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가을, 하이쿠 4연작

<특별기획 7.>

by 허건수



1.




2.




3.




4.







1.

세찬 파도가
지우고 지워내네
모든 소리를


올 가을에는 유독 태풍이 잦았습니다. 평소에는 잔잔하던 제주 앞바다에도 세찬 파도가 몰아치곤 했었지요. 하얀 거품을 일으키며 거침없이 해안으로 밀려들어와 부서지고 부서지길 반복하는 파도를 보고 있노라면,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고 단지 파도소리만, 그리하여 마치 소리로 소리를 지우는 듯, 세상에는 단 하나의 소리만 남았습니다.



2.

탁. 쳐놓고
왜 멈춰서있었나
눈물도 없이


별생각 없이 벌레를 탁. 쳐놓고선 한동안 멈춰서있었습니다.

'이게 맞나?'

이렇게 아무렇지 않아도 되나..? 이게 원래 당연했던가..? 모르겠습니다. 가끔씩 제 자신이 눈을 뜨고 있어도 눈을 감고 사는 것만 같습니다.



3.

흙에서 난 건
떨구고 떨어져서
흙으로 가네


오름에 갔었습니다. 떨어진 잎들이 보였습니다. 그 옆에는 새로 올라오고 있는 싹들이 있었구요. 문득 흙에서 나온 건 떨구고 떨어져서 다시 흙으로 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4.

나무 따라서
올려다보면 아-
하늘에 가을


한라산 둘레길 동백길 코스를 갔었습니다. 가다 보면 삼나무 숲지대를 지나 편백나무숲지대가 나오지요. 곳곳에 평상과 벤치가 있었습니다. 걸을 만큼 걸었겠다 잠시 쉬어나볼까 하고 평상에 벌렁 몸을 뉘었습니다. 참 나무도 높다... 싶어 나무줄기를 따라 천천히 올려다보니 그렇게도 하늘이 파랗고 높을 수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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