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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Jan 23. 2019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란 말이 빠뜨린 것

공생의 필살기10

인문주의 시대란 중세를 꽉 누르고 있던 신이란 존재를 밀어내고 등장했다. 그렇다면 인문주의에선 신보단 사람이, 종교철학보단 인문철학이 더 강조될 수밖에 없다.                




인문주의로 정신의 우월성은 더욱 부각되다

     

인문주의 시대의 포문을 연 사람은 당연히 데카르트이고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는 그의 말은 이제 모든 사람들이 다 아는 명언 중의 명언이 되었다. 이 말은 ‘신만이 나를 증명할 수 있다’는 생각을 무너뜨리고, ‘나는 나 스스로 증명할 수 있다’며 인문주의의 문을 활짝 열어 재낀 것이다. 신을 통해 모든 것을 증명하려던 한계를 넘어 자신의 인식을 통해 나와 세상을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니 분명 진일보한 철학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데카르트가 간과한 것은 ‘인간 정신의 우월함만 강변했을 뿐, 정신의 분열상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즉, 신을 인간으로 대체했을 뿐 여전히 정신(영)의 우월성에서는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정신의 우월성만을 더 강화시켰을 뿐이다.                




데카르트가 놓친 것

     

데카르트의 말이 일리가 있으려면 당연히 ‘생각하는 나’는 하나로 통일되어 있어야 한다. 내 자신이 여러 명이 있거나, 생각이 수시로 바뀐다면 나 자신을 증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법원에서 판결을 내릴 때 증언이 성립하려면 당연히 일관성이 있어야 하며, 전체적인 흐름과 맞아 떨어져야 한다. 증언 내용이 시시때때로 바뀌거나 전체 정황과 맞지 않으면 위증이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신이 나를 증명해줄 땐 나의 생각이 한결 같냐 하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지 않아도 사회적인 생각, 신의 생각이 있기에 그것에 철저히 맞추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나를 증명해야 한다면, 나의 생각은 분열되어서도 들쑥날쑥해서도 안 된다.

하지만 인간의 사고란 단일할 수도 없고, 일관적일 수도 없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나의 의식 속엔 ‘이번엔 좀 더 유머를 섞어가며 글을 써볼까’, ‘역사 수업 준비를 해야 하는데, 그것부터 먼저 마치고 쓸까?’, ‘배가 고픈데 밥을 좀 먹어볼까?’, ‘뭔 글을 쓰는데 일주일 내내 걸리네. 그냥 여기서 대충 마무리 짓고 쉴까?’, ‘그래도 시작한 것이니 마무리까지 잘 지어야지’ 하는 등등의 많은 생각들이 스친다. 이런 생각 가운데 어떤 생각이 진정한 나의 생각이라고 판단할 수 있을까? 아마 데카르트는 그렇게 분열된 나를 향해 ‘사람이 일관적이어야지 이랬다저랬다 하면 못써’라고 말할 것이다.

이런 사고방식을 잘 보여주는 영화가 바로 『아이덴티티』다. 수많은 자아가 하나의 마을을 이루며 살고 있지만, 결국 그 중에 하나의 자아가 모든 자아를 죽이고 살아남는다는 얘기다. 자아의 일관성에 대해 이 영화만큼 상징적이면서 매우 폭력적으로 보여주는 영화도 드물다.                



▲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르네상스는 그림의 구도도 바꾸었다. 소실점의 등장으로 한 인물에게 초점이 맞춰진다.




자기답다는 말의 함정

     

우리는 암묵적으로 ‘영과 육’을 분리하여 몸은 감정기복이 심한 사람처럼 수시로 바뀌지만 정신은 그런 육체의 공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결 같을 수 있다고 배워왔다.

이런 우리들의 착각에 대해 우치다쌤은 중학생과 인터뷰한 내용을 소개한다. 중학생들이 개풍관에 찾아와 인터뷰를 요청했다고 한다. “보통 사람들이 ‘자기답게 살아라’라고 말을 하는데 그 의미를 모르겠습니다. 선생님 ‘자기답다’란 말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을 했다고 한다. 중학생이 던지기엔 다소 어른스러운 질문이고, 뭔가 그럴 듯해 보이는 질문이어서 그걸 듣는 순간 피식 웃음이 났다.

그러자 우치다쌤은 “물론 저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답게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학생들이 생각하는 ‘자기답다’와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정리했다. 이 결론이야말로 ‘자기답다’에 대해 여러 정의가 있음을 보여주는 명답이라 할 수 있다.



▲ 영화 [아이덴티티]의 섬뜩한 한 장면, 자아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영상으로 잘 표현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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