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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Mar 08. 2016

벽지 도배를 하며 노동주체로 서다

단재학교 벽지도배를 하다

단재학교는 2년 전부터 새 학기를 2월에 시작하고 있다. 아무래도 제도권 학교에 비해 한 달을 빨리 시작하는 만큼 이 때만큼은 자율적인 분위기 속에서 새 학기를 준비하자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올해는 더욱 특별하게 2월 한 달 동안 ‘학생 중심 학교’를 표방했다. 교사들이 정한 시간표에 맞춰 수동적으로 따르지 않고 학생들이 커리큘럼을 만들고 그 시간에 맞춰 자율적으로 활동하는 것이다. 물론 학교이니만치 아무런 제재나 틀이 없을 순 없다. 그래서 정한 게 ‘개인이 각자 활동하는 건 안 되며 함께 활동해야 한다’는 것만 정하고 나머지는 아이들의 자율적인 판단과 협의에 맡겼다.                



▲ 3월의 우리끼리 프로젝트 회의 사진. 2월에 찍은 사진이 없어 아쉽다.




산업혁명기의 교사상

     

이 때 교사의 역할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교사는 학생의 앞에 서서 학생을 인솔하며, 그들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기에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교대나 사범대에선 교수법이랄지, 전공과목의 지식을 갈고 닦는 것이다. 이런 생각의 기본은 뭐니 뭐니 해도 ‘학생은 미성숙하며, 부족한 존재이기에, 교사가 성숙에 이를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하며 지식을 채워 넣어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다. 이것에 대해 누구도 이의제기를 하지 않기에 교육부가 발급한 ‘정교사 자격증’이 있는 사람으로만이 교사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산업화 혁명 이후 등장한 근대학교의 교사자질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산업혁명이 일어나며 공장에서 일해야 하는 노동력이 엄청나게 필요해졌다. 그 때 지금과 같은 형태의 학교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 공장에 바로 투입될 수 있는 인재를 길러냈던 것이다. 당연히 현장에서 바로 쓸 수 있도록 실무적인 능력, 또는 정답 맞추기식 공부가 가능했던 조건이라 할 수 있다.                



▲ 한 교실에 최대한 많은 학생을 넣고 분초단위로 쪼개진 시간표대로 규격화시켜야 했던 이유는 산업혁명과 관련 되어 있다.




혁명기 이후의 교사상 

    

하지만 100년여가 지나며 학교의 형태는 바뀔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더 이상 절대적인 진리를 운운하며 하나의 정답만을 강요할 수 없는 세상이 온 것이다. 세상은 급변했고, 지식의 가치는 나날이 하락했다. 그렇기 때문에 ‘짜투리 지식을 얼마나 많이 아느냐?’라는 것은 중요하지 않게 되었으며, ‘기존의 지식을 어떻게 자기화하고 하나로 꿰뚫어 통찰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게 되었다. 더 이상 컨베이너 벨트를 따라 정해진 동작만 반복하는 기계화된 인간이 필요한 시대가 아닌, 컨베이너 벨트 너머를 상상하고 그걸 현실화할 수 있는 창조적인 감성을 지닌 인간이 필요한 시대가 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변화에 맞춰 당연히 학교의 역할도 변해야 하고, 교사의 역할도 변해야 한다. 더 이상 전면에 서서 모든 것을 통제하고 가르치려는 교사상이 아닌, 학생과 발맞춰 그들 안의 이야기를 끄집어낼 수 있는 교사상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교사의 역할이란 당연히 ‘지켜볼 수 있느냐?’라고 할 수 있다. 지켜볼 수 있으려면 학생의 자발적이며 역동적인 마음을 믿고 응원해 줄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하고, 설혹 교사의 입장에서 맘에 안 드는 부분이 있다고 할지라도 섣불리 개입하여 교사의 입김대로 끌어당기지 않겠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누군가는 그걸 방임이며 무책임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그건 아예 교사이길 포기할 때나 쓸 수 있는 말일 뿐이다. 교사의 마음을 지니면서 아이들에 대한 애정을 가지면서, 지켜볼 수 있다는 건 엄청난 결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때 불쑥불쑥 일어나는 자신의 감정을 추슬러야 하고, 교육이란 이름으로 간섭하고자 하는 마음을 억눌러야 한다. 누군가에게 간섭하여 그를 수동적인 존재로 만드는 일은 쉬운 일이지만, 수동적인 존재인 그들을 능동적인 존재로 인정하고 지켜보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물론 이런 식으로 진행할 때 아이들은 모든 걸 맘대로 하려 하기에 밑도 끝도 없이 틀어질 수도 있다. 그래서 누가 보면 ‘돗떼기 시장’ 같은 정신없음과 왁자지껄한 모습에 ‘역시 아이들은 통제를 해야 해!’라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선 안 된다. 그건 이은진쌤이 말마따나 ‘과도기적 현상’일 뿐이어서, 그런 순간을 넘어가면 서로에게 더 긍정적인 효과를 낳기 때문이다.                



▲ 작년 9월 16일에 찍은 사진. 아이들은 나름 규칙을 만들며 지켜 나간다. 함께 모여 게임을 하는 모습.




도배 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이런 생각으로 아이들이 만들어가는 학교를 시작했다. 서로의 의견을 모으기 위해 각자가 하고 싶은 것들을 얘기하게 되었다. 이 때 대부분의 아이들은 당연히 편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을 제시했다. ‘영화보기’, ‘애니메이션 보기’, ‘TV 보기’의 삼종 세트는 늘 수동적으로 억압받고 살아온 아이들이 손쉽게 얘기할 수 있는 것들이다. 아무래도 영상의 홍수 속에 살다 보니, 영상에 대한 거부감이 없을뿐더러, 그것만 계속 볼 수 있다면 그만한 ‘개이득(요즘 아이들의 유행어)’도 없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단순하면서도 평상시에 하고 싶던 것들이 여기저기 봇물 터지듯 나오던 그 때, 현세는 눈치 볼 것도 없이 아주 태연하게 “학교를 꾸몄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지금까지의 의견과는 완전히 다른 의견이었기에 눈이 커지며, 『송곳』이란 웹툰의 ‘분명 하나쯤은 뚫고 나온다. 제 스스로도 자신을 어쩌지 못해서 기어이 한걸음 내딛고 마는 그런 송곳 같은 인간이.’란 말이 떠올랐다. 물론 현세가 ‘송곳’ 같은 인간이라 할 순 없지만, 그래도 뭔가 특이하면서도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하긴 했으니 말이다. 그런 생각이 늘 일관될 순 없지만, 그래도 한 순간에 팍팍 튀는 생각을 하고 그걸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다는 게 멋있게 느껴졌다. 바로 이 말 한마디가 계기가 되어 우리는 도배를 하게 되었다.                     






몸을 움직일 때 삶의 행복이 스며든다

     

처음 시작할 땐 모두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우리가 왜 이런 일을 해야 해요?”, “그러지 말고 사람 불러서 해요” 등등의 볼멘소리를 했다. 근데 솔직히 나도 두려움이 앞섰다. 한 번도 도배를 해본 적이 없으니, 과연 잘할 수 있을지, 그리고 무척 힘들지 않을지 걱정이 됐던 것이다. 아마도 아이들의 그런 넋두리는 나처럼 해보지 않은 일을 해야 한다는 불안 때문에, 왜 그런 일을 우리가 해야 하냐는 불만 때문에 한 말이라 할 수 있다.


▲ 도배지가 도착했다. 아이들 얼굴은 심란함이 가득하다.



하지만 막상 시작하여,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며 하는 법을 터득하고 보니, 언제 그렇게 싫은 소리를 했냐 싶게 진도도 빨리 나가며, 신나게 작업을 할 수 있었다.

이럴 때 보면 ‘톰소여의 페인트칠’이 거짓말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분명 톰소여는 친구들을 속이기 위해 짐짓 즐거운 척 일을 했겠지만, 적어도 그의 친구들은 그게 재밌고 신나서 일을 했을 것이니 말이다. 그처럼 아이들도 하나씩 하나씩 도배를 하며 방의 분위기가 달라진다는 흥취에 젖어, 그리고 이걸 자신이 직접 한다는 성취감을 느끼며 일을 하게 됐던 것이다. 그러니 겉으론 “힘들어 죽겠어요”라는 말을 하지만, 얼굴 표정은 훨씬 밝아졌고 도배를 하는 내내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학교가 아동들의 노동력 착취를 가로막다

     

그런데 이 때 한 학생이 “이런 모습을 엄마가 봤다면, 아마도 노발대발하셨을 거예요. 어떻게 학교에서 이런 일을 시키냐고 화내실 게 뻔하거든요.”라고 말을 한다. 그 얘길 듣는 순간, 가슴 깊숙한 곳에서 불덩이 같은 게 올라왔다. 이 논쟁은 과연 노동을 착취의 개념으로 볼 것인지, 가치 있는 활동의 개념으로 볼 것인지 하는 것에 달려있다.

근대학교의 등장과 의무교육의 제정은 어찌 보면 노동력을 착취당하던 아이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과 동시에, 교육받을 권리를 인정해주기 위해서였다. 영국의 산업혁명 당시 아동의 노동시간은 10시간 안팎이었다. 저임금으로 긴 시간동안 부릴 수 있었기에 넘쳐나는 산업 현장에선 아동을 데려다 쓰는 게 이득이었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근대학교가 설립되고 의무교육법이 제정되며 아동을 일하는 장소가 아닌 학교로 가게 했다는 점은 충분히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런 흐름 속에 방정환 선생은 ‘어린이날’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 엄청나게 노동력을 착취당했다. 사회 구조가 그렇게 짜여지면 누구도 그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할 수 없다.




노동력 착취가 아닌, 노동주체로 세우는 것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상황이 변했고 환경도 변했다. 이제 웬만한 집에선 아이들에게 일을 시키지 않는다. 밖에서의 일은 물론이고, 심지어 집 안의 일조차 하지 않게 되었다. 아이들은 더 이상 ‘노동의 가치’란 의미를 완전히 잊어버리게 되었고, 심지어는 ‘노동은 천박한 것’, ‘노동은 게으른 자가 하는 것’이란 인식마저 가지게 된 것이다. 아마도 이런 현실이기에 학생의 어머니는 학교에서 도배를 했다는 사실에 노발대발할 수 있는 것이며, 이런 모습에 대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것이다.



▲ 중학생이 네모 칸을 채웠다. 이 학생만이 이렇게 느끼는 게 아니기에 문제가 된다



그런데 과연 그 생각이 맞는 걸까? 그리고 그걸 단순히 ‘노동력 착취’ 또는 ‘쓸데없는 짓’이라 폄하하며 말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우치다 타츠루 선생은 전혀 다른 관점으로 이야기를 풀어준다. ‘소비주체’와 ‘노동주체’란 개념으로 대비하며 설명하는데, 지금 아이들은 ‘소비주체’로 자기 스스로를 세웠기 때문에 니트족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이 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노동주체는 시간의 흐름 속에 무언가 서서히 만들어져 간다는 것을 몸으로 체득하였기에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변하는 노동이나 교육의 의미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만, 소비주체는 돈을 주면 바로 물건이 내 것이 되는 무시간적인 모델을 몸으로 받아들였기에 노동이나 교육과 같이 시간의 흐름이 중시되는 활동을 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이런 분석이 담고 있는 내용은 ‘시간의 흐름’을 몸으로 경험해봤으며 그걸 감내할 수 있느냐의 문제라 할 수 있다. 어찌 보면 집에서 아이들이 설거지를 한다든지, 청소를 한다든지, 심지어 음식을 만드는 일을 한다든지 하는 모든 일들이 시간의 흐름을 몸으로 받아들이며 노동주체를 세워가는 일이라 할 수 있다. 바로 그걸 회복했을 때, 비로소 공부와 같이 시간의 흐름이 중요한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의 활동 중에 몸을 움직여서 하는 활동이 있다면 그걸 단순히 ‘노동력 착취’라는 산업혁명 시대의 발상으로 생각하여 비판하기보다, 소비주체로 자신을 세운 아이들을 노동주체로 탈바꿈 시키는 과정이라 생각하여 응원해줘야 맞다. 그럴 때 지금처럼 아이들이 도배지를 한 장 한 장 붙이며 완성되어 가는 느낌에 활짝 웃기도 하고, 진실하게 흘린 땀방울이 학교 전체의 분위기를 바꿨다는 사실에 뿌듯해 하기도 하니 말이다.   





             

도배일지  

   

2월 1일(월): 회의를 통해 도배하는 것으로 결정 및 도배지 주문

2월 3일(수): 1층 도배지만 도착함

2월 4일(목): 1층 거실, 연극팀방, 여학생방, 도서관, 부엌만 도배함

2월 5일(금): 2층 영화팀방, 영어팀방, 남학생방, 도배함.

2월 17일(수): 1층 연극팀방, 도서관, 부엌, 2층 컴퓨터방, 공부방을 도배함

2월 18일(목): 2층 거실 도배하고 계단에 단재학교 활동사진을 붙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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