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건빵 Apr 06. 2019

궁하면 통하게 되는 이유

2013년 11월 14일(목)

▲  넷째 날 경로: 세석 대피소 ~ 장터목 대피소~  천왕봉 ~ 장터목 대피소



지리산 프로젝트가 6박 7일의 일정으로 시작되었으니, 어느덧 절반이 지났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은 ‘시작=반’이라는 공식으로 나타낼 수 있고 그건 곧 반은 시작이라는 말로 재해석할 수도 있다. 그렇게 재해석할 수 있다면 반절 정도가 지나 해이해진 마음을 다잡자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지금부턴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이 여행을 정리하며 나머지 일정을 진행할 것이다.                



궁즉통의 참 뜻

     

지금도 전날 밤에 걱정이 앞서서 잠을 이루지 못하던 때와 노고단에 오르며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걱정하던 때를 잊지 못한다. 닥치지 않은 미래는 늘 두려운 법인데, 그 땐 겁에 잔뜩 질려 떨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최악이라 생각했던 상황과는 달리 현실은 최선이었을 뿐 최악은 아니었다. 자신의 연약함을 감추기 위해 현실을 최악의 상황으로 그리도록 만든 것이다. 자기변명을 위한 현실 부정하기였던 것이다. 



▲  넷째 날 일정을 시작하기 전에 의견을 모으는 아이들.



이런 식으로 생각하게 되니, ‘궁하면 통한다窮卽通’는 말의 원의 또한 알겠더라. 지금껏 2009년에 국토종단을 했던 경험을 이야기하며, 궁지에 내몰려야만 비로소 현실을 긍정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뜻으로 이해했었다. 하지만 궁즉통의 함의는 그런 미묘한 생각의 변화를 말하는 게 아니었다.           



궁하면 변화하고 변화하면 통하며 통하면 오래 간다. 

窮則變, 變則通, 通則久. 『周易』 「繫辭傳」


          

원문을 보면 ‘窮→變→通→久’의 단계가 있음을 볼 수 있다. 이건 결코 차례를 나타내는 건 아니다. 유기적인 흐름이며 끊임없는 순환과정이기 때문이다. 

궁지에 몰릴 때 사람은 그 궁지를 벗어나려 변화를 도모하게 되며 그럴 때에야 일상적으로 누리던 ‘고정관념’의 한계를 자각함과 동시에 전에 못 보던 것들과 통할 수 있게 된다. 세상의 흐름과 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자신의 존재가치도 오래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궁즉통의 핵심은 미묘한 생각의 변화가 아니라 적극적인 행동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손가락으로 공을 돌리기 위해서는 중심축을 한 곳에 고정하지 않고 부단히 공의 흐름에 따라 이동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고정되어 있는 것은 멈추거나 썩게 마련이어서 통할 수 없고 지속될 수 없다. 

이처럼 나도 새로운 환경이나, 도전을 해야 할 때, 기존에 경험해 보지 않은 일이라는 이유를 대며 최악의 상상하다가 그만두기 일쑤였다. 그러나 최악의 상황은 의식 속에서나 존재할 뿐 현실은 언제나 그보다 살만하고 그보다 따뜻했다. 

그러니 겁이 나거나 온갖 망상이 밀려올 때가 바로 내 자신이 변할 수 있으며, 세상과 통할 수 있는 기회임을 잊지 말고, 그런 감정 변화와 수시로 찾아오는 온갖 망상을 담담히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을 통해 최악의 상황 따위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며 지금껏 놓쳐 왔던 앎의 경지에 이르게 될 것 테니 말이다.                 




여행다운 여행을 만든 계곡물 사건 

    

어제 저녁에 도착했을 때, 건호가 계곡물을 받아서 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석 대피소에서 내려가는 길은 청학동과 연결되어 있다. 바로 그 길을 따라 조금만 내려가면 세석대피소에 물자를 공급하는 헬기 착륙장이 있고, 그 근처에 계곡물이 흘러 내려온다. 우린 그 물을 떠서 밥을 하고 육개장을 끓이는데 쓴 것이다. 계곡물을 받고 있는 아이들을 보니, ‘이것이야말로 야생이고, 리얼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같았으면 “그런 물을 어떻게 먹어요”라며 볼멘소리를 충분히 할 법한데도, 그 땐 물의 위생상태를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당연한 듯 받아들였으니 말이다. 



▲  계곡물을 받던 곳에서 조금만 내려가면 이런 식수대가 나온다. 떠날 때가 되어서야 알았다.



하지만 이 날 아침에 식수대가 있음을 알고 깜짝 놀랐다. 계곡물을 받았던 곳에서 조금만 더 내려가면 떡하니 음용할 수 있는 식수가 마련되어 있다. 어젠 늦은 시간에 왔기 때문에 좀 더 내려가 볼 생각을 하지 못해서 발견하지 못했는데 아침엔 뭔가 이상했는지 한 학생이 좀 더 내려가 볼 생각을 했고 음용수대를 발견한 것이다. 왕성한 호기심이 발견하게 만든 셈이다. 아이들은 계곡물 맛이 나는 밥을 먹었다고 아쉬워했지만 난 오히려 잘 됐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경험이야말로 여행다운 모습이었고 최고의 명장면이었으니 말이다. 

이런 경험을 하다보면, 위생관념이 근대화 이후에 들어왔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평소엔 문제가 되지 않던 것들이 ‘위생’이란 이름으로 문제가 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여행은 그런 위생관념에서 멀어져야만 비로소 제대로 할 수 있다. 더욱이 지리산 종주처럼 물도 아껴 써야 하고 쓰레기도 최대한 만들지 않아야 하는 여행에선 말이다.           



▲  계곡물을 받아 밥을 할 생각을 하고 그걸 맛있게 먹던 순간. 이런 맛이 여행의 맛.


매거진의 이전글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발휘되는 저력과 대담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