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건빵 Jan 30. 2019

공생의 기술: 잡색의 삶

공생의 필살기14

그 사람을 공감할 수 있으려면 역지사지를 하려 할 게 아니라, 바로 그 사람의 그런 특성이 나 자신에게도 이미 있다는 걸 알게 될 때, 비로소 공감하게 된다. 그것이야말로 너와 나를 완전히 나누어 생각하는 게 아니라, 바로 ‘나=너’라는 차이를 무화시키는 방식을 택하는 것이다.                




내 안에 내가 모르던 내가 있다(우치다식 구렁덩덩신선비)

     

그러면서 재밌는 얘길 해주신다. 우치다쌤은 형이 있는 가정에서 태어나 자랐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자기에게 여성적인 면이 있다는 것을 몰랐으며, 젊었을 때는 공격적이며 폭력적인 사람이었다고 고백하신 것이다.

하지만 삶의 반전은 그가 결혼하고 이혼했을 때 찾아온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바라는 것은 생리적인 현상의 해결과 안정적으로 자랄 수 있는 환경이니, 어쩔 수 없이 우치다쌤이 엄마 역할을 해야만 했단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여성스러워지기 시작했으며 그에 따라 점차 부드러워졌고 공격성도 사라졌다고 한다. 

이에 우치다쌤은 “저는 딸을 키운 싱글파더여서 아이가 6살부터 18살이 될 때까지 둘이서 함께 살았습니다. 그리고 21년 동안 여자 대학(고베여학원)에 교수로 일하며 여학생들과 함께 지내다 보니 자연히 여성화되었고, ‘나한테도 이런 캐릭터가 있었구나’라고 깜짝깜짝 놀라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엄마 캐릭터를 찾으니 사회적인 인간관계가 훨씬 안정되었고 편안해졌습니다. 심지어는 학교 여학생들이 상담을 하자고 요청하기도 하며, 그 전만 해도 절대 만나지 않았을 사람도 만나게 되었습니다”라고 말을 덧붙이셨다. 자신도 몰랐던 자신의 다른 면을 찾게 되니, 그에 따라 전혀 다른 인연의 장으로 빨려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치다쌤이 생각하는 공생이란 어찌 보면 ‘자신의 감춰진 면모를 알게 되어 타인을 자기와 같은 사람으로 인정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 [구렁덩덩 신선비]는 여행을 통해 여성성과 남성성을 일치시키며 성장해 가는 옛 이야기다. 우치다쌤 얘기의 옛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성숙을 방해하는 사회에서 성숙해질 수 있는 환경 만들기

     

이걸 우치다쌤은 “성숙이란 자기 안의 다양한 캐릭터를 발견하고 키워 나가는 것”이라고 정리하였다. 그가 쓴 책의 내용을 통해 ‘성숙’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성숙하지 않으면 ‘전혀 다른 것이 실은 똑같은 것’이라는 논리가 이해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 메시지를 엄청 비틀어서 보이지 않는 곳에 두기 때문에, 그 메시지가 그들이 알고 있는 것과 똑같다는 것을 알아차리려면 좁고 험한 길을 이리저리 돌아다녀야만 합니다. 그 수고로움이 귀찮아 찾지 않거나 “당신이 말하고 싶어 하는 게 뭔지 전부 알았어”라고 말하면 그것으로 게임은 끝입니다. 모르는 것을 안다고 말하거나 그 이상의 노력을 멈췄을 때, 그 사람의 성숙은 끝이 납니다. 계속 성숙하고 싶으면 다른 것이 실은 똑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까지 깊은 구멍을 파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숙이라는 프로세스의 동적 구조입니다. 

자신이 어떻게 성숙하는지, 왜 성숙하는지를 알려면 지금 성숙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이 역동적인 과정에 물들게 하려면 그들을 깊은 ‘갈등’ 속으로 끌어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치다 타츠루, 『교사를 춤추게 하라』, 민들레출판사, 2012년, 129~130쪽


          

우치다의 ‘성숙론’을 듣고 있으면, 지금 우리가 얼마나 ‘미성숙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분주히 노력하고 있는지 알게 된다. 학교에선 ‘엘리트반’을 나누어 끊임없이 같은 부류끼리만 어울리도록 종용하고, 현실에선 아파트로 급을 나누어 경제 수준이 비슷한 부류끼리만 어울리도록 하며, 사회에선 같은 생각을 지닌 사람들끼리만 모여 그들만의 잔치를 할 수 있도록 한다. 어디에도 ‘갈등’이 끼어들 여지가 없으며, 나의 어두운 면모를 직접 대면할 기회를 제공하지 않고 완벽하게 내가 원하는 색으로 채색된 사회 환경, 사람들만 있게 한 것이다. 완벽하게 ‘미성숙하도록 부추기는 사회’를 만들려 노력하고 있으니, 당연히 ‘공생’이란 얘기는 허울 좋은 구호에 불과하게 되었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들부터, 학생을 가르치는 학교에서부터 이러한 미성숙을 부추기는 풍토가 자연스레 퍼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사람이 성숙해질 수 있으며, 공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공생의 필살기]는 후기가 엄청 길어졌다. 다음 편엔 '공생을 위해 학교에서 할 일?'을 정리하며 후기도 마무리 짓도록 하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공생을 위한 준비과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