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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Apr 06. 2019

지리산 종주 중 가장 여유롭던 하루

2013년 11월 14일(목)

▲  넷째 날 경로: 세석 대피소 ~ 장터목 대피소~  천왕봉 ~ 장터목 대피소



초기에 계획을 짤 땐, 세석에서 이틀 밤을 보내는 거였다. 원래대로 했다면, 오늘은 청학동까지 내려갔다가 올라오는 일정을 진행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부터 산불예방 때문에 세석대피소가 예약을 받지 않아 계획을 변경해야 했다. 그래서 세석 바로 옆에 있는 장터목 대피소에 예약하게 된 것이다.                



▲ 어떻게 할 건지 계획을 다시 상의하는 아이들.




삼신봉에 갔다 올까천왕봉에 미리 오를까? 

    

세석에서 장터목 대피소까지는 3.4㎞ 밖에 되지 않으며 2시간 정도의 시간이면 갈 수 있다. 그건 곧 오전 중에 오늘 여행이 끝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 날은 날씨가 변수였다. 지리산에 오기 전부터 일기예보를 보니, 이 날엔 비가 내릴 거라는 예보가 있었고 내일까지 이어진다는 거였다. 그러나 어제 확인해보니, 다행히도 비는 오후 늦게부터 내리며 새벽에 개어 내일은 맑다는 것으로 변경되어 있었다. 빗 속 산행이라는 강행군을 하지 않게 된 것만으로도 매우 다행이라 할 수 있다.



▲ 삼신봉을 내려갔다 올 것이냐, 천왕봉을 연습 삼아 갔다 올 것이냐?



남는 시간을 어떻게 할 것인지 아이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그랬더니 의견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졌다. 하나는 좀 무리한 일정이지만 청학동 부근 삼신봉(1.289m)까지만 내려갔다가 올라오자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천왕봉에 예행연습 삼아 갔다 오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첫 번째 의견은 무리수였다. 아무리 배낭을 놓고 간다고 해도 거리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미 몸은 지친 상태였기에, 그렇게 무리수를 둘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천왕봉에 미리 올라가기로 하고 오늘의 산행을 시작했다.                



▲ 지리산의 풍경은 감탄이 절로 나온다. 1.000m가 넘는 곳에서 바라보니 나지막하게 보인다.




장터목 대피소에서 점심을 먹다 

   

힘든 일정이 아니기 때문에, 오전엔 최선을 다해서 걸었다. 세석에서 장터목까지 가는 길도 꽤 난이도가 있었다. 하지만 천왕봉이 멀지 않다고 생각하니, 걸음걸이에 힘이 실리더라. 시간이 지날수록 몸은 힘들어졌을 텐데, 이상하게도 더 힘이 났다. 아마 그건 ‘시작이라는 부담에서 벗어나 끝이 보인다는 안도감’이 만드는 힘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서 2시간 만에 장터목 대피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 짧긴 해도 절대로 편안한 길은 아니다. 열심히 걸어 점심 시간엔 장터목 대피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만 해도 햇빛이 환하게 비치고 있었는데, 물을 끓이고 있으니 언제 그랬냐 싶게 검은 구름이 몰려오며 금세 어두워지는 것이었다. 바람도 세차게 불어서 그곳에선 버너의 불도 꺼질 정도였기에 취사장 쪽으로 옮겨야 했다. 지리산의 날씨는 변화무쌍하다더니, 정말이었다. 취사장 안으로 들어가면 더 따뜻할 테지만, 안엔 각종 음식 냄새가 배어 있어 역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취사장 밖에서 비빔밥을 먹었던 것이다. 



▲ 맑던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오는 게 보인다. 그래서 취사장으로 옮겨야만 했다.



그 때 조금 비가 내렸기에 황급하게 배낭과 공동물품을 취사장 근처 가림막으로 옮겨 놓았다. 밥을 다 먹고 잠시 구경할 겸 대피소 안으로 들어가 보니, 시설은 좋더라. 그리고 특이하게도 1호실은 방문객들이 쉴 수 있도록 상시 개방해놓고 있었다. 

천왕봉 바로 근처에 있는 대피소이고 내일부터 종주코스의 통행이 금지되기 때문인지, 대피소엔 정말로 사람이 많았다. 천왕봉이 지리산에서 가진 의미가 그만큼 각별하기 때문이겠지.       



▲ 장터목 대피소 1호실의 전경. 통나무집 같은 분위기여서 아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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