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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Jan 11. 2016

보고 싶은 걸 보고, 믿고 싶은 걸 믿는다

낙동강-한강 자전거 여행 22 - 15.10.6(화)

▲ 10월 6일(화) 상주시 → 문경새재 / 62.04KM

         


도시에 있는 찜질방은 늘 24시간을 하지만, 이런 외진 곳에 있는 찜질방은 거의 10시가 되면 문을 닫는다. 그래서 계획을 짤 때 묵을 수 있는 곳인지 물어보니, “사람이 온다고 하면 잘 수는 있는데, 전날에 다시 한 번 전화주세요”라고 하더라.                




황토찜질방, 24시 찜질방보다 환경이 열악하다

     

그래서 어제 전화를 해보니, “잠을 잘 수는 있는데, 화요일은 찜질방 휴무일이라 7시에는 나가야 합니다”라고 말해주시더라. 너무 이른 시간이긴 해도, 다른 선택지도 없었고 차라리 일찍 출발하여 게스트하우스에 빨리 도착하여 쉬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여 거기에서 자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어제 뜻밖의 일로 지칠대로 지쳤기에, 찜질방에 도착하자마자 “내일 몇 시까지 나가야 하나요?”라고 다시 물어봤다. 그랬더니 “8시까지 나가면 됩니다.”라고 정정해주시더라. 어제 무리를 하지 않았으면 굳이 한 시간 늘어난 게 의미가 없을 테지만, 지금은 매우 의미가 있다.               



▲ [낙동강-한강 자전거 여행] 영상의 한 장면, 어젠 정말 치열한 밤이었다.




못 찾겠다 캠코더 1 - 보이지 않을 때와 보일 때의 차이

     

그래서 아이들에겐 “8시까지는 찜질방을 나가야 한대. 그러니 8시에 나와서 자전거 먼저 수리하고 있어. 나는 좀 일찍 나가서 캠코더가 있는지 다시 찾아보고 올게”라고 얘기했다. 

어제 되게 피곤하긴 했나 보더라. 편한 잠자리는 아닌데, 눕자마자 언제 잠이 들었는지도 모르게 잤으니 말이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피곤이 몰려 왔지만 해야 할 일이 있기에 뜨거운 물로 씻으며 정신을 차리고 캠코더를 찾아 떠났다. 

7시에 나왔는데 벌써 밖은 환해져 있었다. 어제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달렸던 길을, 오늘은 거슬러 간다. 이렇게 경사가 심하고 힘들었던 길인가? 분명 어제와 같은 길을 가고 있는데, 완전히 다른 길을 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 순간 해골바가지 이야기로 유명한 원효대사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가 떠오르더라.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을 때 마신 물은 세상에서 여태껏 맛보지 못한 청량감을 안겨줬고, 가슴 속까지 시원하게 적셔줬다. 그렇게 달콤하고 맛있었던 물이, 그 다음날 일어나 눈으로 보는 순간 구토가 나올 정도로 더러운 물로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분명 같은 물이고, 이미 소화가 됐을 법한 물임에도 눈을 통해 현실을 보는 순간 거부반응을 일으킨다. 그렇게 때문에 ‘모든 건 마음의 문제’라고 원효대사는 잘라 말하게 된 것이다. 

지금 이 경우도 마찬가지다. 어젠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속에서 어떻게든 길을 더듬어 오기에 바빴다. 오르막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어느 정도 경사의 오르막인지, 어디가 끝인지 보이지 않았기에 그냥 오르기만 하면 됐었다. 하지만 아침에 그 길을 되돌아가보니, 길이 어떤지 한눈에 보이더라. 그리고 꽤 힘든 길이란 것도 알 수 있었다.

아는 게 힘’, ‘직접 봐야 믿겠다’는 말을 우린 당연한 진리처럼 여기고 있다. 알아야 무지가 주는 두려움에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뭐든 직접 보고 들어야만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죽하면 게오르크 짐멜Georg simmel은 “도시에서는 시감각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는 말까지 했을까? 하지만 안다고 하는 것, 본다고 하는 것이 어쩌면 우리의 고정관념을 더욱 강화시켜 주는 건지도 모른다. 흔히 하는 말처럼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알고 싶은 것만 (알고 싶어 하는 것만) 알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기 스스로는 객관적인 판단을 하는 사람이라고 착각할지 모르지만, 실질적으로 알고 보면 그저 자신의 주관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그런 것들을 역이용하는 것이다. 

같은 길을 다시 달리며, 전혀 다른 느낌이 들었기에 본다는 것, 경험한다는 것이 얼마나 주관적인 것인지 더욱 자세히 느낄 수 있었다.                     



▲ 어제 왔던 길을 그대로 달려 간다. 이렇게 경사가 급한 길이었나? 전혀 다른 길 같다.




못 찾겠다 캠코더 2 - 만약을 위한 대책을 생각하다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다. 열심히 페달을 밟기에 더워질 만 한데도, 오히려 춥기만 하다. 안개가 껴서 앞도 잘 보이지 않는다. 

캠코더를 찾으러 가지만 당연히 걱정부터 앞선다. 어제 캠코더가 사라졌을 때만 해도 아예 못 찾을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 땐 떨어질 때 세게 부딪혀 캠코더가 고장 나면 어쩌나 걱정했을 뿐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두 번이나 찾아봤는데도 찾질 못했고 그래서 내가 다시 찾아봤는데도 찾을 수가 없자, 걱정이 물밀 듯 밀려왔다. 그러니 아침에 간다 해도 꼭 찾는다는 보장은 없었다. 

캠코더를 정말로 찾지 못하면 문제가 되는 건 두 가지였다. 첫째는 어제도 잠시 말했다시피 이틀간 찍은 영상들이 모두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만들 영상은 중간부터 시작해야 되는 최악의 상황이 된다. 물론 카메라로 살짝 살짝 동영상을 찍긴 했지만, 그것으로 시작부분을 만들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둘째는 지금까지의 수고가 헛수고가 되기에 아이들은 허탈해 할 것이고, 그러다 보면 영상을 찍고자 하는 마음도 사그라들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만약 찾지 못하더라도 스마트폰을 사용하여 영상을 찍고 아이들의 의욕이 떨어지지 않도록 힘을 북돋워줘야겠다고 생각했다.                



▲ 저 멀리 상주시가 보인다. 아침이 서서히 밝아오고 있다.




못 찾겠다 캠코더 3 - 손에 든 열쇠를 찾지 못하듯 

    

서서히 안개가 짙어지고 있다. 아무래도 아침이 밝아오며 기온차가 심해지기 때문에 안개가 짙어지는 걸 테다. 1시간 정도를 달리니 어제 그 역사적인 장소에 도착했다. 

자전거를 국도 밑에 세워두고 마지막에 수리하던 곳에서부터 처음 수리하던 곳까지 작은 흔적이라도 놓칠세라 꼼꼼히 살펴보며 올라간다. 샅샅이 살피며 국도 쪽으로 올라가는데도 캠코더는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중간쯤에 물이 빠지도록 만들어놓은 배수구 같은 게 있었다. 배수구 위엔 콘크리트로 만든 덮개가 있고 배수구는 깊었는데, ‘혹시 저기에 빠진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플래시를 켜서 살펴볼까 하다가, 아직 윗 쪽은 안 찾아봤기에 거기부터 찾아보기로 하고 잠시 미뤄뒀다. 

훑으며 올라가다가 결국 마지막 장소인 처음 수리하던 곳에 이르게 됐다. 그곳을 매의 눈으로 하나하나 살펴보고 있는데, 보이지 않더라. 그곳엔 이미 여러 잡다한 쓰레기들이 널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때 뭔가 익숙한 무언가가 살짝 보인다. 검은 테두리의 플라스틱 물체였는데, 무척 낯익은 거였다. 그래서 자세히 살펴보니 그게 바로 캠코더였다. 캠코더는 뒤집어져 있고 화면은 열려 있는 상태더라. 그 땐 정말 만감이 교차했다.  



▲ 처음 수리하던 장소에 떨어져 있던 캠코더. 이걸 발견하는 순간, 만감이 교차했다.



              

못 찾겠다 캠코더 4 -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란 그토록 간사하더라. 아침에 나올 때만해도 ‘캠코더만 찾는다면 바랄 게 없습니다’라고 했는데, 막상 캠코더가 눈앞에 보이자 순식간에 마음은 다른 바람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제발 캠코더가 잘 작동되도록 해주세요’라고 말이다. 솔직히 말하면 이 마음도 두 단계나 앞서 간 것이다. 애초엔 달리다가 캠코더가 도로에 떨어졌으면 박살났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풀 위에 떨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렇다면 캠코더가 떨어지며 충격을 거의 받지 않았겠는데’라는 생각이 스친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잘 작동되길 바랄 밖에. 

그래서 떨리는 손으로 귀중한 보물을 다루듯 천천히 캠코더를 집어 들었다. 먼저 외관을 살펴보는데, 다행히도 부서진 곳은 없더라. 밤새도록 이곳에서 있었기에 이슬을 맞아 차갑긴 했지만, 외관은 괜찮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게 남아 있었으니, 그건 바로 캠코더가 생명줄을 놓지 않았느냐 하는 점이다. 보통은 LCD 화면을 열면 캠코더가 켜지며 촬영 모드로 진입하지만, 고장 난 경우라면 LCD를 열어도 아무 반응이 없을 것이다. ‘하느님! 부처님! 알라님! 천지신명님! 도깨비님!’을 맘속으로 외치며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열려 있던 LCD를 닫았다가 다시 열었다. 그 찰나의 순간이 나에겐 영원보다 더 길게 느껴졌다. 마른 침을 삼키며 긴장하고 있는데, 몇 초의 정적 후에 캠코더에서 ‘띠링~’하는 효과음과 함께 촬영모드로 바로 들어가더라. 그 때의 기쁨은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인데, 굳이 말로 하자면 전셋집으로 이사한 만큼의 기쁨이라고나 할까.                



▲ 두 번째로 수리했던 장소다. 아침에 오니 기분이 색다르다.




캠코더를 찾았다고 세상에 알리지 말라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페달을 밟아 돌아간다. 아이들은 삼천리 자전거에 도착했다고 하더라. 그래서 그곳으로 갔더니, 자전거는 전혀 고치지 않고 있었다. 내가 도착하면 다 고쳐져 있고, 난 수리비만 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들은 내가 올 때까지 고쳐선 안 된다고 생각했나 보더라. 그래서 준영이 자전거를 뺀 민석이와 재익이 자전거는 펑크를 때웠고 현세 자전거는 튜브를 갈았다. 역시 전문가답게 쓱싹쓱싹 순식간에 하시더라. 아이들은 “캠코더 어떻게 됐어요?”라고 물었고, 난 “아무리 찾아봐도 없더라. 정말 이상하지 않냐? 얼마나 움직였다고 감쪽같이 사라질 수가 있냐?”고 속였다. 왠지 그냥 찾았다고 하면 너무 밋밋할 것 같아, 재밌는 놀이를 하듯 깜짝 놀래켜 주고 싶어서 그렇게 말한 것이다. 

어젠 저녁도 먹지 못했기에, 오늘은 든든하게 아침을 먹고 출발하기로 했다. 자전거점 근처에 있는 국밥집에서 밥을 거하게 먹었다. 역시 무언가 들어간다는 건 단순히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한술의 밥이 들어가니, 행복도 저절로 따라온다. 



▲ 어제 저녁까지 굶고서 먹는 아침이라 더 맛있다.



밥을 먹고 나선 어제 하지 못한 인터뷰를 했는데, 이 때 촬영은 내 카메라의 동영상 기능으로 했다. 그래야 아이들이 ‘캠코더를 진짜 못 찾았나 보다’라고 생각할 테니 말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자연스럽게 가방에 넣어 놓았던 캠코더를 빼들었고 셋째 날 오프닝을 찍기 시작했다. 그러자 처음엔 아이들도 뭐가 달라진 건지 모르더라. 하지만 곧 상황을 알아채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람이 놀랄 때 눈이 커진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그 때 보니 그 말이 사실이었고, 그 광경을 보고 있는 내가 더 신이 났다. 그래서 찾게 된 경위에 대해 얘기해주고, 캠코더도 멀쩡하여 앞으로의 촬영도 문제가 없다고 알려줬다. 그랬더니 그 말을 다 듣고 현세가 “아~ 아깝다!”라고 말하더라. 캠코더가 없으면 촬영이 좀 소홀해지고 그로인해 여행이 한결 나아질 거라 생각했나 보다. 하지만 현세의 말이 나에겐 ‘아~ 기쁘다!’라는 뉘앙스로 들렸다. 역시 사람은 지 듣고 싶은 대로 듣는가 보다



▲ [낙동강-한강 자전거 여행] 영상의 한 장면, 놀랄 땐 이토록 눈이 커진다. 오늘의 몰카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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