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12일(화)
자는 듯, 마는 듯 했다. 몸은 피곤했지만, 잠자리도 낯설고 사람들이 따닥따닥 붙어 자야 하니 이래저래 신경이 쓰인 탓이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바스락바스락 짐을 챙기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난다. 새벽 4시부터 등산을 할 수 있다고 하니, 짧은 일정으로 지리산을 종주하러 온 사람들은 새벽부터 부산히 움직이는 것이다. ‘새벽별을 벗 삼아 산을 타는 기분은 어떨까? 두려움이 몰려옴과 동시에 황홀한 느낌도 있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다시 눈을 감았다.
예전엔 등산 장비를 챙겨서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등산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 땐 비박도 가능했다. 하지만 지리산을 타는 사람이 많아지고 여러 유형의 사고가 발생하면서 공단 측에서도 대비책을 마련해야 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비박도 금지 되었고, 각 구간별로 입산 시간을 통제하게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리산에 오르고 싶다고 아무런 준비 없이 올랐다가는 길이 막혀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입산 시간 지정제는 구간별로 시간을 정해놓고 그 시간이 지난 후엔 입산을 통제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노고단에서 연하천쪽으로 갈 수 있는 시간은 오후 2시 이전까지이다. 그러나 연하천대피소에 예약한 사람은 한두 시간의 여유를 더 주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입산이 통제되기 때문에, 예전처럼 야간 산행을 하겠다며 해질녘에 산을 올라서는 안 된다.
이와 함께 2013년 1월 1일부터는 자연을 보호하고, 예약객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대피소 근처에서 비박을 하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이젠 지리산에 텐트를 가지고 오르는 사람을 볼 수 없고 대피소 예약이 필수가 된 것이다. 대피소는 15일 전에 예약 페이지가 열리기 때문에, 성수기에 대피소를 예약하는 일은 ‘질럿으로 시즈탱크를 잡는 일’만큼이나 힘들다고 한다. 그나마 우린 한가한 평일에 갔기 때문에 쉽게 예약할 수 있었다.
참고 사항으로 피아골 대피소와 치밭목 대피소는 개인이 운영하는 대피소로 현장에서만 예약이 가능하다고 한다.
8시까지 대피소에서 퇴실해야 하기에 7시 30분에 일어났다. 함께 하루 밤을 묵었던 뭇 사람들은 벌써 떠났고 단재 영화팀만이 남아 짐을 챙기고 있다. 2층에선 지민이가 잤다. 혼자 못 잔다고 했는데 막상 여행을 와서는 나름 잘 적응하고 있다. 걱정을 했었지만, 그 걱정이 꽤나 무색할 정도로 잘 해나가고 있다.
배낭을 꾸리고 취사장에 가서 물을 끓였다. 군대에서 먹은 전투식량은 꽤 맛있다는 기억이 있었기에, 즉석비빔밥은 어떨지 기대가 되었다. 비빔밥 봉지를 열면 그 안에 건조된 밥과 야채들, 된장국 분말, 참기름, 고추장, 스프가 들어 있다. 끓는 물을 봉지에 붓고 건조된 밥과 야채와 스프를 넣어 잘 섞은 후에 봉지를 닫고 5분간 기다린다. 그러면 쌀이 불어 씹을 수 있게 된다. 거기에 고추장과 참기름을 넣고 비비면 ‘소고기 비빔밥’이 완성되는 것이다.
먹을 만 했다. MSG가 풍부한 자극적인 맛이었지만, 그래도 이런 식으로 간편하게 비빔밥을 먹을 수 있다는 건 매력적이었다. 된장국은 일본 미소 된장국 맛에 가까웠다. 간편하게 아침을 먹는데도 여럿이 먹다 보니, 한 시간이나 걸렸다. 시간이 어느덧 9시 30분을 향해서 가고 있다.
오늘 걸을 거리도 만만치 않다. 10.8㎞를 걸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5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지만, 우리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마음 단디 먹고 열심히 걸어야 한다.
노고단 대피소에서 나와 오르막길을 따라 오르니, 노고단 정상이 보이더라. 정상을 표시하는 표지석 바로 옆에 돌무더기가 보인다. 사람들이 소원을 빌기 위해 하나씩 쌓은 돌들이 이런 모양을 이룬 것일까? 우리는 소원을 빌 여유도 없이, 바로 걸음을 재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