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하이쿠 <54>

2019년 8월16일

by 허건수



1.




2.








1.

비 그친 순간
약속한 듯 나타난
이 모든 것들



2.

맺힌 물방울
고개 내민 달팽이
비 그친 순간



"제주도는 어느 오름이 제일 좋은가요?"라고 물으신다면, 저로선 대답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오름은 어느 때에 가면 좋은가요?"라고 물으신다면 좀 더 대답이 쉽지요.
"비 내린 후."

그렇게 이번 주에 오름을 다녀왔습니다. 조금 전까지 내리던 비가 이제 막 그친 참이었지요. 가장 먼저 등장하는 건 모기였습니다. 몇 방 물리고 가려운 곳을 긁어대며 걷다보니, 나뭇잎 끝엔 햇빝을 받아 반짝이는 물방울들이, 그 아래에는 어느덧 피어난 버섯과 동그란 집을 이고 다니는 달팽이가, 그리고 이따금씩 온통 제 시선을 앗아가는 검은 제비나비가 날아다녔습니다.
문득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대체 이 모든 것들은 어디 있다가 나오는 것일까.. 짙은 숲내음을 한껏 마시며 걷고 걷다가 내려온 비 그친 후, 오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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