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건빵 Feb 20. 2019

함께 걷기에 우린 노고단에 올 수 있었다

2013년 11월 11일

산행을 시작한 시간은 12시 30분이 지났을 때였다. 화엄사에서 노고단까지는 4㎞로 보통 사람들은 4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우리들은 능숙한 산악인이 아니기에 시간이 더 많이 걸리겠지만, 그래도 6시 안에는 도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  첫째 날 경로: 남부사무소 정류소 ~ 노고단 대피소




순조롭지 않은 등산의 시작

     

이번 산행을 시작하면서 계속 ‘6시까지 도착해야 한다’는 걸 염두에 두고 있었다. 물론 이미 대피소 예약은 했기 때문에 좀 늦는다고 전화를 하면 그 뿐이지만, 6시 이후엔 비예약자들에게 방이 배정되며 출입문에서 들어오는 찬바람을 맞으며 잘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시간은 여유가 있었지만, 아이들의 체력이 어떨지 몰라 1시간 걷고 15분 쉬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하지만 이 원칙은 곧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조금 걷다 쉬고, 조금 걷다 쉬고를 반복했으니 말이다. 더욱이 지민, 민석, 현세는 배낭 외에 작은 가방까지 가져와서 손에 들고 가야 했다. 배낭은 허리와 가슴에 매는 벨트를 채우면 무게가 분산되어 큰 부담 없이 등산할 수 있지만, 손에 든 짐은 한 쪽 어깨에 부담을 주며 손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하기에 힘이 두세 배로 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다가 우리의 공동 물품인 코펠과 버너와 연료까지 함께 가지고 가야하니 상상 이상의 강행군이었던 거다.                



▲ 오기 전에 여러 산을 다니긴 했지만 역시 지리산은 험하고 힘들다.




같이 오를 때우리가 된다 

    

처음엔 이동 순서를 맞춰서 이동했지만, 점차 아이들 사이에서 체력차가 확연하게 나서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따로 따로 가게 할 수는 없어서 뒤처지는 아이들을 앞에 세워 같이 갈 수 있도록 했다. 원랜 ‘민석-주원-현세-건호-지민-승빈’이었는데, ‘주원-지민-현세-민석-건호-승빈’으로 이동 순서를 변경했다. 

이렇게 이동 순서를 바꾸니, 그나마 함께 오를 수 있게 되었다. 뒤에 가는 아이들은 좀 더 빨리 갈 수 있음에도 앞에 가는 아이들과 발걸음을 맞춰 걸었다. 여기서 중요한 건 혼자만 잘 하다는 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사실이다. 

경쟁주의 사회에선 오로지 혼자만 잘 하면 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막상 현실에선 혼자만 잘 해선 의미가 없다. 누군가와 같이 발걸음을 맞추는 것, 누군가를 배려하며 함께 한다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등산 또한 그와 마찬가지다. 나만 내세우려 해서는 안 되며, 함께 가는 친구들을 배려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함께 걸을 때에야 우린 비로소 하나가 될 수 있으며, 그럴 때 ‘적-동지’와 같은 이분법으로 구분하던 관계의 망도 허물어진다. 



▲ 4Km인데도 정말 힘들고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



               

나의 길은 내가 걸어야만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식으로 걸어서는 좀처럼 진도가 안 나간다는 사실이다. 시간은 벌써 5시가 넘어가고 있었고 마음은 다급해졌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건호와 승빈이를 먼저 보내기로 했다. 먼저 올라가 안내소에 우리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저녁 준비를 하도록 했다. 그래야 나머지 아이들도 시간에 맞춰 어떻게든 가야 한다는 부담에서 놓일 수 있으니 말이다.  

민석이는 힘들어하긴 했지만 꾸준히 올라가 우리와 상당히 격차가 벌어졌으며, 주원이와 지민이와 현세는 맨 뒤에서 끙끙거리며 올라오고 있었다. 화엄사에서 노고단에 오르는 길은 계속 오르막길을 나오기에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힘이 들었다. 그래서 등산을 잘 하지 않던 아이들에겐 더욱 힘든 길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누군가 나를 대신해서 걸어줄 순 없다. 나의 길은 오로지 내 걸음으로 내가 걸어가야만 한다. 그걸 아이들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힘들고 짜증나고 버겁지만, 그래서 절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일어나지만 한 걸음 한 걸음씩 걸어가는 것이다. 뒤처지긴 했지만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아이들이 그 순간에는 대견해 보였다. 

조금 오르니 비포장도로가 보였다. 여기서 노고단 대피소까지는 멀지 않다고 한다. 계속 오르막길을 오르다가 모처럼 평평한 길을 걸으니,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이미 어둠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10분 정도 돌계단을 오르니, 드디어 저 멀리 불빛이 보였다. 그건 희망의 불빛이었고 이제 푹 쉴 수 있다는 안락함을 주는 불빛이었다.      



▲ 어느새 어두워졌다. 현세는 아예 누워버렸다. 그래도 걷고 또 걸어 대피소에 잘 도착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지리산의 가을정취와 화엄사에서의 점심공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