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14일(목)
지리산 프로젝트가 6박 7일의 일정으로 시작되었으니, 어느덧 절반이 지났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은 ‘시작=반’이라는 공식으로 나타낼 수 있고 그건 곧 반은 시작이라는 말로 재해석할 수도 있다. 그렇게 재해석할 수 있다면 반절 정도가 지나 해이해진 마음을 다잡자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지금부턴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이 여행을 정리하며 나머지 일정을 진행할 것이다.
지금도 전날 밤에 걱정이 앞서서 잠을 이루지 못하던 때와 노고단에 오르며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걱정하던 때를 잊지 못한다. 닥치지 않은 미래는 늘 두려운 법인데, 그 땐 겁에 잔뜩 질려 떨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최악이라 생각했던 상황과는 달리 현실은 최선이었을 뿐 최악은 아니었다. 자신의 연약함을 감추기 위해 현실을 최악의 상황으로 그리도록 만든 것이다. 자기변명을 위한 현실 부정하기였던 것이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게 되니, ‘궁하면 통한다窮卽通’는 말의 원의 또한 알겠더라. 지금껏 2009년에 국토종단을 했던 경험을 이야기하며, 궁지에 내몰려야만 비로소 현실을 긍정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뜻으로 이해했었다. 하지만 궁즉통의 함의는 그런 미묘한 생각의 변화를 말하는 게 아니었다.
궁하면 변화하고 변화하면 통하며 통하면 오래 간다.
窮則變, 變則通, 通則久. 『周易』 「繫辭傳」
원문을 보면 ‘窮→變→通→久’의 단계가 있음을 볼 수 있다. 이건 결코 차례를 나타내는 건 아니다. 유기적인 흐름이며 끊임없는 순환과정이기 때문이다.
궁지에 몰릴 때 사람은 그 궁지를 벗어나려 변화를 도모하게 되며 그럴 때에야 일상적으로 누리던 ‘고정관념’의 한계를 자각함과 동시에 전에 못 보던 것들과 통할 수 있게 된다. 세상의 흐름과 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자신의 존재가치도 오래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궁즉통의 핵심은 미묘한 생각의 변화가 아니라 적극적인 행동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손가락으로 공을 돌리기 위해서는 중심축을 한 곳에 고정하지 않고 부단히 공의 흐름에 따라 이동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고정되어 있는 것은 멈추거나 썩게 마련이어서 통할 수 없고 지속될 수 없다.
이처럼 나도 새로운 환경이나, 도전을 해야 할 때, 기존에 경험해 보지 않은 일이라는 이유를 대며 최악의 상상하다가 그만두기 일쑤였다. 그러나 최악의 상황은 의식 속에서나 존재할 뿐 현실은 언제나 그보다 살만하고 그보다 따뜻했다.
그러니 겁이 나거나 온갖 망상이 밀려올 때가 바로 내 자신이 변할 수 있으며, 세상과 통할 수 있는 기회임을 잊지 말고, 그런 감정 변화와 수시로 찾아오는 온갖 망상을 담담히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을 통해 최악의 상황 따위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며 지금껏 놓쳐 왔던 앎의 경지에 이르게 될 것 테니 말이다.
어제 저녁에 도착했을 때, 건호가 계곡물을 받아서 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석 대피소에서 내려가는 길은 청학동과 연결되어 있다. 바로 그 길을 따라 조금만 내려가면 세석대피소에 물자를 공급하는 헬기 착륙장이 있고, 그 근처에 계곡물이 흘러 내려온다. 우린 그 물을 떠서 밥을 하고 육개장을 끓이는데 쓴 것이다. 계곡물을 받고 있는 아이들을 보니, ‘이것이야말로 야생이고, 리얼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같았으면 “그런 물을 어떻게 먹어요”라며 볼멘소리를 충분히 할 법한데도, 그 땐 물의 위생상태를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당연한 듯 받아들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날 아침에 식수대가 있음을 알고 깜짝 놀랐다. 계곡물을 받았던 곳에서 조금만 더 내려가면 떡하니 음용할 수 있는 식수가 마련되어 있다. 어젠 늦은 시간에 왔기 때문에 좀 더 내려가 볼 생각을 하지 못해서 발견하지 못했는데 아침엔 뭔가 이상했는지 한 학생이 좀 더 내려가 볼 생각을 했고 음용수대를 발견한 것이다. 왕성한 호기심이 발견하게 만든 셈이다. 아이들은 계곡물 맛이 나는 밥을 먹었다고 아쉬워했지만 난 오히려 잘 됐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경험이야말로 여행다운 모습이었고 최고의 명장면이었으니 말이다.
이런 경험을 하다보면, 위생관념이 근대화 이후에 들어왔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평소엔 문제가 되지 않던 것들이 ‘위생’이란 이름으로 문제가 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여행은 그런 위생관념에서 멀어져야만 비로소 제대로 할 수 있다. 더욱이 지리산 종주처럼 물도 아껴 써야 하고 쓰레기도 최대한 만들지 않아야 하는 여행에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