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13일(수)
벽소령 대피소에선 물을 구할 수 없다고 해서 물을 떠왔는데, 계단을 따라 밑으로 내려가면 쉽게 물을 구할 수
있었다.
잘못된 정보 때문에 배낭이 조금 더 무거웠지만, 그래도 물을 쉽게 구할 수 있으니 그걸로 다행이라 생각했다.
점심은 ‘소고기 비빔밥’을 먹기로 했다. 3일 동안 카레, 비빔밥, 육개장 등 주구장창 MSG가 든 음식만 먹다 보니, 배는 부르지만 더부룩하고 뭔가 불쾌감 같은 게 느껴진다. 그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영화팀 모두 윗입술이 갈라질 정도로 텄다.
사람의 입맛을 돋우는 화학조미료는 자극적이다. 그래서 한 끼를 맛있게 먹을 수는 있어도 계속하여 먹을 수는 없는 것이다. 오늘 먹는 비빔밥만 해도 처음에는 ‘먹을 만하다’며 맛있게 먹었는데, 이때부턴 비빔밥에 고추장을 조금만 넣어서 먹거나, 된장국을 아예 먹지 않는 아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렇게라도 먹어야만 힘을 내며 걸어갈 수 있는 것을.
현대의 음식들은 담백하기보다 자극적이며, 특히 밖에서 먹는 음식은 자극적일수록 사람들이 줄서서 먹게 되었다. 그런 흐름을 반영하듯이 흔히 먹던 통닭 중에도 ‘땡초치킨’, ‘핫칠리 치킨’ 등과 같은 메뉴가 나오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런 흐름이야말로 몸의 생리와는 정반대의 흐름일 수밖에 없다. 자극적인 것에 맛들이면 맛들일수록 건강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그와 같은 자극적인 것을 추구하는 행태를 비판하였던 것이다. 동양의 탈무드Talmud라고 불리는 『채근담』의 글귀를 살펴보도록 하자.
진한 술, 살찐 고기, 맵고 단 것은 참맛이 아니다. 참맛은 단지 담백할 뿐이다. 신통하고 기발하며 탁월하고 기이한 사람은 지극한 사람이 아니다. 지극한 사람은 다만 평범할 뿐이다.
醲肥辛甘非眞味, 眞味只是淡; 神奇卓異非至人, 至人只是常. -『採根談』
진한 술, 살찐 고기, 맵고 단 것은 보통 사람에게 사랑받는다. 술만 빼놓고 생각해보면, 단재 친구들 누구 할 것 없이 그런 맛을 좋아한다. 깜짝 놀랐던 것은 채소나 담백한 맛의 음식은 거의 먹지 않는데, 고기나 자극적인 음식은 없어서 못 먹을 정도라는 것이다. 그게 맛있다고 느껴지기에 그것만 찾는 걸 거다. 하지만 위의 글에선 그런 맛들이 결코 참맛이 아니라고, 결론짓고 있다. 왜 그럴까?
그건 쌀과 라면을 비교해 봐도 확연히 알 수 있다. 쌀은 담백한 맛이기에 언제든 부담감 없이 먹을 수 있지만, 라면은 자극적인 맛이기에 매끼마다 먹을 수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자극적인 맛이 온 신경을 자극하여 원재료가 가진 맛을 느끼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요즘 갑작스레 유행하게 된 음식은 ‘닭강정’일 것이다. 길거리에서 한 가게 건너, 한 가게가 보일 정도로 닭강정집을 보는 것이 어렵지 않으니 말이다. 여기에 쓰이는 닭은 국내산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며, 유통 과정에서 어떻게 처리했을 진 모르지만 닭고기의 질이 국내산에 비해 좋진 않을 것이다. 애초에 그런 닭을 쓰게 된 이유가 값이 싸다는, 즉 원가절감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 닭으로 백숙을 만든다면, 과연 그걸 먹으려 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런데도 이런 닭고기로 만든 닭강정의 인기는 과히 하늘을 찌를 듯하다. 특제소스를 아낌없이 발라서 팔며 가격도 저렴하기에 닭고기를 맛보고 싶은 학생들에게 인기가 있는 것이다. 그 때 닭강정을 먹는 학생들은 닭고기가 맛있어서 먹는다기보다는 단맛과 짭조름한 맛이 식욕을 돋우기에 먹는 것이다.
그러니 닭강정을 좋아하는 사람치고, 아이러니하게도 ‘닭고기의 맛’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아마 공자가 이야기한 ‘사람 중에 먹고 마시지 않는 사람은 없지만, 참맛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人莫不飮食也 鮮能知味也 -『中庸』 4장).’라는 말이 이런 뜻일 게다. 닭강정은 특제소스의 맛을 보기 위한 음식일뿐 닭의 맛을 보기 위한 음식이 아니다. 요즘 농담처럼 하는 ‘질소를 샀더니, 과자를 덤으로 주더라’의 패러디로, ‘소스를 샀더니, 닭고기가 들어 있더라.’쯤 되는 음식이라는 말이다.
인위적이고 자극적인 맛은 혀를 마비시켜 진정한 맛이 무엇인지 모르게 한다. 하지만 자극은 곧 고통의 다른 말이다. 고통이 계속되는데, 유쾌할 사람은 없다. 그러니 처음엔 맛있다고 느낀 음식에 대해서도 금방 싫증을 느끼고 결국은 담백한 맛을 찾게 되는 것이다.
MSG가 듬뿍 담긴 음식을 먹다보니, 얼마나 담백한 음식이 좋은지를 몸소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음식은 먹으면 바로 포만감이 느껴지진 않지만, 원재료가 지닌 향과 맛을 느낄 수 있게 하며 몸에 부담을 주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맛이란 자극적이지 않으며 담백한 맛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제로 이 날 저녁엔 건호 어머님이 해주신 울외장아찌를 먹었는데, 그게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이처럼 우린 자연에 와서야 자연의 참맛을 체득할 수 있었다.
그런데 『채근담』은 맛에 대한 통찰을 사람에 대한 통찰로 이어가고 있다. 담백한 맛이 참맛이라면, 사람 또한 꾸며지지 않고 과장되지 않으며, 허영으로 덧씌워지지 않은 평범한 모습 그대로가 ‘참 사람’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2013년의 대한민국은 이와는 전혀 반대의 모습으로 흘러가고 있으니, 이 말을 더욱 귀 기울여 들을 필요가 있다.
아이들은 ‘퀭하다 굽쇼’라는 메이커의 패딩이나 ‘학벌’로 자신을 치장하기 바쁘고, 어른들은 ‘누이배뚱’과 같은 명품백과 ‘지적허영심’이나 ‘돈’으로 자신을 감추기 바쁘다. 그렇게 해야지만 남들보다 우위에 선다고 생각하기에 그와 같은 ‘신통하고 기발하며 탁월하고 기이한 것’으로 자신을 덧씌우려 하는 걸 거다. 하지만 그 말을 뒤집어 보면, 그건 곧 자기에 대한 만족감이 없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그러니 그와 같은 화려하고 지적이며 뭔가 그럴 듯해 보이는 사람은 한 번 볼 땐 좋지만, 보면 볼수록 금방 질리는 것이다. 외적인 그럴듯함을 채워줄만한 내적인 실제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덧씌우고 감추려 하는 욕망이 꿈틀댈수록 자신감을 회복하려 노력해야 하고 더욱 더 평범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내실이 갖춰질 때 우린 평범해질 수 있고, 과장되지 않은 일상을 누릴 때 우린 지극한 사람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