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건빵 Jan 06. 2016

어그러진 여행, 그럼에도 순조로운 출발

낙동강-한강 자전거 여행 14 - 15.10.4(일)

▲ 10월 4일(일) 현풍터미널 → 대구 달성군 하빈면 / 36.05KM



단재학교에서 동서울터미널까지 자전거로 17분이면 주파할 수 있는 거리다. 버스 출발 시간은 9시였기에 지금 간다 해도 늦진 않지만, 제 시간(동서울터미널에 8시 20분까지 모이기로 함)에 와서 기다리는 민석이와 준영이에게 미안했기에 최대한 빨리 달렸다. 

재익이와 현세는 동서울터미널로 가는 길을 모른다고 하기에 내가 앞장서서 달린다. 중간 중간 뒤를 돌아보니 재익이는 잘 따라오지만, 현세는 벌써부터 뒤처지고 있다. 그나마 지금은 장거리가 아니기에 다행이다. 잠실철교를 건너 강변역에 도착하여 뒤를 돌아보니, 재익이만 보이고 현세는 보이지 않더라.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가 앞에서 달리는 것을 보면서 달릴 텐데, 설마 다른 길로 빠지겠어?’라고 생각하며 가만히 기다렸다.                



▲ 늦었기에 부리나케 페달을 밟아서 잠실철교를 건넜다. 이 날은 그래도 여행하기 정말 좋은 날씨다.




현세 길을 놓치다 1 - 그가 감쪽같이 사라지다   

   

그런데 몇 분이 지나도록 현세는 코빼기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쯤 되니 ‘설마가 사람 잡는다’의 상황임을 알 수 있었다. 

잠실철교에서 자전거는 두 갈래 길로 나누어진다. 직진하면 강변역으로 진입하게 되고, 왼쪽으로 꺾으면 한강자전거길로 진입하게 된다. 현세는 한강자전거길로 간 것이 분명했기에 최대한 페달을 밟아 잠실철교에 다시 올라가봤지만, 어디에도 보이지 않더라. 이미 한강자전거길로 내려가 한참이나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전화를 해봤지만, 신호만 갈 뿐 받지 않더라. 아마도 현세는 ‘많이 뒤처졌다’고만 생각하여 우리를 따라잡기 위해 열나게 페달을 밟고 있을 터였다. 

상황이 급박하기에 최대한 빨리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버스 시간이 가까워져 오고 있었기에 내가 현세를 따라가서 데려올 순 없었다. 그래서 민석이에게 전화를 하여 현세 좀 데려오라고 부탁을 하고, 난 터미널에 들어가 버스표를 끊었다. 표를 끊고 나왔는데 민석이는 전화만 해봤을 뿐, 쫓아갈 생각은 없었나 보더라. 갑작스런 상황이 발생하면 학생들은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생각하고, 교사만 발을 동동거려야 하는 상황이 많다. 어쩌겠는가? 애초에 ‘설마’라고 생각하며 현세를 잘 데려오지 못한 나를 탓할 수밖에. 

아직 22분가량 시간이 남았기에 포기하지 않고 다시 잠실철교에 올라가 무작정 전화를 했다. 역시나 아무리 전화를 해도 받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현세 입장에선 ‘이런 씹던 껌, 팔보채, 십장생 같으니라고. 뒤처진 사람을 배려해야지. 지들끼리만 막 달리고 지X이야. 얼마나 빨리 달리면, 아무리 페달을 밟아도 뒷모습조차 보이지 않냐고?’라 원망하며 미친 듯이 페달을 밟지 않았을까.                



▲ 갈림길에서 우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현세는 그 때 늘 가던 한강자전거길로 접어 들었다.




현세 길을 놓치다 2 -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가 제일 무섭다

     

흔히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맹목적인 질주의 위험성 내지는 한계를 지적한 말이다. 거기엔 ‘왜 달려야 해?’라든지, ‘이 방향이 맞는 거야?’라든지 하는 물음은 빠져 있다. 열심히 하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지만, 이유와 방향성을 묻지 않았기에 그게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조차 모른다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 보자. 일제시대에 교사에게 ‘위안부에 갈 수 있도록 학생들을 유도하라’라는 지시사항이 내려왔다. 그 때 이유와 방향성을 묻지 않는 교사라면 열심히 지시된 사항 그대로 학생들에게 ‘좋은 일자리가 있다’며 유도할 것이고, 많은 학생들을 위안부에 보냈다고 자신의 업적인 양 떠벌릴 것이다. 자신은 자신의 일을 충실히, 그것도 최선을 다해 한 것이기에 그것에 대해 뭐라고 할 순 없다. 하지만 그게 결과적으로 그 학생에겐 가혹한 노동의 현장에서 착취당하게 했거나, 성노예가 되게 했다면, 그에 대한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현세의 행동이 이와 같은 엄청난 결과를 가져 오는 행동은 물론 아니지만, 어떤 행동의 맹목성이 위험한 요소일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기에 위의 예를 든 것이다. 현세가 어느 시점에서 ‘이거 뭔가 이상한데’라는 것을 느낄 수 있어야만 그런 행동의 맹목성에서 빠져 나올 수 있다. 그럴 때 현세는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나에게 전화하든,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 방법을 찾든 할 것이다. 서서히 시간은 8시 44분을 지나가고 있었다.                



▲ [설국열차]의 교사야말로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의 위험성을 보여준다. 열심히 가르친다. 그게 옳다고 생각하니 말이다.




현세 길을 놓치다 3 - 어그러진 상황이야말로 싱그러운 삶의 축복 

    

나 또한 속수무책으로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9시 버스를 타지 못할 경우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9시 이후의 버스는 몇 시 차(1시에 있음)가 있는지 재빠르게 손재간을 부리며 검색하고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뭔가 계획대로 되어야 한다고만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계획이 어그러진 상황에선 화가 많이 났었다. 2013년에 18회 부산영화제를 보러 갈 때도 주원이와 민석이가 버스 시간에 늦게 오는 바람에, 남부터미널에서 강남터미널로 옮겨가서 버스를 탔던 경험이 있었다. 제 시간에 온 사람들은 늦은 두 사람 때문에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낭비, 돈 낭비, 거기다가 감정 낭비까지 해야 했으니 화가 났던 것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급하게 일정을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조금 더 마음의 여유를 뒀어도 되는 게 아닌가 싶다. 특히 그 날 오후의 일정이라곤 ‘초량 이바구길’을 걷는 것이기에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늦은 아이들에겐 뜨끔하게 혼을 내야겠지만, 그렇다고 감정까지 상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그 당시에 느낄 수 있었다. 



▲ 현풍까지 가는 버스의 시간표다. 하루에 세 대만 다니더라.



그런 경험들이 여러 번 있다 보니, 이번엔 그렇게까지 감정의 동요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맘이 차분히 내려앉은 느낌이다. 이번 여행 같은 경우 예약된 숙소라곤 문경새재게스트하우스 밖에 없기 때문에, 좀 더 다양한 방법들을 찾아볼 수 있다. 현세가 던져준 ‘예상치 못한 상황’이란 돌 하나가 이래저래 수많은 가능성을 열려 하고 있었다. 

그렇게 스마트폰으로 버스 시간표를 확인하던 그 때 갑자기 내 앞에 한 그림자가 서더니, “종환쌤!”이라 외친다. 외부에서 듣는 익숙한 목소리,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들려온 내 이름에 화들짝 놀랐다. 그래서 바로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현세가 있더라. 현세는 무언가 겸연쩍은 표정을 짓고 어안이 벙벙하다는 듯한 자세로 있었는데, 난 그저 반가울 뿐이었다. 그래서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달리다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껴서 주변 사람들에게 “동서울터미널 어떻게 가나요?”라고 물었다는 것이다. 그랬더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른다고 대답했으나, 그 중 한 사람이 위치를 알고 있어서 알려주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다행스러웠던 것은 그 때 시간이 8시 47분이었기에 서두르면 충분히 버스를 탈 수 있다는 것이다. 



▲ 짧지만 길던 20분만에 다시 만난 현세. 그리고 기다리다 지친 아이들. 이로써 4인방의 영화팀 완전체는 다시 만들어졌다.




특명자전거를 버스 짐칸에 실어라

     

현세를 데리고 터미널에 도착하니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더라. 승차장으로 아이들과 함께 자전거를 끌고 간다. 터미널에서의 이색체험이다. 이미 시간은 55분이다. 5분 만에 자전거를 버스에 실어야 한다. 

아침에 나올 때 ‘기사님이 자전거를 싣지 못하게 하면 어쩌지?’하는 걱정을 했었다. 한 대 싣는 거야 뭐라고 할 순 없지만, 무려 5대나 실어야 하니 말이다. 며칠 전에 세부계획을 세우러 세훈이가 운영하는 카페에 갔을 때 버스에 자전거를 싣는다고 하니, 세훈이는 “그렇지 않아도 단체로 싸이클 타시는 분들은 그렇게 버스에 싣고 많이들 가시더라”라고 말했었다. 그 말을 듣고 ‘진짜 자전거를 버스에 싣는 게 가능하긴 하구나’라고 안심하긴 했는데, 직접 부딪혀본 상황은 아니기에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다행히도 기사님은 우호적이었다. 자전거를 실을 수 있도록 모든 짐칸의 문을 열어주셨고, 거기에 덧붙여 “자전거 싣는 거야 싣는 거지만, 만약 고장 날 경우엔 책임 못 집니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은 곧 승낙의 의미를 담고 있었기에, 안심하며 자전거를 싣기 시작했다. 

버스엔 총 네 칸의 짐칸이 있다. 그 중 한 칸은 버스를 청소하기 위한 도구들이 있기 때문에, 세 칸에만 짐을 실을 수 있다. 다행히 이 날엔 버스에 사람이 별로 타지 않았고 당연히 짐들도 많지 않았다. 우린 자전거를 싣기 위해 앞바퀴를 빼어 부피를 최소한으로 줄인 후에 한 대씩 싣기 시작했다. 민석이와 준영이는 능수능란하게 앞바퀴를 분리했지만 재익이와 현세는 해본 적이 없는지 쭈뼛쭈뼛 서 있더라. 그래서 나와 준영이가 도와주어 바로 분리할 수 있었다. 한 칸 당 앞바퀴만 뺀 자전거의 경우 2대를 실을 수 있고, 페달까지 뺄 경우 3대까지 실을 수 있다. 우리는 세 칸을 쓸 수 있었기에 넉넉하게 자전거를 실을 수 있었다. 네 대의 자전거를 실었는데 시간은 벌써 9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우리 때문에 출발시간이 지연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자전거는 힘껏 밀어 넣고 잽싸게 버스에 올라탔다. 아무래도 처음으로 자전거를 싣는 것이라 요령이 없어서 힘으로 구겨 넣듯 실었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 요령이 없다보니, 그냥 우겨넣듯이 넣었다. 어찌 되었든 자전거를 싣고 버스도 제 시간에 탔으니 다행이다~



버스에 올라 좌석에 앉으니, 아침의 햇살이 내 몸을 따뜻하게 감싸준다. 의자는 안락하고 햇살은 포근하니 졸음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이제 시작일 뿐인데, 벌써부터 모든 여행이 끝난 마냥 맘과 몸의 긴장이 완전히 풀어진 느낌이다. 그렇게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서 헤매던 그 때, 불연 듯 ‘짐칸에 실은 자전거가 버스의 흔들림에 망가지면 어쩌나?’하는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한다. 만약 진짜 그런 일이 생긴다 해도 어떻게 할 텐가? 이미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을. 다 귀찮다, 그냥 지금은 맘껏 잠이나 자보련다. 



▲ 표정이 밝은 아이들. 기분 좋은 출발.
매거진의 이전글 스펙터클한 출발과 기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