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11일
도착하자마자 아이들은 취사장으로 갔고 난 안내소에 가서 자리 배정을 받았다. 소등 시간은 9시고 새벽 4시부터 등산을 할 수 있으며 8시까지 퇴실해야 한단다. 9시에 소등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는 건 이곳은 숙박하기 위한 곳이 아닌, 등산하기 위해 잠시 몸을 누이는 곳이란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피소에서 묵다보면 절로 산 사람이 되는 느낌이 든다.
솔직히 처음에 지리산 종주를 계획했을 땐 당연히 텐트를 가지고 비박을 할 생각을 했었다. 그렇게 해야 뭔가 제대로 종주를 하는 느낌도 들었기 때문인데, 그리 하지 못한 이유는 다음 후기에서 본격적으로 다루어보도록 하겠다.
모포를 빌리는 돈은 2.000원이고 대피소 안엔 노고단의 역사와 지리산을 소개해주는 자료들이 많았다. 전기코드가 없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충전할 수 있는 코드가 꽤 많이 있었다. 이로써 캠코터 배터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니 정말 다행이다.
자는 곳은 2층으로 되어 있으며 1층은 남성들이 자는 곳이었고 2층은 여성들이 자는 곳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히터가 빵빵하게 틀어져 있어서 온 몸이 사르르 녹았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닌데 발냄새가 진동하더라. 어쩔 수 없다. 모두 다 이런 각오쯤은 하고 온 터라 그에 관해선 아무도 불평불만을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런 식의 넉넉한 맘가짐들이야말로 지리산이란 대자연이 주는 푸근함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호는 밥을 여러 번 해봤는지, 압력밥솥에 한 것보다도 더 맛있게 밥을 했다. 밥을 덜고 코펠에 즉석 육개장을 끓여서 배불리 먹었다.
배도 차고 이제 쉴 수 있다는 안도감도 드니, 이보다 더 행복할 순 없었다. 아이들이 도중에 그만둔다고 하면 어쩌나 걱정하기도 했지만, 시작도 하기 전에 사고라도 나면 어쩌나 걱정하기도 했지만, 막상 현실에 놓이자 당연한 듯 헤쳐 나가고 있었다. 그래서 누군가는 그렇게 말한 것인가 보다.
열정은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건넌 자와 건너지 않은 자로 비유되고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강물에 몸을 던져 물살을 타고 먼 길을 떠난 자와 아직 채 강물에 발을 담그지 않은 자 그 둘로 비유된다. 열정은 건너는 것이 아니라, 몸을 맡겨 흐르는 것이다.
-이병률, 『끌림』
열정이란 별 게 아니다. 강물에 몸을 던질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몸을 던질 수만 있다면, 그것 자체로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영화팀 친구들은 이미 강물에 몸을 던졌고 그것에 몸을 맡겨 본 사람들이다. 그것만으로 됐다. 그것만으로 열정이 드러난 것이기에 됐다.
새벽녘에 소변을 보러 밖에 나왔다. 문을 열고 밖에 나왔는데, 시커먼 하늘에 수많은 빛들이 보여서 깜짝 놀랐다. 우슈토베에서 본 밤하늘의 풍경보다 더 경이로웠다. 깊은 어둠 속에서 나에게 엄습해 들어오는 미지의 생명체라도 본 듯이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러나 자세히 보고 싶었다. 그래서 들어가서 안경을 끼고 다시 나와서 보니, 함성이 절로 났다.
최근 『그래비티』라는 영화를 보면서도 광활한 우주를 헤매는 두려움이 잘 와 닿지 않아서 크나큰 감흥은 없었는데, 노고단의 밤하늘을 올려다보니 그제야 그 느낌이 무언지 확연하게 느껴졌다. 알 수 없는 무언가와 대면하는 불안감이며 나의 심연 깊숙한 곳에 자리한 공포가 겉으로 드러나는 무서움이었던 것이다. 우주란 어찌 보면 나 외부의 어떤 것이 아닌, 나의 내면 깊숙한 곳의 알지 못하는 절망, 슬픔, 고뇌가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렇게도 말할 수 있을 거 같다. ‘우주란 나의 자의식들이 분출된 것이다’라고. 늘 우리의 곁에 있었지만, 무수한 빛 공해로 볼 수 없었던 자연을 이곳에서 마주할 수 있게 되어 행복했다. 이로써 대장정의 첫째 날이 저물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