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이란 늪에 빠지다
『소화시평』 스터디는 작년 4월부터 참가하게 됐다. 다시 한문교사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공부할 장소로 서울과 전주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전주로 정하고 나서 3월에야 전주 정착이 완료되었다. 최고의 공부장소라 생각한 임고반엔 어렵지 않게 입성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역시나 한문 공부였던 것이다. 임고반에만 들어가면 한문공부를 하는 후배들이 있어 그들과 잘 의기투합하면 어렵지 않게 스터디가 꾸려질 거라 생각했는데, 이게 웬 걸 임고반엔 한문임용을 준비하는 아이들은 없었다. 그렇게 3월 내둥 헤매며 시간을 보내게 됐던 것이다. 그렇게 한 달 보름 정도를 보내고 난 후에 소화시평 스터디가 있다는 걸 알게 됐고 참여하게 된 것이니, 참 운이 좋았다고 밖에 할 말이 없다.
이 스터디에선 『소화시평』 전체를 보는 게 아니라 교수님이 함께 봤으면 하는 것들 위주로 선집해 놓은 작품들을 보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참가했을 땐 『소화시평』 상권 30번부터 진도를 나가고 있었고 그게 지난주인 1월 17일에야 끝나게 됐다. 선집을 본 것이라 해도 우리가 함께 본 작품은 100편 가까이 된다.
상권을 마치고 나니 참 여러 일들이 떠오르고 마냥 행복하기만 하다. 그 중 뭐니 뭐니 해도 한문공부를 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는 점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7년 만에 다시 잡는 한문공부는 막연하기만 했다. 이럴 때 자칫 잘못하면 임용이란 시험체제에 맞춰 많은 작품을 봐야 한다는 욕심만 앞세우며 해석 실력은 키우지도 못한 채 많은 작품만 반복적으로 보게 되는 함정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런데 소화시평 스터디를 하며 한 작품을 진득하게 보는 방법, 그리고 한시를 음미하는 방법까지 동시에 배우니 나처럼 다시 공부를 하는 사람에겐 최고의 공부방법이었던 셈이다.
그 다음엔 최초로 시화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읽어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공부할 때 『파한집』과 같은 시화집을 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냥 눈으로 대충 읽고서 ‘한 번 봤다’고 생각하는 정도로만 공부한 것이지 이렇게 준비를 해오고 함께 생각해보며 하나하나 정리해가는 식으로 공부하긴 처음이다. 이렇게 공부하고 나니 시화집이라는 게 얼마나 재밌는 서술방식인지도 알게 됐고 한시란 게 음미하면 음미할수록 깊은 맛이 우러난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런 맛을 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스터디가 끝나고 난 후엔 ‘이해와 감상’을 남기게 되더라. 글쓰기는 여전히 난공불락의 요새 같은 느낌이지만 단재학교에 있으면서 차곡차곡 다양한 글들을 정리하던 습관을 기른 덕에 다시 임용공부를 하고 있는 지금도 요긴하게 써 먹고 있긴 하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게 이런 식으로 스터디를 하고 난 후에 그때 정리한 내용들을 글로 남기는 것이다. 그때의 시를 읽으며 느낀 감상이나 정감들을 담아놓지 않으면 휘발되어 날아가 버릴 것을 알기 때문에 이렇게 글로 남기려하는 것이다. 문제는 스터디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쓰는 양이 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처음엔 순수한 느낌 정도와 새롭게 배운 내용 위주로 쓰는 정도였다면 지금은 ‘제대로 된 한 편의 글을 써야 한다’는 욕심이 작용하는 것 같다. 그러니 내용도 어마무시하게 늘었을 뿐만 아니라 그에 따라 부담감도 상당하다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하권의 내용을 정리하면서는 이 부분에 대한 여러 실험들이 있을 예정이다. 과연 이런 페이스대로 한 작품에 대해 이해와 감상을 여러 편으로 써갈 것인지, 아니면 초반에 그랬던 것처럼 최대한 간단명료하게 쓰는 방식을 택할 것인지 하는 점 말이다. 어떤 방향이든 직접 해봤기 때문에, 그리고 그만큼 고민해봤기 때문에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일 테니, 나 또한 만족스럽게 정착되는 과정을 지켜볼 것이다. 과연 소화시평 하권의 ‘이해와 감상의 서술방식’은 지금과 어떻게 달라질까?
1월 2일에 시험 결과가 나오고 나서 김형술 교수에게 연락이 왔었다. 당연히 낙방 소식을 알렸다. 단순히 합격 불합격 여부만이 알고 싶으셔서 연락을 주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바로 다음 주부터 한 주에 두 번씩 소화시평 스터디가 재기된다고 말씀해주시더라.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눈엔 마치 예전 ‘인생극장’이란 프로그램에서 이휘재가 두 가지의 상황 중 하나를 선택한 후 외치던 “그래 결심했어!”라는 말처럼 열정이 어른거리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낙방소식을 듣고 지금은 하는 둥 마는 둥 시간을 보내고 있기 때문인데, 이렇게 다시 시작하면 워밍업이 충분히 되고도 남을 거란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일주일에 두 번을 한다는 건 충분히 도전이기도 했다. 단순히 예습만 하는 정도라면 ‘뭐 그까이거’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정도만 하면 되지만, 수업이 끝난 후 정리까지 하려 맘먹었으니 대단히 바쁜 일정이 될 수밖에 없다. 배우는 것보다 더 힘든 게 정리인 탓에 힘은 두 세배로 들겠지만 이렇게 치열하게 1월을 보내고 나면 한문공부에 대해 조금이라도 맛을 볼 수 있을 것이고, 올 한해 한문농사를 짓는데 큰 보탬이 되리라 생각한다. 과연 이 과정을 잘 넘어가고 나면 무엇이 되어 있을지, 그리고 어떤 정감들이 어릴지 벌써부터 잔뜩 기대된다. 배울 수 있고 할 수 있고, 풀어낼 수 있는 지금이 그 어느 때보다 가장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