고, 최선을 다하고 왔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그러니 의식의 흐름에 맞춰서 쓴 글을 조금 다듬을 필요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공개하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2008년에 임용고사가 3차 체제로 바뀌기 전엔 지금처럼 주관식으로 써야 했었다. 뭐 그땐 논술, 서술하는 식으로 나누어졌던 건 아니지만 어떤 것은 단답식이기도 했고, 어떤 것은 ‘몇 글자 내외로 약술하시오’라는 식이기도 했다.
그런 식으로 문제가 나오던 상황에서 두 번을 시험 봤는데 재밌게도 한 번도 제대로 답안을 구성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아니 더 웃긴 점은 시험장에서 뿐만 아니라 시험이 끝나고 나서도 다시 풀어보며 기출문제를 분석해보려 한 적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 당시 광주에선 과락(32점)만 넘으면 임용에 합격하는 상황까지 벌어졌었다. 그러니 은연중에 ‘아는 문제를 모두 풀어 최대 점수를 받아야 한다’는 목표가 세워진 게 아니라, ‘아는 문제를 제대로 풀어 과락만 넘기자’라는 목표가 세워지게 됐던 것이다. 이미 맘 상태가 그러니 시험장에서도 전체 문제를 최선을 다해 풀려하기보다 알 것 같은 문제들에만 전심전력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래서 지금도 생각나는 시험장에서 문제를 푸는 광경은 이렇다.
1. 처음부터 문제를 푸는 게 아니라 문제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쭉 훑어보며 봤던 글은 뭐가 나왔는지, 그리고 어떤 식의 문제들이 출제되었는지 한 번 파악한다.
2. 그 다음에 달려들어 문제를 푸는데 바로 답안지에 적는 게 아니라 시험지에 주요 사항만을 써놓으며 계속 풀어간다.
3. 거의 마지막에 이르러 답안지를 작성한다.
이런 식으로 하니 시간이 남아 문제를 다시 한 번 보는 게 아니라, 답안지를 작성하려 다시 볼 땐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머릿속으로 작성했다고 착각하는 답은 결코 답이 아니란 걸 그 당시에 적나라하게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바로 그런 경험들이 기반이 되었는데, 2008년도 시험부턴 3차 시험 체제로 바뀌며 연거푸 3번 치룬 시험에선 객관식으로 숫자만 체크하고 나오느라 주관식으로 답을 쓸 때의 감각을 거의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렇게 임용고시에 대한 생각을 접고 7년 정도를 지내다가 작년에 여러 가지 사건으로 인해 다시 임용고시 공부를 하기로 맘먹었다. 늘 생각하지만 『범죄와의 전쟁』에서 나오는 최민식의 말마따나 “인생 꼬잇다 꼬잇어”라고 생각하고, 꼬인 그만큼 참 아름답고 재밌다고 생각한다.
오랜만에 시험을 보면서 순간 순간의 느낌들을 노트에 기록해놨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글을 적어놨다.
“처음으로 문제를 보면서 나에게 포근히 안겨온다는 생각이 들었고”
A형 시험을 풀고 난 소감은 바로 이것이다. 1시간 30분 동안 풀 수 있는데 한 시간 만에 다 풀고 30분은 검토를 하며 내용을 조금 더 다듬었다. 예전엔 시험의 중압감에 눌려 감히 바로 답안지를 쓴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고 이렇게 멋대로 써도 되는지에 대해서도 고민해봤어야 했다. 하지만 이젠 더 이상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답안지를 깨끗이 쓴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깨끗이 쓰지 못하더라도 내가 쓰고 싶은 것들을 모두 쓸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괜찮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바꿀 수 있었던 데에 크게 두 가지가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나의 글 쓰는 솜씨를 믿기 때문이다. 늘 여러 사람에게 말하듯 나에겐 아주 창조적인 착각이 두 가지가 있다. 고등학생 때엔 아무도 알아주지 않음에도 ‘난 글을 잘 써’라는 착각으로 일기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으며, 그게 단재학교에 가서 실질적으로 다듬어지는 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처음엔 분명히 착각이었지만 어느 순간엔 나의 중요한 기술이 되더라. 여담으로 말하자면 또 하나의 착각은 ‘나는 수업을 잘해’라는 것이다. 이 또한 누구도 인정해준 적도 인정을 받으려 한 적도 없지만 내가 수업하길 좋아하고 잘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와서 말하자면 글을 잘 쓴다는 착각이 여러 글들을 쓰게 만들었고 이번에 임용시험을 보는 데도 영향을 끼쳐 바로 답안을 작성할 수 있는 ‘깡다구’가 있도록 했다.
둘째는 시험의 중압감에 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이건 처음으로 보는 시험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8개월 정도 준비를 하고 보는 시험인데다가 이번엔 떨어져도 된다고 생각하고 보는 시험이기에 부담은 그렇게 없었다. 그러니 시험 당일에도 마치 피크닉을 가듯이 훌쩍 떠날 수 있었고 마치 임용고사장을 스케치하듯 사진을 찍고 그 감정들을 글로 담아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두 가지 요소가 작동을 하니 시험을 보는 시간, 그 자체는 마치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경험을 하는 듯한 묘한 흥분을 자아냈고 그 순간의 느낌, 그것만으로도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