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한강 자전거 여행 5 - 15.9.8(화)
어제 진규를 만나서 자전거 라이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진규와 함께 자전거 여행 계획을 다듬다
진규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작년 ‘남한강 프로젝트’를 할 때, 여러 이야기를 해줬고 그게 남한강 프로젝트의 기본이 되었기 때문이다. ‘남한강 프로젝트’를 처음에 기획할 때만해도 ‘지리산 프로젝트’와 다르지 않았다. 지리산 프로젝트는 ‘화엄사부터 걸어서 지리산을 종주하자’는 것 말고 다른 컨셉은 없었다. 산을 탄다는 것, 그리고 산 속에서 여러 날 생활해야 한다는 것, 그 모든 게 도전이었기에 다른 것을 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도보여행도 나름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충주댐까지 가는 것이 쉽지는 않기에 도전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규는 “그렇게 해서는 영상이 재미가 없을 거 같다”고 얘기해주더라. 그 말이 맞았고, 도보여행을 하는 입장에서도 그건 재미가 없는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진규가 알려준 몇 개의 미션을 진행하며 여행을 했고, 그건 여러모로 여행에 재밌는 요소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영상으로도 빛나는 요소였다. 그런 중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기에 이번에도 만나기로 한 것이다.
고생해야만 한다는 강박에 대한 조언
이번엔 자전거 여행이란 컨셉과 함께 꽤 힘든 경로가 될 거라는 이야기를 해줬다. 그랬더니 캠핑카를 타고 여행 다니는 컨셉, 무인도에서 아이들과 함께 며칠을 보내는 컨셉, 봉고차에 짐을 싣고 텐트를 싣고 다니며 밥을 해먹는 컨셉 등을 다채롭게 풀어내더라. 역시나 여행에 대한, 삶에 대한 일가견이 있는 친구이다 보니 거침없었다. 하지만 이미 자전거 여행이란 컨셉이 정해졌기에 그건 차후에 다시 생각해 보기로 했다.
“‘고생해야 한다’, ‘뭔가 의미 있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건 아닌가?”
그런데 그 때 아주 긴요한 얘기를 꺼낸다. ‘고생’이란 키워드에 함몰되 있는 건 아니냐는 거다. 도보여행을 하며 고행을 자초하고 늘 잠자리를 구하러 다니느라 힘겨워 했던 것을 ‘도보여행기’를 통해 보며, “뭔 내용들이 다 자는 곳을 구하느라 걱정을 하는 내용이더만”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리고 단재학교에서 교사를 하며 하는 여행들이 다 ‘고생’을 목표로 하는 것을 보고 ‘굳이 그런 여행이 아니어도 될 텐데’라는 생각이 있었나 보다.
그 말을 듣고 나니, 눈이 번쩍 뜨이는 느낌이 있었다. 이유는 하나다. 무의식을 보여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의 무의식적인 생각 ‘학부모님의 돈으로 여행을 하는 만큼 뭔가 의미 있는 여행을 해야 한다’는 것이고, ‘의미 있는 여행=체험을 많이 하는 여행=고생을 많이 하는 여행’이라는 공식에 갇혀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자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남을 통해 나의 밑바닥이 드러날 때, 난 긴장한다. 그리고 가녀린 떨림을 느끼며 감추고 싶어진다. 그러면서 ‘그건 잘못 본 거야’라며 부인하고 싶어진다. 아마도 그 순간의 어떤 긴장, 불편함 등은 그런 감정들과 연관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고생이 아닌 충분히 즐기며 할 수 이는 여행으로
그래서 더 이상 ‘단재학교⇒부산’의 경로를 고집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건 누가 봐도 너무 무리한 일정이고 ‘열나게 달림 & 도착’ 외엔 어떤 것도 스미거나 남지 못하기 때문이다. 감상이 어리는 순간은 유유자적할 때이며, 빈틈이 있는 순간이며, 한 박자 쉬는 때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빈틈없이’라는 것만을 추구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래서 경로는 즐기며 달리면 도착할 정도로, 그러면서 빈틈이 있게, 그리고 무언가 함께 만들어갈 수 있는 장소를 볼 수 있을 정도로 짜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그림이 그려질지 사뭇 기대된다. 그리고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