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12일(화)
노고단도 어찌 보면 누군가에겐 목적인 산일 수도 있지만 우린 종주가 목표기 때문에 그곳에서 오랜 시간을 보낼 여유는 없었다. 그래서 잠시 둘러보고 바로 출발했던 것이다. 재밌게도 여기엔 ‘지리산 종주시점’이라는 안내문이 큼지막한 글씨로 쓰여 있더라. 이 말마따나 어제 화엄사에서 노고단까지 오른 것은 워밍업이었고 지금부터 본격적인 시작이다.
건호는 노고단 대피소에서 연하천 대피소로 가는 길에 밥을 해먹을 수 있는 곳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것만 믿고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냥 길을 나섰는데, 등산객에게 물어보니 물이 나오는 곳이 없다고 말해준다. 이런 게 바로 판단 미스지만, 엄청난 실수는 아니기에 인정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가져온 식수로 라면이라도 끓여 먹을지, 그런 시간을 아껴 빨리 연하천에 도착하여 밥을 먹을지 결정해야 했다. 아이들은 빨리 걸어가는 것을 원했다. 그래서 간식으로 배를 때우기로 한 것이다.
자신이 가져온 간식을 꺼내놓는다. 그리고 당연한 듯 나눠 먹는다. 그 광경을 보고 있으니, 이채롭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평소엔 먹을 것에 그렇게 민감하던 아이들이다. 그래서 거의 남에게 나눠주지 않는다. 그런 걸 알기 때문에 힘든 여행을 하면서는 더욱 더 이기적인 행동을 할 줄 알았는데, 그러지 않았던 것이다. 자신이 먹기에도 아까운 육포와 과자를 아이들에게 똑같이 나누어 줬으니 말이다.
이게 바로 ‘동지의식’이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나만 배고프거나 나만 힘든 게 아니라, 모두 배고프며 모두 힘들다는 ‘역지사지’의 마음인 것이다. 여행 내내 학교에서는 미처 볼 수 없었던 이와 같은 뿌듯한 광경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비약하여 말하자면, 이런 모습이야말로 ‘공부하는 모습’인 것이다. 왜 그런 비약이 가능한지, 차근차근 살펴보도록 하자.
근대화 이후 학교가 하나의 체제로 자리 잡으면서 ‘공부’를 학교가 독점하게 되었다. 그와 함께 공부의 의미가 지극히 협소해졌다. 그 후, 학교의 체제가 공고해지면서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학교에 가야 한다’는 말이 당연한 듯 쓰이게 되었고, ‘공부는 국영수 등 중요과목을 익히는 것’이라는 인식이 보편화되었다. 학교의 공부 독점은 어찌 보면, 수많은 가능성을 닫아버리고 하나의 획일적인 기준만 중시하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이런 현실이기에 ‘공부 안 해?’라는 부모의 꾸짖음은 ‘국영수 공부 안 해?’라는 말이 된 것이고, ‘학교 다니기 싫어요’라는 학생의 말은 ‘공부하기 싫어요’라는 말이 된 것이다. 이렇듯 ‘공부=학교=국영수과사’라는 공식이 아무런 비판도 없이 하나의 묶음인양 아무렇지 않게 쓰이고 있다.
하지만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공부의 원의’는 결코 그처럼 협소하지도, 그만큼 획일적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학교를 다니지 않아도 얼마든지 공부할 수 있으며, 국영수는 공부의 한 부분일 뿐 전체가 될 수 없으니 말이다. 공부의 원래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공부’에 대해 다시 한 번 곱씹을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과연 공부란 무엇이란 말인가? 그리고 제대로 공부한다는 게 왜 중요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고리타분하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이 때 우리에게 필요한 조언가는 언제나 우리의 주위에 있었다. 우리가 잃어버린 과거 속에 ‘오래된 미래’가 숨어 있고, 별거 아니라고 스친 것 속에 ‘평범한 진리’가 숨어 있는 법이다. 그래서 지금부터 우린 다산 정약용 선생의 글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평범한 진리’를 찾아가려 하는 것이다.
조선 후기에도 지금과 같이 공부 같지 않은 공부를 하던 풍조가 있었던가 보다. 수박 겉핥기를 공부라고 착각하고 떵떵거리며 사는 양반(현대엔 비하하는 용어로 쓰이지만, 여기에 쓴 용어는 조선시대의 문반과 무반을 뜻하는 용어로 씀)들이 많았나 보다. 그걸 다산 선생은 「다섯 가지 배움에 대한 글2五學論 二」로 준엄하게 비판하고 있다.
옛적에 배운다는 것엔 다섯 가지가 있었는데 널리 배우고 자세히 물으며 신중히 생각하고 분명히 판단하며 독실하게 행동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배운다는 것엔 한 가지가 있으니 ‘널리 배우는 것’일 뿐이고 ‘자세히 묻는 것’으로부터 이하는 생각하질 않는다.
그러면서 한나라 유학자의 학설이라면 깊은 뜻을 묻지도 않고 일이 진행되는 과정을 따지지도 않고서 오직 마음과 뜻을 전일하게 하고 믿어버린다. 그래서 가까이는 마음을 다스리고 본성을 바르게 하는 걸 생각지 않고 멀리는 세상을 보필하고 백성을 성장시키는 걸 구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오직 박람강기함과 글재주, 말솜씨만을 뽐내 한 세상의 고루함을 깔볼 뿐이다.
古之爲學者五, 曰: ‘博學之, 審問之, 愼思之, 明辨之, 篤行之,’
今之爲學者一, 曰博學之而已. 自審問而下, 非所意也.
凡漢儒之說, 不問其要領, 不察其歸趣. 唯專心志以信之. 邇之不慮乎治心而繕性, 遠之不求乎輔世而長民. 唯自眩其博聞強記宏詞豪辨, 以眇一世之陋而已.
글을 읽은 소감이 어떤가? 지금과 너무나 똑같아서 놀랍지 않는가. 그 땐 한나라의 학설이라면 무조건적으로 신봉했다면 지금은 미국의 학설이라면 무조건적으로 신봉하며, 그 땐 박학만을 중시했다면 지금은 정답 맞추기식 국영수 공부만 중시한다. 그렇기에 ‘오직 널리 듣고 잘 기억하는 것과 글솜씨, 말솜씨’를 기르는 걸 그 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공부의 전체인 양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린 되도 않는 가장 저급한 공부만을 우리의 전통인양 살려 현재까지 이어왔을 뿐, 본질을 꿰뚫고 앎을 통해 삶을 변화시키는 제대로 된 공부는 놓치고 더 이상 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이런 식의 저급한 공부만 하면 어떻게 될까? 다산 선생이 잘 지적했듯이 ‘마음을 다스리고 성품을 바로잡는 것과 세상을 돕고 백성을 기르려는 것’을 하지 않게 된다. 나 혼자만 잘 먹고 잘 살면 그 뿐인데, 성품을 신경을 쓸 이유도, 세상이나 타인에 대해 생각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그럴 시간에 어떻게 한 푼이라도 더 모을까, 어떻게 나만 잘 살까 고민하는 게 오히려 낫다고 생각한다. 바로 이런 식의 사고방식이 횡행하니 공부에 대한 의미가 더욱 더 협소해지고 피폐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린 공부의 원의를 찾고 그런 공부를 하려 노력해야만 한다. 그러려면 당연히 ‘널리 배우는 것博學’에만 머물던 편협한 정의를 뛰어넘어 ‘자세히 묻는 것審問’과 ‘신중하게 생각하는 것愼思’과 ‘밝게 판별하는 것明辯’과 ‘독실하게 실행하는 것篤行’의 단계까지 나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건 곧 ‘앎에 대한 의지’가 있어야 하며, ‘세상과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공부의 기본은 어찌 보면, 정해진 지식에 함몰되지 않고 짜인 체계에 머물지 않고 지식과 체계를 넘어서려는 ‘구도求道의 행위’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공부는 미지의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자신의 결단일 수밖에 없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지리산 여행을 통한 경험들은 그것 자체로 공부가 되는 것이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아무도 평가하지 않았지만 그것 그대로 배우고 익히며, 실천하여 앎과 삶이 마주쳐 생동하는 공부의 장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