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한강 자전거 여행 13 - 15.10.4(일)
2학기 전체여행으로 변산반도에 3일간 다녀온 이후 기온이 급속도로 떨어졌다. 그 전까지만 해도 굳이 이불을 덮지 않아도 자는 데는 문제가 없었는데, 지금은 바닥이 어찌나 차가운지 약간 두꺼운 보를 깔았음에도 한기가 느껴질 정도다. 어느덧 매서운 여름은 그렇게 지나가고 이젠 장판을 깔아야지만 잠을 푸근히 잘 수 있는 시기가 온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좀 이른 감이 있기에 그냥 보만을 깔고 잠에 들었고 그 때문에 오들오들 떨다가 5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일어났다. 이쯤 되면 은근히 헛갈린다. 추워서 일찍 일어난 건지, 장기간 여행을 한다는 긴장으로 일찍 일어난 것인지 말이다.
2년 전에 지리산 종주를 출발할 때도, 그리고 작년에 남한강 도보여행을 출발할 때도 긴장도는 최고조로 올라갔다. 아무래도 ‘나 혼자에게도 도전에 가까운 여행을 아이들과 함께 무사히 끝내야한다’는 부담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렇지만 운 좋게도 지난 2년 동안의 무모하리만치 대담했던 도전은 순조롭게 끝났다. 그리고 그렇게 어려움을 함께 경험한 것들이 밑바탕이 되어 우리는 더욱 더 끈끈해질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런 성공의 기억이 이번 여행을 떠나는데 도움이 되었을까? 어느 일정 부분은 도움이 되었다. 힘들긴 해도 ‘잘 끝날 것’이란 기대를 품게 했고, ‘좌충우돌하겠지만 그 과정을 통해 더 돈독해질 것’이란 희망을 갖게 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영화팀 아이들과는 여러 여행을 통해 격 없이 친해질 거란 걸 알게 했다. 분명 성공의 경험은 실패에 대한 부담보다 여행에 대한 기대를 더 많이 가지게 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자전거 여행’이란 특수성은 어느 부분에선 바짝 긴장되게 만들었다(여름방학 때 떠난 영화팀 자전거 여행 후기보기). 자전거는 한 눈을 파는 순간에 사고가 날 수 있으며, 속도도 빠르다보니 사고가 날 경우 심각한 부상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생각 저 편엔 ‘수월할 것이다’라는 희망이 가득한 반면, 머릿속에선 ‘만약 급작스런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 하지?’라는 비관이 싹트고 있었다. 그래서 선배에게 자문을 구하며 “자전거 여행 중 한 명이 심하게 다치면 여행은 중지하고 모두 철수해야겠죠?”라고 물으니, “그렇다고 모두 여행을 중도에 포기하기엔 준비하고 달린 거리가 아깝지 않을까. 그땐 그냥 해당 부모님께 전화를 해서 학생을 인계하고 나머지 학생들은 자전거여행을 잘 마치는 방향이 어떨까 싶어”라고 답해주더라. 그 말을 들으니 좀 더 명확해졌다. 어떤 일이 생겼을 때 혼자 끙끙대지 말고, 해당 학부모님과 승태쌤과 상의하여 대처해나가면 된다는 것을 말이다.
어찌 되었든 위의 대화는 자전거 여행을 떠나기 전, 내가 얼마나 걱정과 불안에 떨었는지 명백히 보여준 대화라 볼 수 있다. 언제고 교사로서 학생들과 떠나는 여행은 날 여러모로 긴장되게 한다.
오늘은 단재학교에서 7시 50분에 재익이와 현세를 만나기로 했기에 나도 7시 30분에는 집을 나서야 했다. 최대한 가볍게 짐들을 챙겼다. 그 때 ‘한낮엔 덥기 때문에 반바지와 반팔에 토시를 할까, 아니면 긴 바지와 긴 웃옷을 입을까?’ 고민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은 따뜻하여 한낮에 달릴 땐 꽤 덥기에 반팔, 반바지를 챙기고 만약의 추위를 대비해 긴팔과 남방을 챙기기로 했다. 분명히 새벽에 일어날 때만 해도 추워서 눈이 저절로 떠졌는데, 막상 집을 나와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학교로 가고 있으니 덥지도 춥지도 않더라.
어찌 보면 이런 날씨가 여행을 떠나기에 딱 좋은 날씨다. 2009년에 미래에 대한 불안을 품었으나 현재에 충실하자는 생각으로 도보여행을 떠날 때, ‘앞으로 일을 하더라도, 꼭 여행을 하며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지’라고 생각했던 바람이 이미 현실에서 이렇게 이루어져 있었다. 막상 페달을 밝으며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으니, 새벽녘에 어렸던 두려움과 걱정은 눈 녹듯 사라져 있었다.
걱정과 불안이 엄습해 올 땐, 그 상황에 함몰되어 비관을 키워가기보다 무작정 나가볼 일이다. 그러면 더 이상 그 당시의 고민과 걱정거리가 별 것 아니게 느껴지곤 한다. 누군가가 말했던 ‘우리가 하는 걱정의 80%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며, 나머지 20% 중에서도 우리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 대부분이며,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2%도 안 된다’가 무슨 말인지 알겠더라. 아마도 현실의 제약은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게 만들고 그건 그대로 걱정거리로 자리한다는 말이라는 뜻일 게다.
‘약속시간에 늦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나에겐 강하게 박혀 있다. 이런 생각이야말로 시계가 개발되고 일 분 일 초 단위로 현실을 인지하게 된 근대적 인간이 만든 풍경이라는 것을 안다.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공장제 근무가 보편화되고 근대적 학교가 설립되면서 분초 단위로 쪼개 통제하게 되었다. 대한제국 시기에 조선인들은 이런 생활패턴이 자리 잡혀 있지 않았기에, 서양 사람들은 조선인들을 ‘미개한 사람’, ‘게으른 사람’이라 평했던 것이고, 심지어 ‘코리아타임’이란 비아냥까지 등장했던 것이다. 하지만 100년 사이에 조선에서 한국으로 바뀌며 괄목할만한 경제적 성장을 이루어 내며 한국 사람들은 그 누구보다도 철저히 그런 체계에 적응해 나갔다. 우리네 역사를 공부하다 보니, 이런 한국인들의 인식 변화가 한 눈에 보인 것은 물론, 나의 그와 같은 강박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흐름을 알고 있지만, 그런 생각을 놓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시간을 어기는 사람들을 보면 실망을 크게 했고, 때론 심하게 부딪히기도 했다. 지금은 학교에서 아이들과 생활하며 좀 유연해지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여행과 같은 특수상황일 때 늦는 것은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자기 한 명 늦는 것만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전체에게 피해를 입히기 때문이고, 이런 날엔 긴장이 될 것이기에 좀 더 일찍 서두를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덧붙여 오늘 같은 경우는 재익이와 현세가 길을 모른다며 함께 가자고 요청한 것이기에, 약속 시간에 맞추거나 아예 약속시간보다 일찍 와서 기다리고 있을 거라 기대를 했던 것이다.
하지만 학교에 도착하고 보니 아무도 없더라. 현세는 7분쯤 늦게, 재익이는 10분쯤 늦게 나타났다. 일찍 와서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은 애초에 없었고 제시간에 맞춰 가야한다는 생각도 없었다. 더욱이 현세 자전거(민석이 자전거를 현세가 사기로 했으나, 여행 후엔 그냥 빌리는 것으로 했단다)에는 짐받이도 설치해야 하기에 꽤 시간이 걸리는데도, 현세가 늦은 것이다. 현세 짐받이를 설치하고 있을 때, 재익이는 안 가져온 물건이 있다며 집에 갔다 오기까지 했다. 이래저래 우린 8시 16분이 되어서야 동서울터미널로 출발할 수 있었다. 8시 20분에 터미널에서 민석이와 준영이를 만나기로 했으니, 출발부터 삐걱대고 있었다.
평상시에 재익이와 현세는 지각을 밥 먹듯 하고 있다. 현세야 집이 신도림(서울의 서쪽 끝)이어서 학교(서울의 동쪽 끝)까지 오려면 1시간 30분 정도가 걸리기에 그나마 이해가 되지만, 학교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집이 있는 재익이가 늦는 건 아무리 여러 상황을 받아들인다 해도 이해되진 않았다. 그건 환경의 문제라기보다 마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재익이에겐 아직까지 ‘시간을 지키려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이 별로 없다. 그러다 보니 먼 여행을 떠나는 이 날에도 재익이는 당연히 늦었고, 그나마 제 시간에 올 것이라 기대했던 현세도 늦고야 말았다.
예전엔 이런 경우를 보면 ‘한 번 늦는 사람은 평생 늦는다’는 밑도 끝도 모를 불신 같은 것이 있었다. 그건 아마도 나의 왜곡된 현실인식이 만든 ‘사람에 대한 불신’이 반영된 평가였으리라.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까지 극단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누구나 어떤 식으로든 성장해가고, 변해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여러 부분에서 변해가는 학생들이다보니, 더욱 변화의 폭은 클 수밖에 없다. 단적으로 재익이와 현세만 놓고 봐도, 처음 만났을 당시와 비교하면 지금은 많은 부분에서 달라졌고 성장했다. 물론 때때로 퇴보한 듯한 행동에 화가 치밀 때도 있지만, 그렇게 긴 안목 속에 변화된 것들에 집중하며 나아가려 한다. 지금이 켜켜이 쌓이면 내년 이맘때엔 한 걸음 더 나가 있을 것이다.
이제 시작일 뿐이니, 맘은 조금 더 내려놓고, 나의 이상도 조금 더 낮추며 6박 7일 간의 자전거 여행을 하려 한다. 그 속에는 수많은 인연과 수많은 갈등, 그리고 수많은 사건들이 끼어들 것이다. 그런 것들을 온 몸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맘껏 페달을 밟으며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